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 좋아해?"
광화문에 외근을 나갔을 때, P가 물었다.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했다.
"내가 아는 데 가서 메밀 먹자. 잘 하는데 좀 미진해"
미진한데 왜 가냐고 물으니 그냥 웃기만 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P가 말한 그곳은 식당 이름이 '미진'이었다. 싱거운 사람, 그것도 유머라고.

그때 시간이 12시 반쯤 되었는데, 문앞에 사람들이 서있다. 줄을 서있는 거였다. P가 그 옆에 서기에 "사람도 많은데 다른 곳 가죠"라고 했다.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난 작열하는 태양을 쬐면서, 연방 부채질을 해대면서 10분을 서 있었다. 쉬는 시간 10분은 금방 가지만 뙤약볕의 10분은 연옥이 뭔지를 말해준다. 그 옆에 식당도 많던데 왜, 꼭 여기서 밥을 먹어야 한담? 예전에 봤던 CF가 생각난다. 기름이 없는데 주유소를 그냥 지나치는 이경영, "엔크린이 아니면 기름을 안넣겠다"고 우기다가 결국 차를 밀고가는 신세가 된다. 우리가 그와 다른가?

모든 기다림엔 끝이 있었다. 그리고 난 메밀을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먹은 메밀은 모두 가짜였다. 이 말이 하고 싶다.
"미진에서 메밀을 먹기 전까지는 메밀에 대해서 논하지 말라"
그 다음부터 난 광화문에 외근 나갈 날만 꿈꾸고 있다.

2. 진라면
차승원이 선전하는 진라면 광고는 정말 전염력이 뛰어나다. 더이상 맛있을 수 없다는 듯 라면을 먹는 그, 총각무까지 한입 베어물면서 맛있어 죽겠다고 몸살을 한다. 그 표정, 그 연기력. 그는 정말 배우다.

밤늦게 그 광고를 보고나니 갑자기 진라면이 먹고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진라면을 먹으면서 차승원처럼 해보자!' 마침 김치도 있었고. 난 윗도리를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우리집 근처 편의점에는 진라면이 없었다. 신라면, 안성탕면만 잔뜩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거라도 집었겠지만, 난 진라면을 먹어야 했다. 편의점 두군데를 더 들렀다. 없었다. 오기가 생겨 택시를 타고 나가볼까 했지만, 주머니를 보니 택시를 타면 라면을 살 수가 없었다. 쓸쓸히 돌아가는 내 마음이 얼마나 처량했는지. 라면 살 때는 몰랐는데 집에 가면서 보니까 한참을 걸어왔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신라면을 사서 끓여 먹었다. 난 차승원같은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내가 연기력이 떨어져서라기보다, 맛이 없었기에.

차승원은 말했다. "이렇게 맛있는데 언젠가는 일등 하지 않겠습니까?" 난 말한다. "먹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일등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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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8-15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차승원의 연기력은 순창 고추장이 최고란 생각이 드네요.

icaru 2005-08-16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뉘..진라면이 읎는 편의점도 있당가..
광화문의 미진 하니... 유정 이 생각이 나네요... 낙지볶음 먹고 잡네요...

니콜키크더만 2005-08-16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순창 고추장 광고, 저 아직 못봤습니다. 그런 것도 있었나요?
이카루님/유정도 본 것 같은데요. 거기 낚지볶음 맛있나봐요? 그리고 진라면 사려고 계속 노력 중입니다. 언젠가는 먹고 말거예요. 어째 치토스 같군요

ceylontea 2005-08-16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진... 메밀국수 맛있죠... 국물이 정말 괜찮은 집입니다..
작고, 좀 지저분해 보이지만..맛은 좋으니.. ^^

싸이런스 2005-09-06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작열하는 태양을 쬐면서, 연방 부채질을 해대면서 10분을 서 있었다.' 저 아는 분도 연방 부채질하면서 태양에 맞서던대요... 아..근데 1번은 어디 있나요? 두리번 두리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