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 - 영화관 소설집 꿈꾸는돌 34
조예은 외 지음 / 돌베개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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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종합선물은 포장에 설렜다 내용에 실망하는 일이 더 많았지만, 책은 반대다. 이 책은 포장 - 작가진 - 만으로도 기분이 폴짝거린다. 단편들이라 순식간에 흐읍~ 숨을 들이쉬고 몰입하는 시간이 더 강렬한 체험이다.



 

작품 속 세계들 모두가 하하호호 즐겁기만 할 리가 없어 속이 쓰리기도 하지만, 그 현실감이 허황된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없는 내게는 더욱 좋다. ‘현실을 깨닫다혹은 배운다라는 건 무엇일까. 누구도 멋지고 훌륭한 주인공 영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일까.


스스로가 고작 엑스트라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실망감. 스스로를 빛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빛내 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이 주는 참담함. 한순간에 내 삶의 주연에서 낯선 삶의 조연으로 전략하는 기분.“

 

제목이 아주 절묘하다. 사는 일이 역할극을 지치도록 반복한다는 기분은 낯설 지도 않고, 종종 확 망가뜨리고 탈출하고픈 무대처럼도 여겨지니까. 나처럼 게으르고 무사안일을 바라는 사람은 배경이나 엑스트라가 좋고, 누군가는 더 큰 역할이 아니라 괴로울 것이다.

 

네가 스스로 조연인 줄 몰랐던 것처럼 주인공도 자기가 주인공인지 모른다고. 그리고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영문도 모른 채 무지막지한 일에 휘말려. 난 그러기 싫어. 그냥 삶에 큰 위기 없이 대사 한두 마디 던지고 퇴근하는 조연, 엑스트라가 좋아.”

 

뭔가 일기장과 속마음을 동시에 들킨 기분이지만, 이러한 공감대는 흔할 것이다. 공감의 영역이 넓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들이 즐비하고 생존 도모만으로도 피로한 대한민국에서 특별한 일일 리가 없다.

 

나도 한 때는 세상 모든 일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건 주인공의 극적인 성공을 위한 일시적인 시련에 불과해, 전부 타당한 이유가 있을 거야,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건 없다는 걸 안다.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주인공이 아닌 이상 모든 사건에 의미가 있지는 않다는 걸 안다. 세상은 그냥 마구잡이로 흘러가는 것이다.”

 

실체를 안다는 것과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도 늘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주에서 생명이란 것이 그저 일시적인 상태이고 죽음과 어둠이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에 놀란 시절도 있지만, 이전에 아름답던 것들이 여전히 아름다웠다.

 

인과관계를 찾지 못한다고 해서 뇌가 어리둥절해질 수는 있지만, 세상만물과 만사의 의미를 찾는 일은 지겨웠다. 완전히 지칠 무렵 그런 건 없다는 걸 알게 되어 나는 슬프기보다 안도했다. 누구든 제 삶에 의미를 부여해서 살아도 좋다. 하지만 억지로 강요당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구잡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표현만으로도 아주 무섭다.

 

무슨 생각으로 하소연만 하고 있었는지... 그러니까... 이렇게 나를 상상과 사유로 날려버리는 매력적인 이 책의 단편들 중에 나는, [여름잠]이 가장 좋았다. 잠을 잃어버리다니, 잠을 찾아오다니, 잠과 꿈이 있는 영화관이라니...



 

깊고 오랜 잠을 못 자서 괴롭다. 술보다 수면제가 낫냐고 물었더니, 식곤증이 올 때까지 먹으라는 이상한 처방을 받았는데, 식욕이 없어 도전해볼 수가 없다.

 

에에올을 보러 영화관에 다시 가고 싶다. 잠이 들면 무척 아쉽기도 하겠지만, 꿈속에서 다중우주를 경험한다면 나쁘지 않을 듯하다.

 

다른 이들의 잠도 삶도 빼앗는 나쁜 인간들은 이번 겨울에 몽땅 겨울잠이나 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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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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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고는 소화가 잘 안된다고 느꼈다. 왜 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소설보다 에세이, 인문, 대중과학, 철학서들을 훨씬 많이 읽으며 살고 있다. 지난주에는 장편소설 한 권을 꽤 힘들게 읽었다. 읽기야 읽지만 뭔가... 소설로 향하는 신경망의 출입구가 닫힌 기분...

 



평범이란 품질보증서가 있어서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각자가 바라는 평범함은 모두 있다. 물론 비범과 야망과 모험을 더 좋아하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 평범했고 겉돌던 문장들은 일상의 평범이 깨지자마자 간절한 소원으로 바뀐다.

 

인간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잖아요. 모든 게 잘될 거라는 희망에 부풀어 잠들었다가도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한 아침을 맞이하기도 해요. 인간의 실존은 앞뒤가 맞지 않는 비논리적인 이야기예요.”

