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최승자




어느 날 한 사람이 블랙 홀로 빨려들어간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블랙 홀로 빨려들어간다.

어느 날 네 사람이 블랙 홀로 빨려들어간다.

어느 날 사만 명이 블랙 홀로 빨려들어간다.

어느 날...... 어느 날......

어느 날 지구는 잠잠 무사하고




텅 빈 아시아 대륙

황량한 사막 위로 모래바람이 불어가고

마지막으로, 실패한 한 남자 곁에

한사코, 실패한 한 여자가 눕는다

어디선가 붉은 양수가 질펀하게

새어 흐르기 시작하고




(누구, 너희는 누구?)

허공 한 구석에서

외계인의 눈알 하나가

조소처럼 빛나고 있다.




**********

아주 진부한 표현이지만,

지하철을 보면 늘 그런 생각을 한다.

거대한 문, 빨려들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굉음..

블랙 홀 이미지

자꾸만 사라지는 사람들

자꾸만 사라지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빨리 사라지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거기에 끼워져 있었다.

사라졌던 사람들은 잠시 후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 블랙 홀에서 튕겨져 나왔다

덕분에, 위액을 진탕 뒤집어 쓴 사람들은 너나없이 늙어 있다.

피곤해 보인다.

내 얼굴도 그렇다.

신선놀음 하는 블랙 홀은 없을까?

거기 가면, 쓴 위액 말고

저승의 잠 같은 미인의 화장품을 구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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