구스코 부도리의 전기 (양장) ㅣ 사계절 1318 문고 37
이경옥 옮김, 이광익 그림 / 사계절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항상 허겁지겁 먹는 게 버릇이 돼서 속으로 자꾸만 나를 타이르지 않으면 10분만에 밥을 다 해치우는데,

한 입이 들어가면 서너 번 씹을까 말까 하니 음식 맛을 제대로 알 리도 없거니와

어떤 때는 먹고 돌아서도 배가 헛헛할 때가 많다.

그러다보니 밥을 먹은 뒤에도 고소한 빵 냄새에 이끌려 먹고 싶단 생각을 하거나

새콤한 소스 냄새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도 그와 비슷한 일을 겪는다.

기록한 걸 보니 이 책은 2006년 5월 15일에 처음 읽었는데 그때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이 새로 나왔다는 게 너무 좋아서

그야말로 허겁지겁 읽어버리고는 맛을 음미할 새도 없고, 포만감을 느낄 수도 없어 실망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천천히 잘 읽어보자 마음 먹고 빨라지려는 눈동자의 움직임을 붙들었다.

그리고 포만감과 함께 '역시 미야자와 겐지야' 라는 말이 저절로 터져나왔다.

 

옮긴이의 말처럼 이 책 속 두 이야기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와 <펜넨넨넨넨 네네무의 전기>는 닮았다.

<펜넨넨넨넨 네네무의 전기>가 좀더 앞선 시기에 쓰여졌으니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의 바탕이 됐다고 할 수도 있다.

구스코 부도리나 펜넨넨넨넨 네네무는 기근으로 부모를 여의고 여동생을 잃어버린 후

큰 일을 해내는데 구스코 부도리가 자신을 희생해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펜넨넨넨넨 네네무는 갑작스럽게 재판장이 된 후 자만심에 빠져 있다가 인간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실수를 하고는 그 지위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이야기는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펜넨넨넨넨 네네무는 요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고,

구스코 부도리의 경우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고 있긴 해도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어떻게 보면 두 이야기는 거울을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요괴 세상의 펜넨넨넨넨 네네무가 인간세상의 구스코 부도리로 바뀌는 것.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두 편의 이야기를 읽는 건 재미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고

오히려 중학생 이후, 혹은 현실에 잡혀 사는 어른들을 위한 일종의 '귀신의 집' 쯤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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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큰>은 흥미로웠다.

리암 리슨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고, 딸을 향한 애틋한 사랑도 좋았다.

자동차 추격신이나 격투신도 흥미진진했지만.

하지만 딸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는 하나

사람들을 무차별하게 마구 죽이는 행위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상만 입혀도 될 일을 복수를 위해 다 죽이다니.

마치 <라이언 일병 구하기> 때와 같이 목에 걸린 뭔가가 내려가지 않고 계속 남아 있다.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병사들을 희생시키고,

킴을 구하기 위해 갖은 범법과 살인을 마다하지 않고도 유유히 빠져나가는 아버지를 보는 건 찝찝하다.

딸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아버지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지만

기운 넘치는 람보보다는 뭔가 좀 부족하고 서툴러도 법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활약하는 아버지를 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인신매매범을 두둔하자는 건 아니다.

그래도 똑같은 행동을 하는 건 나도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라는 걸 보여주는 셈이니

정의실현이라는 미명 아래 무늬만 다를 뿐 똑같은 옷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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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4-27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미류나무님..메피스토입니다.^^
저도 저 영화를 보면서..와 저렇게 다 쓸어버려야 하나 했는데..
영화를 보고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아마도 아버지의 전직이 전직이니만큼
후환발생이 전혀 발생하지 않을 "멸절"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더라구요.
살려뒀다간 언젠가 자신뿐이 아닌 자신의 딸에게도 분명 걸림돌이 될만하니까요.
그래도 통쾌한 영화 속에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부인할 수 없더라구요..

미류나무 2008-04-24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메피스토님 ^^
그래서 저도 생각했답니다. 딱히 뭐라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래서 아버지 직업을 그렇게 설정한 거구나. 너무 작위적인데? 이러면서요..ㅎㅎ 하긴, 그래야 그림이 되긴 하겠죠? 굉장한 걸 기대하고 보는 영화가 아니니까 우리는 즐긴 것으로 만족을 해야겠죠?
 

복슬복슬 탐스러운 하얀 털에,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

그 무리 뒤를 조용히 따르는 자그마한 체구의 양 모는 강아지 한 마리.

그리고 풀밭과 나른한 고요.

이런 것들이 내가 양을 떠올릴 때 함께 따라오는 이미지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본 양은 마구 엉킨 듯한 잿빛 털과 무시무시한 먹성

먹을 때 드러나는 아랫니의 음험한 기운과 엄청한 냄새로 숨쉬기가 힘들었다.

현실과 상상은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난다.

어떤 것들은 그저 상상으로 그치는 게 좋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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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을 떠도는 벌 한 마리

- 이윤학

 

 가을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하고 있는데

벌 한 마리

좁아터진 방,

유리창을 떠돌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날갯소리

그 터는 소리, 유리창을 잔뜩 물들인 햇볕,

보다 넓은 감옥을 보기 위해, 가끔

열곤 하는 저 유리 창문

열어주고 싶지 않다

 

저러다, 언젠가, 창틀에서

우연히 발견되겟지 하면서,

날갯소리 나는 곳을 바라본다

 

벌은 악착같다,

유리창에 바짝 붙어 있다

항문을, 침을, 안으로 오므리고

무수한 날개로 유리창을 치고 있다

 

**

어제 다시 꺼내 읽은 아지즈 네신의 <당나귀는 당나귀답게>라는 책 속에는

'위대한 똥파리'가 나온다.

집안에 갇힌 젊은 파리 한 마리가 아직은 훤한 밖으로 나가기 위해 유리창으로 열심히 돌진하자

다른 파리들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끝까지 말리지만 젊은 파리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앉아있는다고

뭔가가 바뀌지 않는다면서 끝까지 유리창에 부딪히기를 되풀이한다.

그러다가 글도 읽을 줄 아는 우리의 젊은 파리는 그집 아들 녀석이 펼쳐 놓은 책속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유리창을 뚫고 지나가기 위해선 광속과 같은 속도가 필요하단 걸 읽고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유리창으로 돌진하다 결국은 납작하게 짜부러지고

다른 파리들은 그런 젊은 파리를 자유를 위해 싸운 위대한 파리로 부르자고 한다.

아지즈 네신은 사회풍자로 유명한 사람이니까 깊이 보면 냄새가 물씬 풍기지만

그런 건 제쳐두고,

벌 한 마리를 못 나가게 잡아두는 이윤학의 손짓에서 젊은 파리가 연상되었다는 말이다.

자유를 찾아 투쟁한다기보다는 그냥 본능적인 거겠지만

두 녀석이 어쩌면 그렇게 악착같이 나가려고 기를 쓰는 건지.

누군가가 가두어둘수록 발버둥치는 건 동물들의 공통된 습성인가보다.

아이들도 그렇고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자유를 갖기란 젊은 파리의 경우처럼 참 어려운 것일뿐더러

자유를 찾는다해도 그걸 지켜나가기가 어렵다.

사는 건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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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 에드워드 윌슨 지음, 사이언스 북스 펴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책이지만

왜 그리 말이 많은지 한 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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