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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 - 히틀러와 스탈린이 만든 사상 최악의 전쟁
안토니 비버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히틀러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현재 우크라이나 서쪽, 러시아 남쪽에 흑해와 카스피 해 사이에 위치한 지역이 있다. 카프카스로 불리는 지역인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유전지대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한다.
카스피 해에 위치한 바쿠라는 곳을 통해 미군의 많은 전쟁 물자가 소련에게 전달되었고, 흑해를 거쳐 지중해로 갈 수 있는 바닷길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전략적 위치로 평가받는 세바스토폴도 있다.
히틀러는 모스크바를 함락하기 어려워지자 갑자기 우크라이나를 거쳐 카프카스로 진군하는 것을 선택한다. 석유를 확보하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남동쪽으로만 이렇게 깊이 들어가는 것이 맞았는지 잘 모르겠다. 이때쯤이면 이미 독일군의 전력은 많이 약해졌고, 충분한 식량, 의복, 무기 보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였다. 독일의 공업 생산력이 소련보다 뒤처지고 있었고, 미국의 엄청난 보급을 독일이 따라잡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힘든 여건에도 독일 국방군은 돈 강을 넘어 볼가강까지 이르렀고, 이곳의 관문인 스탈린그라드를 함락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현재의 불고그라드라고 불리는 스탈린그라드는 당시 소련의 공업지역이었고, 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이름을 딴 유명한 도시였다.
히틀러는 스탈린의 이름을 딴 이 도시를 함락해서 카프카스 지역을 확실히 점령하고, 볼가강을 넘어서 진군할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반면에 스탈린은 자신의 이름을 딴 이 도시만큼은 절대 빼앗길 수 없었다. 결국, 히틀러와 스탈린의 자존심 싸움이 2차 세계 대전 전투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 중의 하나인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만들었다.
독일군은 쉽게 함락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의 저항에 마주쳤다. 기갑사단을 주축으로 하는 기갑 군의 빠른 전개 속도와 기동전이 독일군의 장점이었는데, 스탈린그라드라는 거대한 도시의 시가전에서 장점을 살릴 수 없었다. 더구나 스탈린그라드는 도시 동쪽으로 볼가강을 접하고 있는데, 볼가강의 동안을 점령하지 못하면, 볼가강을 통한 소련군의 지속적인 투입을 막을 수 없었다.
빠른 시간 안에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하고, 볼가강 동안을 통한 소련군 지원을 막으려는 독일군은 소련 제62군의 치열한 저항에 부딪혔고, 소모전인 시가전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충분한 기갑전력이 있었다면 우회해서 볼가강 동안을 점령해서 스탈린그라드를 완전히 포위할 수 있었지만, 독일군은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극동지역에서 일본군을 박살 낸 시베리아 주둔군 정예부대가 이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소련은 일본과 불가침 조약을 맺어서 후방을 안전하게 만들고, 독일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러일전쟁 승리로 소련을 우습게 봤던 일본은 소련에게 박살이 나고, 자원이 풍족한 동남아시아로 침공을 했다. 독일 침공 당시 재빠르게 소련 동쪽 깊숙하게 이동시킨 군수 공장에서는 많은 전쟁 물자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안토니 비버는 전쟁의 참상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투에 대한 묘사와 각 군대의 공격 방향, 전투 전개 및 양상 등에 대한 설명도 좋지만, 무엇보다 소련군, 독일군 병사들의 심리 상태, 그들이 처한 상황, 민간들의 희생, 2 명의 미친 독재자로 인한 엄청난 전쟁의 피해를 묘사했고, 이 책을 읽고 난 후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탈린그라드와 그 주변 지역의 전투에서만 독일군 약 50만 명, 소련군 약 48만 명이 죽었다. 민간인은 얼마나 많이 죽었을까? 히틀러 때문에 끝까지 항복을 안 하고, 스탈린그라드에서 버티었던 독일 제6군은 루마니아군과 함께 약 19만 명이 포로로 잡혔는데, 종전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얼마 안 되었다고 한다.
히틀러의 무능함으로 인한 전략적 판단 미스와 미친 광기, 우둔한 고집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최고 절정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소련군이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하는 작전을 진행 중이었을 때 독일 제6군은 남쪽으로 탈출해서 호크의 제4기갑 군과 조우한 후 서쪽 우크라이나로 탈출할 시간은 있었다. 하지만, 히틀러는 무조건 스탈린그라드를 지키라고 했고, 승세가 기울었을 때 스탈린그라드에서 끝까지 싸우다 죽은 독일 장병들을 영웅으로 만들어서 독일 국민들의 애국심을 일깨우는 수단으로 활용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새롭게 제6군을 창설할 생각이었다고 하니 정말 미치지 않고 할 수 없는 생각이다.
구데리안, 롬멜, 만슈타인(비겁하지만, 능력은 좋은), 호크 등의 능력 있는 장군을 멀리하고, 그들의 의견을 무시했던 히틀러에 비해 스탈린은 주코프라는 걸출한 장군의 말을 경청하고 따랐다는 점에서 둘 다 미쳤지만, 차이는 분명히 있다.
구데리안 자서전과 독일 진격전 책을 읽으면서 독일군의 프랑스 침공에 대한 역사를 알았고, 롬멜 자서전을 읽으면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의 독일군 전쟁사를 알았고, 이번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 책을 읽으면서 소련에서의 독일군의 가장 큰 패배를 알게 되었다.
이제 다음은 히틀러의 마지막 미친 짓인 1944 아르헨 대공세를 읽을 예정이다.
독일군의 흥망성쇠를 통해 역사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과 한 인간의 광기와 대중의 무비판적인 복종이 함께 한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섭게 변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것이 겸허한 마음으로 역사를 접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2021.09.08 Ex. Libris
1941년 6월 21일 토요일 아침은 완벽한 여름날을 예고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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