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길가메쉬
옌스 하르더 지음, 주원준 옮김 / 마르코폴로 / 2024년 2월
평점 :
끊임없이 우리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신비롭습니다. 평범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또 다른 수많은 이야기를 낳습니다. 근원적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더욱 풍성해지고 다양해집니다.
이야기 중의 이야기인 ’길가메쉬‘. 가장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점토판 12개에 새겨진 ’길가메쉬‘는 성경,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천일야화, 반지의 제왕 등의 이야기에도 줄곧 등장합니다. 이 서사시의 모티브는 여전히 많은 영화나 이야기에서 각광받습니다.
특별히 옌스 하르더(Jens Harder)의 ’길가메쉬‘는 ’그래픽 노블‘로 제작되었습니다. 마치 고대의 토판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그림체나 표현방식이 독특합니다. 거친 듯한 그림이지만 등장인물의 세세한 감정 표현들은 여실히 드러납니다.
작가는 ’길가메쉬‘의 주된 인물을 우르크의 왕 길가메쉬가 아닌 엔키두로 설정합니다. 이는 이 책의 표지를 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앞면 표지에 길가메쉬가 아닌 엔키두가 나옵니다. 길가메쉬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인 인물인 엔키두. 그는 자연으로부터 태어난 땅의 사람이자 야생의 존재입니다.
그런 면에서 왕으로서 권력과 자만심을 대표하는 길가메쉬와 엔키두는 출생이나 성품이 참으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엔키두는 난폭하며 억압적인 길가메쉬를 안정적으로 길들이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엔키두도 완벽한 인물은 아니지만, 길가메시와의 대조를 통해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줍니다.
훔바바의 향백나무 숲에서 길가메쉬는 매일 꿈을 꿉니다. 분명 악몽이었지만, 엔키두는 길가메쉬의 꿈을 새롭게 재해석합니다. 악몽을 길몽으로 바꾸어줍니다. 그리하여 길가메쉬는 자신을 괴롭히던 염려와 두려움에서 점차 벗어나고, 크나큰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됩니다.
엔키두는 왕도 아니고, 원래부터 성읍에 있었던 존재도 아닙니다. 그저 나그네요 도망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엔키두가 없었다면 길가메쉬의 영웅적인 활약도 없습니다. 엔키두 없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길갈메시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각박한 현실을 바라보면 부한 자는 더 부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역전시켜주거나, 약하고 소외된 사람이 함께 행복해지는 것은 요원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함께 할 수 없어 보이는 길가메쉬와 엔키두가 서로 동료가 되어 신뢰하며, 한 목표를 이루어가는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