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접
크리스틴 폴 지음, 정옥배 옮김 / 복있는사람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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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인 듯 보입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자신의 영역을 고수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점점이 흩어져 저마다의 공간에서 자신만을 위한 삶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만의 안전한 요새를 구축한 채 다른 사람이 침범하는 것을 꺼리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살펴보면 그들은 서로를 원합니다. 관계를 갈구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에서 의미를 찾고 싶어 합니다. 이동이 잦고, 자기중심적인 문화 가운데 외로움과 소외를 경험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수용되기를 원합니다. 누구보다도 '너'를 원하는 시대 가운데 살아갑니다.


하지만 안전하게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들인 경험이 부족합니다. '너'를 향해 손을 내밀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에 대해 잘 모릅니다.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을 온전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어떠한 표현도 진심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듯합니다.


기독교의 오랜 전통에서 '손대접'은 마음 다해 '너'를 받아들이는 행위였습니다. 기독교 윤리학자인 크리스틴 폴(Christine D. Pohl)은 다양한 기독교 공동체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저술합니다. 저자는 성경과 역사를 통해 기독교에서의 '손대접'이야말로 환대를 표현하는 적극적 행위였음을 강조합니다.


손대접이 가진 부드러운 이미지와는 다르게 손대접에는 반문화적인 것을 내포할 때도 있습니다. 이미 자연스럽게 습득된 세속화를 저항하는 행위입니다. 세상은 힘과 명예를 가진 사람들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손대접은 특정한 부류의 사람을 배제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모든 사람을 받아들입니다. 특히 약한 사람들을 귀하게 여깁니다.


우리는 때로 추상적인 말로 존중을 표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향한 진심 어린 인정은 구체적인 일상의 관계에서 실제 삶으로 드러나야만 합니다. 가정과 교회, 공동체에서는 손대접을 통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영접하는 것을 몸소 보여줍니다. 사회적으로 불리한 사람들을 보호하며, 비인간성을 용인하는 사회에 저항합니다.


손대접은 나그네를 돌보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나그네였음을 기억함으로 시작됩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때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때에야 우리의 손대접은 행위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궁핍한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해지는 부담은 혹여나 모를 위험요소들 때문입니다. 오랜 역사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이 나그네를 영접하는 일에 따르는 위험과 어려움에 대해 염려했습니다. 저자는 그러한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초기의 만남은 공적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손대접해보기를 권면합니다.


나그네를 돌보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들은 '타자'로 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근본적으로 그들이 우리와 같은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손대접은 우리의 차이점보다 동질성을 인식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나그네의 차이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며, 형제자매로 보아야 합니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손대접의 한계와 어려움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어떤 지점에서 경계선을 그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정직하게 토로합니다. 그럼에도 우선적으로는 언제나 영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주장합니다. 그렇게 할 때 이후의 모호한 상황들에 대해 더욱 잘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독려합니다.


손대접은 마지못해 하는 의무나 책임이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반응입니다. 인색하거나 억지로 하는 손대접은 우리를 지치게 하며, 상대방에게도 상처를 줍니다. 우리의 모든 사역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한 반영이며, 반응입니다.


결국 유익을 누리는 것은 우리들입니다. 이해관계로 인해 시작한 사역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손대접하는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차고 넘치게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풍요로움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손대접을 통해 우리의 일상에서 작은 죽음과 부활을 경험합니다. 우리에게 뛰어드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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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자의 친구 - 세상이 외면한 이웃들과 우정을 나누다
크리스틴 폴 & 크리스토퍼 휴어츠 지음, 박세혁 옮김 / 복있는사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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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속도가 중요한 듯 보이는 세상입니다. 이슈는 시시각각 변합니다. 새로움은 중요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빨리 변하지 않으면 답답해합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맵니다. 진득하게 무엇인가를 추구하기보다는 재빨리 우리를 자극할 만한 것을 찾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그러합니다.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그 사람을 누리고 함께 하는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합니다. 마음에 잇닿지 못하고 표면적인 관계로 만족합니다. 함께 찍은 밝게 웃는 사진으로 우리 사이를 대변하지만, 궁극적 순간에 서로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난하고 약한 자들은 더 소외됩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그들의 상처를 온전하게 치유한다는 것은 요원하게 보입니다. 서로를 신뢰하며 우정을 나누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저 서로를 기다리고 보듬어주는 과정이 오랫동안 지속되어야만 합니다.


