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최승자
어느 날 한 사람이 블랙 홀로 빨려들어간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블랙 홀로 빨려들어간다.
어느 날 네 사람이 블랙 홀로 빨려들어간다.
어느 날 사만 명이 블랙 홀로 빨려들어간다.
어느 날...... 어느 날......
어느 날 지구는 잠잠 무사하고
텅 빈 아시아 대륙
황량한 사막 위로 모래바람이 불어가고
마지막으로, 실패한 한 남자 곁에
한사코, 실패한 한 여자가 눕는다
어디선가 붉은 양수가 질펀하게
새어 흐르기 시작하고
(누구, 너희는 누구?)
허공 한 구석에서
외계인의 눈알 하나가
조소처럼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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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진부한 표현이지만,
지하철을 보면 늘 그런 생각을 한다.
거대한 문, 빨려들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굉음..
블랙 홀 이미지
자꾸만 사라지는 사람들
자꾸만 사라지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빨리 사라지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거기에 끼워져 있었다.
사라졌던 사람들은 잠시 후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 블랙 홀에서 튕겨져 나왔다
덕분에, 위액을 진탕 뒤집어 쓴 사람들은 너나없이 늙어 있다.
피곤해 보인다.
내 얼굴도 그렇다.
신선놀음 하는 블랙 홀은 없을까?
거기 가면, 쓴 위액 말고
저승의 잠 같은 미인의 화장품을 구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