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구월하고 울고 싶다. 벌써 구월이라니. 구월구월

요새 좋았던 단편이 별로 없다는 게 아쉬워서 구월구월

맥주살이 늘어나서 구월구월

이럴 땐 역시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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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1 17: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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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리는 것, 즉 기다림을 하나의 중성적 행위로 만드는 것에 주의하는 것, 자기에게 감겨서, 가장 내부의 것과 가장 외부의 것이 일치하는 그러한 원들 사이에 끼여서, 예기치 않은 것으로 다시 향하는, 기다림 속에서의 부주의한 주의. 어떠한 것도 기다리기를 거부하는 기다림, 발걸음마다 펼쳐지는 고요의 자리.

 그는 감추어저 있고 극도의 주의 깊은 행위에 깔려 있을 경우에만 이를 수 있는 원초적인 부주의 가운데 있다는 느낌을 확인한다. 기다리면서, 그러나 기다릴 수 없는 것 아래에서.

 그녀에게 기다린다는 것은, 자신이 그에게 잘 끌어갈 의무를 부여한, 그리고 결과적으로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점차 나아가야만 하는 한 이야기 속에 자신을 맡겨 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원초적인 부주의 가운데 있지 않닿면 주의란 헛된 행위일 수밖에 없다고 느끼지만, 이 이야기에 따라 그는 점차로 그 원초적인 부주의에서 벗어나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 무엇을 기다려야만 했는가? 만약 그가 그렇게 묻는다면, 그녀는 놀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기다린다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어떤 것을 기다리게 되자마자, 보다 덜 기다리게 되었다.

 

*

 

 기다리는 것, 단지 기다리는 것. 기이한 기다림, 모든 점들로부터 똑같이 놓인 공간처럼 모든 순간에 똑같은 기다림, 공간과도 같은, 계속되는 압력을 주는 동시에 주지 않는 기다림. 우리 가운데 있었지만 이제 바깥으로 지나가는 고독한 기다림, 어떠한 것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게 하고 우리가 기다리는 것 너머에서 기다리도록 우리를 몰아가는, 우리 없는 우리의 기다림. 무엇보다 먼저 내밀성, 무엇보다 먼저 내밀성에 대한 무관심, 무엇보다 먼저 서로 무관한, 관계 없이 맞닿아 있는 순간들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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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있는 책

 

 

 

 

 

 

 

 

 

 

 

 

 

<벌거숭이들>은 한참 읽다가 어쩌다보니 놔버렸다. 다른 두 권을 다 읽고 봐야겠다.

<현기증. 감정들>은 겁나 좋다. 겁나 좋아서 다른 걸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이민자들>과 <아우스터리츠>보다 훨씬 잘 읽히는 느낌인데 그게 이 소설의 결인 건지 배수아 번역의 힘인 건지 잘 모르겠다. 표지의 윗 그림이 나름 잘 어울린다.

<꿈의 꿈>은 친구가 빌려주어서 읽다가 다른 일을 하느라 반절 남겨놓고 접어둔 책. 이번 주가 지나면 <꿈의 꿈>과 <현기증. 감정들>을 시원한 카페에서 여유롭게 읽고 싶다. 집은 너무 덥고 습해......... 토요일엔 더위때문에 일어나자마자 밥 먹고 씻고 집에서 가까운 카페로 피신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사람이 너무 많았다. 진짜 너무 많아서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으앙.......버티지 못하고 다시 집에 들어왔고...샤워를 네 번 했다......일요일이었던 어제는 종일 비가 왔는데 종일 비가 오면 좋을 줄 알았는데 너무 습해.......심지어 낮엔 몸이 끈적끈적.......진흙처럼 방바닥에 붙어 있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사실 할 일이 엄청 많았는데. 그래서 오늘 해야함.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는데, 피할 수 없으니 피할 수 없는 상대가 날 때리는 느낌임. 겁나 두들겨맞으면서 앞으로 앞으로 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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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살인 그레이스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아이였으며, 머리카락은 빨간색보다는 금발에 가까웠다. 피부는 하얗고 깨끗했으며, 눈은 보라색에 가까울 만큼 진한 파란색이었다. 조용하고 명랑한 그레이스는 제 아비에게 향수에 찬 경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들에서 기쁨을 찾아냈다.

 그레이스는 가끔 동네 아이들과 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아버지와 함께 커다란 서재에 앉아 아버지가 채점하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모습을 지켜볼 때가 많았다. 아이가 아버지에게 말을 걸면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어찌나 조용하고 진지한 대화였는지, 윌리엄 스토너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 부드러움에 감동했다. 그레이스는 노란 종이에 서투르지만 매력적인 그림들을 그려 엄숙한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초등학교 1학년용 독본을 소리 내어 읽어주기도 했다. 밤에 아이를 재운 뒤 서재로 돌아갈 때면, 아이가 서재에 없다는 사실이 실감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이가 위층에서 안전하게 자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거의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는 사실상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기 눈앞에서 자라나는 아이의 모습을 놀라움과 사랑의 눈길로 지켜보았다. 아이의 얼굴에는 그 내면에서 움직이고 있는 지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57)

 

 결국 그는 제시 홀의 연구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과거의 습관으로 돌아갔다. 그는 이런저런 강의를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공부의 방향을 미리 정해놓을 필요도 없이 자유로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자신을 타일렀다. 그는 순전히 자기만의 즐거움을 위해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으려고 했다. 그가 수년 전부터 읽으려고 마음먹고 있던 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머리는 그가 원하는 곳으로 이끌려 가려고 하지 않았다. 생각은 그가 들고 있는 책에서 멀어져 방황했고, 그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마치 그가 일고 있던 것들이 때로 머리에서 싹 비워져버리는 것 같았다. 그의 의지력이 모든 힘을 잃어버리는 것 같기도 했다. 가끔은 자신이 식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자신을 찔러 활기를 되찾아줄 뭔가를 갈망했다. 고통이라도 좋았다.

