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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반양장) ㅣ 펭귄클래식 3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세계 문학 전집을 발행하는 출판사는 많습니다. 저는 그중에서 펭귄클래식을 주로 선택합니다. 일단, 표지 디자인이 멋있고, 글씨 크기도 적당하고, 책 크기도 적당합니다. 가장 중요한 번역의 질은 다른 출판사의 동일한 책을 읽은 후 서로 비교해 보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
펭귄클래식 시리즈를 읽는 이유 중의 하나가 더 있습니다. 저자에 대한 설명이 책 표지 안쪽에 자세하게 나오기 때문에 저자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1850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태어났습니다. 심각한 호흡기 질환, 부모와의 종교 갈등, 중산 계급이 가지는 잔인성과 위선에 대한 혐오 등으로 힘든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많은 유명한 예술가, 작가들이 힘든 삶을 살았던 것으로 판단하건대 힘든 삶을 살아야 비로소 훌륭한 작품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드라큘라'와 마찬가지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도 주인공인 지킬 박사 주변의 사람들의 편지, 증언 등으로 스토리 전개가 됩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하지만, 공포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종말에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되는 스릴러의 구조를 보입니다. 브램 스토커는 '드라큘라'를 1897년에 썼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1885년에 썼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캐럴'도 상업적으로 성공했다고 하니 19세기의 어둡고, 습한 분위기를 스릴러와 공포로 승하시키는 하나의 트렌드가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인간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양면성 때문에 번뇌를 합니다. 도덕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아무도 없을 때 탐욕스럽고, 악한 모습을 보입니다. 지킬 박사 또한 사회적으로 성공한 저명한 인사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악한 자신의 존재 때문에 힘들어합니다. 그는 어차피 양면성이 있다면, 선과 악을 나누어서 각자 갈 길을 가도록 하면,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구를 통해 실험에 성공한 그가 과연 원하던 바를 얻었을까요?
제 생각에 지킬 박사가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거죠. 악이 행한 것을 선이 모른 척하고, 아무 신경도 안 쓰거나 아니면, 서로의 행위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 지킬 박사가 원하던 대로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밤에 나쁜 짓을 하고 온 악한 존재에게 선한 존재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거죠. 양심의 가책을 받을 것입니다. 하물며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을 막으려고 하는데, 자신의 몸속에 있는 다른 존재의 행위를 어찌 모른척 할 수 있을까요?
또한, 악한 존재 이유 자체가 선한 무언가를 망가뜨리는 것이라면, 악한 존재는 끊임없이 선한 존재를 억압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 책에는 100 페이지 정도의 분량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과 단편소설 '시체도둑', '오랄라' 총 3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두 스릴러를 표방하는 소설입니다. 19세기 영국 의학의 발전에 부도덕적인 시체 해부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겠죠. '시체도둑' 소설을 읽다 보면 런던 뒷골목 도처에 스며든 안개와 어둠을 밝히려고 하지만, 역부족인 가로등 사이에 존재하는 낯선 그림자를 상상하게 됩니다. 시체를 구하기 위해 연쇄 살인까지 저지르는 사람으로부터 돈으로 시체를 구매하는 의사들이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일까요? 수많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아무 잘못도 없는 한 명을 죽이는 것이 선일까요? 악일까요? 판단하기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오랄라'는 외딴 산간 지방에서 살아가는 몰락한 귀족 가문의 비밀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왠지 어디에서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대영제국, 산업혁명, 군사 강대국으로 기억되는 19세기 영국의 강인한 이미지와 반대로 미성년자 노동자 착취, 사회적 불평등, 부도덕한 시체 해부 등의 모습이 어찌 보면 영국의 양면성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영국의 양면성을 애써 외면하는 19세기 영국인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저자의 의도가 이 책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고, 판단은 오로지 각 개인 독자의 몫일 것입니다.
2019.01.13 Ex. Libris. H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