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이 모든 것을 바꾼다 - 무일푼에서 연 매출 100억 신화를 이룬 청년 이인규의 특별한 선택
이인규 지음 / 레드베어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겪으며 중학교를 중퇴하고, 무수히 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어쩌면 오랜 시간을 방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사업가가 된 지금 가끔 과거를 떠올리다 보면 나의 수많은 선택으로 인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음을 확인한다. 돌이켜보면 잘 닦인 길을 가기보다는 다소 울퉁불퉁하고 거친 비포장도로를 가면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 온 것이, 현재 100억 원대 매출을 올리는 회사의 대표 자리에까지 이를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 '프롤로그' 중에서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책의 저자 이인규는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맨주먹으로 모진 풍파와 맞서 싸우다, 가출과 친구의 죽음, 심지어 중학교까지 중퇴하는 등 방황하는 10대 시절을 보낸다. 20대에는 유일하게 의지했던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큰 절망에 빠진다. 남들은 평생 한 번을 겪을까 말까한 일을 젊은 시절 수없이 겪었지만 단 한 번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인생을 개척했다. 지독한 가난과 방황으로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탓에 배달 일, 영업직, 퀵 서비스, 납품,

 

 


뿐만 아니라 옥션, G마켓, 11번가, 인터파크 등 온라인 4대 오픈 마켓에서 꾸준히 판매 1위를 고수하며 업계 1위 기업을 탄탄히 유지하고 있다. 딴 길로 새 봐야 딴 길이 보인다고 말하는 저자는, 여전히 엄청난 열정으로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특별한 '선택'을 하는 중이다.

 

이 책은 거친 세상과 당당히 맞서 새로운 성공 신화를 창조한 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등학교 정규 학력이 전부였던 그가 연 매출 100억 신화를 창조하는 한 기업의 CEO가 되기까지 어떤 절망과 마주하며 당당히 선택의 폭을 어떻게 넓혀 나갔는지 세세히 살펴볼 수 있다. 지금도 방황하고 있는 모든 청춘들에게 희망과 용기의 메세지를 전한다.

 

 

 

"무일푼에서 연 매출 100억 신화를 이룬 청년 이인규의 특별한 선택"

 

 

면접 시작은 아직 4시간이나 남았어요

 

월요일 아침, 그는 단정하게 옷을 입고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시간에 회사 앞에서 면접을 기다렸다. 그렇게 하면 취업하고 싶은 이곳에 취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현장을 목격한 영업팀장은 무척 감명을 받고 다른 면접을 모두 취소하고 그의 채용을 결정했다. 다음 날 출근했더니 그는 새벽에 면접 보러 온 사람으로 이미 사내에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길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뜻이 있어야 한다. 뜻을 세우는 것은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간절히 소망하고 노력하면 세상에는 안 되는 일이란 없다는 것을 그때 그는 많이 느꼈다. 중요한 것은 의미를 두고 뜻을 심어야 한다는 거였다. 의미가 심겨진 곳에 뜻을 함께 심게 되면 엄청난 에너지가 생기게 된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세상에 안 되는 것은 없는 법이다. 자신이 안 된다고 스스로 한계를 긋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는 20대 시절에 놀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분식 배달, 족발 배달, 고춧가루 배달, 참기름 배달, 피자 배달, 자장면 배달 등 각종 배달과 관련된 곳에 먼저 취직부터 하고 봤다. 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당시 그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노는 만큼 뒤쳐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정확히 일을 하는 곳이 생기지 않게 되면 원하는 운전직 등을 알아보면서 배달 일을 했다. 그러다 일자리가 나오고 취업에 성공하면 배달 일을 그만두곤 했다. 이런 그의 열정이 새벽에 면접 보러 나가는 행동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라

 

우리들은 대부분 다가올 미래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한다. 물론 이런 행동이 전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식자우환識者憂患이라는 말처럼,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지나치게 하다 보면 해야 할 일도 그냥 손 놓아 버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부를 해야 할 순간에는 공부에 최선을 다하고, 직업을 갖고자 한다면 취업하는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기업가가 되겠다면 작은 것일지라도 장사를 시작하면 된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공을 향해 한걸음 다가가고 있을 것이다.

