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김현 지음 / 봄날의책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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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직한 일을 겪으면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어요. 정답은 없겠지만요. 소리 내어 울지 않아야 하는 것인지, 아파도 참아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억울하고 화가 나는 그러한 순간에도 애써 웃으며 다른 감정을 연출해야 어른인가 싶더라고요.


그런데 말이에요. 어른이라는 것이 불현듯 이런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어리광 부리고 싶은데, 소리 지르고 싶은데, 제가 무너지면 다른 사람들이 더 힘들어지니깐 책임지는 사람이요. 눈물 머금고 대안을 찾고, 최소한의 것이라도 보장받고, 조금 더 확실한 방법들을 강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더라고요.


시인 김현은 자신의 산문집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해요. "어른의 기본 의미는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스스로 책임을 물을 수 있고, 책임에 답할 수 있으며, 책임에 관해 반성할 줄 아는 어른이란 그러니까 연결되는 행위들에 몰두하는 사람이다(36)."


아! 실제로 이랬거든요. 예전 같으면 함께 화내 줘, 함께 울어줘, 어떻게 해야 하지하고 책임을 넘겼을 거예요. 물론 여전히 쿵쾅거리는 마음 때문에 어찌할지 몰라서 몇 시간을 허비하긴 했어요. 그런데 정신을 차려야지, 다음을 생각해 봐야지 하면서, 관련된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찾아뵙고 대안을 요청해 보았어요.


작가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깨끗이 치워버리고 싶은 계절은 봄이라고 하네요. 그렇다면 이 여름이 봄이 되면 좋겠어요. 사실 어떻게 감정을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아둥바둥하거든요. 일단은 살아내 보는 것이지요. 마음속 대청소를 해보아야겠어요. 정들었던 곳을 정리하면서요.


작가는 슬픔은 깊이를 재는 일이 아니라 넓이를 재는 일이래요. 왜냐하면 모든 슬픔은 슬픔 그 자체로서 똑같은 깊이를 갖기 때문이니까요. 슬픔은 슬픔이에요. 다만 슬픔의 범위를 짐작할 뿐이죠. 그래서 우리는 신중해야 해요. 섣부른 위로는 오히려 침묵보다 못하니까요.


슬픔의 범위를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품이 넓고 주변을 둘러볼 줄 아는 사람이죠. 섬세하되 지혜로워야 하고, 공감하되 넉넉하게 공간을 줄 수 있는 사람요. 그래서 이렇게 슬픔에 잠기게 하나 싶네요. 그저 눈길 한 번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작가는 참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여요. 계절마다 책을 달리 읽어요. 가을은 산문집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어찌나 멋있는지요. 일상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고, 소소함 가운데서도 약자를 떠올리는 모습은 우리의 작은 걸음에서도 필요한 모습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책은 참 신비해요. 우리를 침묵하게 하기 때문이에요. 책을 읽는 순간 우리는 '나'를 발견해요. 책은 모두에게 공평해요. '너'를 볼 수 있게 해주잖아요. 그러한 침묵들이 쌓여 우리는 말하게 돼요. 그런 말은 참으로 의미 있고 따뜻하며 무게가 있지요. 다시 침묵하게끔 만들어주니까요.


어른이 된다는 것이 좋은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어른이 필요해요. 기대고 싶고 안기고 싶은 사람요. 함께 울고 싶고, 말하고 싶은 사람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른이 되어가네요. 그렇게 어른이 되어 우리는 더 사랑하고, 더 아파하고, 더 눈물 흘리겠죠. 우리, 아름다워지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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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 마음에 커다란 돌이 떨어졌어요!
오브리 샘슨 지음, 나탈랴 바실리카 그림, 죠이북스 편집팀 옮김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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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하고 떨어진 돌에 마음은 무너집니다. 도무지 어찌할지 몰라 덜썩 주저앉습니다. 심호흡을 해보지만 여전히 마음은 쿵쾅거립니다. 변덕스러운 날씨만큼이나 심술궂은 언행에 매우 당황합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되뇌어보지만 선뜻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분노도 올라옵니다. 우리의 감정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감정은 커집니다. 그러한 정리되지 못한 감정은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짜증이 나고, 엉뚱한 사람에게 비꼬는 말을 던지기도 합니다.


