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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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 1954년 러시아를 여행했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약 700 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책을 쳐다보지 못했다. 한 권의 책을 읽다 보면, 중간에 다른 책으로 관심을 돌려 다른 책을 읽는 경우가 간혹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책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1922년 6월 21일 러시아의 귀족인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은 내무 인민위원회에 의해 호텔 밖으로 나오는 순간 총살형에 처한다는 무서운 협박과 함께 죽을 때까지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에 감금된다. 그는 호텔 안에서만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고, 숙박하고 있는 스위트룸에서 지붕 아래의 일꾼들 방으로 이사까지 강제로 해야 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상실과 실의에 빠져서 살아갈 거 같지만, 그는 자신의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서 자신의 삶을 놓지 않았다. 


호텔 안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던 그에게 니나라는 한 소녀가 나타나고, 그들의 우정이 시작되면서 다소 단조롭던 호텔 안의 생활이 바뀌게 된다. 그는 그녀와 함께 호텔 안을 돌아다니면서 호텔 안에도 미처 알 지 못하는 공간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알게 된다. 그 소녀의 야무진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리고 뭘 부탁할 때마다 '부디'와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꼭 사용할 거에요. 하지만, 내가 먼저 부탁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고맙다고 말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P.89)


나의 권리를 당연하게 요구할 때 쓸데없이 '죄송합니다만 ~' 이런 말을 붙히지 않듯이 내가 먼저 부탁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굳이 '고맙습니다'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로스토프 백작은 신사의 품격을 지키면서, 많은 사람들의 호의를 얻으며 많은 사람들과 친구를 맺는다. 음식과 와인에 대한 조예가 깊고, 신사답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를 보며, 만약 내가 만났다면, 나도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감금 상태에 놓여 있는 그의 시간에 대한 생각을 잠시 엿보자.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을 꼼꼼히 기록하는 것이 고립된 그들에게 힘든 한 해를 또 한 번 참고 견뎌내고 이겨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지칠 줄 모르는 투지, 혹은 무모해 보일 정도로 철저한 낙관주의를 통해 그들이 끝까지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찾았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그 365개의 눈금은 불굴의 정신의 증거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주의력은 분 단위로 측정해야 하고 절제력은 시간 단위로 측정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불굴의 정신은 연 단위로 측정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176 ~ P. 177)


분 단위로 주의력을 기울이면서 절제력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지만,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불굴의 정신은 1년을 지나봐야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1년 동안 지속적으로 어떤 행동를 한 적이 있을까? 이제 2019년도 2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2020년을 다시 맞이하겠지만, 과연 2019년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불굴의 정신을 보일 수 있을까? 


로스토프 백작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지탱하는지를 이렇게 말한다.


"역사 학도로서, 그리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상황이 달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진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 내몰리는 것과 상황을 잘 감수해내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려 합니다." 


30년 넘게 호텔에서 감금 생활을 하던 그가 과연 호텔에서 인생을 마감할지, 소련 공산당이 그를 풀어줄지, 아니면, 결국 호텔을 탈출할지 궁금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신사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길은 과연 무엇일까?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할 이유이다.


2019.10.26 Ex. Libris. HJK


1922년 6월 21일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이 내무 인민위원회 소속 긴급 위원회에 출두함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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