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
이순하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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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서사는 간혹 펼치기 두렵기도 한데. 먼저 읽은 이들의 추천이 독려의 에너지가 된다. 오래 전 분석하고 기억하려하지 않아도 꿈속까지 찾아들던 할머니의 대하서사 같은 삶처럼, 그렇게 문장 따라 출렁이며 듣는 작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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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배가 십 수 년 높은 분이긴 하지만, 개인사는 간결 요약된 기록된 역사와 완전히 다르진 하지만, 이분의 이야기를 만나고 나니,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완전 무지한 기분이다. 삶을 건성으로 살아 모르는 것만 많은 중년이 된 듯하다.


“전쟁은 그들의 영혼을 미라처럼 마르게 했다.”


내용에 기가 막히고, 놀라고, 어리둥절했다가, 속이 턱턱 막히기도 했다. 판소릴 사설 풀 듯 유려하게, 멈출 수 없는 노래처럼 들려주는 이야기들에 입을 턱 벌리고 읽은 듯하다. 정보 없이 본 새 드라마에 홀려 밤샌 기분이랄까.


구전으로 들은 어느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보다 극적이고, 책으로 읽은 어느 개인사보다 격렬하고, 어떤 영화보다 다채롭다. 믿을 수 없이 놀라운 기억력은 물론, 천재가 펼치는 재담 같은 문장들이다. 화들짝 놀라 벙벙해지면서도 팍팍 넘기며 끝까지 다 읽었다. 


“우리의 젊음은 아랫목 이불 속에 덮어둔 갱엿처럼 진득하게 처졌다가도 새치머리 엿가락이 흰엿처럼 실타래를 만들며 나이를 먹어갔다.”


실향민으로 사는 일, 혼인 따위 존중할 맘이 없는 듯 사는 바람둥이의 아내이자 아이들 엄마로 사는 일, 남편 죽고 애들 키우며 살아남는 일, 먼먼 타국에서 제 자식도 생면부지의 사람들도 구원하며 사는 일. 하나 같이 믿을 수 없는 서사들이다. 에세이니 모두 실화일 텐데, 이런 분들이 더 많을 것도 같은데, 그동안  참 시시한 성공담만 회자되었구나 싶다. 


기가 막히는 가족사이자, 탁월한 미시사의 기록이자, 당당하고 간곡한 토로의 문학이다. 엄마 생각에 눈물짓는 그런 연약한 감상과 그리움은 찾아들지 않았다. 출간 전 연재가 왜 폭발적으로 공유되었는지 잘 알듯하다. 


살아 있는 동안은 내내 챙겨 먹어야 살 수 있는 가장 고단한 생의 비밀인 끼니(음식) 이야기들이 이야기와 찰떡처럼 붙어 여러 번 등장한다. 대개가 즐기지 않는 식재료들임에도 허기가 배를 두드리곤 했다.


‘먹고 사는’ 이야기를 너무 강조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저자가 하는 ‘먹고 사는’ 이야기는 계속 들을 수 있을 듯하다. 에세이 속 이웃들과 친척들도 한 권은 너끈한 자신만의 녹진한 이야기들이 한 보따리는 있을 것 같다. 그분들의 안부가 자꾸 궁금하다.


“띵까 영감은 자기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선 끝까지 당당해야 한다는 것을 아려주었다. 말해야 할 때 말하는 것이 용기임을 배웠다.”


같은 반이었다면 절대 친구가 되지 않았을, 평생 데면데면한 내 어머니와 나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돌아가시기 전 할머니는, 부모는 나이 들수록 자식 그릇을 닮아간다고 하셨는데, 내 깜냥이 늘지를 않아, 관계의 온도가 올라가지 못한다. 어머니와 식사를 해야겠다. 입맛도 전혀 안 맞지만, 세상에 우리 둘이 맛있게 먹을 음식 하나 없을 리는 없을 것이다. 


