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08778.html

한겨레에서 연재하는 김소연 시인의 칼럼을 좋아한다. 올라올 때마다 찾아읽는 것보다 가끔 생각나면 들어가서 읽는 편.

읽지 않은 짧은 글이 많이 쌓여 있으면 뭔가 기다려준 건가 싶은 기분, 으랏챠 너 다 읽어라 ! 그러는 것 같다. 천천히 천천히 읽는다. 오늘 아침도 이 글들 덕분에 다잡아진다. 물컹한 아침. 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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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9-24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20일까지 비비안 마이어×게리 위노 그랜드 사진전이라는데 그걸 왜 이제 알았지.

이번주 일요일까지니까, 가려면 갈 수 있지만 심지어 회사랑 가깝지만 음음 이 귀차는 마음은 뭐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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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여가
제임스 설터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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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 낀 아침들. 바람부는 아침들. 흑풍이 물처럼 몰려드는 아침들. 나무는 흔들리고 창문은 선박처럼 삐걱거린다. 비가 내릴 것이다. 잠시 후 유리창에 빗방울이 소리없이 부딪친다. 천천히 그 숫자가 늘어나 유리창을 덮고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그 서늘한 아침 오툉의 모든 것이 비를 맞는다. 줄무늬가 생기다가 이어 전체가 젖어 짙어지는 로마식 대문의 조각, 이제 번들거리는 청회색 지붕, 묘지, 이루 강의 다리들. 이따금 바람이 되돌아와 비스듬하게 누운 빗줄기가 모래처럼 유리창을 두드려댄다. 빗방울이 대로와 건물, 이 마을의 옛 영화 위로 도처에 떨어진다. 뤼코트 서점 유리창에도 비, 아케이드 상점가에도, 초콜릿 가게 '몽죄의 백조'에도 비. 나를 몹시 기쁘게 해주는 길고 고른 비.

 

 나는 걸어서 돌아온다. 거리는 완전한 적막에 싸였다. 움직이는 차 하나, 사람 하나 없다. 창백한 하늘에 새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마치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들이 이따금 가는 모퉁이 카페의 창문 안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자고 있다. 꿈처럼 부드러운, 몸집이 큰 고양이가. 나는 잠이 깨어 그 도시를 마주하고 거기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강을 따라 걸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온몸이 마른나무 같다. 나는 그들이 살고 있는 거리로 접어든다. 푸르고 텅 빈 널찍한 거리, 내 시야가 미치는 한 텅 비어 있는 인도로.

 

 

설터의 배경 묘사를 좋아한다.  사실 설터의 문장은 차갑차갑 서늘서늘 최고이지만, 그중에서도 어떤 문단을 시작하거나 끝날 때, 손바닥으로 먼지를 쓸듯 거리를 묘사하는 게 참 좋다. <가벼운 나날>에서도 그랬고 <스포츠와 여가>에서도 그랬다.

 딘과 안마리의 관계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화자인 '나'와 딘, 안마리의 거리다. '나'는 그들의 한발짝 뒤에서 훔쳐보는 이이며, 그들을 배치해 머리 위에서 바라보는 이이기도 하다. 그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악수하고 인사하며 살결을 상상한다. '나'가 그들 앞에 바짝 다가섰다가도 멀어지는 그 순간들이 이 소설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사실 <가벼운 나날>을 조금 더 좋아하는데 설터 소설 중 첫번째로 읽어서 그런 건 아니고…더 유리조각같은 문장들이 번뜩였던 것 같은데…처음 읽어서 더 그렇게 느낀 걸까. 다시 <가벼운 나날>을 읽어봐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설터의 소설은 참 좋지만 대신 다 읽고 나면 누워 있어야 한다. 다 읽고 난 뒤의 흐뭇한 미소 뭐 그딴 거 없다. 일단 아오 좀 눕고 생각해봐야 된다. 머릿속에 문장들이 차그랑차그랑 굴러다니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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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일요일 밤 <비우티풀>

그 사이의 술, 지평 막걸리와 맥주와 순하리 소주와…

 

 금요일 밤에는 왠지 모르게 피곤해 퇴근 후 떡볶이를 먹으며 놀고 쉬었다. 밤이 됐을 때 같이 사는 친구가 술을 마시지 않겠느냐고 했는데 왠일로 거절했다. 방에 불 꺼두고 담요 덮고 엎드려 본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바톤 핑크>와 <애리조나 유괴사건>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사이의 시간은 이십 년 정도 지나지 않았나.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 아, 맞다, 난 스릴러를 좋아했지. 보는 내내 말 그대로 숨죽였다. 흐름을 끊고 싶지도 않아서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도 참음. 이걸 이걸 큰 화면에서 봤더라면. 아쉬움이 남았다. 항상 좋은 영화를 나중에 노트북으로 보게 되면 후회하게 된다. 좋은 모니터를 당장 살 수도 없고. 요새는 영화가 나쁘지 않을 것 같으면 극장으로 달려간다. 하도 후회를 많이 해서 그런가. 보는 동안 피튀기고 총질하는 내용에 비해 톤이 일정해서 계속 몸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좋아서 미쳐버리는 줄. 유난히 기억에 남는 장면? 모든 장면이 하비에르 바르뎀의 짙은 선. 눈꺼풀과 콧망울, 턱에 진하게 잡힌 그림자들.