 

성공이라는 글자에 너무 강박받지 않아야 한다.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가 있다면, 그리고 성실히 이를 해내겠다는 각오가 있다면 성공이란 글자는 알아서 따라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굳이 겁내지 않아도 된다. 한번 생각해보자. 노력처럼 쉽고, 성실처럼 간단한 게 또 어디에 있겠는가? 돈 들이지 않고 투자할 수 있는 이런 일에 최선을 기울여야 한다.

 

 

내 일에 열정을 불태워라

 

꿈꾸는 자의 미래는 결코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저자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몸소 배우고 익혔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도 있다. 살면서 고생했던 모든 경험들은 이후 자신의 삶의 노하우가 되어 강력한 에너지로 변한다. 경험이 재산이다. 더 많은 경험을 얻기 위해 무수히 많은 문을 두드려야 한다.

 

"지금 고달프다고 좌절하지 말라"

 

우리들은 툭하면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면서 숟가락 타령을 하고 있다.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지혜는 적이나 경쟁자조차 자기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굳이 상대방을 금수저 출신이라고 척을 질 필요가 있겠는가. 상대를 적으로 대하면 항상 적이지만, 친구로 대하면 좋은 이웃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것을 모토로 삼는다면 상대방도 욕하거나 비방하지 않는다. 함께하는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면 이는 아름답다. 이기도 싶다면 경쟁이 아닌 페어플레이를 해야 한다. 이런 정신이야말로 나를 이기고 상대를 이기는 현명한 처사이며 나아가 최상의 방법인 것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이는 저자가 항상 가슴에 담아 두는 말 중의 하나다. 이처럼 요행을 바라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진정성을 담아 성실히 최선을 ㄷ다해 노력한다면 하늘에서도 반드시 좋은 결과를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온다. 현재에 최선을 다해 살고 항상 생각한 바를 바로바로 실천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면 크든 작든 성공의 길은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미너리스 1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루미너리스는 점성술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두 별인 해와 달을 뜻한다. 별들이 가장 찬란하게 그 빛을 발한 뒤 소멸하는 것처럼,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좇는 것도 결국엔 그 빛을 잃어버리고 마는 한시적인 환영들일지 모른다. 12개의 별자리를 닮은 12명의 남자와 12개의 진실은 무엇일까? 엇나간 운명 속에 파멸을 향해가지만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희망의 빛을 되살리고자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스스로 택한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의지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돌아보게 한다.

 

 

뉴질랜드 골드러쉬 때의 시대상

 

이 소설은 뉴질랜드 골드러시 당시의 시대상을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을 뿐 아니라 그를 배경으로 정교하게 얽힌 미스터리를 펼쳐놓는다. 이미 이 소설을 읽은 몇몇 독자는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에 견주기도 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어두운 면을 그리고 있고, 빨려 들어가듯 읽을 수 있으며, 스토리의 빠른 전개와 놀라운 반전 등 때문이다. 뉴질랜드 골드러시를 배경으로 모험이 넘치는 살인 미스터리를 전개하고 있다.

 

1866년 골드러쉬가 한창이던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다 명멸明滅해 간 뭇별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점성술의 세계관을 인용해 주요 등장인물 12명에게 물고기 자리, 황소 자리 등 12개 별자리에 해당하는 각각의 성격 특성을 부여했다. 성격은 타고난 운명 같은 것이지만 각 인물들의 운명이 서로 엇갈리거나 갈등하는 큰 구도 아래 의문의 사망 사고, 젊은 금광 부자의 행방불명 등 불길한 사건들의 비밀이 파헤쳐진다. 후반부로 갈수록 각 장章의 길이가 짧아지는 가운데 양파 껍질을 한 꺼풀씩 벗겨내듯 사건의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맨부커상 최연소 수상 작가 엘리너 캐턴

