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멜전사록
리델 하트 엮음, 황규만 옮김 / 일조각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에릭 호퍼의 '부두에서 일하며, 사색하며'를 읽으면서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에픽 호퍼는 평생을 길 위에서 일하며, 사색한 미국의 철학자이다. '부두에서 일하며, 사색하며'는 56세~57세 나이에 샌프란시스코 부두에서 일하며 쓴 일기를 모은 책이다. 이 책에서 에릭 호퍼가 며칠 동안 미칠 듯이 읽었다고 한 책이 바로 '롬멜전사록'이다. 철학자가 미칠 듯이 읽은 전쟁 관련 서적이 뭘까 궁금해하며 이 책을 구매했는데, 드디어 완독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전쟁사 관련 책은 역사적 사실과 지은이의 생각을 어느 정도 넣은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롬멜전사록'은 롬멜이 직접 쓴 일기, 편지, 보고서 등을 쓴 것을 토대로 1940년 5월 13일부터 1944년 10월 14일까지 롬멜의 발자취를 조명한 책이다. 롬멜의 심리적 묘사가 뛰어나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 부하 장병들에 대한 걱정, 전쟁에 대한 견해, 독일 국방군의 자부심 등을 잘 알 수 있다. 그 당시 독일 일선에서 고생하는 지휘관들과 독일 총통부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 왜 독일군이 북아프리카 전선, 노르망디 방어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에 유럽에 국한해서 가장 뛰어난 지휘관이 누구일까?

프랑스 침공 시 프랑스 스당을 돌파하여 뫼즈강을 건넌 제19기갑군단을 지휘한 구데리안을 생각할 수도 있고, 독일 전격전을 계획했던 만슈타인을 생각할 수도 있고, 몽골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고, 독일로부터 소련을 구한 주코프일 수도 있고, 북아프리카에서 롬멜을 상대로 싸운 몽고메리일 수도 있고, 프랑스를 수복하고, 독일로 진격한 패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롬멜을 가장 뛰어난 지휘관으로 생각한다. 

그는 전장 일선에서 떠나지 않고, 항상 전략적인 사고방식으로 전투에 대응했다. 전투에 대한 성과뿐만이 아니고, 전투의 목표는 사람이 아니고, 군사적 능력을 제거하는 데 있다는 그의 사고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그는 항상 항복을 먼저 유도했다. 전쟁 물자를 타격하여 전투를 포기하도록 하고, 항복한 군인들에게 인도적으로 대우했다. 엄청난 군인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참호전을 기피하면서 기갑사단과 차량화 보병사단으로 전선을 무너뜨려 후방을 타격해서 전투 의지를 무너뜨리는데 집중을 했다. 


북아프리카에서 영국, 인도, 뉴질랜드 연합군에 패배하고 있던 이탈리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북아프리카에 온 롬멜은 연합군을 상대로 엄청난 승리를 거두며 이집트 엘 알라메인까지 진출을 한다. 후퇴를 할 때는 최소한의 피해로 진격할 때는 엄청난 속도를 바탕으로 중심부를 타격하는 전술로 연합군을 밀어붙었다. 하지만, 소련을 상대로 전선이 확대되면서 독일은 모든 전력을 소련으로 집중하고, 북아프리카는 지원이 약해지면서 북아프리카 전선은 어려워진다. 더구나, 이탈리아군이 소유한 장비의 질과 이탈리아군 수뇌부의 한심한 지휘 등도 문제였다. 결국 이집트를 관통하여 수에즈 운하를 점령하려는 롬멜의 도전은 실패한다. 


롬멜은 전투뿐만이 아니고, 전략적으로 전장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독일 제6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고생하고 있을 때 북아프리카 집단군을 지휘하던 롬멜은 수에즈를 통해 이집트로 들어오는 막대한 미국, 영국 군수 물자를 차단해서 지중해를 확보하고, 카스피해로 진출하여 바쿠를 점령하면 소련으로 지원되는 미국 군수 물자도 차단하고, 원유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북아프리카 전선의 중요성을 독일 총통부에 계속 설득했지만, 무능한 히틀러 때문에 결국 북아프리카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 하지만, 만약 롬멜의 생각대로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물론, 롬멜은 연합군의 경제적 능력, 특히 미국의 엄청난 물량과 공군과 해군의 엄청난 전력 차이를 독일이 극복할 수 있을지 부정적이었지만, 롬멜의 생각이 그나마 가장 나은 안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롬멜은 무조건 현 위치를 고수하라는 히틀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전략적으로 후퇴하여 최소한의 피해로 온전히 독일군을 튀니지로 후퇴시킨다. 롬멜은 이 병력을 그대로 유럽으로 후퇴시켜 향후 서유럽에 가해질 연합군 공격을 최대한 막고, 휴전을 해야지 독일 본토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히틀러의 미움을 받고, 아프리카 집단군 사령관에서 해임되고, 결국 튀니지에 있던 모든 병력은 연합군 포로가 되었다.

그는 프랑스 주둔 B집단군 사령관으로 노르망디 방어전을 지휘했다. 기갑사단을 해안 후방에 위치시켜 연합군이 교두보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바로 반격하는 작전을 구상했지만, 이 또한 히틀러의 아둔한 생각으로 인해 무시했다. 결국, 후방에 위치한 기갑사단은 연합군 공군의 공격으로 이동이 지연되고, 이미 연합군이 교두보를 확보하여 막대한 병력을 투입한 상태에서 축차적으로 투입된 독일 기갑사단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연합군에 의한 서부 전선이 만들어지면서 소련과의 전투로 고난을 겪고 있던 동부 전선도 영향을 받고, 독일의 몰락은 빠르게 다가왔다.


히틀러의 고집과 한심한 전략에 끊임없이 저항하던 롬멜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결국 독약을 마셔서 독일의 패망을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만약, 히틀러가 괴링, 괴벨스 같은 능력도 없는 아첨꾼들과 친위대에 둘러싸여서 한심한 망상을 하지 않고, 롬멜, 구데리안 같은 장군들의 생각을 받아들일 만큼 상식이 있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유태인, 슬라인브인 등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던 자들은 독일 육군이 아니었다고 한다. 독일 육군이 점령하고, 이동하면 점령한 지역에 SS 친위대가 들어와서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물론, 전쟁을 일으킨 독일이 잘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히틀러를 국가 지도자로 뽑은 그들은 혹독한 보복을 당했다. 

롬멜은 순수한 군인이었다. 실전과 이론에 정통한, 최소한의 피해로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그에게 많은 배울 점이 있다. 


전쟁도 역사의 한 부분이다. 역사는 반복되고, 전쟁도 반복된다. 

전쟁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 평상시에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국방력 7위이고, 무기 수출국 12위이다. GDP 기준으로 세계 10위 안에 드는 경제 대국이기도 하다. 원자력 잠수함, 항공모함, 원자폭탄을 마음만 먹으면 자체 기술로 만들 수 있는 국가이다. 국방 예산도 세계 5위안에 드는 국가이다. 우리 주변에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이 있다. 그들이 한 국가의 힘이 약할 때 그 국가에 어떻게 했는지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


2019.12.20 Ex. Libris HJK


1940년 5월 10일, 히틀러는 오래 전부터 자신이 원했던 서방 침략을 개시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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