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 용산 걸어본다 1
이광호 지음 / 난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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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의 저녁 무렵 남일당 터, 빠른 걸음으로 퇴근길을 재촉하거나 얼어붙은 바람이 불어오는 뒷골목의 술집과 밥집을 기웃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어보면, 정말 잔인한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진다. '그날' 함께 있지 못한 사람들의 죄의식인지, 참담한 폭력의 기억을 너무나 쉽게 지워버리는 무감한 세월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뼘도 달라지지 않은 세상의 맹목인지,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마비된 발걸음인지. 시간은 무서운 속도로 지나가버렸지만 누군가의 시간은 2009년 1월에 갇혀 있다. 거리의 버려진 개들이 눈을 껌벅거리는 저녁, 죽은 나뭇잎들이 들이닥치는 버스 정거장에서는 2009년의 잿빛 구름이 멎는다.

 

 

  잘 지내느냐고 차마 묻지도 못할 것이다. '그날'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저 캄캄한 시간에 대해 한순간도 등을 돌리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왜 망루에 오르고 타워크레인에 올라가는가? 혹은 왜 망루에서 불타 죽어가거나 타워크레인 위의 칼날 같은 바람 속에 혼자 서 있어야 할까? 이곳은 말을 박탈당한 사람들의 장소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다만 작은 한식당과 호프집과 복집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았던 사람들과, 의식주의 공간을 빼앗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아는 철거민들이었다. 그리고 그날 마지막까지 망루에 올랐던 사람들이다. 망루란 무엇인가? 먼 곳을 보기 위해 세우는 벽이 없는 시설. 벽이 없는 망루 위에 오른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더 많은 곳으로부터 노출되고 표적이 된다는 것이다. 망루에 오르는 것은 무언가를 걸어야 하는 일이다. 망루 위에서 맞이하는 시간이란 언제 아래로 다시 내려갈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시간, 바람이 몰려오는 칼날 위에 서 있는 것, 결국은 혼자만의 망루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 더 갈 데가 없는 시간이다.

 

 

  망루에 올랐던 사람들은 그 방법 외에 말할 수 있는 길이 없었으며, 경찰관들은 그 작전의 부당성을 말할 입을 갖지 못했다. 이 끔찍한 침묵에 대해 이 공터가 말하는 것은 없다. 시간이 지나 결국 이곳에 높고 아름다운 건물이 세워진다고 해도 이 두려운 침묵은 그 건물을 지탱하는 철근 마디마디에 새겨질 것이다. 그 침묵들은 자라나서 더 큰 침묵에게 다가가 그것을 뒤흔들 것이다. 남일당은 용산 재개발의 종착지이면서, 이곳에서 벌어진 참혹한 근대화와 150년 전부터 시작된 '식민'의 마지막 장면이다. 진출과 개발이라는 이름 뒤의 무서운 비밀들. 모든 참혹한 길들이 여기로 모여들어 오래고 두려운 비밀에 대해 숙덕거릴 것이다.

 

(144~145page)

 

 

 

이 부분을 읽기 위해 책을 집은 것일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는 용산의 곳곳에 대해, 숨어들어있거나 누군가에 의해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수십의 겹이 거리에 남아 있고 저자는 그 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으며 어디서부터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실 <사랑의 미래>는 도저히 읽기가 힘들어 포기했는데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는 정말,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를 걷는 마음으로 읽었다. 용산이라는 공간의 이야기라니. 다른 곳엔 얼마나의 이야기가 또 있나. 얼마큼의 사금파리가 묻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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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18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사람들은 용산 이야기를 듣기를 거부하거나 잊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잊어선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늘 속에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이름 2016-09-19 13:51   좋아요 0 | URL
잊어야만 살 수 있다는 듯히 흘러가고 있네요. 그러기엔 너무 많은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