 

 토요일은 술을 마셨다. 친구가 사는 동네에 놀러왔고 사실 빈번하게 와서 막 반기고 그런 건 아니고… 만나자마자 술집에 들어갔다. 진정한 술친구인가. 술(을 위해 만나는)친구는 아닌 걸로. 술(을 만나면 시너지 폭발하는)친구 사이인 걸로. 원래 집앞에 단골술집이 있어 그쪽에서만 마시는 편인데 윗동으로 괜히 올라가봤더니, 이런 새로운 술집이 생긴 거다. 밖에서 보니 분위기도 괜찮아보여 올라갔더니 진짜 괜찮아서 놀랐다. 연남동에서 이쪽으로 넘어온지 이주 됐다고 했다. 지평막걸리와 초당두부구이 시켜서 두부구이 나오기 전에 한 병을 넘겼다. 한달에 한 두번은 무조건 만나는 사이라 거의 근황을 서로 듣고 시덥잖은 얘기를 하곤 하는데 그날도 그랬고 몇 병을 더 넘기니 내 입에선 이런 말이 나왔다. 너 그 집에서 나와야겠다. 머리는 복잡할 수록 더 복잡해진다. 친구는 지금 복잡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복잡한 바깥일을 풀어내려고 한다. 너 그 집에서 나와야겠다.

 그러다 집앞 단골술집으로 내려와 같이 사는 친구까지 합세 해서 막걸리를 순하리 유자 소주를 마셨다. 바깥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굉장히 어려보이는 남자 열 명 정도가 술집에 들어와서 왁자지껄하게 주문을 했다. 왁자지껄은 귀엽지 않았다. 맞은 편에 앉아 있어 그들이 말이 다 들렸는데 도저히 참기 힘든 비하와 욕들이 (가장 화가 나는 건 낄낄대며 옆 친구를 욕하는 단어가 누군가를 비하하는 뜻이라는 점) 열 개의 입에서 모조리 쏟아져 나왔다. 친구는 참기 힘들어 집에 들어가자고 했지만 나는 그러하다. 저들 때문에 내 술 할당량을 못채울 수는 없는 거다. 나는 쟤들이 집에 갈 때까지 여기서 조용히 저 말을 다 들으며 술을 마시겠다. 그리하여 그리했다. 친구는 옆 테이블 커플에게 아이스크림을 나눠주었고 우린 다같이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었다.

 남자가 번데기탕을 못먹는 여자 앞에서 멋쩍은 얼굴로 번데기탕을 흡입하는 동안 나는 계속 달디 단 소주 먹으면서 그들이 하는 얘기를 다 들었다. 왜 이런 오기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세 시 쯤 자리에서 일어났고 자리 아래론 소주병이 굴러다녔는데 그게 좋은데이 석류였다. 이제 그들을 만나면 석류보이라고 부르리라. 에라이.

 

 일요일 늦게 일어나 라면으로 다같이 해장을 하고 무한도전을 보고 또 무엇을 했나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만지작만지작거리고 뭐 그랬다. 해가 슬슬 지려고 했는데 아, 영화를 보고 싶었다. 좋은 영화를 보고 싶었다. 이대로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면 마음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비우티풀> 다운 받았다. 왠일로 같이 사는 친구도 보지 않은 영화라고 해서 셋이 다같이 거실에 모여 앉아 불 꺼두고 산딸기바게트와 바질샌드위치 커피 입에 넣으며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면서 아무 말 하고 싶지 않았는데 역시 둘 이상이면 그건 안되는 건 가봐… 힝. 그러다가도 영화가 중반부에 접어들자 아무 말 없었다. 영화 밖으로 들리는 소리라고는 향초 나무심지 타는 소리 뿐. 조용히 영화를 보았고 밤이 되었다. 이번에도 영화를 다 본 후 아 좋다, 와 좋다 하는데 친구들도 같이 아 좋다, 와 좋다 하니 더 좋고 더 좋은 기분. 감독이 나는 이미지를 좋아하는 것 같아. <버드맨>에서도 엄청 날잖아. <버드맨>보다 나는 이게 좋아. 아, 나도 이게 더 좋아. 이런 얘기를 하면서. <버드맨> 너무 세련되게 만들었어. 그래 너무 세련됐지. 물론 좋았지만 오늘이 더 좋은 걸 어쩌나. 비우티풀, 비우티풀.

 

 여튼 이번주 주말은 하비에르 바르뎀과 함께. 연기왕 만세만세만만세!

 

 탄력 받아서 오늘은 같이 사는 친구와 <이민자>보기로 했다. 친구와는 영화를 같이 보기도 하지만 같은 영화를 따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민자>는 함께 보고 나와 감탄을 쏟아낼 옆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 잠을 못자 눈이 아프지만 오늘 밤은 <이민자>. 요새 사이가 좋다.

 

뿌잉. 오늘 어쩌다보니 이렇게 길게. 자주 쓰고 싶은데 사실 부끄러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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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9-07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드맨도 좋았지만 비우티풀에 한 표 더요!! 동감입니다.
하비에르 바르뎀은 정말이지 타고난 배우일까요.^^
고야의 유령,에서도 그렇고, 소름 돋아요 정말.

이름 2015-09-08 08:19   좋아요 0 | URL
<고야의 유령>은 아직 보지 못한 영화인데 ! 오 ! 봐야겠어용 감사합니다 :-)

프레이야 2015-09-08 08:36   좋아요 0 | URL
네 ㅎㅎ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보셨나요?

이름 2015-09-08 08:53   좋아요 0 | URL
그영화는 그냥 넘겼었는데... 괜찮다면 볼 의향이 ㅎㅎ

프레이야 2015-09-08 09:22   좋아요 0 | URL
네, 줄리아 로버츠와 사랑하게 되는데, 바르뎀의 좀다른 캐릭터를 보실 수 있어요. ^^
 

<비우티풀>을 보는 일요일 밤은 아주 괜찮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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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9-06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