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작년보다 책을 많이 읽긴 했는데 완전 문학 편향. 문학을 애정함.
작년에 읽은 소설 중에는 <스토너>와 <방랑기>가 압도적으로 좋았다, 라는 페이퍼를 쓴 것 같은데 찾아도 나오질 않네. 썼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나보다. 나는 왜 이러나. 그래서 올해 읽은 것 중에 뭐가 뭐가 좋았나 생각했다. 아직 올해가 이틀 남긴 했지만 지금 읽고 있는 <미국의 송어낚시>가 제일 좋고 그러진 않을 것 같아서...
좋은 소설이 많은 해였다. 그럼에도 <빨강의 자서전>. 첫 페이지부터 압도적이었다. 시의 모습으로 보이는 문장들이 아름다워서, 그 안에 담긴 인물들의 이야기와 공간이 몸 어딘가에 퍼지는 기분이었다. 좋은 소설을 추천해달라는 사람들에게 앤 카슨의 책을 이야기하는데 다들 좋았다고 했으니 나 또한 기분이 좋았고. 같은 책을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은 좋으니까. 물론 <남편의 아름다움>도 좋지만 아무래도 나는 <빨강의 자서전>.
그들은 많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세탁, 게리온의 형이 마약을 하는 것,
욕실전등.
어머니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바라보더니 도로 넣었다. 게리온은
식탁 위 자신의 팔에 머리를 얹었다.
그는 몹시 졸렸다. 이윽고 두 사람은 일어나서 각자의 길로 갔다. 과일 그릇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래 빈 채로.
(108쪽)
이준규의 <7>도 좋아서 열심히 읽었지만...하...이준규... 할 말이 없다.
백은선의 시집 1, 3부가 좋았다. 특히 <가능세계>
이게 끝이면 좋겠다 끝장났으면 좋겠다
젖은 솜처럼
해수어와 담수어의 사이만큼
이미 실패했지만 다시 실패하고 싶다
천체의 운행 손을 잡아도 기분이 없는 밤 밥을 떠올리는 빈 나무 의자 의자가 되기 전 나무가 가졌을 그림 바지 자비 자비라는 오타 이야기 할 입과 듣지 않을 귀 남겨진 손 다시 남겨진 천체의 어마어마 그냥 다 끝장났으면 그랬으면
<가능세계> 中
기욤 아폴리네르 시집도 넘나 좋았구요. 사실 좋은 책들이 많았지. 올해는 유난히 책이 좋았나. 아니면 내가 책을 읽기 좋은 상태였나.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올해의 문장을 뽑으라면 나는 단연코 <안녕, 주정뱅이>의 첫 번째 소설, 첫 문장을 뽑으련다.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
이 문장은 읽은 후로 자주 생각했다.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이 문장을 생각했다. 이 문장을 말하기가 어렵지 않은 시기.
올해의 영화를 뽑으라면 그냥 감독을 뽑아버리겠어. 페드로 코스타였다. 영상자료원에서 특별전을 했고 감독 초대도 하고 나는 하릴없이 걸어가 영화를 보고 돌아왔다. 도대체 영상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거야. <용암의 집>은 어떻게 구하긴 했다만 제일 좋았던 것은 <호스 머니>. 다시 보고 싶....
<죽음의 자서전>은 친구에게 주고 오느라 내가 옮길 수가 없네, 당장.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