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빈 2

-獨房

 

                                                         문태준

 

 칠성여인숙에 들어섰을 때 문득, 돌아 돌아서 독방

으로 왔다는 것을 알았다

 

 한 칸 방에 앉아 피로처럼 피로처럼 꽃잎 지는 나를

보았다 천장과 바닥만 있는 그만한 독방에 벽처럼 앉

아 무엇인가 한 뼘 한 뼘 작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흘

러 나가는 것을 보았다

 

 고창 공용버스터미널로 미진양복점으로 저울집으로

대농기계수리점으로 어둑발은 내리는데 산서성의

나귀처럼 걸어온 나여.

 

 몸이 뿌리로 줄기로 잎으로 꽃으로 척척척 밀려가다

슬로비디오처럼 뒤로 뒤로 주섬주섬 물러나고 늦추며

잎이 마르고 줄기가 마르고 뿌리가 사라지는 몸의 숙

박부. 싯다르타에게 그러했듯 왕궁이면서 화장터인

한 몸

 

나도 오늘은 아주 식물적으로 독방이 그립다

 

****

 

내 몸이 서서히 퇴화되어 그림자밖에 남는 게 없을 지라도

그런 독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온갖 욕망에서 나를 지키고

다른 이에게서 나를 지키고

다른 이를 나에게서 지켜주고

 

그러기 위해서

나도 독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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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24일

-문태준

 

 이 지구에서 가장 높이 자란 저 먼 나라 삼나무는

뿌리에서 잎까지 물이 올라가는 데 꼬박 24일이 걸린

다 한다

 

 나는 24일이라는 말에 그 삼나무가 그립고 하루가

아프다

 나의 하루에는 쏙독새가 울고 나비가 너울너울 날고

꽃이 피는데

 달이 반달을 지나 보름을 지나 그믐의 흙덩이로 서

서히 되돌아가는 그 24일

 우리가 수없이 눕고 일어서고 울고 웃다 지치는 그

24일 늙은 삼나무에게는 오롯이 하나의 小天이라니!

한 동이의 물이라니!

 

 나는 또 하루를 천둥 치듯 벼락 내리듯 살아왔고

 산그림자를 제 몸 안에 가두어 묻으며 서서히 먼 산

이 저무는데

 저 먼 산에는 물항아리를 이고 산고개를 넘어 아직

도 집으로 돌아가는 샘물 같은 산골 아이가 있을 것만

같다

 

****

나는 혈액 순환이 잘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내 몸은 내 믿음을 배신하여

나는 혈액순환이 안 되는 편이다.

그래서 손, 발이 찬 거라고 한다.

내 발 끝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피가 돌기에도

24일 쯤 걸려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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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최승자




어느 날 한 사람이 블랙 홀로 빨려들어간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블랙 홀로 빨려들어간다.

어느 날 네 사람이 블랙 홀로 빨려들어간다.

어느 날 사만 명이 블랙 홀로 빨려들어간다.

어느 날...... 어느 날......

어느 날 지구는 잠잠 무사하고




텅 빈 아시아 대륙

황량한 사막 위로 모래바람이 불어가고

마지막으로, 실패한 한 남자 곁에

한사코, 실패한 한 여자가 눕는다

어디선가 붉은 양수가 질펀하게

새어 흐르기 시작하고




(누구, 너희는 누구?)

허공 한 구석에서

외계인의 눈알 하나가

조소처럼 빛나고 있다.




**********

아주 진부한 표현이지만,

지하철을 보면 늘 그런 생각을 한다.

거대한 문, 빨려들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굉음..

블랙 홀 이미지

자꾸만 사라지는 사람들

자꾸만 사라지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빨리 사라지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거기에 끼워져 있었다.

사라졌던 사람들은 잠시 후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 블랙 홀에서 튕겨져 나왔다

덕분에, 위액을 진탕 뒤집어 쓴 사람들은 너나없이 늙어 있다.

피곤해 보인다.

내 얼굴도 그렇다.

신선놀음 하는 블랙 홀은 없을까?

거기 가면, 쓴 위액 말고

저승의 잠 같은 미인의 화장품을 구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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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 프랑켄 - 작은책방 열린 문고 5
곤도우 마사노리 기획, 다치바나 나오노스케 글 그림, 김소운 옮김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2007년 10월12일 발효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에 따라 정신지체장애가 지적장애로 명칭 변경되었다.

