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약간 가볍고 좀 재밌는 그런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딱히 뭘 다운받아야할지도 모르겠어서 외장하드에 묵혀둔 영화 리스트를 훑었다. 그러다 나온 게 < 파리, 사랑한 날들>. 원제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던디. 그리고 이런 느낌의 제목일 수가 없는 영화던디. 여튼 몇 년 동안 묵혀두기만 하고 앞에만 보고 오 분 이상을 보지 못했던 영화를 더럽게 추운 밤에 전기장판으로 무장한 뒤 맥주를 마시면서 봤다. 노곤노곤하니. 노곤노곤. 말이 좋네. 노곤노곤!

 뭔가 엄청나게 지리멸렬한 연애를 보다보니 피곤해지고 피곤해져셔 잠깐 노트북을 옆에 두고 엎드려 잤는데 그게 한 시간.

한시간이나 잤네. 깨우는 바람에 일어나서 검은콩볶음을 한 주먹 입에 넣고 다시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요상하게 기댄 자세로. 남은 십 분을 보았다고 합니다. 영화를 보는 중간에 맥주를 다 마셔서 더 사올까 말까, 뭔가 먹고도 싶네 이런 생각을 했지만 12월이니께 돈 쓸 일이 어마어마할지도 모르니 오늘만이라도 참자는 생각으로 꾹꾹 참고. 검은콩볶음이나 씹으면서 와닥와닥 씹으면서 영화를 마저 보고. 영화의 시작처럼 영화의 끝도 그러하니 나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고 검은콩볶음을 씹겠어. 와닥와닥와닥와다닥.

 이제 집은 엄청나게 추워지겠지. 어제 거실까지도 뽁뽁이를 붙였다. 누워만있는데도 코가 시리다. 근데 뭔가 좋음. 차가운 방 안에서 따뜻한 이불 덮고 있는 거 좋음. 왠만하면 밖에 안 나가야지, 라는 생각을 어제와 오늘 하고 있는데 잘 모르겠다. 집에 있으면 이불 안에만 있을 것 같은데. 이불 안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할 수 있지.

 그냥 좀 다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12월. 이런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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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고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침묵은 능동적인 것이고 독자적인 완전한 세계이다. 침묵은 그야말로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위대하다. 침묵은 존재한다. 고로 침묵은 위대하다. 그 단순한 현존 속에 침묵의 위대함이 있다.

 침묵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침묵은 모든 것이 아직도 정지해있는 존재였던 저 태고 때부터 시작된 듯하다.

 말하자면, 침묵은 창조되지 않은 채 영속하는 존재이다.

 침묵이 존재할 때에는 그때가지 침묵 말고는 달느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듯이 보인다.

 침묵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인간은 침묵에 의해서 관찰당한다.

 인간이 침묵을 관찰한다기보다는 침묵이 인간을 관찰한다.

 인간은 침묵을 시험하지 않지만, 침묵은 인간을 시험한다.

 

*

 

 침묵은 자기자신 안에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다라서 침묵은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완전하게 현존하며 자신이 나타나는 공간을 언제난 완전하게 가득 채운다.

 침묵은 시간 속에서 발전하거나 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은 침묵 속에서 성장한다. 마치 시간이라는 씨앗이 침묵 속에 뿌려져 침묵 속에서 싹을 틔우는 것 같다. 침묵은 시간이 성숙하게 될 토양이다.

 

 멂과 가까움. 멀리 있음과 지금 여기 있음 그리고 특수와 보편이 그처럼 한 통일체 속에 나란히 존재하는 것을 침묵말고는 다른 어떤 현상에도 없다.

 

*

 

 단지 다른 말에서 나온 것일 뿐일 말은 딱딱하고 공격적이다.

 그러한 말은 또한 고독하다. 현대의 우울은 인간의 말 대부분을 침묵과 분리시킴으로써 말은 고독하게 만들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침묵의 제거는 인간의 내부에서 하나의 죄책감으로 존재하고, 그 죄책감이 우울로 나타난다. 이제는 침묵의 가장자리가 아니라 우울의 어두운 가장자리가 말을 감싸고 있다.

 

*

 

 오늘날 말은 그 침묵의 두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말은 소음에서 생겨나서 소음 속에서 사라진다. 오늘날 침묵은 더 이상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가 아니다. 침묵은 다만 아직 소음이 뚫고 들어가지 않은 곳일 뿐이다. 그것은 소음의 중지일 뿐이다. 소음장치가 어느 한순간 작동을 멈추면 그것이 오늘날의 침묵이다. 즉 작동하지 않는 소음이 침묵이다. 이제는 더 이상 여기에 말이 있고 저기에 침묵이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여기에 말해지는 말이 있고 저기에 아직 말해지지 않은 말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아직 말해지지 않은 말이라는 것도 지금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 말해지지 않은 말들은 마치 사용되지 않은 연장들처럼 주위에 서 있다. 위협적으로 혹은 권태적으로.

 언어 속에는 또 하나의 침묵, 죽음으로부터 나오는 침묵도 없다. 오늘날에는 진정한 죽음이 없는 까닭이다. 오늘날 죽음은 더 이상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수동적인 어떤 것일 뿐이다. 즉 생명이라고 불리는 것의 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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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거 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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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다 - 수전 손택의 일기와 노트 1947~1963 수전 손택의 일기와 노트 1
수전 손택 지음, 데이비드 리프 엮음, 김선형 옮김 / 이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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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살았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손택도 그런 사람.

남들보다 촘촘하고 괴롭게 살았구나, 라는 생각.

남의 일기를 들춰본다는 재미로 시작해서 나마저도 괴롭게 만드는.

많은 생을 살았구나. 계속 이런 생각이 든다. 다음 책은 언제 나오려나.

누군가의 일기를 책장에 모아 꽂는다는 게 참 이상한 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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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쓰기 어려울 것이고

그럼에도

나는 쓴다고 말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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