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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ㅣ 펭귄클래식 136
이디스 워튼 지음, 김애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흔히 사교계라는 표현을 들으면, 유럽 특히 프랑스 귀족들의 사치스러우며, 자기들만의 이기심이 투영된 생활을 상상 속에 떠오르고 한다. 미국 또한 영국에 독립을 했다고 해도 이런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뉴욕 사교계를 들어본 적은 없다. 뉴요커는 많이 들어 보았지만..
순수의 시대 저자인 이디스 워큰은 남북전쟁 직후 1870년대 뉴욕 상류사회를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1862년 유서 깊은 가문에서 태어난 그녀 또한 상류사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그 속성과 돌아가는 방식을 잘 알았을 것이다. 작가의 길을 가기 위해 고민하면서 불행한 삶을 보냈던 그녀가 자신의 삶을 투영해서 만든 인물이 바로 주인공 중의 한 명인 엘런 올레시크 백작 부인을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풍족한 재산, 안정된 생활, 끊임없는 파티, 오페라 하우스, 마차, 하인 등으로 대표되는 사교계에서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이런 사교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이목을 신경 쓰며, 그들 나름대로의 규칙과 패턴을 따르고, 미리 정해진 길을 한치의 의구심 없이 걸어가야 한다.
이런 사교계에 몸담고 있는 주인공인 뉴랜드 아처가 사교계의 모범적인 약혼녀인 메이 웰렌드와 한때 뉴욕에 있었지만, 유럽을 거쳐 다시 돌아온 자유분방한 엘런 올레시크 백작 부인 사이에서 현실과 자유를 고민한다. 안정된 생활, 인정받는 생활을 뿌리치고, 마음이 가는 대로 갈 수 있을까? 아슬아슬하게 양쪽을 넘나들며 독자의 마음을 안절부절하게 만든다. 어찌 보면 불륜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극도의 자제, 절제를 나타내는 아처의 심리 상태 묘사로 인해 통속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 전까지 아처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을 유발한다. 메이 웰렌드가 사교계의 모범이라고 하지만, 남편에 대한 봉사, 친절함, 순수함이 사교계의 통념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주체적인 사고방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렇게 자라왔고, 자신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니깐. 하지만, 엘런 올레시크 백작 부인의 재치와 풍부한 감정 표현, 사교계의 규칙을 어기더라도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사고방식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아처의 고민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여성 중의 한명을 선택해야 하는 것만이 아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생각과 행동의 숨 막힐 듯한 제약을 벗어나고 싶은 고민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냥 짐을 꾸려 한 달 동안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남의 시선과 생각을 신경 쓰지 않고, 온전한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항상 살면서 일탈을 꿈꾸기도 하지만, 결국 쓴웃음을 짓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그러나 이런 현실도 나쁘지는 않는데, 왜 위험을 감수하냐고 반문하는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처에 더욱 몰두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배우인 다이엘 데이 루이스가 아쳐 역을 맡은 영화도 있다. 아직 보지는 못했는데, 라스트 모히칸의 다이엘 데이 루이스가 아처의 섬세한 심리 변화 연기를 얼마나 잘할까 궁금하다.
2017.01.15 Ex Libris H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