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가려고 지하철을 탈 때마다, 저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다 먹고 사는지 신기한 생각이 든다. 직장을 못구해 좌절한 분들에게 미안하지만, 그리고 내 직장이 그리 대단할 건 없지만, 이따금씩 난 출근하느라 경쟁적으로 지하철을 타야 하는 대열에 내가 끼었다는 사실을 뿌듯해한다. 직장 문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만 지속되는, 소장 얼굴을 보면 사라져 버리는 뿌듯함이지만.
내가 다니던 시절 우리과는 건축공학과였다. 거의 모든 대학에 건축공학과가 있엇고, 각 대학마다 최소 50명의 졸업생이 해마다 배출되었다. 지금 우리과는 건축과와 공학과로 나뉘어졌고, 거기서 각각 50명 이상의 졸업생이 배출된다. 십년사이 대학은 훨씬 많아졌으며, 생기는 대학마다 건축과와 공학과를 만든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그 많은 건축과 졸업생들은 어디서 무얼 할까. 내 선배가 출강하는 대학에선 졸업생 중 10%만이 취업에 성공했다고 하고, 건축과 졸업생들의 일터인 설계사무소 중 상당수가 망하기 일보직전이란다. 그러니 월급이 적고 소장이 악독한 사람일지라도, 난 행복한 편일지 모른다.
산부인과 의사를 친척으로 둔 S에 의하면, 의사들 역시 봄날은 갔다고 한다. 의사가 못살아봤자 얼마나 못사냐는 편견을 절반만 걷은 채 얘기를 들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부인과의 경우 일단 출산률이 기가 막히게 낮으며-한 가정에 한명이 보통인 시대니까-분만비는, 의사들의 주장에 의하면 터무니없이 싸다. 그 사촌은 지방흡입 수술도 안하고, 낙태수술 같은 것도 안하려고 해 병원 유지가 어려울 지경이란다.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 만만한 직업은 없다. 예컨대 식당을 내려해도 주위에 식당이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맛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가 갈수록 심화되어 파리 날리는 식당이 절반을 넘는다. 우리 땐 별 인기가 없었던 9급공무원도 백대 1이 넘는 경쟁을 벌이는 현상은 먹고 산다는 게 결코 만만하지 않은 일임을 말해준다. 과연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몸담은 설계사무소는 어차피 평생직장은 아닌데, 그리고 나가서 사무소를 차리기엔 자신도 없고 돈도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 우울해지기에 가급적이면 생각을 안하려고 하지만, 가끔씩 나를 바라보는 P의 눈에선 긴 한숨이 느껴진다. 그래, P는 나보다 두살 위니까 고민도 그만큼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P한테 커피나 마시자고 했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물었다.
"고민이 많으신가봐요"
P의 대답,. "당연하지. 올 여름엔 왜이렇게 더운거야. 그리고 우리 회사 에어콘은 왜 저렇게 고물이냐. 소리만 x나게 크고 시원하진 않잖아"
내가 좀 오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