 

 

 

 

 

 



더욱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것이 천체의 역학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12명의 남자는 각각 황도 12궁을 대표, 별자리에 맞는 성격과 특성을 지니고, 나머지 인물들은 행성에 속해 이들 사이를 넘나든다. 맨부커상 47년 역사상 최연소 수상 작가인 앨리너 캐턴은 "화자의 역할을 하는 무디가 '수성'을 대표하며, 따라서 수성이 관찰되는 시기에 맞춰 그가 이야기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도록 구성했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각각의 캐릭터가 모두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천체의 흐름에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점은 작가가 얼마나 많은 조사와 고민으로 완벽한 구조를 이루어냈는지 보여주는 것이기에 감탄하게 만든다.

 

각 별자리를 따라가며 인간의 운명을 비춘다. 자궁에서 피투성이의 생명으로 태어나 각기 집단적인 관점을 거부하는 양자리, 주관적 태도를 고집하는 황소자리, 배타적인 규칙을 따르는 쌍둥이자리와 원인을 찾는 게자리, 목적을 추구하는 사자자리와 계획을 바라는 처녀자리를 지나 인간은 드디어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천칭자리는 개념으로, 전갈자리는 재능으로, 궁수자리는 목소리로 그 특성을 발현한다. 염소자리에서 기억을 얻고 물병자리에서 통찰력을 얻은 인간은 12궁에서 가장 오래되고 마지막을 점하는 물고기자리에 와서야 자아를 얻어 완전해진다. 하지만 작가는 이 물고기자리를 "자기 파멸의 궁"이라 명명한다. 운명의 의지이자 운명 지어진 의지를 뜻하는 물고기자리의 두 마리 물고기는 결국 우리 자신이 선택한 스스로의 운명과 결말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12명의 남자를 비롯한 소설의 주요인물들은 저마다 삶에서 밀려나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끈을 쥐고 뉴질랜드의 황량한 금광 마을로 모여든 사람들이다. 그 희망은 황금이기도 하고, 남녀 간 또는 가족 간의 사랑이기도 하며, 복수이기도 하다. 절실한 희망은 그릇된 탐욕을 만나 살인과 배신, 거짓으로 얼룩진다. 엇나간 운명 속에 파멸을 향해가지만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희망의 빛을 되살리고자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스스로 택한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의지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돌아보게 한다.

 

 

 

 

1866년, 월터 무디는 크게 한몫 잡겠다는 생각으로 금을 찾아 뉴질랜드에 도착한다. 그날 저녁, 그는 황량한 금광 마을 호키티카의 허름한 호텔 흡연실에서 자신도 모르게 12명의 남자로 구성된 비밀 모임에 끼어들게 된다. 실종된 젊은 갑부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창녀, 외딴 오두막에서 살해된 부랑자의 집에서 발견된 어마어마한 양의 금, 삶에서 밀려나 세상의 끝으로 모여든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던 무디는 별자리처럼 얽혀드는 미스터리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간다.

 

크라운 호텔 흡연실에 모인 열두 남자는 마치 우연히 그 자리에 함께하게 된 무리인 듯 보였다. 뿔단추가 달리고 노란 무명, 삼베, 능직으로 만든 프록코트와 연미복, 노퍽재킷 같은 각양각색의 옷차림과 행동거지를 보면, 서로 오갈 수 없을 만큼 안개가 자욱하고 조수가 뚜렷한 도시의 각기 다른 지역에서 사는 열두 명의 사람이 어쩌다 한 객차에 올라탄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한편에는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변화하는 커다란 세계가 있고, 또 한편에는 공포와 불안으로 이루어진 작고 정적인 세계가 있다. 두 세계는 구 안의 구처럼 서로 꼭 맞아들어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냉장고의 탄생 - 차가움을 달군 사람들의 이야기 사소한 이야기
톰 잭슨 지음, 김희봉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제목에 냉장고가 들어간 책은 대부분이 요리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냉각 기술을 대표하는 냉장고를 둘러싼 온갖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류는 물건을 뜨겁게 하는 방법은 비교적 빨리 배웠다. 마찰을 일으키거나, 불을 지르면 된다. 그러나 차갑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차갑게 하는 방법을 완전히 이해한 것은 근대 학이 거의 성숙 단계에 들어간 뒤의 일이다. - '옮긴이 서문' 중에서

