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밀레니엄 (문학동네)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월에 처음으로 독서를 완료한 책은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 2권 입니다. 평소에 서로 다른 장르의 3권의 책을 읽는데, 이번에 가장 빨리 읽은 책이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입니다. 

스토리에 몰입하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는 것이 소설이 주는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밀레니엄 시리즈 1권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도 두툼한 책등을 과시하지만,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는 그보다 더 심합니다. 거의 800 페이지에 육박합니다. 보통 이 정도의 두께이면 읽다가 지칠만도 하지만, 밀레니엄 시리즈는 끝까지 붙잡게 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홍천에 있는 풀빌라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낮에는 수영하고, 저녁으로 바베큐 요리를 먹은 후에 가져간 이 책을 펼쳤습니다. 여행이 선사하는 숙소의 정리 정돈과 깨끗함은 책 읽기에 최적의 공간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가급적 비싸더라도 숙소는 신경쓰는 편입니다. 여행을 많이 가기 보다는 좋은 숙소를 고르는 이유입니다. 여행가기 전에 독서를 시작하고, 여행 중에 독서를 하고, 귀가 후 빠른 짐 정리를 하고, 다시 책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독서를 마쳤습니다. 



스웨덴은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으며, 복지 시스템이 잘 구축된 선진 국가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유럽, 발트 3국, 러시아에서 생존을 위해 잘 사는 나라인 국가들로 넘어오는 미성년자들을 착취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주로 소설이나 영화로 접했기 때문에 현실에서 정말 심각한 문제인지, 아니면 일부 사건, 사고가 있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제가 끊임없이 다루어지는 것으로 나름대로 판단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엄청나게 뛰어난 해커이면서 어렸을 때부터 온갖 고통을 당한 주인공 리스벨트가 정의를 실천하는 과정과 몰입감 있게 이 과정을 진행하는 전개가 밀레니엄 시리즈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1권에서 기자인 미카엘보다 2권에서 리스벨트의 비중이 커진 점이 좋았습니다. 반드시 법이 정의를 실현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사회주의적이고, 반체제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현실을 똑바로 쳐다본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법이 정의를 실현하려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하죠. 2025년 한국은 과연 어떨까요?



이 소설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불법이지만, 정의를 실현하고, 악을 처단하는 과정에 기인합니다. 법이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악인을  처벌하는 행위는 잘못일까요?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트리거>를 보았습니다. 총기 청정 구역인 한국에 총기가 반입되면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악인이 총기를 사용해서 피해자가 발생하는 문제도 있지만, 법이 보호하지 못한 피해자의 억울함을 총기가 보상해 주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총기 허용은 반대합니다. 하지만, 쓰레기 같은 애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피해 학생, 전세 사기로 재산을 날린 피해자, 산업재해 피해자의 가족 등의 아픔과 억울함을 법과 제도가 무시하면 안된다는 생각도 합니다.



쓰레기 같은 기자에게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리스벨트와 함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카엘보다 리스벨트에게 기울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습니다. 물론, 미카엘이 기자로서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사는 저는 기레기에게 심한 분노를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정확하게 사실을 확인할 생각도 없고, 의지도 없는 기자, 돈을 벌기 위해 기사를 쓰는 기자, 피해자를 생각하지 않는 무개념을 탑재한 기자를 많이 봤습니다. 



상식과 공정이 지켜지는 사회, 서로 배려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기를 오늘도 기원합니다. 



2025.8.2 Ex. Libris HJK



 

그녀는 좁다란 철제 간이침대에 묶여 있었다. - P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카타유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10년전에도 알라딘 서재와 함께 했습니다. 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키가하라전투 1 - 히데요시의 죽음
시바 료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이순신의 바다>를 읽고, 한산 : 용의 출현을 보면서 조선을 침략한 왜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해서 들어 보았지만, 조선을 침략한 많은 장수들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1598년 임진왜란의 원흉인 히데요시가 죽은 후에 내분이 발생하고, 동군, 서군으로 나누어서 세키가하라 전투를 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를 함으로써 전쟁의 주도권을 잡고, 도요토미 가를 멸망시켰습니다. 