드라마도 잘 못 챙겨보면서 이런 비교는 좀 민망하지만, 오감으로 느끼는 한국 근현대사 드라마처럼 드라마틱하고 독특하고 심장에 무리가 올 정도로 물러섬 없이 솔직한 놀라운 글입니다. 꼭 재밌게 읽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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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장난감 선물가게 - 고장난 장난감, 무료로 고쳐드립니다
장난감 박사 지음 / 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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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9월에 개원한 병원(?!)인데 이제야 소식을 듣는다. 비영리 봉사 단체, 국내 최초의 장난감 병원*, 평균 나이 75, 열두 명의 할아버지들, 동요 가득한 공간, 북유럽 어디가 아니라 인천시 미추홀구의 어느 지하시민상가. 동화 같은 현실이다.

 

* 병원 이름 키니스kinis: 키드와 실버의 합성어(kid+and+sil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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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장난감에 둘러싸여 있는 제게 장난감이란 무엇이냐물어도 그 실체를 명확히 규정짓지 못하겠습니다. 장난감이 없는 세대였기 때문이에요.”

 

설레며 펼쳐본 페이지에는 어린 시절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을지 궁금한 연령대의 박사님들이 계신다. 흔히 상상하는 공산품 장난감들이 없던 시절에도 아이들은 스스로 장난감을 만들거나 사물에 의미를 부여해서 재밌게 놀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 사랑스럽고 뭉클하다. 자신이 어린 시절에 만나본 적 없는 장난감들을 위한 병원을 만드신 것이. 아이들에게 자신의 장난감이 어떤 의미인지 곰곰 생각하시는 것이. 장난감이 없는 아이들이 없도록 후원과 기부로 이어지는 활동이.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장난감이 없거나 모자라서 아쉬워하는 아이가 세상에 없도록 계속해서 장난감을 고쳐 선물하는 것이 지금 키니스 장난감 병원의 꿈입니다.”

 

퇴직 후 사회적 활동을 할 자리가 사라진 분들의 심정을 다시 헤아려보고, 나의 노후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해보고, 타인의 노동력을 공짜로 사용한다는 것이 불편해서 달갑지 않던 봉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한국완구공업협동조합이란 곳이 있다는 것도 배운다.

 

** 봉사: 남는 시간에만 참여하는 게 아니라 부러 시간을 써가며 하는 것/ 자기 주머니에서 어느 정도 경비가 나가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

 

장난감은 어린이의 몸과 성장을 돕습니다. 말하자면 한 사람을 어떤 어른으로 키워낼 것인가하는 심오한 철학이 들어 있는 것이지요. (...) 장난감 안에는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한 조각이 들어 있다는 말이 됩니다.”

 

애착담요와 애착장난감이 있었고, <토이스토리>의 팬이기도 한 나는, 21세기의 아이들이 여전히(?) 장난감을 소중히 여기고, 망가뜨리는 당사지이기도 하지만, 아픈 장난감을 병원에 보내 고쳐달라고 하는 장면이 반갑고 사랑스럽다.

 

우리 병원에 장난감을 맡길 때는 입원 치료 의뢰서를 작성해야 해요.”

 

아이의 장난감을 택배비를 내어 장난감 병원으로 보내주는 부모들도 멋지고, 장소와 공구와 유지비는 어떻게 하나 싶어 걱정이지만, 기꺼이 무료로 치료하는 박사님들도 멋지다. 그래도 급여와 병원 관리비는 안정적으로 마련되면 더 좋겠다.

 

한낱 어린이 물건이라며 얕본다면 글쎄요, 이 사람이 아직 어른이 되기는 멀었구나... 생각합니다.”

 

읽어 나갈수록 이 병원의 존재도, 박사님들의 활동도 귀하다. 일렬로 줄 세워 가치를 숫자로 환산하는 것에 열광하고, 주류와 정상성과 수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무가치하게 여기고, 사회적 약자들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일이 쉽고 거침없는 시절이라서 더욱.

 

무엇보다 제대로 된 어른이 되지 못한 중년 독자로서 어른의 생각과 태도를 배우는 고마운 기회였다.

