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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빠져 죽지 않기 - 로쟈의 책읽기 2012-2018
이현우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8월
평점 :
4일 동안 약 173 권의 책을 읽었다. 아니 약 173 권의 책에 대해 쓴 서평을 읽었다.
혹시 알라딘 명예의 전당에 오른 알라딘 서재인 '료자의 저공비행'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서재의 주인이 바로 이현우 님이다. 내가 읽은 <책에 빠져 죽지 않기> 저자이다. 료자가 무슨 뜻인지 항상 궁금했는데, <죄와 벌>에 나오는 주인공의 애칭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저자에게 직접 팩트 체크를 한 것은 아니다.
<책에 빠져 죽지 않기>는 저자가 읽은 책에 대한 서평을 모은 책이다. 정확하게 센 것은 모르겠지만, 약 173 권의 서평이 담겨 있다. 저자는 비평은 어떤 책을 이미 읽은 독자를 상대하지만, 서평은 아직 읽지 않은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고 알려준다. 내가 읽은 책을 보았을 때는 반가움을 느꼈고, 읽지 않은 책을 보았을 때는 보관함에 넣었다. 물론,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룬 책 위주로 선택을 했다.
우리가 현실에서 외면하고 있는 정말 많은 문제가 있다. 현실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디까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이 많은 문제(불평등, 차별, 자연 파괴, 교육, 복지, 정치, 시민, 개혁 등)을 각 개인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책을 읽는다고 달라질까? 책을 읽는 내내 자신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서평의 부상은 비평의 쇠퇴의 이면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 독자라 하더라도 해마다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의 수가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독서 현실이다. 점점 많은 책에 대해 우리는 '읽지 않은 독자'가 될 수밖에 없다. 책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지만 우리의 독서량은 산술급수적으로만 늘어날 뿐이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최대한 가려서 읽되,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가늠해두는 편이 최선일 것이다. 서평은 바로 그런 필요에 대응한다. (P.09)
나는 책 리뷰를 쓰면서 한 번도 비평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혹시 내가 쓴 것도 서평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고민한 적이 있다. 내가 쓴 책 리뷰가 누군가에게 책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면, 서평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서평을 쓰는 목적을 저자는 자기만족이라고 하는데, 격하게 공감한다. 이제까지 255 편의 리뷰를 썼고, 이 달의 리뷰로 3번 정도 뽑혀서 적립금을 받았지만 모두 다시 책을 사는데 썼다. 앞으로 대중적으로 유명해질 리는 없고, 수익도 창출하기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도 난 책 리뷰를 쓴다. 왜 쓸까? 그냥 자기만족이다.
이 사회에서 자칭 전문가, 지식인 등이라고 떠들면서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배울 만큼 배우고, 책도 많이 읽었지만, 그들의 언행은 정의와 진실과 멀다. 검찰 개혁을 반대하는 검사, 이런 검사에게 기사 받아서 팩트 체크 하나도 안 하고, 거짓 기사를 쓰는 언론인,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을 생각해서 정의와 진실을 외면하는 국회의원 등이 존재한다. 항상 왜 그럴까 고민했는데, 이에 대한 답을 플라톤이 제시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노예는 '주인에게 아첨하고 자비를 구하는 기술'을 터득하느라 영혼이 쪼그라든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성장할 수 없고, 고귀한 감정도 가질 수 없다. "그리하여 젋은 시절부터 노예가 된 이들은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으며, 쉽게 거짓말을 하고 모욕을 주고받는다. 결국 어린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고 전문가와 현자가 되었다고 믿는 그 순간, 건강한 생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 (P.122)
여기에서 '주인'은 누굴까? 주인은 사람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큰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 모든 활동을 무익한 것으로 치부하는 '지배적 유용성'을 뜻한다고 한다. 자기의 기득권, 권력, 재산 등을 지키기 위해 정의와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 결국 노예이다.
요즘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여행 관련 서적도 많고, 정보도 많다. 그런데, 꼭 여행을 가야만 좋을까?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공유하고자 한다.
이순신 장군님이 충청병마절도사의 군관으로 부임한 해미읍성을 방문한 적이 있다. 충청남도 서산에 위치한 읍내에 있는 성이다. 이곳에 가면, 평평하고 넓은 돌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 앞으로 조그만 개천이 하나 흐른다. 평범하게 보이는 이 돌이 바로 천주교도 처형장이었다. 약 1,800명의 천주교도가 이곳에서 참수를 당했다. 이곳을 일부러 찾아서 본 것은 미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을 읽었기 때문이다. 책을 안 읽었다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보고 난 느낌은? 글쎄,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방콕 여행자의 상징적 인물이 바로 철학자 칸트인데, 알다시피 그는 단 한 번도 고향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난 적이 없지만, 각종 여행담의 열혈 독자였다. 그가 여행할 시간을 내지 못한 것은 역설적으로 더 많은 나라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P.584)
요즘 한기총 전광훈 씨의 행실에 대해 말이 많다. 개인적으로 기독교를 이용해 먹는 파렴치한 행위라고 생각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개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이게 과연 기독교의 정신인가? 하나님을 믿는 나 자신도 기독교에 대한 자괴감이 들 때 이 책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서평을 읽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표현하는 많은 말들이 있다. "청빈과 평화의 수도자이며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여 보호하신 분", "정의가 실편되지 않은 곳에서 인간이 얼마나 큰 고통에 빠질 수 있는지,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큰 위협에 처할 수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교황".
신학자 김근수는 <교황과 나>라는 책에서 프란시스코 교황을 읽는 세 가지 코드로 예수회와 성 프란치스코, 조국 아르헨티나의 현실 세 가지를 들면서 교황이 '온건 해방신학자'의 입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을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면서 교회개혁을 통해 사회개혁에까지 이르고자 하는 것이 교황의 지향점이라고 보는 것이다. 교황의 꿈은 가난한 교회,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교회다.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의 현실은 어떠한지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교황의 방한이 그런 반성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P.633)
너무 많은 책이 있어서 숨이 막힐 때, 대체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고민이 될 때, <책에 빠져 죽지 않기>를 한 번 읽어 보기를 바란다. 이미 읽었던 책에 대한 서평을 읽을 때는 미처 몰랐던 것을 다시 알게 될 수도 있고, 아직 안 읽은 책에 대한 서평을 읽을 때는 나의 독서 리스트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서평을 읽고, 골라 내어도 정말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다.
2019.10.5 Ex. Libris. H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