이 책 <세키가하라 전투>를 고른 이유는 책을 통해서라도 도요토미 가의 멸망을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2002년에 출판되었고, 현재 절판된 책이라서 구하기 어려워서 상호 대차 서비스를 통해 도서관에서 대여했습니다. 제가 주로 다니는 도서관에도 해당 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상호 대차 서비스를 처음 써봤는데, 만족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대여할 수 있는 책의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어찌 감당할 지 모르겠습니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에야스를 미화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시바 료타로의 <세키가하라 전투>는 히데요시 입장에서 최대한 객관화시킨 소설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객관화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이시다 미쓰나리의 만남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그의 아들인 6살 히데요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시다 미쓰나리와 정권을 잡으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갈등이 불거지는 상황까지 1권을 마무리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일본으로 출병한 왜군은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 철수합니다. 더 많은 왜군을 죽지 못한 것이 애통하지만, 이것 또한 역사입니다. 그런데, 히데요시가 죽은 날부터 분열이 시작됩니다.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명령 하나로 조선으로 가서 죽을 기회를 넘기면서 싸웠는데, 이들이 왜 도요토미 가를 지키지 않았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히데요시와 다이묘들은 이해 관계로 엮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보다는 힘이 센 놈에게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엎드린 놈의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5대로(다이로)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히데요시가 다이묘들을 포섭할 때도 "설득하려면 이성이 아니라 이해 관계에 호소해야 한다"를 철저히 따랐습니다. 다이묘들이 자신을 따르면, 좋을 것이고,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시킨 것입니다.  


     

또한,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는 측실 요도도노가 낳은 자식이었습니다. 정실인 기타노만도코로(애칭 오네네)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오네네는 히데요시와 같은 오와리국 출신이었고, 정치에 깊숙히 관여하면서 히데요시와 함께 목숨을 무릅쓰고 싸웠던 오와리국 출신 장수들과 파벌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히데요시의 칠본창 중 후쿠시마 마사노리와 가토 기요마사와 친했습니다. 오네네는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의 잡역부일 때부터 일생을 함께 했습니다. 


반면에 요도도노는 오미국 출신이고, 당시에 오미국은 오와리국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요도도노 역시 오미국 출신들과 친밀한 파벌을 형성했습니다. 오미국 출신으로 가장 성공한 사람이 히데요시 옆에서 집정관 역할을 하던 5부교 중의 한 명인 이시다 미쓰나리입니다. 요도도노는 명문가 아자이 출신으로 어머니는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인 오이치였습니다. 가문부터 오네네와 비교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시면 궁금한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 대체 다이묘는 뭐고, 칠본창은 뭐고, 오와리국, 오미국은 대체 어디이고, 5부교는 뭔지 답답할 수 있습니다. 왜군 장수인 와키자키 야스히로에게 히데요시의 책략가인 젊음발이 구로다 요시타카가 칠본창 중의 한 명이라고 칭찬을 합니다.이것들을 모르면, 소설을 제대로 즐길 수 없습니다. 

마치 예전에 삼국지를 읽으면서 중국 지도를 펼친 것처럼 히데요시 당시의 지도를 먼저 펼쳐서 파악해야 합니다.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역사와 지리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기 위해 필요한 보충 설명은 별도의 페이퍼로 작성할 생각입니다. 제가 일본 역사 책을 읽으면서 계속 참고하기 위함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바로 오네네를 통해 오와리국 출신 다이묘들에게 접근하고, 이에야스의 의도를 눈치 챈 이시다 미쓰나리는 정도를 내세우면서 이에야스를 견재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1권에서 다룹니다. 



머릿속에서 16세기 조선, 일본이 떠나지 않네요. 김영진의 <임진왜란> 책도 알라딘 보관함에 있는데, 이 책까지 읽으면 16세기 명나라까지 생각날 거 같습니다. 



2025.7.31 Ex. Libris HJK


지금 옛일을 떠올려본다. - P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9
제임스 M. 케인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헐리우드 B급 영화 감성이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책을 다 읽고도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누른다>는 제목이 뜻하는 바를 모르겠습니다. 



