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왕의 복음
매튜 W. 베이츠 지음, 이학영 옮김 / 도서출판 학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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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질문은 통찰을 이끌어 냅니다. 가끔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이 따라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우문(愚問)이 현답(賢答)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예리한 질문은 새로운 시각을 허락합니다. 질문을 바꾸면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대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던집니다. 그 대상을 정의하고 개념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각자의 가치와 사상에 따른 다양한 해석이 뒤따릅니다. 그러면서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조차 천차만별(千差萬別)이 됩니다.


한 단어에 대한 정의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고, 모호해진다면 질문을 한번 바꾸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무엇'에서 '왜'로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에서 그것이 '왜 필요한가?'로 바꾸어보면 '무엇'에 대한 대답도 훨씬 깊어지고 풍성해집니다.


『오직 충성으로 받는 구원』의 저자 매튜 W. 베이츠(Matthew W. Bates)는 이 책 『예수 왕의 복음』에서 그동안의 복음 이해에 새로움을 더할 수 있는 색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복음이 무엇인가'에서 '왜 복음이 필요한가'라고 우리에게 물어봅니다.


'왜'라는 질문이 주는 유익은 '의도와 목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복음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복음의 목적과 이유에 대해 묵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이유는 복음이 너무도 필요해서일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 복음이 필요할까요?


이렇듯 질문을 살짝 바꾸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집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도 많습니다. 여전히 복음이 우리에게 의미 있습니까? 복음은 지금도 우리에게 좋은 소식인가요? 여전히 '복음'은 영향력이 있나요?


저자는 빙빙 둘러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저자는 복음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이유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에게 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35)."


복음은 왕에 관한 소식입니다. 그렇기에 복음서 기자들이 반복하는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자주 부르기에 마치 호칭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짧은 단어에 담긴 뜻은 복음의 내용과 의도를 포괄합니다.


'그리스도'는 그저 이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요구이자 주장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확언입니다. 기름 부은 받은 자로서의 예수는 왕으로 오신 분입니다. 그분은 선지자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아입니다. 메시아의 통치는 우리에게 정의와 평화, 화목을 가져다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이 땅에 온 이유를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곧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말합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류를 선하고 아름다운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왕권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냄 받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복음서 기자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라는 것에 동의하지만, 사도들의 메시지는 달랐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의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이며, 사도들의 메시지는 '십자가와 부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사도들의 메시지를 더 자세하게 살펴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강조한 본문을 들여다봅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고, 부활하셨다는 그 본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선순위는 십자가와 부활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있습니다.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일들을 감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사도들이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점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이 복음의 틀이기에 이것을 전제로 하여야만 십자가와 부활 또한 온전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궁극적인 목적을 향한 과정이며 사건입니다.


우리가 왕이신 예수님의 복음에 합당하게 반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에 믿음과 충성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순종하는 믿음은 관계적이며, 능동적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신실하게 충성을 표현하는 몸의 행동이자 의지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렇듯 전인격적이며, 지속적인 응답이자 반응입니다.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 알았던 복음, 한쪽 측면만 강조된 복음 등 기형적인 복음들을 이야기하며 이것이 나쁜 복음, 왜곡된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정도의 진리를 지니고 있지만, 여러 가지 문제도 내포한 복음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안에 왕과 이야기, 충성 등이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복음은 복음의 목적을 재조정합니다. 그리하여 보다 포괄적이고 품 넓은 복음으로 초대합니다.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께 충성을 선언하여, 인간과 피조 세계,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일에 영원히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의 회복은 목적이 있습니다. 나만을 위한 것에서 벗어나 모든 것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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