 

어른들의 배려와 애정을 경험해본 아이는 훗날 사회에 그것을 되돌려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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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 부마민주항쟁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다드래기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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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하고 자료나 작품이 드물었던 부마민주항쟁에 관한 역사만화가 출간되어 반갑고 기쁩니다. 가독성이 좋고 생생한, 보다 더 정확하게 민주주의를 위해 애쓴 저항의 역사를 배우기 위해 만나 볼 좋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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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부마민주항쟁에서 마산항쟁에 참여하신 유진숙 선생님의 구술 녹음을 시작하겠습니다.”

 

부마항쟁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들을 써보니 몇 단어 몇 문장이 채 안 된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도 실제 정보량은 부정확하거나 부재한다. 사건명과 연대기로 역사를 외워버린 버릇 탓도 있을 터.

 

아무리 정교해도 축약된 기록인 역사기록은 체험되는 힘이 약하고 장기기억화되기도 어렵다. 이럴 때 문화 체험 - 문학과 예술 - 이 큰 도움이 된다. 문학은 때론 영상보다 생생한 독자 고유한 속도의 체험이 된다. 비극일수록 접근성과 가독성이 좋은 만화가 도움이 된다.

 

한국현대사를 기념하는 기록물인 이 시리즈는 꾸준히 읽고 있다. 매번 반갑고 매번 도움을 받는다. 관련 조사를 인터넷에서 하긴 했지만, 이 책의 장면과 대화가 아마 가장 오래 남을 것 같다.

 

니 그그 아나? 마산에서 데모가 일어나면 정권이 바뀐대이.”

 

197910월이 멀지 않다. 물리적 시간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바른 말하고 당연한 저항을 하는 시민을 공권력이 어떻게 빨갱이로 모는지, 관제언론이 얼마나 비겁한 침묵에 능한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조직과 인간의 모습이 어떤지. 매일 반복되는 장면처럼 친숙하다.

 

군대의 가혹한 진압으로 항쟁의 불길은 일시적으로 잦아들었지만, 그 여진은 소리 없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은 권력이 있다 해도, 한국 현대사는 이승만 독재, 4.19 혁명, 부마민주항재,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을 거치면 민주주의를 토착화시켜왔다. 이를 부정하는 이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이들과 다를 바 없다.

 

독재자의 그늘에서 자라난 독버섯처럼 권력의 빈자리를 차지하려고 학살을 마다하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물론 기대를 짓밟는 퇴행 역시 반복되었다. 그러나 시민 항쟁 역시 멈춘 적이 없다. 참 고단한 일상과 사회공동체의 경험을 겪으며 살고 있지만, 한국 사회는 늘 시민들이 스스로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행동으로 분출되어왔다.

 

그러니 가까운 역사를 조금 더 정화하게 상세하게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2019년 정부는 공식 국가기념일로 지정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난하게 지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반드시 변화시킨 것들이 있다. 그러니까, 할 일이 남아 있으니까, 힘을 내자. 많이 이들이 함께 하면 힘이 덜 든다.

 

앞으로도 할 게 많다, 그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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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심장 훈련
이서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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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도 위무도 없이 지구는 늘 지옥이었다, 라고 시작하는 무시무시하고 놀랍고 용감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여자아이들의 고군분투기, 라고 한다. 나도 눈물 글썽이지 말고 씩씩하게 신나게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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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친구에게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라는 편지를 보냈지만, 독자 각자가 깨고 싶은 꽁꽁 얼어붙은 바다가 특정 대상이 아니라면, 나는 도끼를 자주 만난다.

 

내게 가장 굳건한 것이 편견인가 싶게, 편견을 깨는 작품을 가장 자주 만난다. 말랑한 작품들이 아니라는 소개는 들었지만, 여자아이들의 고군분투 성장기란 이러저러하겠거니 하는 짐작이 있었다. 첫 작품의 첫 장부터 기이한 어긋남이 느껴지고 읽을수록 괴리가 커지다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났다.