방랑자인 한 남자가 우연히 찾은 레스토랑 주인의 아내와 정분을 나눈다는 줄거리인데, 포스트맨이 이 남자를 뜻하는 것일까요? 벨을 두 번 누르는 이유는 포스트맨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일까요? 



불륜 관계의 남녀가 범죄를 계획하고, 저지르는 과정에서 남자는 여자와 함께 떠나고 싶어하고, 여자는 남자처럼 방랑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서 남자가 자기와 함께 정착하기를 원하는 것이 특이했습니다. 



저는 대책 없는 남자를 따라가기 보다는 여자가 빨리 남자와의 관계를 정리하거나 아니면, 남자를 설득해서 원래 있던 자리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숨길 것이 있는 사람에게는 무언가의 일이 발생하기 마련이죠. 그리고, 이러한 일로 불행에 빠지기도 합니다. 행복하지만, 부정한 방법으로 만든 행복이라서 오래 가지 못할 불안감이 읽는 내내 가슴 한구석에 머물렸습니다. 소설 속 남녀도 다툼이 많아지죠. 



현실속에서 타인에게 행한 선의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내었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고 한다." 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시대가 흐를수록 타인에게 행하는 선의가 없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법이라는 것이 꼭 정의를 밝히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일종의 상반되는 주장과 논증의 싸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의는 뒤로 몰려 나고, 상대방의 논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일종의 게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러한 게임 방식이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법정이라는 장소에서 서로 다투면서 어느 한 순간 더 이상 정의 구현은 사라지고, 논증의 싸움만이 남아 있는 경우들이 없다고, 또는 어쩌다 한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읽은 지 얼마 안되어서 이 책에서 다시 접한 법정 다툼에 대한 생각이 너무 부정적이고, 냉소적 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틀린 생각일까요?



오랜만에 짧은 영화 한 편 본 듯 합니다. 



2025.7.31 Ex. Libris HJK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 제국 패망사 - 태평양전쟁 1936~1945 걸작 논픽션 17
존 톨랜드 지음, 박병화.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무려 1400 페이지입니다. 너무 두꺼워서 읽기에 불편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중요한 전선 중의 하나였던 태평양 전쟁을 자세히 서술한 책은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저자는 일본 제국 패망사를 다룬 책이므로 일본 관점에서 써야 했겠지만, 일본이 서양 제국주의에 맞서서 아시아를 독립 시킨다는 이론인 대동아 공영권을 설명하면서 일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일본은 동남아 국가들을 독립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제국주의 기반의 식민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영국(버마), 프랑스(인도차이나), 네덜란드(동인도), 미국(필리핀)을 보면서 자신들이 그들을 대체하기를 바랬습니다. 일본은 자신들이 중국과 인도차이나를 점령하는데 미국이 왜 이렇게 난리인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모두 제국주의 국가이고, 자기들도 모두 식민지를 건설했는데, 왜 일본은 안되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깐요.



일본의 아시아 국가의 독립이 아니고, 전쟁이 필요한 자원을 식민지에서 조달하기를 원했습니다. 물론, 일본이 동남아 국가의 지도자들을 불러서 아시아의 단결을 도모하자고 하면서 각 국가는 독립국이라고 선언을 하기도 했지만, 이때는 미국에게 연패하면서 점차 승세가 기울여져 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처음부터 동남아시아로 진출할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 관동군은 중국 화북 지역까지 진출하면서 중국을 점령할 야욕을 내세웁니다. 독일군이 짧은 시간안에 프랑스군을 격파했듯이 일본군은 중국군에게 연승을 하면서 쉽게 중국을 점령할 줄 알았지만, 중국은 생각보다 너무 광대한 영토를 가진 국가였습니다. 패배하고 후퇴해도 다시 군대를 모아서 일본군에게 대항했습니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1939년까지 일본은 중국의 항복을 받아내지 못했습니다.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관동군은 1939년 5월 노몬한 지역에서 소련군과 충돌합니다. 관동군은 군국주의 일본의 대명사이면서 가장 최악의 악질적인 군대 중의 하나입니다. 생체 실험을 일삼던 731부대를 운영했고, 온갖 음모, 공작을 꾸며대면서 반인륜적인 전쟁 범죄를 자행했습니다. 하지만, 주코프가 이끄는 제57저격군단에게 박살이 납니다. 이후 독일군의 모스크바 공세 시 주코프는 공세를 막아내어 소련의 영웅으로 불리웁니다. 모스크바 광장에 그의 동상이 있습니다. 



