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 성경을 읽다
이상환 지음 / 도서출판 학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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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성경 읽기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 말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분별해야 한다고요. 성도들이 믿음의 끈을 유지하기 위해 말씀을 꼭 붙들어야 한다고도 합니다. 더 깊이 하나님과 관계하기 위한 은혜의 방편이라 합니다. 제자로 살아가기 위한 영적 자양분을 말씀을 통해 공급받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문제는 정작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성경을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과 시각으로 읽어야 하는지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많이 읽고, 계속 읽고, 자주 읽으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균형 잡힌 관점으로 건강하게 성경을 읽어야 하겠는데, 그 방법은 잘 모릅니다.


성경은 참으로 어려운 책입니다. 오랜 시간 여러 저자에 형성된 책입니다. 더하여 초월적인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가 담겨 있는 책입니다. 물론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도움을 받아 깨달음이 주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공백들로 인해 텍스트를 온전하게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수의 세계적인 학술지에 기고하며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이상환 목사. 저자는 그의 국내 첫 저작인 이 책 『Re: 성경을 읽다』를 통해 간결한 언어로 명쾌하게 성경해석 방법을 들려줍니다. 성경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며 적용해야 하는지를 신학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해하기 쉽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만 저마다의 해석이 다른 이유는 각자의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의적인 해석은 성경 자체에는 큰 권위를 두면서도, 해석에는 신중함을 기울이지 않은 결과입니다. 섬세하고도 겸손한 자세로부터 성경해석은 시작됩니다.


성경은 특정 시대를 반영하는 역사적 문서입니다. 동시에 지금도 여전히 말씀하고 있는 초월적인 문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역사성과 초월성은 성경이 지니는 독특함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것을 충분하게 반영하여 해석해야 합니다.


고대 문서와 현대 독자 사이에는 의미의 공백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텍스트를 기록한 저자와 그 텍스트의 대상이 되는 일차 독자는 서로가 공유하는 환경과 문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미묘하면서도 다층적이기 때문에 현대의 독자가 그러한 부분을 간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현대의 독자는 이를 충분하게 이해하며 텍스트를 대해야 합니다. 특별히 성경은 초월적인 문서로 받아들여지기에, 이러한 역사성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쓰인 책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쓰인 책임을 저자는 강조합니다.


저자는 다양한 해석학 방법을 쉽게 설명합니다. 저자와 텍스트, 청중 중심의 접근법이 가진 각각의 강점과 약점을 서술합니다. 이후에 절충형 모형의 유익과 함께 여전히 가지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조금 더 명확하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다른 모형이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완벽하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모형이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저자는 '의사소통 모형'이 성경을 보다 적실하게 해석할 수 있는 유형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의 양면성(역사성과 초월성)과 성경의 두 독자(일차 독자와 이차 독자)를 존중하면서 성경에 접근할 수 있는 규칙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의사소통 모형은 저자와 텍스트, 독자의 세상을 의사소통이라는 하나의 규칙 아래 통합합니다. 그리하여 저자와 텍스트, 청중을 모두 존중하는 해석을 찾으려고 합니다. 의사소통의 목적은 독자가 텍스트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자에 담긴 의미를 따르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저자는 의사소통 모형을 통해 실제적으로 성경 본문을 해석하고 적용해 봄으로 이 모형의 가진 장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성경을 읽는 독자는 시간과 공간, 문화적인 간격을 뛰어넘어 텍스트가 지시하는 핵심적인 의미와 목적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우리 삶에 적실하게 적용 가능합니다.


우리는 정직하고 겸손하게 다시금 성경 말씀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읽기를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저자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귀 기울여 듣습니다. 그 안에는 여전히 우리를 아름답고도 거룩하게 만들 생명력 넘치는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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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왕의 복음
매튜 W. 베이츠 지음, 이학영 옮김 / 도서출판 학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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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질문은 통찰을 이끌어 냅니다. 가끔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이 따라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우문(愚問)이 현답(賢答)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예리한 질문은 새로운 시각을 허락합니다. 질문을 바꾸면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대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던집니다. 그 대상을 정의하고 개념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각자의 가치와 사상에 따른 다양한 해석이 뒤따릅니다. 그러면서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조차 천차만별(千差萬別)이 됩니다.


한 단어에 대한 정의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고, 모호해진다면 질문을 한번 바꾸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무엇'에서 '왜'로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에서 그것이 '왜 필요한가?'로 바꾸어보면 '무엇'에 대한 대답도 훨씬 깊어지고 풍성해집니다.


