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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 - 하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박혜경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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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마틴 래디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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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가하라전투 5- 시대의 패자, 역사의 승자
시바 료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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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팩트풀니스 (50만 부 뉴에디션)-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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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브라더스 -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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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 2번 째로 읽은 책은 <망원동 브라더스>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김호연님은 <불편한 편의점>을 쓰신 분입니다. 각박한 현실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따뜻하게 전달했던 책으로 기억합니다. 


망원동 옥탑방에 각자의 사연을 가진 4명이 모입니다. 그들은 20대 고시생, 30대 만화가, 40대 기러기 아빠, 50대 황혼이혼남입니다. 20대에 취직하고, 계속 회사원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 대해 잘 모릅니다. 가족을 외국에 보내고, 그들을 뒷바라지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황혼이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정해진 일상의 반복된 삶을 살지 않고, 무계획으로 매일 살아가면서 생활비를 걱정하는 그들의 삶이 궁색하고 대책 없게 느껴졌습니다. 옥탑방을 생각하면,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술 마시는 정경이 떠오릅니다. 줄거리가 전개되는 무대가 옥탑방이니 자연스럽게 술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밤에 술 먹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고, 생활비 걱정하면서 일을 찾는 그들을 인생을 실패한 루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초반부에 왜 그렇게 사는지 짜증도 납니다. 

하지만, 그들이 지키는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가 있습니다. 계속 읽으면서 남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열심히 살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지켜보면서 잘 살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가족을 보살피기 위해 애쓰는 그들의 노력을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매번 원하는 대로 성취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힘들어도, 짜증이 나도, 화가 나도, 서로 인연의 끈을 맺고, 배려와 관심이 있다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들을 응원한 이유입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불편한 진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만, 부대끼고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조그만 희망을 계속 발견하는 소설입니다. 그래서, 따뜻하고, 정겹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인생 성공은 아니어도 어제보다 조금 나은 오늘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책을 다 읽고, 잔잔한 미소와 함께 책을 덮었습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인연을 이어주는 끈의 무게는 무겁습니다. 그래서, 좋은 인연은 소중합니다. 

 

오늘밤 예전에 친했던 지인들과 옥상에서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마시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이렇게 그리운 순간으로 기억할 지는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책으로 그리움을 대신합니다.  


2026.1.1. Ex. Libris HJK


김 부장은 길치가 분명하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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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어휘 공부 - 나의 말과 글이 특별해지는
신효원 지음 / 책장속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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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를 아는 것과 실제로 활용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 책에서 접한 어휘는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들어보거나 읽어본 적이 있는 어휘입니다. 다른 하나는 처음 보는 어휘입니다. 

제가 집중해야 어휘는 전자로 생각합니다. 알고 있지만, 쉽게 쓸 수 없는 어휘들이죠. 

글을 쓰면서 적당한 어휘를 이용하고 싶지만, 쉽지 않습니다. 머릿 속에 떠도는 무엇이 있지만, 선뜻 앞으로 나서는 어휘는 매번 쓰는 어휘입니다. 어휘 공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 번 학습한다고 적절한 어휘가 뛰쳐 나오지 않습니다. 반복이 필요합니다.



전자책 보다 종이책이 좋을 듯 합니다. 항상 옆에 두고, 참고하면 좋을 책입니다.     



이 책에서 이미 들어보거나 읽어본 적이 있지만, 일상에서 쓰기 쉽지 않은 어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휘를 선택한 기준은 개인적인 수준에 의해 정한 것이므로, 사람마다 다르겠습니다. 



'보다'를 대치할 수 있는 어휘들입니다. 



첫눈이 온다는 말을 듣자마자 창밖을 '내다봤다'.

그는 수업이 지루한지 계속 시계를 '힐끔거렸다'.

그는 허공을 잠시 '응시하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일견' 호탕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는 돌아가는 상황을 '관망하기만' 해 무책임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오늘 오후 시내 한복판에서 발생한 사건을 '목도한' 사람들이 큰 충격에 빠졌다.