『손 대접』의 저자 크리스틴 폴(Christine D. Pohl)은 영성과 실천의 통합을 도모하는 '그래비티'의 공동 설립자 크리스토퍼 휴어츠(Christopher L. Heuertz)와 함께 어려운 곳에서 나눈 우정의 경험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책 『약한 자의 친구』를 함께 저술합니다.


저자들의 이야기는 세상의 가장 어려운 곳에서 가난하고 힘이 없고 권리를 침해당한 이들과 더불어 사역하기로 결정한 공동체에서 나왔습니다. 이 공동체는 Word Made Flesh(WMF, 육신이 되신 말씀)입니다. WMF는 세계 각국의 가장 약한 이들과 동행하기를 원했고, 실제로 수많은 프로그램과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WMF의 핵심적인 정신 중 하나는 '관계'입니다. 이들은 약하고 소외된 자, 착취당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 여성들과 우정을 만들어 갑니다. 이들에게는 그럴듯한 결과물과 눈에 바로 드러나는 무엇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 나와 함께 하는 이 사람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상처와 학대의 경험은 그 기간이 매우 길고 상흔은 깊어 온전한 회복은 꽤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이 공동체와 긴밀하게 관계하며 우정을 쌓아온 지 거의 15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회복을 위해 힘겹게 싸우는 친구들이 매우 많습니다. 고통의 깊이만큼이나 빠른 해결책이나 쉬운 해답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저자들은 아픔을 경험한 사례에도 충실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합니다. 그중에 하나는 '개인 소매 평등세'로 우정을 맺은 친구가 일하는 공장의 제품을 소비를 할 때마다 스스로 가격의 12퍼센트를 세금으로 떼어 기금으로 적립합니다. 그리하여 연말에 그 기금을 그 친구에게 전달하는 것이죠.


이러한 결정은 우리의 진심을 그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삶에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시급한 그들에게 말로만이 아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가 있습니다. 물론 부패한 정부를 변화시키거나 정치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아닙니다.


이것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지구적인 불의와 인간의 필요는 거대한 문제이기에 다양한 종류의 대응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름과 얼굴을 마주하는 한 사람을 돌보아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는 들려져야 하며, 누군가는 들어야 합니다.


복음의 핵심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들려주고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의 선교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에 대한 반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것들로 눈을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독점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흘러가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선교는 관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우정은 일방적인 관계를 뛰어넘습니다. 서로에게 유익을 줍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깁니다. 한 사람이 주고, 또 다른 사람이 받는 관계가 아닙니다. 자기 헌신과 희생이 아닙니다. 우정은 서로에 대한 감사와 나눔입니다. 서로를 내어주며 함께 자라납니다.


서로를 신뢰하는 우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더디고 갑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가벼이 여길 수 없습니다. 그 시간이 우리의 사랑이며, 서로를 향한 마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참고 기다리셨는지를 기억합니다. 약한 자들에게 오랜 시간을 쏟는 것이 우정의 시작이며 선교의 핵심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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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에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우리 삶과 사역, 선교의 중심으로 회복시키는 일도 포함된다. 화해를 가능하게 하는 우정은 좋은 소식의 메시지를 확증해 준다. 우리의 실천은 우리의 메시지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각 사람 안에 하나님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주장할 때,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확장으로서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 P38

성공이라는 관점으로는, 우리를 배반하고 부인하고 저버리고 의심하는 이들에게조차 자신을 내어 주어야 하는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성경에 따르면, 친구를 사랑하는 우리의 신실함은 -즉각적인 결과를 얻든지 못 얻든지-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하나님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 P41

만일 복음의 핵심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정말로 믿는다면 선교는 그 사랑에 대한 반응이며,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그것에 충실해야 한다. 즉, 하나님께서 신실해야 하며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 그분이 사랑하는 사람들, 그분이 사랑하는 방식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다. - P84

