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평점 :
클레이 키건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그녀가 쓴 <맡겨진 소녀> 에 이은 두 번째 책입니다.
이 책도 <맡겨진 소녀>처럼 상당히 짧은 소설입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공감가는 부분도 많고, 주인공의 고뇌가 느껴졌습니다. 왠지 남의 이야기처럼 안 느껴졌습니다. 장편 소설이 아니어도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맡겨진 소녀>처럼 <이처럼 사소한 것들>도 결말 이후를 궁금하게 만듭니다. 아니 결말을 맺지 않고 소설이 끝나는거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책을 다 읽고 닫아도 이어서 계속 생각하게 만듭니다. 행복하게 끝날지, 불행으로 끝날지 독자가 상상합니다. 작가가 의도한 지는 알 수 없지만, 새로운 독서의 즐거움으로 다가옵니다.
사람들의 묵인을 통해서 종교가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우리의 외면을 초래합니다.
어찌 보면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말이 무책임함을 숨기기 위한 도피처가 아닐까 싶습니다. 올바름에 대한 판단과 행동을 막는 것은 가장 가까운 가족과 지인입니다. 올바름에 대한 판단과 행동이 행복한 결말로 이어질 수 없다는 생각과 현재의 평온한 삶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한 사람들이 사회를 조금이나마 개선합니다. 그들의 용기를 폄하하면 안됩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 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P.56)
적을 가까이 두라고들 하지. 사나운 개를 곁에 두면 순한 개가 물지 않는다고. 잘 알겠지만. (P.105)
하지만 자네 정말 열심히 살아서, 나만큼이나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딸들도 잘 키우고 있고. 알겠지만 그곳하고 세인트마거릿 학교 사이에는 얇은 담장 하나뿐이라고. (P.106)
어려운 환경 속에서 주변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어른이 된 주인공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문득 느끼는 감정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40대를 지나면서 문득 순간적으로 떠올리게 만든 무엇인가를 이 책에서 읽었습니다.
일 그리고 끝없는 걱정, 깜깜할 때 일어나서 작업장으로 출근해 날마다 하루 종일 배달하고 캄캄할 때 집에 돌아와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어둠 속에서 잠에서 깨어 똑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하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P. 44)
동일한 저자가 쓴 책들을 읽으면서 다른 평가를 내린 경험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맡겨진 소녀>를 다시 읽어볼 생각입니다. 단편 소설이니 독서에 부담이 없습니다.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함축적으로 녹아든 문장들을 찾아볼까 합니다.
2026.03.01 Ex. Libris HJK
10월에 나무가 누래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르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 P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