신문 기사 제목을 '일별하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보다'의 뜻을 가진 많은 어휘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내다보다', '힐끔거리다', '응시하다', '관망하다'는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견하다', '목도하다', '일별하다'는 입에 어색합니다. 아는 어휘라고 하지만, 상황에 맞게 잘 쓸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만 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생각하다'를 대신해서 쓸 수 있는 어휘입니다.



오랫동안 '숙고한' 끝에 그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수술 일정은 환자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서' 정하는 것이 좋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유념하며' 살아갈 것이다.

선거에서 이길 '궁리만' 하는 정치인들에게 대중은 실망했다.

책을 통해 '사유하는' 힘을 키워 나가야 한다. 

상황을 좀 '감안하고' 돈을 써야지. 그렇게 막 쓰면 어떡하니?

이번 결정에 대해서 한 번만 더 '재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떤 대상을 두루 깊이 생각하다'의 뜻을 가진 사유하다라는 언어가 멋있어 보입니다. 발음이나 글자 모두 아름답습니다. 사유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느낌이 좋습니다.  



글쓴이는 어휘를 소개하면서 책에 에세이도 남겨 놓았습니다. 오지랖의 정의를 몰랐는데, 알고 보니 재미있는 어휘입니다.  오지랖은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입니다. 오지랖이 넓으면 윗도리를 모두 감추어 버립니다. 윗도리 입장에서는 자기를 다 가려 버리니 간섭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오지랖이 욕을 먹는 이유는 아마도 이 선의이 저변에는 내 말이 다 맞는다는 우월감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글쓴이의 말에 공감합니다.



글쓴이가 남긴 문장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모든 것이 어둠에 잠겨 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마음속 속삭임은 잰걸음도 다그쳤다."

제가 같은 내용을 썼다면, "날이 어두워져서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고 쓸거 같습니다. 참 멋 없는 평범한 문장이죠.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목적이 멋있게 말하고, 쓰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2025.8.15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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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카타유 > 토요일 오후에 온 택배에는..

10년 전에 구매한 <로마제국 쇠망사>를 다 읽지도 못했네요. ㅜㅜ
1권 읽을 때 재미있었는데 2권에서 기독교 이야기가 나오면서 지쳤던거 같아요. 또한, 새로운 책이 계속 나오니 관심이 멀어진 것도 이유중의 하나인거 같습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25년에는 완료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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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들은 이해 관계로 묶인 약한 연결 고리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히데요시가 난세를 평정할 때 오슈의 다테 가문, 주고쿠의 모리 가문, 시코쿠의 조소카베 가문, 규슈의 시마즈 가문을 항복시킬 때 "반항해 봤자 손해다. 항복하면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하겠다."라는 식으로 이해 관계로 회유했지, 주종 관계나 도덕적인 면모로 그들을 설득하지 않았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말한 "설득을 하려면 이성이 아니라 이해 관계에 호소하라"는 말을 이미 16세기에 히데요시는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해 관계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이해 관계가 어떻게 바뀌었기에 히데요시가 죽은 후에 바로 도요토미 가문의 권력은 무너졌을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에서 구로다 요시타카(구로다 간베에)라는 절음발이 인물이 와키자카 야스히루에게 칠본창 중의 한 명이라고, 치켜 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와키자카는 용인 광교산 전투에서 조선군 6만명을 약 2천명의 왜군으로 무찌른 장수입니다.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었죠. 

만약, 상주에서 패한 이일이 문경새제로 후퇴해서 고개를 지키고, 신립이 충청도, 전라도 지역 조선군을 모아서 고니시 유키나가 장수가 이끄는 왜군 제1군 후위를 공격하면서 시간을 끌었다면, 허무하게 한양성이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가토 기요마사 장수가 이끄는 왜군 제2군이 고니시 군대를 뒤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대로 흘러가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 최고의 무장이라던 이일과 신립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조선 정규군을 소멸시켜 버렸습니다. 



