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버리기 연습 생각 버리기 연습 1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유윤한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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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읽음으로써 뭔가를 남기는 독서가 있고, 읽는 道中 그 자체 즉, ‘읽기’라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독서가 있다. 법정 스님, 에크하르트 톨레, 오쇼 라즈니쉬, 소로우 등이 쓴 글들은 후자에 속하는 글이 아닐까.

뭔가 취득하는 게 아니라 그저 읽기 자체가 산속 맑은 공기를 호흡하는 것 같은 글들. 생각 버리기 연습도 그런 종류의 글이다. 혼잡스러운 문장이 없다. 간명하다. 읽을수록 뭔가 뚜렷하게 보이고 그 단순한 문장의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내 숨도 보다 깊어지고 맑아지는 기분.
소로우 같은 문학적인 면은 없지만, 깔끔한 문장은 오히려 현대인들에게 어필한다.

감각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 마음이 충족된다. 는 꼭지의 글이 마음에 들었다. 보인다가 아니라 본다. 들린다가 아니라 듣는다. 등등.. 적극적으로 인식하려는 자세를 강조한다. 오감에 집중하라는 것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에서도 얻게 된 배움이었는데 쉽게 체득이 힘들다. 난 더욱 현재에 집중하고 즐기며 살고 싶다. 좋은 지침이 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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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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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읽고 난 이후 감탄을 몇 번이나 하게 된다. 우연의 충돌로 인해 빚어진 필연의 결과가 주는 놀라움과 소설 전체 플롯의 기가 막힌 대칭성. 이 소설은 대위법으로 작곡된 단단하게 빛나는 한 편의 푸가와 다름 아니다.

작곡가 클라이브와 신문사 편집국장 버넌, 몰리라는 매력적인 여성의 옛 애인이기도 한 이들. 그들은 자기 일에 어마어마하게 몰두해 있지만 그 일의 중심부엔 핵심, 심장, 의미가 없다. 클라이브가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등산을 가서 겪은 일은 그의 최후 교향곡이 베토벤의 카피에 불과하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안쓰럽고, 영국 정치의 방향성에 대해 대단히 걱정하는 양 신문사 일을 하는 버넌도 결국 황색 저널리즘에 매몰된 가엾은 인간에 불과하다.

1.
제목이 암스테르담인데, 실제 이 소설의 대부분의 배경은 런던이다. 클라이브와 버넌은 런더너인 셈. <암스테르담>이라는 제목이 이 소설에서 갖는 의미는 <울프 홀>이라는 제목이 그 소설에서 갖는 의미와 가까워 보였다. 모두 퇴락의 길. 다만 울프 홀은 최고점, 그래서 이제 내려갈 일 뿐인.. 암스테르담은 최저점이자 퇴락의 종료점, 죽음.


2.
가머니(몰리의 애인 넷 중 또 하나)의 와이프 로즈가 뱀 같은 기자들을 피해 달리는 장면과 버넌이 회의실로 달려가 정신 없이 일을 하는 장면이 교차하는 장면에서, “It must have been love”가 카페 모서리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음악과 어찌나 잘 매칭되던지, 내가 이 소설로 영화를 만든다면 반드시 이 장면에선 이 곡을 삽입 하리라.


3.
막판 암스테르담 장면에서 나는 일단 읽기를 멈췄다. 하루를 보낸 후 나머지를 마저 읽어 내려갔다. 이 소설의 후반부에서 느끼는 서스펜스는 스티븐 킹이나 존 그리샴, 스티그 라르손에 비해 손색이 없다. 그렇기에 일시 정지할 필요가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플레이버튼을 누른 후 우리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을 그들. ‘저마다의 과오를 향해’ 가는 그 친구들의 폭주를 천천히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바라봐야만 했다. 이 시대의 일중독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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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 살아남기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이수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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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종아리를 훔쳐보다 자동차에 치여 죽은 사내여서 그런지 어투가 큰 고민 없이 살아온 사람의 그것이어서 맘에 들었다. 근본이 건강하다고 할까.. 초반 그 목소리를 즐기며 이야기를 따라 갔는데, 중반 이후부터 몰입도가 상당히 떨어져갔다.