정신지체라는 명칭이 주는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명칭을 지적장애로 변경한 것이다.

지적장애인은 지적인 능력에서 장애를 가질 뿐,

사회적 지원만 있으면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생활할 수 있는 능력과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같은 맥락으로 발달장애도 자폐성 장애로 변경되었다.

며칠 전 신문에 기고한 어떤 이의 글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명칭으로 불러달라고 간곡한 어조로 부탁하는 글이었는데

오늘 이 동화책을 보면서 다시 생각이 났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작년 10월에 발표된 것이라는데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아이들이 편견을 갖지 않도록, 오해를 줄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작가는

여기 나오는 '프랑켄'처럼 지적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고 한다.

실제로도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활동하셨다는데 그게 참 놀랍고 부러운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가능할까?

정말 조금 불편할 뿐인 '장애'로 인식하는 그들의 열린 사고가 부러웠다.

우리 아이들 곁에도 장애를 가지셨지만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런 선생님이 계신다면

아이들에게  편견과 오해가 쌓일 틈이 없을 텐데.

사마귀, 네 어머니께 여쭤보렴.

만일 사마귀가 프랑켄처럼 머리 속에 상처를 입고 태어났다면 어떠셨겠냐고..

프랑켄이 묻는다.

그저 머리 속에 상처를 입고 태어난 것이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이다.

* 그림책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초등학교 1, 2학년 친구들은 부모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읽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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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에 별은

-이성복




봄밤에 별은 네 겨드랑이 사이로 돋아난다

봄밤에 어둠은 더 멀지도 가깝지도 않고

바람 불면 개나리 노란 가시 담장 불똥을

날린다 이 순간의 괴로움을 뭐라고 하나

봄밤에 철없이 인생은 새고 인생은 찻길로

뛰어들고, 치근덕거리며 별이 허리에 달라

붙어도 넌 이름이 없다, 넌 참 마음이 없다




****

잊고 있었다. 봄이라는 사실을.

요즘 운동으로 몸이 조금 가벼워진 탓인지

(물론 무게감으로는 하나도 변함이 없지만)

불면증도 어느 정도 사라져 한 번도 깨는 일 없이

아침을 맞고 했었기 때문이리라.

어제는,

베개를 하나 받았다.

속에 숯이랑 옥이랑 또 뭐라더라?

휘기야하는 식물 성분이 들어있다는 베개




특별이 내게만 주신다는 그 베개는

우리 아버지가 ‘00치료기’로 매일

무료치료를 받으시면서

개근상으로 받으신 베개다.




그 베개를 건네받는데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기억하리라.

우리를 열쾅케 했던 그 영화 ‘천장지구’

(여기서 우리라 함은 나와 코드가 같은

몇몇 사람을 지칭하는 바이니

그 ‘우리’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고 화를 내지는 말 것)

유덕화가 다친 후 할아버지 집으로 피신을 가버리자

그를 너무도 보고 싶어 했던 그녀 오천련이

물어물어 그곳까지 찾아갔을 때

웃음만 잔잔히 지으시던 그 할아버지는

유덕화와 그녀가 떠날 때 빨간 베개를 선물로 주셨다.

그걸 받고 무척이나 행복해하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나는..무척이나 행복해하는 얼굴대신

‘이게 효험이 있을까? ’하는 미심쩍은 얼굴이었던 게 틀림없다.

우리 엄마가 “싫으면 관둬라” 라는 대사를 날리신 걸 보면

어쨌거나 그런 걸 마다했다가는 후환이 두려운 고로

얼굴표정 관리에 들어가 살짝 미소까지 지어보이고 가져왔다.

근데 이놈의 베개가 왜 그렇게 높은지

자려고 누웠는데 목이 뻐근할 정도인 거다.

할 수없이 예전에 베던 베개로 바꾸고 잠을 청했는데

새벽 무렵 뒤척이다 보니

다시 그 베개를 베고 자고 있는 게 아닌가.

무심결에 얼굴을 스윽- 만졌는데

우툴두툴 이상한 게 만져졌다.

거울을 보니 베개 속에 있던 내용물이 얼굴에 그대로 찍혀

낙인찍힌 소 마냥 되어 있었다.

‘이 순간의 괴로움을 뭐라고 하나’

흑...




편안한 밤이 되기는커녕 그놈의 베개 때문에

 잠을 설치고 말았으니

‘치근덕거리며’ 내 잠에 끼어든 이 베개란 녀석

확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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