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스콧 맥클라우드 지음, 김마림 옮김 / 미메시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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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그 톰슨의 <하비비>와 <담요> 이후 오랜만에 그래픽 노블을 다시 접했다. 그래픽 노블은 많은 분량과 쉽지 않은 주제 때문에 마음 편하게 만화책을 보는 것과 시종 다른 느낌을 준다. 

조각가 한 명이 있었다. 짧은 시간에 잘 나갔지만, 본인의 자존감 때문에 기회를 걷어차고, 시련에 빠져 있는 조각가에게 누군가 다가와서 두 가지 선택의 길을 알려준다. 하나는 평범한 삶, 보통 사람의 삶, 꿈을 포기하면서 내 운명이 아니었어라고 위로하는 삶, 하지만 사랑과 가족이 있고, 절대 시시한 삶은 아니다. 물론, 계속 조각을 하면서 기회를 볼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엄청난 조각 기술을 가질 수 있지만, 단지 200일밖에 살 수 없는 삶이다. 조각가는 자신의 인생 모두를 걸고, 두 번째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재료에 상관없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조각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있어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감각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각가는 절규한다. 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이름을 남길 수 있다고. 예술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조각가는 계속 외친다. 하지만, 세상에 외면당하면서 다시 힘들어한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뭔가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닐까? 예술을 하는 목적이 과연 세상을 바꾸고, 이름을 남기기 위함인가? 왜 자기 내면을 외면한 채 세상 타령만 하는지 솔직하게 이해가 안 갔다. 200일 안에 세상을 바꾸고, 이름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자가 만들어낸 조각가인 주인공에 감정 이입을 할 수 없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황당무계한 액션 히어로를 흉내 내는 조각가는 자신이 만든 것은 누구나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면서 점차 위험한 결말로 달려든다. 

미군 해군 대장 William H. McRaven는 2014년 텍사스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부터 정돈하라고 했다.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끝까지 찾으라고 강조한다. 

어느 한순간에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한 개인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 엄청난 시련, 그리고,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재능 하나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면서 본인이 나아갈 바를 확실히 알고, 꾸준히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남이 자기를 안 알아준다고 투덜대는 것이 아니고, 남이 알아줄 때까지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결국, 조각가는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을 생각하며 마지막 작품을 남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작품인지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작품인지 모르겠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과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떠나간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이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없다. 자신들의 삶을 충실히 살았으면 말이다. 내가 예술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두렵기도 하다. 

저자는 D.C. 코믹스에 입사하면서 만화계에 발을 들어 놓았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것처럼 인생의 각 점들은 언젠가 서로 연결되는 거 같다. 조각가 히어로를 탄생시키고 싶었을까?


2017.10.10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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