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데미안 (양장) - 191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이순학 옮김 / 더스토리 / 201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교 때 교회를 다녔다. 중등부 교회 회장을 하고 있었다. 매년 문학의 밤 행사를 했고, 문학의 밤에 독후감 낭독하는 기회가 나에게 왔다. 지금은 기회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엄청 부담이 컸다.


그때 독후감 낭독을 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준 책이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이다. 왜 그 책을 선택했는지, 어떤 내용을 낭독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내용을 모두 다 이해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 헤르만 헤세의 책을 읽지 않다가 뒤늦게 <데미안>을 구매했다. 사실 <데미안>은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구매하고, 5만 원 이상 구매 시 주는 적립금 2천 원 때문에 추가한 책이다. 헤르만 헤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 책은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의 성장 소설이다. 자신의 욕망과 싸우면서 자기의 사랑, 꿈, 자아를 찾아 고민하는 주인공의 내면 심리를 매우 섬세하고, 정밀하게 표현한 소설인데, 내가 책의 내용을 잘 표현했는지 모르겠다. 완독은 했지만, 정말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어느 한순간 주인공의 내면 심리를 1장이 넘게 표현하기 때문에 쉽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죄와 벌>의 주인공 로쟈보다는 덜 하지만, 에밀 싱클레어 또한 만만하지 않다.


이 책의 제목인 데미안은 에밀 싱클레어의 친구이지만, 에밀 싱클레어를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구세주 같은 인물로 등장한다. 기존의 신앙, 제도, 사회에 정신적인 저항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함께 떠나는 동반자이기도 하다.


"사실 이것은 단순히 편안함의 문제거든! 편안함에 빠져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귀찮은 사람은 법을 있는 그대로 따르지. 그게 쉬우니까. 반면에 다른 이들은 자기 내면의 법칙을 스스로 감지해. 그 법칙은 신사로서 날마다 해야 하는 일을 금지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다른 일을 허용하기도 하지. 각자가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 거야." (P.82)


술에 취해 방탕한 생활을 하던 싱클레어는 우연히 한 여인을 발견하고, 자신을 변화시킨다. 오로지 지켜보기만 하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싱클레어를 보니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주인공 베르테르의 아픔과 너무 대조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베아트리체와 말 한마디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 여인은 당시 내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내 앞에 그 모습이 떠오르게 만들었고, 내게 성전을 열어주었으며, 나를 교회에서 기도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하루아침에 나는 술 마시고 밤새 쏘다니는 것을 그만두었다. 다시 혼자가 되어 책을 가까이하며 산책을 즐겼다. (P.101)


그러나, 한 여인의 영향력이 점차 희미해지고, 다시 불안감에 휩싸야 견딜 수 없이 괴로워하는 싱클레어는 우연히 거리를 쏘다니다가 작은 변두리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오르간 소리를 듣고, 음악을 통한 영혼의 표현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인다.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를 만나 또 한 번의 정신적 성장을 한 싱클레어는 우연히 데미안을 다시 만나고, 그토록 자신이 갈망하면서 그림을 그렸던 한 여인이 데미안의 어머니임을 깨닫고 환희에 휩싸인다. 


몇 번의 정신적 방황을 고백하는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자신의 꿈을 찾아야 하죠. 그러면 길이 쉬워집니다. 하지만 영원한 꿈은 없으니 새로운 꿈으로 대체되기 마련이에요. 어떤 특정한 꿈을 계속 붙들고 있으려 하면 안 돼요." (P.177)


"사랑은 애원해도 안 되고 요구해서도 안 됩니다." 부인이 말했다. "사랑은 그 안에 확신하는 힘이 있어야 해요.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끌려가지 않고 끌어당기게 되죠.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내게 이끌리고 있어요. 그 사랑이 나를 끌어당기면 나는 그리로 갈 거에요. 나는 나 자신을 선물로 주고 싶지 않아요. 이끌리기를 원해요." (P. 186)


아. 이게 무슨 말인가. 이끌리기를 원하지만, 선물로 주고 싶지 않다는. 심지어 요구해서도 안되고. 이게 과연 어떤 방식의 사랑일까?


싱클레어는 자신을 탐구자로 생각하고, 탐구자를 '표식'을 지닌 자들로 표현한다.


표식을 지닌 우리가 세상에서 이상한, 심지어 미치고 위험한 사람 취급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우리는 깨어났거나 혹은 깨어나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언제나 완벽한 인식에 이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반면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 이상과 의무, 사랑과 행복을 집단의 것과 더욱 가까이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면서 행복을 추구했다. 그것 역시 노력이었으며 힘과 위대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표식을 지닌 우리는 자연의 의지를 새로운 것, 개인과 미래를 향해 표현된 것으로 여긴 반면, 다른 이들은 옛것을 고집하며 살았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류를 사랑하긴 했지만, 그들에게 인류란 유지하고 보호해야 하는 완성품이었다. 반면 우리에게 인류는 우리 모두가 향해 가고 있는 먼 미래로, 아무도 그 모습을 알지 못했고 그 법은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았다. (P.181)


전쟁에 참여하는 데미안과 싱클레어를 보면서, 과연 이것이 그들이 원하는 길이었는가 모르겠다. 인류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 완벽한 인식에 이르기 위해 전쟁으로 파괴되고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인가? '표식'을 지닌 자들이 정녕 원하는 길이 뭔지 잘 모르겠다. 내 사고와 사유의 폭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라. 온갖 잡생각이 떠올라 나 자신의 내면을 들어다보지도 못하는데, 어찌 알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가야 할 방향, 가야만 하는 그 도착지를 찾기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를 이 책을 읽고, 어렴풋이 느꼈다. 에밀 싱클레어와 함께 하는 동안 잡생각을 떨쳐 버릴 수 있어서 좋았다. 


2019.11.16 Ex. Libris HJK


나는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살고자 했을 뿐이다. - P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