 

우리 집 십대들에서 보는 이미지도, 환경도, 스토리도 아니다. 현실은 물론 문학에서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분위기와 전개는 드물다. 풍자가 깃든 부조리함 정도는 걷어차는, 어른들과 사회가 정한 끔찍한 삶의 조건에서 울며, 때리며, 탈출하며, 불을 지르며, 죽이며, 상상하는 탈주다.

 

잊히거나 미화된 내 기억에서는 아마 불러낼 수 없는, 어두운 성장의 한 시기, 나도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분노하며 상상 속에서 누군가들을 욕하고 때리고 죽이며 탈주를 꿈 꿨을지 모를 일이다.

 

악몽과 가위눌림과 상상을 구별하지 못한 무더운 여름밤이었을 수도, 북풍한설의 매서운 소리를 들으며 허락되지 않은 자유와 삶을 애통해하는 겨울밤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불편해하는 원숭이와 새, 세상에서 다 사라졌으면 좋을 총기, 무감한 양육자나 보호자들, 기억이 없는 시간부터 여기저기 상처 입은 아이들, 다친 채로 아픔을 불길한 불길처럼 뿜어내는 살아 있는 아이들이 단편들에서 반복될 때마다 내 심장은 움찔 놀라다 제 속도를 찾아갔다.

 

네가 한 번만 더 그런 짓을 하면, 저 불쌍한 새들이 총에 맞아 죽을 거야! 새들의 심장이 총알에 맞아 터질 거야! 어린 새가 비참하게 죽을 거야! 제대로 날아보지도 못하고! 한번 살아보지도 못하고! , 불쌍한 것!”

 

단편 하나가 별개라기보다는, 작품 자체가 다음 이야기로 성장하는 생물체 같다는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불온한 불확실함과 예견 같은 분위기에 두려움을 느끼면서,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존재의 성장을 조용히 지켜보는 존재가 된 무력한 기분으로 계속 읽었다.

 

낯설고 강렬한 것들이 적대적인 공격처럼 느껴지는 이야기 속에도, 믿을 구석이 없는 인간 어른대신 아이들이 탈주할 방향이자, 구원을 바라는 대상으로 인간 이외의 존재와 문명 이외의 장소(야생)가 등장한다. 의심하지 않는 순전한 애정도 불쑥 등장한다. 아이도 자연도 주류와 정상과 인간이 가해하는 존재들이라서 혈관이 찔린 듯 슬픈 통증이 느껴졌다.

 

산은 기침처럼 나를 토해내며 이렇게 말한다. 내 죽음에 슬퍼하고, 내 죽음을 기록하며, 내 죽음에 분노하라.”

 

아이들은 어른이 만들고 망친 세상에 불려나왔다. 던져지기도 했다. 방치되기도 했고, 그보다 더 나쁘게는 곧 죽임 당하기도 했다. 다치고 망가진 채로 몸이 성장하기도 하고, 낫지 않는 상처로 성체가 되지 못한 채로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로 살아있기도 하다.

 

높이 올랐다가 둥글게 내려오는 그네에서 떨어지는 일, 그건 가슴이 아찔할 만큼 무서운 사고였고, 기이한 희열을 심장에 남기는 금기의 놀이였다.”

 

한국 사회는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지키고 키우는 일도, 새로운 생명을 지키겠단 맹세와 함께 새롭게 불러내지도 못하는 불임의 공간이 되고 있다. 이기적이고 불성실하고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 어른들이 만든 계획들로,숨결조차 조작된이곳에서 아이들의 마음속은 텅 비어 가는 걸까.

 

어린 심장들만 그럴까. 커진 심장, 늘어진, 심장, 늙은 심장, 얇아진 심장, 너덜거리는 심장 모두 그런 걸까.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내 심장은 때론 울고 싶어질 정도로 놀라고 슬퍼서 뛰었다. 공존을 위한 문학적 훈련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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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살인 - 폭주하는 더위는 어떻게 우리 삶을 파괴하는가
제프 구델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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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기도 하지만 정확히 알기 위해
가족, 친구, 동료, 이웃... 누구라도 함께
많이 읽게 되길 바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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