『오직 충성으로 받는 구원』의 저자 매튜 W. 베이츠(Matthew W. Bates)는 이 책 『예수 왕의 복음』에서 그동안의 복음 이해에 새로움을 더할 수 있는 색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복음이 무엇인가'에서 '왜 복음이 필요한가'라고 우리에게 물어봅니다.


'왜'라는 질문이 주는 유익은 '의도와 목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복음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복음의 목적과 이유에 대해 묵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이유는 복음이 너무도 필요해서일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 복음이 필요할까요?


이렇듯 질문을 살짝 바꾸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집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도 많습니다. 여전히 복음이 우리에게 의미 있습니까? 복음은 지금도 우리에게 좋은 소식인가요? 여전히 '복음'은 영향력이 있나요?


저자는 빙빙 둘러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저자는 복음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이유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에게 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35)."


복음은 왕에 관한 소식입니다. 그렇기에 복음서 기자들이 반복하는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자주 부르기에 마치 호칭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짧은 단어에 담긴 뜻은 복음의 내용과 의도를 포괄합니다.


'그리스도'는 그저 이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요구이자 주장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확언입니다. 기름 부은 받은 자로서의 예수는 왕으로 오신 분입니다. 그분은 선지자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아입니다. 메시아의 통치는 우리에게 정의와 평화, 화목을 가져다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이 땅에 온 이유를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곧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말합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류를 선하고 아름다운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왕권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냄 받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복음서 기자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라는 것에 동의하지만, 사도들의 메시지는 달랐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의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이며, 사도들의 메시지는 '십자가와 부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사도들의 메시지를 더 자세하게 살펴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강조한 본문을 들여다봅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고, 부활하셨다는 그 본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선순위는 십자가와 부활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있습니다.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일들을 감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사도들이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점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이 복음의 틀이기에 이것을 전제로 하여야만 십자가와 부활 또한 온전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궁극적인 목적을 향한 과정이며 사건입니다.


우리가 왕이신 예수님의 복음에 합당하게 반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에 믿음과 충성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순종하는 믿음은 관계적이며, 능동적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신실하게 충성을 표현하는 몸의 행동이자 의지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렇듯 전인격적이며, 지속적인 응답이자 반응입니다.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 알았던 복음, 한쪽 측면만 강조된 복음 등 기형적인 복음들을 이야기하며 이것이 나쁜 복음, 왜곡된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정도의 진리를 지니고 있지만, 여러 가지 문제도 내포한 복음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안에 왕과 이야기, 충성 등이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복음은 복음의 목적을 재조정합니다. 그리하여 보다 포괄적이고 품 넓은 복음으로 초대합니다.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께 충성을 선언하여, 인간과 피조 세계,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일에 영원히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의 회복은 목적이 있습니다. 나만을 위한 것에서 벗어나 모든 것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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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경이로움에 관하여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논문과 설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지음, 박규태 옮김 / 감은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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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요. 온갖 염려와 불안, 두려움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마치 우리를 소유한 듯 대하는 사람들은 이것저것 우리를 좌지우지하려고 합니다. 당연하다 여기니 미안함이나 고마움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평온함을 누리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합니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은 신중하지 못한 사용으로 인해 그 자체의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랑과 자비, 겸손과 통찰, 영혼 등의 언어는 본래의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탐심이 가득한 우리들은 이러한 용어들을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온갖 목소리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가벼움을 부추기는 기회주의자들 또한 많습니다.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말들이 둥둥 떠다닙니다. 하지만 겸허하게 하나님 앞에 있는 존재는 한 마디를 하더라도 진중합니다. 그 문장에는 깊음과 따뜻함, 예리함이 있습니다.


침묵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기를 기뻐했습니다. 스스로 가난해지기 원했고, 철저하게 낮아졌던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유혹과 현실의 고통 가운데서도 그들은 그것을 뛰어넘는 영혼의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추구했습니다.


중세의 신비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도 그러한 사람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맡기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신선한 통찰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고,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는 메시지를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깊이 있고, 차원 높은 해석이나 적용을 당대에는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1329년 교황은 칙서를 통해 에크하르트의 설교 가운데 28개의 문장에 이단성이 있다고 공표합니다. 제4부에 그 문장들이 따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최우선에 두었습니다. 더불어 하나님을 깊이 통찰할 때 복을 누리게 됨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은 실상 우리와 늘 함께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통찰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에크하르트는 높은 통찰에 이르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참된 순수함에 다다르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통찰을 통해 우리는 더욱 높은 신앙으로 나아갑니다. 신앙은 의지 속에서 열매를 맺고, 의지는 신앙 속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이러한 선순환 속에서 우리의 영혼은 점점 온전함을 향해 나아갑니다.