만약, 1941년 6월 22일 독일이 소련을 침공할 때 일본이 소련을 침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확실한 것은 소련의 극동군이 독일 방어전에 투입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주코프가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서부 전선으로 이동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소련에게 엄청난 부담이었겠죠.     



프랑스가 독일에게 무너진 후 괴뢰정권인 비시 정부가 들어섭니다. 이런 정부가 해외 식민지에 관리할 여력이 없었겠죠. 이때 일본은 프랑스 식민지인 인도차이나(현재의 베트남)을 점령합니다. 일본이 만주를 침공할 때 우려섞인 시선을 보냈던 미국은 일본이 중국 화북 지역을 점령하니 일본을 비난하고, 원유 공급을 중단합니다. 



결국, 일본은 자원이 풍부한 동남아를 차지하기 위해 남방 작전을 계획합니다. 싱가포르를 점령하고 있는 영국, 동인도(현재 인도네시아)를 점령하고 있는 네덜란드는 별로 문제가 아니었지만, 필리핀을 점령하고 있는 미국을 상대하지 않고는 동남아 진출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진주만 공습을 준비합니다. 

일본군은 싱가포르에 주둔한 영국군 함대, 필리핀 클라크 기지에 있는 미군 극동항공대, 진주만에 있는 미군 태평양 함대를 동시에 공격할 계획을 세웁니다. 일본군의 계획에 반대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일본군 연합 함대 사령관이었던 야마모토 제독도 몇 개월 동안은 미군에 승리할 수 있지만, 장기로 전쟁이 지속된다면 미군에게 진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의 자만심은 엄청났습니다. 미국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면, 일본을 우습게 보지 못할 것이고, 태평양을 포기하거나 평화 조약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일본은 선전포고 없이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에 일본군 항모 모함에서 발진한 항공기들이 진주만 기지를 폭격합니다. 동시에 말레이 반도에 상륙해서 싱가포르로 남하합니다. 또한, 대만 공군 기지에서 발진한 항공기들이 필리핀 루손섬 중앙부에 위치한 미군 클라크 기지를 폭격합니다. 

일본군은 진주만 폭격 시 실수를 저지릅니다. 18척의 함정을 격침 또는 파손시키고, 항공기 188대를 파괴했지만, 유류 저장 탱크와 잠수함 대피소를 폭파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미군 항공 모함은 진주만 기지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싱가포르에 주둔했던 영국 극동 함대와 필리핀에 있던 미군 태평양 항공대를 박살내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동인도 자바섬에 배치되어 있던 영국, 네덜란드, 미국 연합 해군도 무너뜨립니다. 일본의 남방작전은 성공했고, 남은 곳은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에서 도망간 호주 뿐이었습니다. 



일본의 자만심은 하늘 끝까지 도달했습니다. 진주만 공격에서 미군 항공모함을 부수지 못한 아쉬움을 풀기 위해 미군 대규모 해군 병력을 미드웨이 지역으로 유인해서 격파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일본이 동남아에서 영국, 네덜란드, 미국 해군을 무찌른 것은 그 지역의 미국 공군 병력을 먼저 제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항모가 아니고, 함대전을 통한 전투에서 승리를 한 것이었죠. 

일본의 계획은 진주만 처럼 미드웨이 지역을 급습하고, 진주만에서 미군 항모 선단이 지원을 오면 급습 부대 뒤에 위치한 일본군 항모 선단이 미군 항모를 격침시킨다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군은 일본군 암호 해독을 통해서 일본의 계획을 사전에 파악합니다. 그리고, 바로 미드웨이 항공 기지를 강화하고, 항공기 배치를 증가시켰습니다. 미군 항모는 일본군 항모에 비해 1대가 적었지만, 진주만 이후 미군 태평양 함대 총사령관이 된 니미츠 제독은 불침 항모인 지상 항공기 기지를 활용하면, 일본군 항모 선단을 대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일본군은 미군 항모를 2대로 봤지만, 미군은 엄청난 보수 능력을 통해 항모 요크 타운을 수리해서 미드웨이 해전에 참여시킬 수 있었습니다.



