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힘들다가 들어와서 위로를 받는 음식 중에는 뜨끈하게 한 냄비 가득한 찌개가 있다. 나에게 그런 위로의 찌개는 꽁치찌개였다. 찌개는 도심지에서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쉽게 해 먹기 힘들다. 한국사람이니까 어릴 때 집에서 먹던 찌개가 먹고 싶고, 찌개는 해 먹기 힘들고, 영차영차 노력해서 찌개를 끓이는 도중에 어쩌면 기운이라는 것이 엑토플라즘처럼 빠져나가버려 막상 한 냄비 해 놓은 찌개를 그저 떠나는 연인을 바라보듯 멍하게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꽁치찌개는 다르다. 꽁치찌개는 나의 자취생활의 동반자와 같았다. 싱크대 선반에 라면은 없어도 꽁치통조림이 일렬로 차렷 자세로 꼿꼿하게 서 있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꽁치통조림 그 자체로 모든 맛이 이미 완성에 가까이 다가가 있기 때문에 끓는 물에 김치와 함께 넣어서 끓이면 된다. 끝이다. 힘들지 않은데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마법을 볼 수 있는 찌개가 꽁치찌개다. 꽁치는 먹고 싶고, 구이는 정말 엄두가 나지 않을 때 꽁치통조림으로 찌개를 먹고 나면 어느 정도 해갈이 된다.
나는 꽁치보다 꽁치통조림을 좋아했다. 꽁치통조림은 자취할 때 나의 허기를 채워주는 든든한 식량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만화 같은 모습으로 몸을 질질 끌며 집으로 와서 꽁치통조림을 따서 보글보글 김치를 넣고 끓여서 후후 불어 먹었다. 그러면 조금은 기운이 나고 위로가 되었다. 마치 세상이 폭삭 무너져 아포칼립스가 도래했을 때 내가 사는 집의 주방에는 꽁치통조림만은 가득 들어 있어서 한시름 놓은 것 같았다. 자취할 때는 아이들이 놀러 와서 술을 마시려고 하는데 그때 꽁치통조림을 내놓으면 아이들이 전부 싫어했다. 나는 꽁치통조림을 따서 그대로 먹는 게 맛있는데 아이들은 비린내 때문에 우욱 했다. 그 비린맛이 좋아서 꽁치통조림을 그렇게도 먹었다.
요즘은 예전만큼 비린맛을 찾지 않지만 있으면 곧잘 먹는다. 예전에는 국밥도 꼬릿 한 냄새와 맛이 나는 시장통 국밥집을 찾아가서 먹곤 했는데 나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어린이 입맛으로 바뀌는 것 같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특히 민초가 맛있단 말이지. 쳐다보지도 않았던 케첩을 뿌리고, 치즈를 빵과 과자 사이에 넣어서 먹고, 민초를 오물오물 먹곤 한다. 과자를 먹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면 이상하다. 인체의 신비다.
그런데 이렇게 꽁치로 찌개를 끓여 먹는 건 다른 나라에서도 먹나. 우리나라에도 통조림이 많지만 다른 나라에도 통조림 음식이 많을 텐데 영화 같은 데서 꽁치를 먹는 모습을 본 적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가끔 꽁치김치찌개를 먹는 장면이 나오지만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모르겠다. 대만만 가도 취두부가 통조림부터 길거리, 편의점에서 대중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다. 그렇지만 꽁치는 모든 사람들이 먹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꽁치통조림은 개인적으로 정말 최상의 음식이다. 카레에 넣어도, 물과 김치를 끓이면서 넣어도, 그냥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게다가 맛도 좋다. 통조림 속의 꽁치는 또 된장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 그래서 된장을 넣고 김치 넣고 통조림을 따서 한통 넣은 다음 팔팔 끓이기만 하면 된다. 냄새 또한 기가 막힐 정도로 좋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고 한 한창훈 소설가의 에세이가 있는데, 일상이 허기질 때 꽁치통조림을 따라, 그리고 꽁치를 라면에 넣어라고 하고 싶다. 라면수프가 끓어오르는 냄새와 꽁치가 뜨겁게 익어가는 냄새가 좋다. 라면이 그렇듯이 부글부글 끓는 사운드 역시 좋다. 좋은 것과 좋은 것이 만나서 좋은 맛을 낸다. 꽁치 찌개는 나의 소울푸드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다 위로해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