상처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하도록 돕는 오브리 샘슨(Aubrey Sampson) 목사. 저자는 이 책 『오늘 내 마음에 커다란 돌이 떨어졌어요! 』를 통해 다양한 감정, 특히 부정적 감정까지도 예수님께서 다 품으신다는 사랑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깨어지기 쉬운 유리와 같아서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평범한 삶에서도 감정이 상하는 일은 매우 많이 일어납니다. 사소한 말다툼이나 의견 차이 등으로 인해서 말이죠.


하지만 원치 않는 사건이나 사고 앞에서는 참으로 많은 감정이 느껴집니다. 그것이 상대방의 그릇된 행동, 배려 없는 언행이었다면 더욱 그러하겠죠. 인생의 중차대한 문제 앞에 상대방의 상황과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 통보라면, 깊은 영성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도 버거운 감정이 느껴질 것입니다.


저자는 먼저 그 감정을 인정하기를 원합니다. 누구든 그러한 감정이 생길 수 있다고 말하죠. 왜냐하면 그 감정까지도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감정만 느낄 수가 없어요. 부정적 감정까지도 우리의 것입니다. 인생은 복잡다단하고,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아주 실제적인 대처방안도 이야기합니다. 만들기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방법들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해볼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또한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지요.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시며, 그것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아주 약하디 약한 모습이셨죠. 그분은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경험하셨어요. 심지어 가장 극단적인 상황, 최고조의 감정들을 감당하셔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께 우리의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가장 인간적이셨던 예수님께서는 역설적이게도 철저하게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신실하게 우리를 사랑하시며,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실만한 큰 능력을 소유하신 분입니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감정을 이해하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조절할 수 있게 해주시며, 선하게 인도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죠.


언젠가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소망해 봅니다. 그때는 눈물도 힘겨움도 분노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고 공감하기에 결코 상처를 입지도 않습니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탐욕을 위해 사람을 버리는 사람도 없겠지요. 사랑하는 예수님의 품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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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본받아 (라틴어 원문 대조, 완역, 양장) 기독교 명작 베스트 3
토마스 아 켐피스 지음, 최요한 옮김 / 선한청지기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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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앎은 한 사람을 풍요케합니다. 진실한 깨달음이 동반된 지식은 좋은 향내를 풍깁니다. 매력적입니다. 참 지식은 전인격적인 삶으로 연결됩니다. 삶이 없는 앎은 참 앎이 아닌 것이죠. 그러하기에 온전한 앎을 소유했는지는 그 사람의 삶과 태도를 보면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너무도 풍요하여 우리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아버지의 그 사랑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비록 인격적이지 못한 사람들의 배려 없음으로 상처받았다 하더라도, 그 한가운데서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우리를 대하셔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어루만져 주십니다.


지혜 있는 자는 자신의 무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거들먹거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악함을 아는 사람이 진정 지혜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 누구도 탓할 이유가 없는 것은 언젠가 어떤 상황이 되었을 때 나 또한 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수도자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600여 년간 많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변화시킨 기독교 고전입니다. 빼곡한 지혜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 문장의 무게감이 매우 커서 읽어 나가는 속도는 더디지만, 이 문장들은 쉽싸리 휘발되지 않고 우리 마음 한가운데 놓입니다. 자신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하며, 다시금 멈추어 문장을 곱씹어 봅니다. 이것이 머리와 가슴을 치며 우리의 존재가 될 때까지 말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께 주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요. 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헛된 것들을 사랑하고 추구하고 욕망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속적으로 성실하게 하나님만을 추구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하며, 그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 사랑이 극명하게 드러난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체적 삶은 결국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은 우리의 일상에서 자신을 낮추며, 비판을 참으며, 성숙을 추구하는 구체적인 형태로 보입니다. 영적인 무엇인가를 쫓기 위한 비현실적인 삶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관계하며, 참아내며, 북돋아 주고, 함께 울어주는 삶. 그것이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입니다.


