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
하현 지음 / 빌리버튼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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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하현


 

예전에 미국에 잠시 머물렀을 때, 스페인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를 자유자재로 하는 학생을 본 적이 있다. 그 학생은 머나먼 땅 한국에서 온 나를 신기해하며 한국어와 일본어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스페인어를 좋아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아모르'와 몇가지 간단한 스페인어를 들려줬는데 어찌나 발음이 섹시하던지. 스페인어가 그런 매력적인 발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 후로 '스페인어도 해 보고 싶다' 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긴 했는데 배운 적이 있는 일본어와 영어도 제대로 못 하는 판에 다른 언어를 도 손 댄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게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상당히 힘이 드는 일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을 꽤 힘이 드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에서 작가가 스페인어를 배우게 된 계기는 정말 사소하다. 특별한 이유 없이 낯선 외국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고 집 근처에서 접근성이 좋은 학원을 찾다 보니 그게 '스페인어'였다. 그렇다고 해서 스페인으로 여행을 계획한 것도 아니다. 작가는 전형적인 집순이처럼 보이는데, 외국여행에 딱히 흥미가 없다. 그냥 두발자전거가 아닌 '외발자전거'처럼 느껴지는 뭔가를 시도해 싶었고 스페인어가 적절해보였을 뿐이다.


작가의 동기처럼  <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는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다. 읽기 편하고 수많은 어학 서적처럼 과한 열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본인을 의지박약형 인간이자 안전제일주의라고 밝히는데, 꼭 나나 내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을 보는 것 같다. 몇 달만에 새로운 언어에 몰입해서 대단한 성과를 이룬 것도 아니고 눈이 튀어나올 만큼 언어에 특별한 재능을 보인 것도 아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감하면서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안 되는 것은 빠르게 포기하고, 특별히 새로운 언어로 뭔가 하고자 하는 목표도 없으므로 느긋하게 간다. 관사, 자기소개 등 간단한 스페인어 소개가 나오지만 대부분 작가가 스페인어를 배우는 과정과 그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져 있다. 소녀에 대한 문장을 익히다가 반에서 제일 인기가 많았던 소녀와 짝사랑했던 소년에 대해 생각하고 내 속에 사는 수많은 나에 대해 생각한다. 평범한 나 같은 사람이 그냥 새로운 언어를 평범하게 배우는 이야기,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낯선 언어를 배우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해 배우고 동사의 변형에 대해 배우고 난 다음엔 복잡함에 겁을 먹고, 어색하게 다른 학원생들과 쿠키를 나눠 먹고... 꼭 우리 같지 않은가.


스페인어 교재가 아닌, 낯선 언어를 배우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안주하고자 하면서도 낯선 것에 도전하는 겁쟁이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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