변두리에서 나누는 우정의 이야기들은, 우리로 하여금 환대와 환대하는 태도가 지닌 힘을 되새겨 보게 해준다. 누군가가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식사를 나누고, 자신의 통찰이나 관심을 중요하거나 흥미롭다고 인정해 줄 때 사람들은 변화된다. 그들은 온전한 자존감과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환대는 양쪽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변두리에 있는 이들 역시 누군가가 그들의 환대를 기꺼이 받으들이려고 할 때 자존감은 회복하고 자신이 지닌 선물을 인식하게 된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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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은 진리를 계시한다. 우정 안에서 우리는, 신뢰와 성실이라는 과정을 통하지 않고서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알 수 없는, 상대방에 관한 진리를 배운다. 우정 안에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다른 이들의 눈을 통해 우리의 사랑과 행동을 바라봄으로써 우리 자신에 관해 배운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우정으로 만들어진 관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 P12

수단과 목적은 깊이 얽혀 있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기를 원한다면, 그들이 경험하는 우리와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미리 맛볼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의 내용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선교와 목적과 수단 사이의 연관성을 간과하려는 유혹에 저항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선교와 전도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복음 자체에 대한 더 온전한 이해를 회복해야 한다. 즉, 복음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안에 표현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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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길을 내는 하루 - 삶의 진정한 관리자에게 보내는 사랑 연대기
장진희 지음, 김주은 그림 / 샘솟는기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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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가정의 삶은 고단합니다. 대부분 가난 때문이죠. 목회하는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행복했을 아내에게 평생토록 짐만 지워준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아이가 아플 때마다 햇빛도 잘 들지 않던 작은 삶의 공간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미안함과 실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목회의 지속 여부를 고민하지 않은 목회자는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인해 몸과 마음이 무너질 때라도 기꺼이 사역을 감당합니다. 하지만 가족들이 경험하는 고난 앞에는 혼란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책임 지시기 때문입니다. 무책임한 사람들의 무분별한 언행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음에도, 우리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허락하시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이지만, 가장 필요한 순간 최선을 답을 주십니다.


『마음에 길을 내는 하루』의 저자 장진희는 이 책에서 고단한 인생 한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지속적으로 말씀하시며,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그녀가 만난 하나님은 책과 사람, 환경을 통해 끊임없이 대화를 건네시며, 손 내미시는 분입니다.


목회자 가정으로서 경험하는 인내의 삶은 마냥 슬픔의 언어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채우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 때문이지요. 세상의 냉랭함과 막막한 현실조차도 거룩한 부르심 앞에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 자녀의 삶과 사역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저자는 고통 가운데서도 사랑을 노래합니다. 따스한 언어는 책 곳곳에 빼곡히 스며들어 찬란하게 빛납니다. 분명 어찌할 수 없는 갑갑하고도 당혹스러운 상황 가운데서도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언어가 넘쳐납니다. 불확실을 기쁨으로, 의심을 희망으로 품는 저자의 믿음과 태도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삶이 이러합니다. 한순간에 완벽하게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매우 더디게 개입하시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따라 걷다 보면 조금씩 성숙하고 있는 우리를 볼 수 있습니다.


성숙은 공감이며 배려입니다. '나'의 아픔에 집중했던 내가 '너'의 힘겨움에 함께 아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픔을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 고통 가운데로 직접 뛰어들어오셨습니다. 우리는 궁극적인 환대를 삼위일체 하나님께 받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가장 잘 아십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인생은 '너'에게로 향합니다. '나'를 위한 읊조림이 '너'를 위한 간절한 외침으로 바뀝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힘겹지만, '너'에게 손을 건넵니다. '우리'를 열어 '너'를 품습니다. 나의 어떠함이 여기까지 우리를 오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이끌었기에 말입니다.


이제야 조금 알겠습니다. 고통 가운데 흘렸던 우리의 눈물은 우리를 위해 통곡하시던 예수님의 눈물이었음을요. 그리하여 주위의 아픔을 둘러보고 함께 울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이었음을요. 저자의 삶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순종의 삶은 상상보다 더욱 기쁘고 아름다운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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