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진이 절반이고 페이지도 200여 페이지 밖에 안돼 일에 치이고 있을 때 짬짬이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알랭 드 보통은 여전히 땅 위에 서 있었고, 그래서 안심이 됐다.

전면과 후면, 측면과 속 내용. 비행기든 히드로 공항이든 공항을 이용하는 탑승객들이든.. 알랭 드 보통의 시선은 평범한 듯 그러나 입체적으로 그것들의 맥락을 짚어 나갔다.

작년 초쯤에 나도 탑승이 목적이 아닌 공항으로의 짧은 여행을 한 적이 있다. 혼자만의 인천국제공항 출사. 그 안에서 내가 본 것은 비행기를 타기 위한 사람들과 그들을 전송하고 맞이하는 사람들의 무리였다. 공항은 매우 넓고 그 천장은 높았기에 사람들은 아주 작아 보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발걸음, 상대방과의 아이컨택, 허깅에서 설렘과 긴장의 교차가 전해져 왔다. 더불어 커다란 공간이 갖는 미학적 관능이 사람을 약간 달뜨게도 만들었다.

그 커다란 공간은 출발하고 도착하는 사람들을 그 공간의 크기만큼이나 환송하며 환영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먼 통유리창 너머 비행기가 뜨고 있다. 아주 극적인 공간이다. 알랭 드 보통의 말마따나 외계인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광경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 일도 없었고 모든 일이 있었던 디 아더스 The Others 4
제프리 무어 지음, 정영목 옮김 / 푸른숲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1.
전에 송승환이 난타를 만들면서, Nonverbal극은 세계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 소설에서도 그게 제대로 통한다. 제레미(남자 주인공)의 슬랩스틱한 행동들은 절로 입꼬리를 올려 붙이게 만들면서 그가 느끼는 어쩔 줄 모름, 설렘 등을 제대로 전달해 준다. 그 묘사 자체는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말장난(철자를 이용해 다른 말 만들기 같은) 보다 더 내 코드에 맞는다. 아마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비영어권 독자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집 주인네의 장례식 장면이라든가 밀레나(여자 주인공)에게 저녁을 대접하기 위해 요리를 준비하는 장면 등 슬랩스틱한 장면들이 소설을 아주 맛깔 나게 만든다. 읽는 내내 즐거웠는데, 특히나 다른 소설에서는 이런 걸 거의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더욱 더 그랬다.

2.
제라드(제레미 엄마의 옛 애인, 삼촌이라 부른다.)는 경마 도박꾼이고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난봉꾼이다. 그런데, 그는 ‘시인(셰익스피어를 일컬음)’을 인용한다. 그것도 수시로. 이 소설에서 ‘낭만’코드를 담당하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는데, 멋지다. 셰익스피어를 자유자재로 인용할 줄 안다는 게 이렇게 멋진 일인 줄 몰랐다. 멋있는 늙은이.. 그의 멋진 사기는 제러미의 인생길을 바꿔 놓기도 하는데.. 이 캐릭터를 보면서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3.
사랑은 예정되어 있는 것인가.. 우연히 그렇게 되는 것인가..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가? 확신에서 나오는 것인가, 무지에서 나오는 것인가.. 나도 ‘페이지’를 갖고 싶다. 제러미가 어렸을 적 선택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한다 믿게 된 그 ‘페이지’ 말이다. 그럼 제러미처럼 사랑에 죽자 살자 달려들게 될까?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을 실제로 실현할 수 있었을까? 소설에서의 이 ‘페이지’는 철학적 주제를 떠올리게 한다. 소설의 방향성 그리고 인물들의 미래 말이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게 그거 아닌가? 미래. 특히나 ‘사랑의 미래’ 말이다.

4.
소설의 주요 배경은 영국의 요크와 캐나다의 몬트리올이다. 19세기 풍과 현대성이 대조적이다. 제레미는 ‘페이지’의 영향으로 몬트리올에서 셰익스피어를 강의하는데, 제레미가 등장하면 그게 어디든 언제든 왠지 그의 고향 요크가 뒷배경으로 따라다니는 기분이 든다. 그에 비해 밀레나는 인도계열의 여성이지만 몬트리올이라는 도시와 잘 매칭이 된다. 몬트리올의 어둠을 대변한다고 할까.. 물론 이 ‘어둠’은 1인칭 주인공시점으로 진행 되느니만큼 제레미의 시각이 아주 격하게 반영된 결과인데, 사랑에 빠져있는 남자니까 신뢰할 만한 서술자가 아님은 감안해야 하겠다.