1942년 6월 4일 일본군은 계획대로 미드웨이 공군 기지를 폭격하지만, 강렬한 저항에 부딪히고, 공군 기지에서 출격한 미군 항공기들이 일본군 항모를 위협하자 공군 기지에 대한 2차 공격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공군 기지 폭격을 위한 소열탄과 항모를 공격하기 위한 어뢰, 폭탄은 다르기 때문에 항모에서 출격하기 전에 교체를 해야 합니다. 일본군은 미군 항모가 아직 도착할 시간은 안 되었다고 판단해서 항공기들을 항모에 착륙시키고, 다시 소열탄을 장착합니다. 그런데, 일본군 정찰기가 미군 항모 선단을 발견합니다. 일본군은 기겁을 하고, 다시 어뢰를 장착하기 위한 준비를 합니다. 일본군 항공기들이 모두 항모에 착륙해 있을 때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이 일본군 항모를 발견하고, 공격을 합니다.

사실 미군 어뢰기 편대와 급강하 폭격기 편대가 항모에서 동시에 출격했는데, 어뢰기 편대는 일본군 항모 위치로 바로 왔기 때문에 일본군 제로기와 조우했고,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미군 미드웨이 해군 기지에서 출격한 항공기들을 요격하기 위해 제로기들은 계속 방어를 담당했고, 미군 어뢰기 편대까지 공격한 후에 연료와 무기 재보급을 위해 항모에 착륙해야만 했습니다.. 

이때 미드웨이 해전의 운명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단, 몇 분동안 미군 급강하 폭격기 편대는 일본군 항모 4척을 격침시킵니다. 일본군은 방어할 제로기가 없었고, 연료와 무기 재보급을 위해 한 곳에 꺼내서 모아놓고 있었기 때문에 타격이 컸습니다. 미군 폭탄 중량도 무거워서 갑판을 뚫고, 격납고까지 내려가서 폭발을 했습니다. 



미국에 비해 산업 역량이 떨어지는 일본에게 4척의 항모 손실은 치명적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일본은 전함과 순양함 위주의 해전을 선호했는데, 항모에서 출격하는 항공기에게 치명적으로 약했습니다. 항모 전력이 떨어지므로 일본군은 대규모 선단의 대양 전투를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초기 일본군 제로기의 성능에 뒤쳐졌던 미군 전투기들의 성능이 개선되면서 미군은 공중에서의 우위를 차지합니다. 이로써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점차 낮아집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전략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점령을 한 섬들의 공군 기지를 방어하면서 인근 해안에서의 함대전에서 승리를 해야 했습니다.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나 섬에 공군 기지를 짓기 시작합니다. 미군이 태평양을 못 넘어오도록 마리아나 제도의 사이판섬, 뉴 브리튼 섬의 라바울 기지, 과달카나 섬 기지를 중요 전략 거점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공병 부대의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기지 건설이 늦어졌고, 미군이 상륙해서 일본군을 몰아내고, 핸더슨 공군 기지를 건설합니다. 그리고, 항공기들을 발바쁘게 배치하죠. 

일본군은 다시 과달카나를 빼앗기 위해 몇 차례의 상륙전과 인근 바다에서의 해전을 시도하지만, 결과적으로 일본군의 참패로 끝납니다. 



미군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해서 맥아더는 뉴기니섬, 뉴브리튼섬을 거쳐 필리핀으로 진격하고, 니미츠 제독은 태평양 섬들을 점령하면서 사이판 섬으로 향합니다. 

항모가 부족하니 전함 위주로 가봤자 미군 항모의 급강하 폭격기, 어뢰기에 의해 격침될 것이니 할 수 있는 것은 섬에서 틀어 막혀서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용기인지, 객기인지 아니면 무식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 의미없는 반자이를 외치면서 죽어가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는 신념이 한심합니다. 전략적인 후퇴와 재집결을 통해 휴전을 도모하는 것이 일본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해결책이었지만, 군부가 장악한 일본 정부는 오로지 결사 항전만 외쳤습니다.