1583년 오다 노부나가가 암살당한 후 시바타 가쓰이에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권력을 다투고, 이로 인해 발생한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히데요시는 가쓰이에 군대를 무찌릅니다. 이 전투에서 공을 세운 7명을 칠본창이라고 불렀습니다. 히데요시 측근에서 함께 하는 장수들이 없어서 칠본창이라는 호칭을 일부러 만들어서 구색을 맞추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칠본창에 속하는 인물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후쿠시마 마사노리 : 임진왜란 당시 제5군 대장

  2. 가토 기요마사 : 혼슈 히고국 구마모토 25만 석 다이묘, 임진왜란 당시 왜군 제2군 사령관, 정유재란 당시 울산 왜성을 조명 연합군에게 지켜낸 장수

  3. 가토 요시아키 : 임진왜란 당시 수군 지휘관, 안골포 해전(이순신) 패배, 칠천량 해전(원균) 승리

  4. 히라노 나가야스 : 임진왜란 미참여

  5. 카타기리 카츠모토 : 제2차 진주성 전투 참여

  6. 와키자카 야스히루 : 용인 광교산 전투 승리, 한산도 대첩(이순신) 패배

  7. 카스야 타케노리 : 제2차 진주성 전투 참여



임진왜란 당시 참전한 왜군 장수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칠본창이 거의 참전한 것을 알 수 있죠. 



  1. 제1군 고니시 유키나가

  2. 제2군 가토 기요마사

  3. 제3군 구로다 나가마사 : 구로다 요시타카의 아들

  4. 제4군 모리 요시나리 또는 시마즈 요시히로

  5. 제5군 후쿠시마 마사노리

  6. 제6군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7. 제7군 모리 데루모토 : 히데요시의 5대부로

  8. 제8군 우키타 히데이에

  9. 제9군 도요토미 히데카츠



왜군 장수들이 조선에서 어떤 전투를 하면서 조선에게 어떤 해악을 끼쳤는지 모두 밝히고 싶지만, 주제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후일을 기약합니다.



조선에서 왜란이 벌어졌을 때 히데요시 주변에는 누가 있었을까요?


먼저, 히데요시 다음의 서열을 가진 5명의 다이로를 알아보겠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마에다 도시이에를 제외하고, 다른 다이로는 모두 임진왜란에 참전했습니다.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이에야스에게 후시미성에서 정국을 안정시켜 달라고 부탁하고, 도시이에에게 오사카성에서 도요토미 가문의 후손인 히데요리를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다이로끼리 견제하도록 만든거죠. 



  1. 도쿠가와 이에야스 : 간토 지방 8국, 256만 석, 나이다이진으로 불림

  2. 마에다 도시이에 : 주부 지방 가가국(현 이사카와현), 83만 석, 다이나곤으로 불림 → 마에다 도시나가(도시이에의 아들)

  3. 우키타 히데이에 : 주코쿠 지방 동쪽(현 오카야마현) 동쪽 지역, 57만 석

  4. 모리 데루모토 :  주코쿠 지방 서쪽(현 히로시마현, 야마구치현), 120만 석

  5.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 규슈 지방 지쿠젠국 (현 후쿠오카현), 33만 석 → 우에스기 가게카쓰 : 아이즈국, 120만 석



그러면, 실제 정치는 누가 했을까요? 히데요시 아래에서 집정관 역할을 한 5명을 부교라고 불렀습니다. 5명이지만, 히데요시가 가장 총애했던 인물은 이시다 미쓰나리였습니다. 



