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다녀왔다. 공사 계약을 위해서였다. 우리는 일을 해주고 돈을 받는 입장이니, 약자일 수밖에 없다. 계약을 할때마다 생각을 한다. 강자, 약자를 따지기보다는 서로를 존중하면서 파트너 쯤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걸까. 단지 강자라는 이유로 목에 힘이 들어가고, 막말을 해야 하는 건지.
"이게 그림이지 설계도야?" 내가 갖다준 도면을 보고 담당자가 한 말이다. 꼭 그딴 식으로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권상우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렇게 말하면 니가 멋있어 보이니?" 그 말을 하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
밤에는 술자리가 이어졌다. 소위 말하는 접대. 거나하게 저녁을 먹은 그들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룸살롱을 갔다. 아가씨의 미모를 놓고 한바탕 소란을 피운 그들은-장난하냐? 이게 얼굴이야?-곧 질펀한 파티를 벌인다.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선한 존재라고 말한 성선설주의자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을까 싶다. 더듬고 만지고 터치하고-앗 다 같은 말이구나-하는 과정을 통해 남자들은 한마리 짐승이 되고, 여자들은 먹잇감이 된다. 지들도 쑥스러운지 가만히 앉아서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나에게 "유대리도 그러고만 있지 말고 연애질 좀 해"라는 말을 한다. 힘없이 웃어 줬다. 폭탄주가 돈다. 술에 약한 나로선 폭탄주가 곤욕이다. 하지만 마셨다. 헛구역질이 나오려고 한다. 한바퀴를 다 돈 폭탄주는 또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머뭇거리다 마셨다. 박수가 터져나온다. 계약을 할 때마다 벌어지는 일이라 익숙하기 그지없지만, 이상하게도 매번 구역질이 난다.
노골적으로 계약금의 10%를 뇌물로 달라고 요구하는 곳도 있고, 이런 식의 향응을 원하는 쪽도 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냥 계약을 하는 곳은 하나도 없다는 것. 계약이란 건 적당한 가격과 실력을 보고 하는 것이지 특혜를 주는 건 아니다. 우리가 로비를 전혀 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턱도 없는 실력으로 계약을 가로챈 건 결코 아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식으로 아까운 돈이 들어가야 하는 걸까.
이것 역시 당연한 수순이지만, 그들은 아가씨들과 2차를-그렇게 못생겼다고 구박했던 그 아가씨들과-뛰러 갔고, 나는 룸살롱 밖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가락국수를 먹었다. 오래지 않아 난 그 국수를 개워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