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ㅣ 문장 시리즈
은유 지음 / 유유 / 2016년 8월
평점 :
작가의 재능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희귀하지 않다. 오히려 그 재능은 많은 시간 동안의 고독을 견디고 계속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는 능력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_리베카 솔닛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하거나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쓰라고 권할 것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사색하고 책들을 보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흐름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여러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_버지니아 울프
글쓰기의 실천은 기본적으로 '망설임들'로 꾸며집니다. _롤랑 바르트
며칠 전, 버스를 기다리며 보니 매대 물건이 바뀌었다. 여름 내 팔던 천도복숭아 대신 양파가 분홍 바구니에 담겨 나란히 놓여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아들은 절룩거리며 매대에서 양파 바구니 위치를 계속 옮겼다. 얼핏 보기에 개수도 크기도 비슷한 그것들을 하나 빼서 앞에 두었다가 뒷줄 것과 바꾸었다가 다시 앞줄에 놓았다가 마냥 그러는 것이다.
(…)
그 망설임들로 꽉찬 시간들. 이게 나을까, 저게 나을까. 거기서 막 빠져나온 나에게 그의 동작이 낯설지 않았던 것이다. 무의미의 반복에서 의미를 길어 내기. 무모의 시간을 버티며 일상의 근력 기르기.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111쪽)
스스로를 작가가 아닌 글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은유의 글 쓰기에 관한 책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문장을 옮겨 적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많은 문장들이 모여 있다. 그 문장에서부터 자신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카페에 앉아 오랫동안 글을 쓰고 다시 지워버린 날과 글쓰기 수업에서 학인이 자신의 글을 떨리는 목소리로 읽은 날. 글이 생활이 되고 생활이 글로 이어지는 사람의 이야기. 경주에 놀러 가서는 터미널 앞 한옥 스타벅스에 매일 한 두 시간 씩 있었고 그때마다 읽었다. 읽으면서 공감하기도 하고 어떤 결연한 마음 같은 게 느껴져서 나를 다시 돌아보기도 했다. 나는 책상에 앉아 무엇을 하고 있나.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사라락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좋은 작가들의 글 쓰기에 관한, 어쩌면 생 전반에 파문을 일으킬 문장들과 그 문장에서부터 길어올린 글. 글 쓰기 방법론을 표방하는 책보다 더 많은 도움(?) 혹은 힘(?)이 되는 책이 아닐까.
본다는 것은 보고 있는 것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_폴 발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