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부터 오늘까지 휴가입니다. 즉 오늘이 휴가 마지막 날인 거죠. 광복절이 내일쯤 있었으면 오늘은 일하더라도 내일 쉴텐데, 내일부터는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하는지 걱정입니다. 인간이란 이렇게 간사합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휴가 사흘만 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막상 사흘의 휴가가 주어져도 또 놀고 싶어서 안달이잖습니까. 아무튼 앞으로 열시간도 채 못남은 휴가, 보람있게 보내고 싶습니다.
집에 다녀왔습니다. 전 부산이 집이거든요. 거기서 이틀간 머물렀습니다. 간김에 바다나 보자고 해운대에 갔다가 깔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웬 사람이 그리도 많은지, 밤 12시쯤 갔는데도 인파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집이 부산인 사람이 금의환향은 아니지만 하여간 고향에 돌아왔는데 밟을 모래사장이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아무튼 연인들로 가득한 해운대에서 남자 넷이 모여 소주를 마셨습니다. 역시 동네 친구가 좋긴 좋데요. 제가 왔다고 그렇게 놀아 주니 말입니다. 계산도 없고, 체면 차릴 것 없이 놀 수 있어서 마음이 편했답니다.
부모님은 저를 많이 걱정하십니다. 반찬을 매번 보내 주시면서도 "밥은 잘 먹냐"고 하십니다. 지난번에 선본 여자가 왜 싫으냐면서 눈이 높다고 타박을 주셨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짜증이 나면서도, 어머님 얼굴에 하나둘 늘어가는 주름살을 보면 "네 앞으론 잘할께요"라고 하게 되더군요. 그것도 일순간이지, 하루 동안 그 얘기를 들으니 지겹더라구요. 그래서 토요일날 회사에 나가야 한다고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회사에 가면 물어보겠지요. 휴가 잘 보냈냐고요. 어떻게 보내는 게 잘 보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늘 어영부영 휴가를 낭비하는 것 같습니다. 꼭 해외로 나가고, 어디 놀러갔다 와야 잘 보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무것도 안하면서 집에 있는 걸 잘보냈다고 할 사람은 없겠지요. 남은 반나절이라도 잘 보내야 할텐데, 여전히 잘 보내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간만에 책이라도 한권 읽으며 휴가를 보내는 것도 괜찮겠지요? 오늘 저녁에는 꼭 진라면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