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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여가
제임스 설터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6월
평점 :
구름 낀 아침들. 바람부는 아침들. 흑풍이 물처럼 몰려드는 아침들. 나무는 흔들리고 창문은 선박처럼 삐걱거린다. 비가 내릴 것이다. 잠시 후 유리창에 빗방울이 소리없이 부딪친다. 천천히 그 숫자가 늘어나 유리창을 덮고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그 서늘한 아침 오툉의 모든 것이 비를 맞는다. 줄무늬가 생기다가 이어 전체가 젖어 짙어지는 로마식 대문의 조각, 이제 번들거리는 청회색 지붕, 묘지, 이루 강의 다리들. 이따금 바람이 되돌아와 비스듬하게 누운 빗줄기가 모래처럼 유리창을 두드려댄다. 빗방울이 대로와 건물, 이 마을의 옛 영화 위로 도처에 떨어진다. 뤼코트 서점 유리창에도 비, 아케이드 상점가에도, 초콜릿 가게 '몽죄의 백조'에도 비. 나를 몹시 기쁘게 해주는 길고 고른 비.
나는 걸어서 돌아온다. 거리는 완전한 적막에 싸였다. 움직이는 차 하나, 사람 하나 없다. 창백한 하늘에 새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마치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들이 이따금 가는 모퉁이 카페의 창문 안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자고 있다. 꿈처럼 부드러운, 몸집이 큰 고양이가. 나는 잠이 깨어 그 도시를 마주하고 거기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강을 따라 걸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온몸이 마른나무 같다. 나는 그들이 살고 있는 거리로 접어든다. 푸르고 텅 빈 널찍한 거리, 내 시야가 미치는 한 텅 비어 있는 인도로.
설터의 배경 묘사를 좋아한다. 사실 설터의 문장은 차갑차갑 서늘서늘 최고이지만, 그중에서도 어떤 문단을 시작하거나 끝날 때, 손바닥으로 먼지를 쓸듯 거리를 묘사하는 게 참 좋다. <가벼운 나날>에서도 그랬고 <스포츠와 여가>에서도 그랬다.
딘과 안마리의 관계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화자인 '나'와 딘, 안마리의 거리다. '나'는 그들의 한발짝 뒤에서 훔쳐보는 이이며, 그들을 배치해 머리 위에서 바라보는 이이기도 하다. 그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악수하고 인사하며 살결을 상상한다. '나'가 그들 앞에 바짝 다가섰다가도 멀어지는 그 순간들이 이 소설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사실 <가벼운 나날>을 조금 더 좋아하는데 설터 소설 중 첫번째로 읽어서 그런 건 아니고…더 유리조각같은 문장들이 번뜩였던 것 같은데…처음 읽어서 더 그렇게 느낀 걸까. 다시 <가벼운 나날>을 읽어봐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설터의 소설은 참 좋지만 대신 다 읽고 나면 누워 있어야 한다. 다 읽고 난 뒤의 흐뭇한 미소 뭐 그딴 거 없다. 일단 아오 좀 눕고 생각해봐야 된다. 머릿속에 문장들이 차그랑차그랑 굴러다니고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