 

하이데거의 Da Sein을 이번 생애는 모두 이해 못할 것 같지만, ‘현존재인 내가 매일 죽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한다는 것은 수용한다. 다만 우리 모두의 안전한 실존을 위해 작동되어야하는 갖가지 필수적인 시스템의 현존재가 망가지고 있는지가... 문득 두렵다.

 

이제는 안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하면 1, 안 하면 0. 요즘 힘을 내게 하는 계산법이다.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라도 선택하기로 했지만, 혹시 바라는 일이 현실이 될지 모른다. 포기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아주 아주 많아지면.

 

모든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도 접어두고 싶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때가. 그럴 때가 바로 어쩔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지.“

 

어쩔 수 없이,

어쩔 수 없다.




표지를 보다가, 오늘 평범하지 않은 개기월식이 있다는 걸 기억해냅니다.

가려지는 것일 뿐 달도 천왕성도 실존은 존재할 테지요.

이렇게 가끔 우리가 우주에서 산다는 걸 상기하는 일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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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레시피 - 남편의 집밥 26년
배지영 지음 / 사계절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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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하기도 해서 얼른 펼쳐보았다. 그리고 글을 쓰기까지 오래도 걸렸다. 제목과 부제를 보면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공감 부재의 상태로 읽기 시작할 글이다. 화목하고 평화롭고 다정한 가족의 모습은 사랑스러운 그림들로 더 빛난다.


 

소중한 관계일수록 깨어지지 않게 시간과 마음을 쏟는다.”

 

그저 먹을 수 있는 상차림이 아니라 정성스러운 한식 상차림이다. 레시피를 좀 배워볼까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식재료부터 솜씨까지 어려울 듯하다. 건강식도 문제없이 만드시고, 시간이 부족한 날에도 거뜬하게 차려내는 너무나 겸손하신 26년차 요리사!

 

먹을 만해?”

 

남편분이 직접 쓰신 글이 아니고 자기주장이나 설명이 많은 책은 아니라서 남편분에 대한 궁금증이 무럭무럭 커졌다. 짐작할 수밖에 없는 것들을 생각의 화두로 삼았다. 집밥이란 무엇인가, 식사란 무엇인가, 관계란 무엇인가, 교육이란, 생존능력이란, 가사노동이란... 등등등...

 

내 부모는 집밥과 요리에 애를 쓰시는 분들이 아니었기에 나는 부채의식은 덜하나, 그리운 부모의 음식이나 집밥에 대한 향수가 없다. 대신 어릴 적 할머니가 먹여주시던 음식들이 그 자리에 빼곡하다. 그건 집밥이라기보다 명절음식과 특식이었다.

 

외할머니는 외삼촌 군대 보내기 전에 굴비와 소고기를 구웠다. 밥 뜸 들이는 가마솥의 뚜껑을 열고 파 쫑쫑 썰어 넣은 달걀 물이 든 스뎅('스테인리스'의 속어) 그릇을 가만히 쌀밥 위에 올려봤다. 할머니는 외가에서 보기 드물었던 분홍 소시지까지 달걀 물 입혀서 부쳤다. 혼자 먹기에는 너무 거창한 밥상이었다.”

 

가을이라고 특별히 식욕이 생기진 않지만, 올 해 가을에 그마나 변변치 않던 식욕을 많이 상실했다. 규칙적인 식사 습관이 무너지면 혈당 조절이 안 된다는 협박(?)에 억지로 음식을 씹어 넘기긴 하지만 고역이다. 그저께는 남은 음식 몇 조각을 오래 노려보다 기어이 못 먹었다.

 

공부도 독서도 글쓰기도 엉덩이의 힘이 중요하다. 먹는 것도 그렇다. 배불러도 식탁에 앉아서 숨 고르며 잡담을 하면 가짜 식욕이 생긴다.”


 

어차피 하루 한 끼 제대로 먹던 식사지만 고민은 된다. 주로 건조한 의학 관련 걱정들이다. 내장근육 감소로 심장은 괜찮을지... 하는 거. 지난달에 심장 MRI 검사를 받았고 안 죽을 테니 그냥 살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입맛과 식욕부재는 어떤 검사를 받아야할지.


 

집 밥이 주는 효능을 다는 모르지만, 힘들 때에도 힘을 내어 챙긴 식사는 분명 힘이 된다. 모두들 힘이 되는, 가능한 다른 생명과 지구에 덜 해로운 식사를 잘 챙겨 드시길 응원한다. 특히 슬픔과 분노에 힘겨우실 많은 유가족분들의 일상이... 강건하게 이어지길 간원한다.