부박한 세상, 흔들리는 내면, 불안한 인생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차분하게 주님을 따라감은 이렇게도 약하고 악한 우리를 왈칵 껴안아주시기 때문입니다. 고통이 여전하지만 조용히 손잡아주시는 주님 앞에 더 이상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주님 가실 길, 우리도 따라가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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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브루그만의 복음 전도 - 세 개의 이야기로 된 세상에서 살기
월터 브루그만 지음, 이철민 옮김 / 터치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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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 가득한, 이기심으로 충만한 세상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노력합니다. '너'보다 조금 더 나은 '나'를 꿈꾸며 비교와 갈등에 익숙해집니다. 한 사람의 이름보다 매겨진 순위와 등급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꿈보다 일확천금을 소망합니다.


'너'가 없는 채로, '나'만이 빼곡한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은 당신의 아픔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신음하며 울부짖는 바로 옆의 사람을 보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고통 가운데, 어떤 지점에서 가슴을 치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실제 삶에도 영향력을 미쳐야 참 좋은 소식이 됩니다. 우리의 내적 변화뿐 아니라 외적인 변화도 동시에 가능해야 합니다. 관계와 삶, 사회구조적 문제에 있어서도 변혁을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복음이 우리에게 절실한 복음입니다.


성경의 텍스트와 실제 삶의 통합을 꿈꾸는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이 책 『월터 브루그만의 복음전도』를 통해 협소하게 규정되어 왔던 복음전도에 대한 이해를 보다 큰 그림으로 그려줍니다. 더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성경의 거대한 이야기에 위치시키고자 합니다.


저자는 그동안 제시되었던 복음전도가 통전적이지 않음을 안타까워합니다. 이는 '복음 전도'와 '사회적 행동'이라는 오래된 이분법에 여전히 갇혀 있는 모습, 복음전도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그릇된 이해, 교회 성장에만 국한돼서 도구화된 복음전도에 대한 반성을 포함합니다.


브루그만이 말하는 복음전도는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그 본문을 실천하여 우리의 삶으로 살아내며, 복음을 즐기고, 주목하고, 참여하고, 재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 본문은 우리의 목소리와는 다른 고유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본문을 실천한다는 것은 본문의 목소리가 우리의 삶 전반에 발언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중심적인 내러티브인 조상들에게 주어진 약속, 종살이로부터의 이야기 그리고 땅의 선물은 우리의 삶에 복음적으로 재해석되고 변주됩니다. 그리하여 이 거대한 서사에 '나'와 '너'를 초대하여, 왜곡된 세상의 관점과 방식으로부터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 '좋은 소식'입니다.


저자는 성경의 내러티브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며, 이러한 패턴을 분석하여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강력한 세력과의 전투로 이 싸움은 보이지 않는 영적 전투입니다. 하나님의 승리를 목격한 증인들은 그 결과에 대해 널리 선포하게 되며, 그러한 승리는 우리의 총체적인 변화로 이어집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변화된 삶을 살 능력을 부여받습니다. 세상의 방식과는 다른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지요. 적대적인 세상 한가운데서 교회는 완전하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전복시킵니다. 교회는 힘의 방식, 명예나 부의 방식이 아니라, 약한 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환대하는 삶으로 초대받습니다.


우리의 선포는 사회적 현실을 충분히 반영합니다. 간결하지만 강력하지요. 전복적이며 극적입니다. 사회 경제적이며 정치적 언어를 내포하지만, 궁극적으로 신학적입니다. 복음은 죽음의 힘과 싸우며, 하나님의 거대한 상상력 안으로 우리의 몸을 내맡기는 행위입니다.


복음 전도는 이전의 삶과는 다른 삶을 약속합니다. 세상의 죽음과 단절하여 복음 안에 있는 새로운 삶으로 향합니다. 그 삶은 온전하고도 통전적인 회복과 샬롬을 지향합니다. 이러한 복음이 전해질 때 '나'는 '너'를 품고, '우리'를 원하며, 여전히 힘겨워하는 '너'를 향해 '나'를 내려놓고 나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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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음 전도란 ‘본문을 다시 실천하여‘ 우리의 본문으로, 또한 우리에게 전해져 우리 자신의 시간과 공간 안에 수용되고, 전유되고, 재연되기를 기다리는 ‘소식‘으로 삼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본문을 실천한다‘는 표현을 통해 나는 본문의 드라마를 즐기고, 주목하고, 참여하고, 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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