 

 

지금은 너무도 흔한 냉장에 관한 이야기들

 

이 책은 고대의 석빙고 시대부터 현대를 지나 미래에 이르기까지 연대순으로 차가움을 만드는 방법이 알려지게 되는 이야기와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생활에 미친 영향을 다루고 있다. 차가움을 향한 탐구가 진행되는 와중에 프랑스에서는 태자가 독을 탄 얼음물을 마시고 독살되었고, 영국에서는 왕이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인 얼음 창고에서 꾸며진 음모에 의해 퇴출되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대공大公이 얼음을 넣어 만든 칵테일을 마시고 취하곤 했다. 호수에서 얼음을 캐 세계 각지로 팔아 갑부가 된 미국인이 있었고, 이들이 월든 호수까지 진입하는 바람에 은둔의 삶을 즐기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방해받기도 했다.

 

식품 보관과 운반의 거대한 체계가 우리를 지탱해주고 있다. 이 체계가 잠시라도 어긋나면 도시의 일상은 파괴될 것이고, 수십만 명의 도시민들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미친 듯이 싸우는 짐승이 될 것이다... 현대 문명은 냉장고에 의존한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 '새로운 빙하 시대'(1931년에 발행된 한 잡지에 실린) 중에서

 

사실 냉각 기술은 식품 보관 말고도 무궁무진한 용도가 있다. 에어컨은 물론이고, 드라이아이스, 액체 질소, 액체 헬륨 등을 만들 수 있는 극저온 기술은 정자, 배아, 줄기 세포의 보관을 가능하게 만듦에 따라 생명 공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MRI나 자기 부상 열차 등의 편의를 제공하기도 한다.

 

인류는 적어도 10만 년 전에 불을 다루는 법을 터득했고, 그 뒤로 내내 열과 빛을 통제했다. 그리고 우리는 겨우 백 년 전에 차가움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이 승리의 혜택을 모든 인류가 골고루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오늘날 차가움과 뜨거움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은 상식을 넘어선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것을 알아내기 위해 애쓴 수많은 학자들에게는 전혀 명료한 사실이 아니었다. 차가움과 뜨거움의 진실을 밝히려고 했던 학자들은 별똥별을 관찰하고 영구 운동 장치를 만들기도 했지만, 요정의 지혜를 빌리고 생쥐를 고문하는 등의 얼핏 보기에 기이한 일도 벌였다.

 

코르넬리우스 드레벨, 로버트 보일, 제임스 줄 같은 사람들이 밝혀낸 지식은 열역학의 기초가 되었다. 열역학은 에너지의 흐름에 대해 알아보는 물리학의 분야이다. 냉장고는 '열펌프'다. 열펌프의 반대 개념은 '열 배출구'다. 이 개념은 뜨거운 곳의 에너지가 덜 뜨거운 곳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열은 태양에서 쏟아져 나와서 주위의 물체들(지구도 포함된다)을 데운다. 지구는 ㄷ다시 열에너지를 텅 빈 우주, 즉 궁극의 '열 배출구'로 내보낸다. 냉장고의 경우, 냉장실의 열을 밖으로 내보내고, 그 결과로 내부에 있는 것들이 차가워진다.