에크하르트는 성경을 묵상하고 읽으며 가장 최고의 덕이 무엇인지를 찾았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발견한 최고의 덕은 '초탈'입니다.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는 순수한 초탈은 영혼을 가장 높은 곳에 위치시킵니다. 심지어 사랑과 겸손, 자비보다도 초탈이 더욱 훌륭한 '덕'임을 저자는 논증합니다.


그러한 '통찰'과 '초탈'을 중심에 둔 성경해석은 말씀의 지경을 새롭게 넓혀줍니다. 우리의 약함과 무지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축소하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말씀에 대한 통찰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해주며,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열려있게 합니다.


영혼이 하나님을 통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초탈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려야 합니다. 자신이 중심이 되는 말씀 해석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초탈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완전하심 속에 만물을 통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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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더스 오브 힘
콜린 후버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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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판단합니다. 짧은 한순간의 만남으로 그 사람을 단정 지을 때도 있습니다. 혹은 근거 없는 소문에 의지할 때도 있지요. 한 사람의 인생은 몇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서사는 매우 많은 사건과 이야기가 얽혀 있는 우주와 같습니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은 지난합니다.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객관적으로 한 사람을 분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저 마음을 열고 조금씩 그 사람을 받아들이면, 어느 순간 서로 안에 신뢰가 쌓이고, 진정한 소통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콜린 후버(Colleen Hoover)는 그러한 한 사람의 강점 변화를 매우 잘 표현할 수 있는 작가입니다. 전작인 『베러티』에서 보여주었던 숨 막히는 사건 전개는 등장인물의 세심한 감정을 드러내었기에 더욱 흥미진진했습니다. 이 책 『리마인더스 오브 힘』은 더욱 세밀하게 등장인물의 감정에 주목합니다.


주인공인 케나는 남자친구인 스코티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인물입니다. 감옥에서 출산을 하였지만, 딸 디엠과는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던 불운의 주인공입니다. 여러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슬픔과 불안, 두려움일 것입니다.


케나는 출소 이후에 딸을 한 번이라도 만나보기 위해 딸이 살고 있는 마을로 찾아갑니다. 그곳은 남자친구가 살았던 곳이며, 그들의 추억이 깃든 공간입니다. 쓰라린 기억들이 밀려오지만, 오로지 딸을 보기 위한 엄마의 절절함은 그 어떤 것도 그녀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우연히도 스코티의 가장 친한 친구인 렛저를 만나게 됩니다. 둘도 없던 친구였던 그는 스코티의 죽음 이후에 스코티의 부모님과 함께 케나와 스코티의 딸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렛저와 스코티의 부모님은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케나를 원망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스코티의 부모님은 자신들의 손녀를 그 어떤 불행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싶었습니다. 드넓은 사랑으로 보살펴주고, 아껴줍니다. 렛저는 스코티의 가장 친한 친구로서 그의 부모님을 돕는 동시에 스코티의 딸을 자신의 딸처럼 대하고 아껴줍니다.


그런 그에게 운명과 같은 만남이 일어납니다. 렛저는 너무나 혼란스러워합니다. 어떤 목적으로 케나가 여기에 왔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이 사람이 자신에게 접근했는지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딸을 향한 순수한 사랑, 후회와 절망 등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렛저는 아주 천천히 그녀에게 스며듭니다. 정말 진심으로 딸을 한 번이라도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이곳으로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작가의 심리 묘사는 레저와 케나의 행동과 표정, 생각과 말투를 통해 세심하게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사람을 재단할 때가 많습니다. 아주 위험하며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식으로 대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도 처음부터 나빴던 사람은 없습니다. 혹여나 큰 실수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은 여전히 한 사람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그렇게 콜린 후버의 소설은 잔잔하게 우리에게 작은 메시지를 던져주는 듯합니다.



*이 리뷰는 미래지향(@miraejihyang_book)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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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우리가 인생에서 얻어야 할 영원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힘을 주는 적은 양으로 가끔씩 나타나는 것임을 일깨워 주는 것 같았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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