5.
소설은 현대 몬트리올의 어두운 면목을 드러낸다. 도박에 미친 자, 아동 성폭력, 마약, 매춘하는 젊은 여성들… 밀레나가 요크를 맘에 들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 보인다. 밀레나에게 요크는 그녀의 하얀색 면 팬티와 같은 의미일지도… 하지만 우리가 현대의 대도시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설령 면 단위의 시골로 내려간다 해도 우리의 몸도 마음도 이미 도시화가 되어버려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 소설은 플롯의 구조로써 그에 대한 은근한 제안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음의 평안을 느끼는 곳을 베이스캠프로 삼을 것.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아니 오히려 당연하게도 불안의 현대성에도 도전하고 정면으로 대처할 것을 말이다.

6.
밀레나가 나중에 말한다. 너(제레미)가 마음에 든 부분은 두 가지였다고.. 그 중 하나가 소설의 앞부분에서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제레미 집의 주인인 외국인 아줌마를 대하는 제레미의 태도다. 말도 통하지 않는 먼 나라 캐나다까지 와서 외롭게 된 아주머니와 일주일에 한 번 식사를 먼저 제안하고 그녀에게 따뜻하게 다가서는 제레미의 모습은… 그래, 나도 그 부분에서 이 놈 그래도 완전 이해 못할 놈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으니까.. 아마 제라드와의 따뜻하고 끈끈한 관계의 영향이겠지.. 나는 나이 많은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내 본적이 없어서 그런지 이런 부분에서 제레미가 부러웠다..

재미있다. 유쾌하고.. 그러면서도 셰익스피어나 제임스 조이스 등의 인용문(심지어 원어 제목인 Red-Rose Chain도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인용한 것)으로 인해 대단히 현란하기도 하다. 아주 근사한 작품이다. 책 표지의 늘씬하고 매력적인 여성의 몸매처럼 소설의 내용 또한 그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재능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제프 콜빈 지음, 김정희 옮김 / 부키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은 지 벌써 두어 달이 되어간다. 그때 민방위훈련 때문에 좀 일찍 일어났던 날, 가던 길에 이 책의 내용을 골똘히 생각했던 게 떠오른다. 조지 레오나르도의 <<달인>>도 모처럼 새로 꺼내 다시 읽었었지..

또 마침 그때 즈음, 리처드 세넷의 <<장인>>이 나왔다. 얼른 구해서 모셔다 놓고, 그냥 내버려둔 채 다른 일과 책들에 매여 펴보지 못하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읽고 있는 중이다.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이라는 단어만 기억해 둬도 좋을 것 같다. 이 개념의 실천편이 이 책이고 이론편이 <<장인>>이 될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스트 - 인간의 행동 속에 숨겨진 법칙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김명남 옮김 / 동아시아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1.
푸아송 분포와 레비 패턴에 관한 9장과 16장이 특히 많은 영감을 주었다. 10월부터 해야 할 프로젝트에서 내가 간과하지 않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는걸 바로 느꼈다.

2.
이야기 속 이야기인 죄르지 세케이의 폭발적 인생행로는 바로 직전에 읽은 <<40가지 사랑의 법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저자가 과학자인데도, 더 소설같이 썼다고나 할까.. 짧지만, 긴장감 있는 서스펜스를 제대로 녹여내고 있다.

3.
Bursts : 폭발성은 랜덤워크에 반하는 현상을 말한다. 인간행동이 랜덤워크이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다는 귀무가설을 기각시키기 위한 바라바시의 노력이 이 책인 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예측 가능하다는 것은 ‘확률’에 관한 기가 막힌 묘사가 될 수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0가지 사랑의 법칙 1
엘리프 샤팍 지음, 한은경 옮김 / 생각의나무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1.
요즘은 어디를 가나 어떤 책을 읽든가 ‘본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이 잠재적으로 늘 나를 따라 다닌다. <<40가지 사랑의 법칙>>에서도 딱 맘이 쏠린 곳은 ‘마지눈의 눈으로 바라보기’ 라는 비유로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기’를 말하는 부분이었다.

2.
40가지 사랑의 법칙. 그 목록은 그것 하나하나가 류시화의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에 올라도 상관없을 법한 내용들이다. 뻔한 얘기들. 그럼에도 쉽게 눈을 떼지 못하는 문장들.

3.
아포리즘이 이 소설의 핵심이자 한계다. 소설 속 소설인 <달콤한 신성모독>의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아포리즘 뒤로 밀려난 기분이 들고, 그 아포리즘의 무게로 주인공 엘라의 위기의 가정생활이 하얀 종이의 매끄러운 평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4.
좀 지쳤나… 읽다가 만 소설들이 쌓여 있는데… 그 모두는 이 소설보다 조금만 읽어봐도 더 훌륭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럼에도 이 소설을 먼저 마치게 된 건… 리얼리티의 무거움을 내가 지금 좀 견뎌내지 못하는 것 같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진 2022-05-03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영어책을 읽었는데, 위의 서평을 읽으니 책을 읽지 않고 쓴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