 

제 글이 가라앉아서 그렇지 이 책에는 행복하고 맛있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덕분에 꿈꾸듯 잠시 편안하게 쉬고 즐겁게 웃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성품을 물려받은 강성옥 씨는 처자식에게 바라는 것 없이 너그럽다. (...) 뜨거운 가스 불 앞에 서는 여름에도, 숙취로 고생하는 이른 아침에도 밥하는 자기 처지를 한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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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총을 쏴라 - 제8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김경순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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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은 모두 틀렸다. 읽기 전 짐작들도 읽으면서 새로 생긴 짐작들도. 다 읽고 얼마나 놀라고 두근거렸던지. 그러니까 황산벌문학의 성격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 없기도 했나보다.

 

어떻게 소개를 해야 할까. 추리소설 같기도 하고 역사서 같기도 하고, 두 장르를 합한 이상의 작품이라 뭐든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살짝 불안하다.

 

낯설어서 끌렸던 것은 분명하다. , 총을 쏘는 일. 역사 기록이나 소설에서 총이 사용된 사건들을 만나지만, 한국인에게도 한국문학에게도 총이란 낯선 소재다. 한 개인이 복수에 사용하거나, 어둠의 세계의 암살과 관련된 총도 아니다.



 

전개 자체가 아주 빨라서 읽는 동안 집중해야 하고, 몰입할수록 재미있다. 현실에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소재들이 많은 것도 흥미를 더한다. 교정국 백서, 수필로 등단한 작가이자 교도소장, 재소자 대상 글쓰기 교실, 작품 내에서 주인공 현이 추리소설로 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잡지사에 취직해서 드디어, 총이 등장하고, 총기사살 사건과 엮어 재판을 받고, ‘한옥인이라는 죄수를 만나면서 스토리의 중심이 옮겨간다. 이 만남을 위해 총을 격발해야 했다니... 강력하고 자극적이고 비극적인 매력으로 놀라게 하는 사건 전개이다.

 

함께 읽은 친구는 실제로 머리가 멍했다고, 둔탁하고 무거운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데, 나는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총을 다루는 잡지에서 독립군 시절에 휘리릭 시간이동을 할 때는 세찬 바람을 맞은 듯했다. 이 작품은 어디로 흘러가서 무엇을 터트리는 걸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장미총이 비유도 단어조합도 아니라는 것이다. 독립운동, 처참한 비극, 실종, 살해... 그리고 총기소지허용을 위한 로비, 밀정, 매국, 불법재산, 역사왜곡, 무기밀매, 청부살해...

 

총소리는 멈추지 못하고 계속 들린다. 총성이 울릴 때마다 누군가가 죽는다. 간신히 살아난 인물은 자해를 저지른다. 재판이 끝나고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다 하지 못한, 밝히지 못한, 해결되지 않은 역사가 오래된 먼지처럼 켜켜로 쌓여있다.

 

독자는 물론 - 혹은 저만 - 작품 속 인물마저 완전하게 속이면서 김경순 작가가 전하려는 이야기는, 총 쏘는 이야기도 복수극도, 흥미본색 자극적인 에피소드도 아니었다. 어째서 반전(反轉)과 반전(反戰)인지 기분 좋은 시달림처럼 실컷 경험했다.

 

읽은 후 독자들이 느낄 감정의 종류가 궁금하다. 둔중한 충격일지, 날카로울 아픔일지, 억울한 눈물일지, 뜨거운 분노일지. 다음 작품 출간 소식을 고대할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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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44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브렌던 웬젤 그림,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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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삶도, 인간 아닌 다른 존재들의 삶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누구의 삶도 귀하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다른 누군가의 삶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중단시키는 것, 없애버리는 것은 얼마나 큰 우주적 사건인가요.

 

삶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됩니다. 코끼리도 태어날 때는 아주 작습니다. 그리고 점점 자라납니다. 햇빛을 받으며 달빛을 받으며 모두모두 자라납니다. 동물들에게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지 물어볼까요?”

 



혼자 살 수 있는 존재는 없고, 다 알지 못해도 누군가의 삶이 내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도 미처 다 밝힐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삶이 강제로,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로 망가지고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 이들의 삶도 상처를 받습니다.

 

이것만은 꼭 기억하세요. 세상에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주 많다는 것과 누군가는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오래 전 현미경으로 아주 작은 날벌레를 보았습니다. 내게 누가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고 만들어보라고 해도 절대 만들 수 없는 완벽한 존재였습니다. 내게 해를 끼치지도 않는 존재를 벌레라 멸칭하고 혐오하고 눈에 띄면 죽이는 일은 괜찮은 걸까요.

 

그러니 매일 아침 부푼 마음으로 눈을 뜨세요. 삶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지만 점점 자라날 테니까요.”



 

아주 작은 존재에서 시작해서 자라나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 남아 성장한 이들이 한순간에 허망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서서 죽은 이들도 있습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을 인간이라면 참사라고 부르며 애도합니다.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우리 모두의 삶, 중단된 삶들을 애도하고 명복을 빕니다. 생존자들과 목격자들 모두의 회복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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