 

추운 겨울에 만들어진 얼음을 저장했다가 더운 여름에 사용하는 방법은 오랜 옛날에 왕이나 부자, 즉 권력자들을 위한 틈새 기술이었다. 특히 아시아에서 이 기술이 발전했는데, 우리나라에도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빙고를 비롯해 조선시대의 서빙고와 동빙고가 선조들의 유산으로 남아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서기 1세기 신라 3대 노례왕(유리왕)때 얼음창고(빙고氷庫)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는 서기 505년 지증황 때 얼음창고를 관리하는 빙고전氷庫典이라는 관청을 설립했다고 한다. 아무튼 동양의 이 기술은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으로 유래되어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의 귀족들은 차가운 와인와 냉동 디저트를 즐길 수 있었다.   

 

 

 

 

 

 

페르시아의 냉각 기술

 

페르시아의 냉각 기술은 바지르, 카나트, 야크찰이라는 세 부분을 바탕으로 한다. 야크찰은 말 그대로 '얼음 구덩이'를 뜻하며, 현대의 페르시아에서 냉장고라는 뜻으로 쓰인다. 카나트는 일종의 지하 관개수로이며, 바지르는 '바람을 잡는다'는 뜻으로,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통풍 설비이다.


페르시아가 고대 세계에서 얼음의 중심지가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연중 기온 차가 크다. 물이 얼 정도로 추운 겨울밤이 많고, 여름낮에는 얼음이 귀한 대접을 받을 만큼 덥다. 둘째, 이 지역은 큰 강이 없고 건조하다. 공기 중의 습도가 낮아서 얼음이 잘 얼고, 지표수가 부족해서 지하수를 관개에 이용해야 했고, 증발을 막기 위해 관개수로를 지하에 만들어야 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고대 페르시아 사람들은 물을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차가움의 궁극적인 원인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이 경구는 수백 년 동안 떠돌면서 차가움을 이해하려는 노력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차가움의 궁극적인 원인'은 바로 물이었다. 고대에는 북극에 거대한 차가움의 저장소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죽을 무렵, 그리스의 탐험가 피테아스가 이 신화적인 땅에 방문했다지만, 이 항해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남아있지 않다.

 

피테아스는 이 탐험에서 영국 섬을 발견했고(사실은 그가 여행하기 전에도 이미 알려져 있었다), 북쪽으로 엿새 동안 더 항해해서 북극에 도착했다고 한다. 거기에서 그는 원소들이 진창과 얼어붙은 안개 속에서 뒤엉키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설명으로 추측컨대, 아마도 북극 부근을 여행한 듯하다. 학자들도 그가 북해를 둘러가서 노르웨이 해안의 트론드하임에 가까운 어딘가에 도착, 영국 해안을 따라 귀환했다고 추측한다.

 

잠비스타 델라포르타'차가움의 궁극적인 원인'을 밝혀냈다. 그는 염화암모늄과 보통의 소금을 섞어서 물을 차갑게 했고, 그다음에는 눈을 많이 넣었다. 여기에 물이 가득 찬 유리병을 담갔다. 이 유리병을 부드럽게 두드리면서 휘저어서 속에 든 물이 순식간에 얼렸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놀라거나 공포에 떨었다. 이 기술은 실생활에 바로 적용됐는데, 프란체스코 대공은 궁전에서 시원한 포도주를 마시고 곤드레만드레가 되었다. 그는 대공의 자리를 탐내던 동생에게 결국 독살을 당했다.

 

 

얼음의 제왕 튜더 가족

 

1820년대 중반까지, 튜더 가족은 날로 커져가는 얼음 시장에서 가장 큰 사업자였다. 경쟁은 집에서 시작되었다. 강과 호수에서 어는 얼음을 소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먼저 가는 사람이 임자였다. 얼음을 깨서 마차에 싣고 부두로 끌고 가는 형태로 매우 세련되지 못한 과정을 밟았다.