저승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이쪽 세계의 사회, 문화,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보여주는 풍경 그 자체가 너무 평면적이어서 나팔을 벽에 대고 그저 낑낑대며 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줄리언 반스의 10 1/2장으로 쓴 세계역사의 마지막 챕터도 사후세계를 다루고 있는데, 둘 다 천당과 지옥이 따로 없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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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힘 - 표현력 + 스타일 + 자기세계 + 아이디어 + 몰입 다섯 가지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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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나누고’ ‘묶음’으로써 탄생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사이토 다카시처럼 뚜렷하게 보여주는 이도 드물 것 같다. 다카시의 이런 없어 보이는(?) 접근 방법이 실은 메시지를 전달하기엔 더없이 적합한 방법 중 하나이고 대단히 까다로운 일이라는 것을 안다.

Expression, Style, World, Idea, Flow.. 다섯 개의 컨셉으로 명화가 명화인 이유에 대해 풀어나가고 있는데, 그 분류의 애매함이 걸린다. 산뜻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표현력의 베스트 10 화가로 꼽은 이 중에 앤드루 와이어스가 들어가 있는 것이 반갑다. 내가 좋아하지만 아직 모르는 이들이 많아서.. 예술의 전당에서 했던 필라델피아 뮤지엄 전시회에서 본 그의 두 작품은 아직도 생생하다. 서늘한.. 일종의 살기가 느껴지는, 그림이 촉각을 얼마든지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앤드루 와이어스의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그런 감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얀 반 에이크나 히에로니무스 보슈를 다룬 것도 좋았다. 나로써는 나 스스로가 좀 독특해서 뭐 이런 작품들을 좋아하나 싶었는데.. 그런게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누군가 똑같이 좋아하고 높게 평가해준다면 그것처럼 기쁜 일도 드물다. 예전에 읽었던 다카시의 책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이나 <독서력>보단 훨씬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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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홀 1 - 2009년 맨부커상 수상작
힐러리 맨틀 지음, 하윤숙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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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욕망을 드러내는데 서슴없는 캐릭터들의 각축장이다. 잉글랜드의 왕 헨리8세부터 저 어린 시종 마크까지. 그 중심에 ‘그’ 토머스 크롬웰이 있다.

힐러리 맨틀은 비트루비우스의 <극장에 관하여>라는 작품 서두의 인용문을 통해 초반부터 벌써 소설의 목적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즉 스타일에 대한 팁을 던져 준다.

비극, 희극 그리고 풍자극. 작품을 읽으면 ‘그’ 크롬웰의 생각 부분은 주로 서사적 묘사로, 울프들의 거친 숨소리 같은, 때론 교활하기 그지없는 여우 같은 인간의 본성이 서로 불꽃을 튀기며 경쟁하는 부분에서는 ‘대화체’로, 마치 ‘희곡’처럼 쓰여져 있음이 분명히 보인다. 소설적인 부분에서는 진중하고 치밀하고 회상적인데 반해, 희곡적인 부분에서는 신랄하고 미묘하며 현재적이고 심리적이다. 대립된 인물들간의 대화에서 그들의 은밀한 욕망과 처한 지위, 맛봐야만 하는 치욕, 승리감에 젖은 오만함 같은 것들을 날것으로 대하게 된다.

태생적 지위로서 아직 ‘왕’과 ‘귀족’이 있는 시대였지만, 근대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크롬웰을 위시한 상인계급들은 또 다른 권력의 중심 ‘교황’을 헨리8세의 앤 불린에 대한 사랑(또는 욕망)을 발판 삼아 해체시키고 만다. 마지막에 토머스 모어(이 소설에서 그나마 내가 사전지식으로 알고 있던 거의 유일한 인물. 바로 유토피아의 그 모어)의 참수형으로 이 승리는 (비록 토머스 크롬웰도 결국 반대파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위키피디아 검색을 통해 알게 됐지만, 더 긴 시간으로 본다면 결국 토머스 크롬웰의 승리는 역사적 대세가 되고야 만다.는 것도 안다.) 절정에 이르는데, 이 모든 대결은 무대 위에 있는 사람- 소설 속 등장인물이자 역사적 인물들인 그들뿐 아니라 거의 비슷한 배경에서 비극, 희극, 풍자극을 채 인식하지도 못하면서 연기하고 있는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명징하게 자각하게 한다.  



메멘토 모리.
그 격언이 어둠 속 짙은 안개가 되어 나를 휩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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