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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ㅣ 펭귄클래식 96
제임스 조이스 지음, 한일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10월
평점 :
2011년. 어떤 책으로 시작할까.. 그때 그때 쪼가리로 이 책 저 책 읽고 있어서 딱히 시작으로 삼은 책이 어떤 것이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첫 글을 첫 책으로 여긴다면.. 아무 책이나 그 첫 자리를 내어줄 수는 없었다.
고종석이 그의 어떤 책에선가 얘기했듯, 굳이 전체의 순서를 따질 건 없지만 처음은, 처음이라서 신경을 안 쓸 수는 없으니깐.
그렇다고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선택한 이유가 별달리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읽다 보니.. 그리고 읽고 나니, 첫 책으로 삼아도 괜찮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아마 이름값이 컸겠지. 조이스는 이 책으로 처음 만난다.
전반적으로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이류 또는 삼류의식. 변방의식이라고 불러야 할지.. 런던, 파리. 라는 중심에 있지 않은.. 변방에 있다는 느낌이 15편의 단편 곳곳에 녹아있다. 두 번째는 애정. 더블린이라는 도시에 대한 애정, 더블린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애정은 무조건적인 끈끈한 애정이라기 보다는.. 서울에서 대학졸업까지 마친 자식이 시골 부모를 볼 때의.. 그런 애증과 닮아 있다).
그렇지만 내가 이 소설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주 평범한 것이었다. 내 개인적 경험(나 아니라 그 누구라도 내 경험이라고 느낄 수 있을 만한)을 떠올리게 만든 소설 속의.. 어떤 드러남.
<우연한 만남>에서의 둑에서의 경험은 초등학교 1,2학년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고, <애러비>에서 호감을 갖은 이성을 위해 한 일은 초등학교 4,5학년 때. 그때의 내 웃긴 모습을 추억하게 만들었으며, <작은 구름 한 점>과 <분풀이>는 지금의 나, 또는 내 친구들의 상황의 그것과 어쩌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가슴 아픈 사건>은 이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 그것을 어쩔 수 없이 다시 생각나게도 했고..
굳이 테렌스 브라운의 서문(펭귄클래식의 특징이라고 한다. 이런 건 별로 안 읽지만 어쩌다 우연히 이 서문은 눈에 들어왔다.)이 아니더라도 작년에 읽은 데이비드 로지의 <소설의 기교>에서 주의 깊게 읽었던, 에피파니(현현)의 순간은 각각의 단편들이 내 가슴에 팍팍 박히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작중 에피파니의 순간. 나도 모르게 다른 것들과 링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으니까..
마지막 작품인 <죽은 사람들>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읽었다면 더 좋았을걸. 교훈적이지도 마술적이지도 않은. 조금은 따스함과 조금은 애잔함. 내 딱딱한 심장 속. 그 어딘가 아직 남은 부드럽고 말랑하고 탱탱한 푸딩 같은 것을 꿈틀거리게 한. 그 어떤 것을 느꼈다. 흡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