 

튜더 가족은 여러 해 동안 록우드의 연못에서 얼음을 얻었고, 다른 지역에서도 얼음을 가져다 썼다. 얼음 공급자 중의 한 사람인 내더니엘 위스가 1825년에 얼음을 일정한 모양으로 자르는 장치를 개발했다. 그의 장치는 말이 끄는 절단기로, 쟁기와 톱의 중간쯤 되는 것이었다. 얼음 절단기를 말이 끌고, 말발굽에 스파이크를 신겨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했다. 절단기 날은 얼음에 일정한 간격으로 깊은 자국을 새겼다. 절단기를 여러 번 다시 돌려서 사람이 손으로 떼어 낼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자국을 만들었다. 그들은 긴 톱과 끌 같은 거대한 목공 연장을 사용했다. 쪼개진 얼음 블록을 물에 띄워서 갈고리와 장대로 둑으로 가져간다. 거기에서 거대한 집게로 얼음 블록을 강변으로 끌어올린다.

 

위스의 장치는 얼음 채취에 매우 효과적이었고, 더 많은 얼음을 한꺼번에 운반하거나 저장할 수 있게 했다. 얼음 블록은 모양이 일정해서 깨진 얼음보다 서로 더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효율은 1827년과 1828년의 계절답지 않게 따뜻한 겨울에 얼음 채취 경쟁에서 가치를 입증했다.

 

하지만 얼음 산업이 누구에게나 다 환영받지 않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사람들의 활동을 기술하고 있다. 그는 프레더릭 튜더 같은 사람이 호수에서 얼음을 모아 엄청난 부자가 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고, 과연 이런 일이 사회에 어떤 점에서 좋은지 묻고 있다. <월든>은 현대의 녹색 운동의 뿌리가 되었다.

 

 

냉장고의 탄생

 

초기의 냉장고 중에서 상징적인 모델 중의 하나는 제너럴일렉트릭모니터 톱으로, 이 기계는 위쪽으로 원통형 압축기와 응축기가 돌출되어 있었다. 이 튼튼한 장치의 이름은 독립 전쟁 때의 철갑 전함에서 따왔지만, 상자 모양의 설계는 주방에 얼굴 없는 로봇이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모니터 톱은 아무 무거워서 냉장고가 안전하다는 확신을 주었다.

 

"이것은 완벽하게 안전합니다. 철갑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모니터 톱은 골동품이 되었지만, 여전히 잘 작동하는 것들도 많다. 이 장치를 살펴보면 최신 냉장고도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압축기는 안쪽으로 숨었고, 응축 코일은 뒤쪽에 배치되었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냉장고 위쪽에 얼음 상자가 있어서 작은 냉동실 역할을 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알루미늄 판으로 만든 냉각 코일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것이 차가움을 얻는 부분이고, 냉각된 공기가 아래쪽으로 내려가고, 가장 덜 차가운 아래쪽에 채소 보관함을 둔다.

 

현대의 냉동-냉장고는 일반적으로 이 부분을 패널 뒤쪽으로 숨기고, 아래쪽에 있는 냉동실과 접촉시킨다. 미국식의 양문형은 양쪽에 따로 냉각 시스템을 배치한다. 유럽은 뒤늦게 냉장고 시장에 뛰어들었고, 유럽에서 만든 냉장고는 대개 미국에 비해 부피가 절반쯤 된다.

 

가정용 냉장고 수요가 급증하면서 프레온(염화불화탄소)도 계속 생산되었다. 1937년에 북미 지역에 냉장고 2백만 대가 보급되었고, 이후 1980년에는 전 세계에 수억 대의  냉장고가 보급되었다. 염화불화탄소의 사용이 증감함에 따라 오존층에 구멍이 생기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제 냉매는 밀려나고 대신에 과불화탄소를 사용한다. 2010년 이후로 대기중에 염화불화탄소는 사라지고 오존 구멍은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냉장고는 이제 위험하지 않은가? 이는 생각하기 나름일 것이다.