  1. 아사노 나가마사 : 사법 담당, 22만 석, 오와리 출신, 아들인 아사노 요시나가는 임진왜란 참전

  2. 이시다 미쓰나리 : 행정 담당, 19만 석, 오미 출신

  3. 마시타 나가모리 : 토목 담당, 22만 석, 오미 출신

  4. 나쓰카 마사이에 : 재정 담당, 5만 석, 오미 출신

  5. 마에다 겐이 : 종교 담당, 5만 석, 오와리 출신



결과적으로 세키가하라 전투는 도요토미 가를 유지하기 위한 이시다 미쓰나리 편과 새로운 권력자가 되고자 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편의 싸움이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임진왜란에 참전하지 않고, 간토 지방 8국에서 힘을 모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가를 따르는 다이묘들을 물리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죠.

좀 더 파악하기 위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부관계를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히데요시의 정실인 기타노만도코로(애칭 오네네)는 히데요시와 같은 오와리국 출신이었습니다. 오네네는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의 잡역부 생활을 하던 때부터 함께 있었습니다. 정치에 깊숙이 관여했던 그녀는 먼 친척의 아들인 가토 기요마사와 나무통 집 아들인 후쿠시마 마사노리 등을 키우다시피 했습니다. 그리고, 오와리국 출신들과 친밀하게 지냈습니다. 



히데요시의 측실 필두인 요도도노가 있었는데, 그녀는 오미국 출신이었습니다. 요도도노는 명문가 아자이 출신으로 아버지는 나가마사, 어머니는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였습니다. 그녀는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어머니입니다.



오네네는 히데요리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거 같습니다. 그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친하게 지내면서 칠본창을 비롯한 장수들이 도요토미 가문을 배신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오네네는 오와리국 출신이었으므로, 오미국 출신인 이시다 미쓰나리를 안 좋아했습니다. 아마 측실인 요도도노의 영향도 있었겠죠.



그런데, 칠본창을 비롯한 임진왜란 참전 장수들도 미쓰나리를 안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히데요시와 함께 많은 전투를 치루었고,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조선 침략에 앞장섰습니다. 하지만, 미쓰나리는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은 후 재능에 의해 발탁된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조선 침공을 위한 운수 작전을 총 지휘한 것으로 보아 집정관으로서 행정 업무를 잘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히데요시가 미쓰나리에게 조선으로 넘어가서 전쟁 현황을 파악해 보라고 한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쓰나리는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전쟁을 수행하면서 잘못한 점을 모두 정리해서 히데요시에게 보고합니다. 미쓰나리가 가토 미요마사, 아사노 요시나가, 구로다 요시타카 등에게 군사 회의를 요청 하지만, 이를 무시한 것도 미쓰나리를 화나게 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략가인 구로다 요시타카도 히데요시의 미움을 사서 일선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임진왜란 참전 장수들은 자신들은 죽을 고생을 다하는데, 히데요시 옆에서 편하게 행정 업무를 하면서 자기들의 잘못을 보고하는 미쓰나리에 대한 미움이 컸습니다.

하지만, 전쟁 중이었으므로 일본에 귀국할 수는 없었고, 증오만 키우고 있었던 것이죠.

조선에 온 모든 왜군을 살려서 보내지 말라는 이순신 장군님의 뜻이 실패한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많은 왜군 장수들이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6살 히데요리가 도요토미 가를 이어가야 하는데, 히데요리의 지지 기반이 없는 불안한 상황에서 임진왜란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습니다. 게이초 3년 8월 18일 밤에 63세의 나이였습니다. 개이초는 일본의 연호로 음력 1596년 10월 27일부터 1615년 7월 12일까지 입니다. 즉, 1598년 8월 18일 입니다.

좀 더 일찍 죽었다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이제 도요토미 가의 정권을 계속 유지할 거냐, 새로운 다이묘에 의해 새로운 막부가 생길 것이냐 하는 관심 속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움직입니다. 간토 지방 8국의 막강한 경제력, 임진왜란에 참전하지 않아서 보존된 군사력, 뛰어난 처세술과 모략을 지닌 이에야스의 앞을 누가 막을 수 있었을까요?



2025.8.6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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