 이제 나이를 먹은 그는 압도적일 정도로 단순해서 대처할 수단이 전혀 없는 문제가 점점 강렬해지는 순간에 도달했다. 자신의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다. 모든 사람이 어느 시기에 직면하게 되는 의문인 것 같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의문이 이토록 비정하게 다가오는지 궁금했다. 이 의문은 슬픔도 함께 가져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이나 그의 운명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반적인 슬픔이었다(그의 생각에는 그런 것 같았다). 문제의 의문이 지금 자신이 직면한 가장 뻔한 원인, 즉 자신의 삶에서 튀어나온 것인지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나이를 먹은 탓에, 그가 우연히 겪은 일들과 주변 상황이 강렬한 탓에, 자신이 그 일들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탓에 그런 의문이 생겨난 것 같았다. 그는 보잘것없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배운 것들 덕분에 이런 지식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우울하고 역설적인 기쁨을 느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심지어 그에게 이런 지식을 알려준 배움까지도 무익하고 공허하며, 궁극적으로는 배움으로도 변하지 않는 무()로 졸아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저녁강의를 마친 뒤 늦게 연구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어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겨울이었는데, 낮에 눈이 내려서 바깥 풍경이 하얗고 부드럽게 보였다. 연구실 안은 지나치게 더웠다. 그는 사방이 막힌 연구실 안으로 서늘한 바람이 들어오도록 책상 옆의 창문을 열고 심호흡을 하며 하얗게 변한 캠퍼스를 눈으로 방황했다. 그러다가 충동적으로 책상 위의 불을 끄고는 덥고 어두운 연구실에 앉아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허파를 가득 채웠다. 열린 창문을 향해 몸을 기울이자 겨울밤의 침묵이 들려왔다. 섬세하고 복잡하며 조직이 성긴 눈()이라는 존재에 흡수된 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하얀 풍경 위에서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죽음 같은 풍경이 그를 잡아당기고, 그의 의식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공기 중의 소리를 끌어당겨 차갑고 하얗고 부드러운 눈 밑에 묻어버릴 때처럼. 그는 자신이 그 하얀 풍경을 향해 끌려가는 것을 느꼈다. 눈앞에 한없이 펼쳐진 하얀 풍경은 어둠의 일부가 되어 반짝였다. 그것은 높이도 깊이도 가늠할 수 없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의 일부였다. 순간적으로 그는 창가에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몸에서 자신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그러니까 그 하얗기만 한 풍경과 나무들과 높은 기둥들과 밤과 저 멀리의 별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작고 멀어 보였다. 마치 그것들이 무()를 향해 점차 졸아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등 뒤에서 라디에이터가 쩡 하는 소리를 냈다. 그가 몸을 움직이자 풍경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내키지 않는 안도감을 느끼며 다시 책상 위의 불을 켰다. 그리고 책 한 권과 논문 몇 개를 챙겨서 연구실을 나가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제시 홀 뒤편의 널찍한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 그는 집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마른 눈 속에 발을 디딜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억눌린 듯 커다랗게 울리는 것을 의식하면서.(251~253)

 

 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스토너는 그레이스가 직접 말했던 것처럼 절망을 거의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레이스는 해가 갈수록 술을 조금씩 더 마셔서 공허해진 자신의 삶에 맞서 스스로를 무감각하게 만들면서 하루하루를 조용히 살아갈 터였다. 그는 그녀에게 적어도 그런 생활이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레이스가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35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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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이 들었고, 잠이 든 상태에서는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악몽일 뿐이야. 내가 설령 바지에 오줌을 지리거나 상체를 일으켜 밖으로 나가 담벼락 위를 걸어 다닌다고 해도 그건 몽유에 불과한 거지. 현실 속에서 이렇게 나는 누워만 있는데. 이 현실이 길고 지루한, 벌거벗은 몽환극의 일부라고 해도. 움직일 수 없는 몸의 움직이는 꿈이라고 해도. 현실은 현실이지. 현실보다 앞서거나 뒤처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현실의 연약한 지반에 뿌리를 내린 무대. 무대 속의 무대. 무대 밖의 무대. 어떻게 무대가 구부러질 수 있단 말인가. 무대는 기울어져만 간다. 걷거나 멈춰 있거나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간에 언제나 무대는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마련이지. 인물들은, 그것보다 나는 기울어지기 않기 위해,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무대에 발을 붙이고 있는 거야. 기울어지고 싶어도 기울어지지 않지. (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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