 

 

냉장고의 분신들

 

냉장고는 언제 냉장고가 아닌가? 뻔한 답은 에어컨이 될 테지만, 이보다 더 기발한 답도 있다. 냉장고는 가스 공장이 될 수도 있고, 로켓엔진, 데이터 센터, 심지어 수소폭탄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구멍을 파고, 댐을 건설하고, 아원자 입자를 추적하고, 뇌의 영상을 찍고, 세계의 절반을 먹여 살리는 데 사용된다(물론 식품 냉장에 사용하지 않고). 이것이 숨겨진 차가움이다. 풍악도 울리지 않고 조용히, 냉각 기술은 현대문명의 깊숙한 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미국의 건물들 중에서 3분의 2가 에어컨을 갖추고 있다. 이 에어컨들은 미국의 발전소에 생산하는 전력의 5%를 사용하며, 매년 110억 달러를 쓰고 있다. 에어컨은 한 해의 가장 더운 계절에 공기를 냉각하고자 설계되었다. 심지어 어떤 곳에선 일 년 내내 켜두기도 한다. 한겨울에도 가동된다는 말이다. 에어컨은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내뿜는다. 모든 에어컨은 공기를 덥게 한다.

 

 

 

 

냉장 체인이 끊어지면 사회는 붕괴한다

 

냉각 기술은 세계를 변화시켰다.  지금 세계는 새로운 연료와 새로운 힘의 저장법을 필요로 한다. 태양에너지나 풍력 등 재생 에너지는 우리가 필요로 할 때 켜고 끌 수 없다. 따라서 이 에너지를 재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저장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들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냉장고는 1750년에 처음 우리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대량판매가 가능할 정도로 개발되는데는 170년이나 더 걸렸다. 차가움은 이젠 우리들의 일상에서 뗄 수 없을 정도로 불가결한 요소가 되어 버렸다. 이는 와인, 디저트, 고기, 과일 등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책의 후반부에 거론되는 스마트 냉장고는 2000년에 LG가 세계 최초로 출시했는데 가격이 무려 2000만원이었다. 문을 열지 않고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있는 대가로 지불하기에는 비싼 금액이었다. 십여년이 경과한 지금, 스마트 냉장고는 집 안의 모든 기기들을 연결하는 '허브'로까지 발전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보던 양문형 냉장고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데 걸린 시간만큼 스마트 냉장고가 선남선녀의 집으로 들어오는 데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벽의 배신
라파엘 M. 보넬리 지음, 남기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완벽주의자는 성과 지향 시대가 낳은 산물이다. 완벽주의자는 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해 불만족, 자기 경멸 그리고 불쾌한 기분에 시달린다. 스스로 괴로워하고 주변 사람들까지 그렇게 만든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은 결과를 낳게 마련이므로, 이런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완벽주의자는 으레 불평 많은 사람, 지독한 비관론자, 유머 감각이라고는 없는 불만분자가 될 수밖에 없다. 완벽하지 않은 것은 아무 쓸모없다는 흑백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의 특징은 성과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이다. 즉, 대단한 업적과 뛰어난 실적을 올리는 일에만 매달린다. 완벽주의자는 특히 거절당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 나머지 남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까 봐 늘 노심초사한다. 게다가 위신이 떨어질까 봐 불안해한다. 완벽주의자는 불안감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난공불락의 불가침 영역을 구축하려고 애쓴다. 따라서 늘 마음의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처신할지,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한다. 완벽주의자에게 완벽이란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일 뿐이다. 자신이 만든 겉모습이자, 자기 본모습을 감추는 가면인 것이다. - '서문' 중에서

 

 

완벽주의 덫에서 벗어나라

 

저자 라파엘 M. 보넬리는 1968년 오스트리아 쉐르딩에서 태어나 현재 오스트리아 빈 소재 지그문트프로이트 대학교 신경과 교수이자, 정신과 의사 및 정신치료 전문의다. 빈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4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하버드 대학교, 캘리포니아 대학교, 듀크 대학교 등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2004년 그라츠 의과대학에서 신경정신과 박사 학위를 받은 후 2005년 정신과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정신의학, 정신치료, 치매가 주요 관심 분야다. 저서로는 <우리의 관계를 지치게 하는 것들>, <정신치료와 종교의 단란한 공존에 관한 변론>, <정신치료와 영성> 등이 있다.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이상理想이 완벽주의자들에겐 의무가 된다. 이상은 현실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지만 의무는 이와 반대로 현실을 아래로 끌어내린다. 완벽주의자를 힘들게 하는 바윗덩이는 완벽에 대한 스스로의 과도한 집착이다. 이들에게 완벽이란 목적을 달서하는 수단일 뿐이며 스스로가 만든 겉모습이자 본모습을 감추는 가면에 불과하다.