1944년 7월 9일 미군은 사이판 섬을 점령하고, 1944년 12월 15일 필리핀 레이테만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1945년 3월 27일 미군은 이오섬 점령을 하면서 점차 일본 본토에 다가섭니다. 그리고, 마지막 관문이 오키나와 섬을 마주하는데, 전투에서 지면 할복하겠다는 비장함을 드러내는 일본군을 마주합니다. 

죽겠다고 덤비는 적에게 죽이겠다고 덤비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945년 7월 2일 오키나와 섬의 일본군은 무너집니다. 하지만, 3개월을 버티면서 미군에게도 피해를 줍니다. 미군은 일본 본토를 상륙할 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을까 걱정했습니다. 



일본이 할 수 있는 공군 작전은 오로지 가미가제 밖에 없었고, 오키나와를 지원하기 위해 출항한 일본군 전함, 순양함, 구축함들도 미군에게 격침 당했기 때문에 일본군은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할 힘이 없었습니다. 일부 군인들은 오로지 깡만 남아서 휴전을 하고자 하는 일본 정부에게 쿠데타를 일으킬 정도로 우둔했습니다.   



미군 폭격기들이 아무런 방해 없이 마음대로 일본 영공을 날라다녔기 때문에 미군이 원자폭탄을 떨어뜨릴 때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됩니다. 1945년 8월 8일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 폭판이 투하됩니다. 많은 민간들이 방사선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습니다. 



태평양 전쟁의 죄인은 일본군 군부였습니다.  

일본이 점령한 한치의 땅도 뺏기지 않겠다는, 아무 의미도 없는 신념에 매몰되어서 많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본토에 상륙한 미군을 무찌르겠다는 일념을 불살랐던 일본 군부로 인해 일본은 두 번의 원자 폭탄 피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미국의 원자 폭탄 공격이 인도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 731대 부대의 생체 실험, 난징 30만 대학살, 100인 연속 머리 자르기 등의 일본군 잔혹 행위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제국이 왜 패망했는지를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국력을 키운 일본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그들이 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할지 모릅니다. 

우방 국가와 협력을 강화하면서 우리 나라의 국력을 키워야 합니다. 미국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 것을 동의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오늘의 우방이 영원할 수 없습니다.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입니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행히 여러 지표를 조사해서 발표한 2025년 강대국 순위에서 한국은 전세계 6위에 등극했습니다. 프랑스는 7위, 일본은 8위였습니다. 그리고, 2025년 국방력 순위에서 한국은 전세계 5위에 등극했습니다. 우리보다 강한 국방력은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관된 국방력 강화와 정치적 안정이 한국을 지정학적 위기에서 구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2차세계대전의 한 축이었던 태평양 전쟁을 살펴보았습니다. 일전에 읽었던 <중일 전쟁>과 함께 이 책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중일 전쟁>을 쓴 권성욱 작가가 <일본제국 패망사>를 감수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태평양 전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일본 군부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존 톨런드는 일본은 패망 후 25년 후 다시 세계 국가들 사이에서 존중과 칭찬받는 국가가 되었다고 저술합니다. 마치 이처럼 위대한 국가가 왜 전쟁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집니다. 일본이 실수했던 걸까요? 아닙니다. 역사는 계속 반복됩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한론, 청일전쟁, 러일전쟁, 조선의 식민지화, 독도 영토 주장, 역사 왜곡 등 그들의 침략적이고, 야만적인 전쟁에 대한 민족적 습성,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왜곡을 일삼는 치졸한 행태를 들여다 봐야 합니다. 제가 존 톨런드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일본과 협력하면서 동북아 안정과 평화를 함께 도모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본이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무조건적이고, 처절한 반성을 먼저 해야 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다시 마음속에 새깁니다.   




2025.07.29 Ex. Libris HJK


1936년 2월 25일 오후, 도쿄의 하늘은 불길할 만큼 어두컴컴했다. - P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