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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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리자면 <<칼의 노래>>가 이 소설에서 작가가 ‘기름진 꽃잎이 열리면 바로 떨어져버리는 동시성, 말하자면 절정 안에 이미 추락을 간직하고 있는 그 마주 당기는 무게의 균형과 그 운동태의 긴장을 데생으로 표현하는 일’ 이라고 표현한 말 중에서 그 ‘운동태의 긴장’에 무게중심이 쏠린 작품이었다면, <<내 젊은 날의 숲>>은 ‘균형’에 돌 한 덩어리를 더 얹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에서는 아주 빈번히 반복적으로 질리도록 독자들이 알아채지 못할까 봐서 노심초사하듯 과거와 현재, 광각과 접사가, 안과 밖이, 동물성과 식물성.. 등등이 교차하고 있는데, 은유로서뿐만 아니라 문장의 길이(데이터 量)에서 조차 균형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작품 중,

거기서 북쪽으로 방향을 꺾자, 아득히 흐리고 빈 공간이 펼쳐졌다. 자동차가 단 한 번 우회전함으로써 그렇게 아무것도 들어서지 않은 막막한 세상이 전개될 수 있었다.

라는 문장에서부터 나는 나도 모르게 ‘우회전’을 했고, 암시에 걸려 최면에 빠진 사람처럼 그녀의 ‘민통선 안 수목원’으로 접어 들었다. 이 부분이 몹시 마음에 든다. 별 문장도 아닌데, 그 ‘단 한 번 우회전’이라는 말이 나만의 성지(聖地)로 들어가게 하는 열쇠어가 된 기분이 든다.

<<내 젊은 날의 숲>>이라는 제목에서도 느끼듯 왠지 회상조여서 맥이 좀 빠진 감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그 ‘균형’은, 치유와 자생으로 가는 여정은, 즐거웠다.

다만, 1인칭 주인공인 ‘조연주’가 여자인데, 목소리는 아무리 봐도 나이 든 남자의 목소리라고 느껴지는 게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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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2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 사회평론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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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바위 위에 서서 안개 바다를 보고 있는 한 남자를 볼 때, 느껴지는 감정. 세상의 험하고 거친 파도를 꿋꿋이 헤쳐 나갈 것 같은 단독자의 모습과 한없이 외로워 보이는 그저 한 남자의 모습. 두 개의 이미지가 겹쳐져 결국 내 안에 작은 신화로, 아우라로 각인된다.

가라타니 고진의 이 책은 칸트의 철학을 지팡이 삼아 일본의 전후 전쟁책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칸트의 윤리는 칸트식의 자유 개념이 그 핵심에 있다. 가라타니 고진은 먼저 ‘구조’를 인정한다.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서의 인간. 설사 지금부터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 살아도 과거 내가 배운 것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서의 인간 말이다.

그런 구조 하에서 우리의 자유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에 칸트를 빌려 고진은 말한다. 자유는 구조를 배제하고(괄호치기 하고) 사물과 삶을 대하는 태도다. 즉 당위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내가 손해를 보고 사회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외로워지더라도 나는 자유로워져야 한다.

마치 니체의 ‘위버맨쉬’ 같다.

딱딱하고 어쩌면 너무 거창하기도 한 칸트의 자유개념은, 그러나 내가 아는 자유로운 사람들, 거창하거나 딱딱하지 않은 소로우나 조르바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말이다. 자유의 당위를 어깨에 짊어야 할 무거운 짐으로 여기지 않고 자전거 마냥 여기는 자세. 그런 것이 나에게는 필요하다.

페달을 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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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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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미 명확히 알고 있었던 것들
1.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없다.
3. 잘 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
5. 최악을 예상하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8. 자본에도 국적은 있다.
9.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10.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
12. 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
13.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14. 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
17.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19. 우리는 여전히 계획경제 속에서 살고 있다.
20.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둘째.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들.
4.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6. 거시 경제의 안정은 세계 경제의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7. 자유 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11.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15.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
16. 우리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도 될 정도로 영리하지 못하다.
21. 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22. 금융시장은 보다 덜 효율적일 필요가 있다.
23. 좋은 경제 정책을 세우는 데 좋은 경제학자가 필요한 건 아니다.

셋째. 미리 더 명확히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2. 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되면 안 된다.
18. GM에 좋은 것이 항상 미국에도 좋은 것은 아니다.

셋째 분류가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그래도 현재의 주류 경제시스템에 대한 저자의 반박에는 공감이 많이 되어 쉽게 수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의 실천에 있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저자도 교육이 경제적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데는 매우 회의적이라면서도 개인의 삶의 질이라든가 하는 부분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말로써, 경제적 목표만이 아닌 다른 목표도 중요함을 인정하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나도 정치적 이유(즉 정치적 목표)로 저자의 해법들 중 일부에 대해선 도리도리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이 책에서 의도하는 것은 경제시스템에 대한 정부의 계획/실천에 힘을 실어 주자는 것인데, 이를 실제 환경에서 적용할 때에는 오히려 개인의 자유가 억압된다든가 민족주의가 극성을 부린다든가 정계와 재계의 야합이 더 심화된다든가 아니면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해 진다든가 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과거에 우리가 겪어왔던 것들.. 지금도 여전히 문제가 있는 것들 말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저자의 주장은 권력을 부자들에게서 관료 쪽에 더 몰아주자는 것으로도 들린다. 시민들한테는 그 놈이 그 놈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우려가 안 들 수가 없다. 현재의 정경유착 수준으로 볼 때 더욱 더 말이다.

이런 문제가 최소화 되려면 결국 먼저 또는 동시에 정부(및 정치권)가 정의로워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대부분의 국민/시민이 그 정부의 정의로움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다른 이해자 집단도 정부, 재계와 대등하거나 거의 어느 정도는 비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저자도 얘기했듯 ‘기회의 균등’이라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피땀을 흘려 투쟁한 결과로 성취한 것들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많은 선진국들에서의 그런 대안집단(대표적으로 노조)의 힘은 이미 많이 쇠퇴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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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꺼기
톰 매카시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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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끝으로 갈수록 더해지는 밀도로 인해, 있는 힘껏 밀어내는 기분으로 읽어나갔다. 점점 더해지는 재연의 규모와 주인공이 재연에 몰입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독자인 나도 어느덧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주인공, 주인공의 병참 비서라 할 수 있는 나즈, 저자 톰 매카시, 그리고 독자인 나 이렇게 넷이 4인5각으로 골인지점을 향해 엄청나게 밀어붙이는 모습이 마치 극장에서 공연을 보듯 그렇게 보였다.

2.
그 몰입의 마지막, 소실점은 한 마디로 ‘미친’ 것이다. 집중력을 어마어마하게 높여 마치 포뮬러1 머신들의 어마어마한 속도 속에서 드라이브를 하는 선수의 그것과 같은 지경이다. 그 속도를 견딜 수 있는 시간은 한계가 있고 주인공은 그 한계를 넘는다. 그리고 정말 흔해 빠진 말이지만 정말 흔하지 않는 의미에서 ‘미친’다. <<미쳐야 미친다>>의 긍정적 미침이 아니다. 거의 공포스런 미침이다.

3.
우연한 사고로 얻은 엄청난 보상금으로 그가 한 일은 ‘재연’을 위해 장비를 갖추고 사람들을 부리는 일이었다. 명령을 하는 것. 자신만을 위해 타인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 그것은 그가 재연을 되풀이 함으로써 자기 몸에서 생성되는 오피오이드(아편 같은 호르몬)로 인한 황홀감 만큼이나 아마도 그를 빠뜨렸던 것 같다. 증폭제로서 기능하는 부, 권력.

4.
제목 <<찌꺼기>>의 원 제목이 <<Remainder>>인데, 소설은 정말 이 낱말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되풀이하고 확장하고, 요리조리 기가 막히게, 존재론적으로, 윤리적으로, 법률적으로, 경제적으로, 미학적으로 사용한다. 잉여, 물질, 얼룩, 벽에 난 금, 조각에서 덜어내야 하는 부분, 나머지, 리시두얼 등등 수 많은 낱말이 결국 Remainder로 귀일한다. 파리지옥에 걸려든 것처럼, 어느새 우리는 숨을 멈추고 공포에 휩싸인다.

주인공이 ‘재연’을 시작할 때부터 소설은 굉장해진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여 찌꺼기를 걸러내고 ‘진짜’에 이른다는 아이디어와 그 반복의 ‘의미’를 ‘혼자만’ 안다는 것이 얼마만한 미친 어둠을 만들어내는지..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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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문학.판 시 2
이성복 지음 / 열림원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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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연이 무섭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부적>>을 읽다 나온 여러 시인들 중 파울 첼란의 시를 보고 싶어 네이버를 검색했더니 이성복의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이 검색되었다. 무슨 일로 이성복의 시집에 파울 첼란이 검색되었는지 들춰보니 이성복이 그가 읽은 해외 시인들의 시에 자신의 목소리를 덧붙여 내고 있었다.

마침 나는 나의 글에 불만 갖고 있는 참이어서, 총알배송으로 얼른 받아보았다. 그리고 읽었다. 그리고 아, 시인들의 시어들은 참.. 남다르긴 하구나 하는 것과 아, 글쓰기의 방향의 종잡을 데 없음이 차라리 자유로구나 하는 걸 느꼈다.

읽은 책에 말을 걸기는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내가 거처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 대한 자유스런 종잡을 수 없는 카오스 속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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