 

인생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선 비이성적인 두려움, 잘못된 명예심, 그리고 완벽주의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책의 저자는 '완벽에의 갈망'이 만연된 사회를 정밀 진단하면서 성과주의의 덫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한다. 실제 환자들의 상담 사례를 통해 완벽주의자들이 어떤 행동 양상을 보이며,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지 설명한다.

 

 

 

 

 

 

"완벽주의자들에게 자기 인식을 위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완벽주의자의 '정신 기구'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과 달리 완벽주의자는 내면이 자유롭지 못하며, 기계장치처럼 여러 요소들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원인과 결과를 보여주는 정신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정신 기구'를 작동하는 이유는 실수에 대한 극단적인 두려움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실수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챌까 봐 몹시 두려워한다. 완벽주의자에게 완벽이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다. 자신이 마련한 책략이자, 본래의 얼굴을 숨기는 가면이다.

 


이러한 정신적 기계장치를 움직이는 가장 큰 톱니바퀴가 두려움이다. 한도 끝도 없는 두려움으로 인해 상상의 나래를 점점 더 펼침으로써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현실 감각이 떨어지면 의사 표현을 할 수 없고, 그와 더불어 이성적으로 반박하는 능력도 현저히 떨어진다. 이러한 톱니바퀴들은 인간의 발전을 저해하며 경직된 사고를 만들고, 풍요로운 인생을 방해한다. 그리고 결국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이것이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알프레드 아들러가 말한 '그릇된 마음가짐'이다.

 

 

완벽주의자들의 인간관계

 

알프레드 아들러는 이미 1백 년 전에 이렇게 설명했다. "권력과 우월성을 추구하는 인간은 시기심을 자주 드러낸다. 쉽게 도달할 수 없는 목표에 직면했을 때 느끼는 거리감은 열등감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거리감이 사람을 압박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태도나 생활방식을 보면 목표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불만이 많은 사람은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들은 무슨 성과를 이루었는지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남들보다 못하다고 느끼면 정신적으로 위축된다.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경우에도 이러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언제나 부족하다는 위장된 허영심과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 마음, 모든 것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갖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 공동체 의식이 그런 생각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을 보면 모든 것을 다 갖고 싶은 속마음이 훤히 드러난다"

 

 

날씬한 몸매 강박증 

2006년 그림처럼 아름다웠던 우루과이 출신의 22세 톱모델 루이젤 라모스는 몬테비데오 패션위크에서 패션쇼가 끝난 직후 사망했다. 그녀는 패션쇼가 열리기 전 수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해 체질량지수 13.2였던 브라질 출신 모델 아나 카롤리나 레스톤 마칸이 굶어 죽었다. 그녀는 사과와 토마토만 먹었다고 한다. 지난 2010년에는 프랑스의 유명 모델 이사벨 카로가 사망했다. 거식증의 위험을 알리는 그녀의 나체 캠페인은 패션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거식증은 안 돼요No-Anorexia'라는 헤드카피와 함께 그녀는 신문과 옥외 광고판에 나체로 등장했다. 이사벨 카로의 사망 이후 패션 업계에서는 모델의 자격 기준을 체질량지수 18.5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엄마의 '과잉보호'에 따른 의존증 

덴마크의 가족심리치료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예스퍼 율'컬링 아이들'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했다. 컬링은 겨울 스포츠의 하나로 둥글고 납작한 스톤을 얼음판에서 미끄러뜨리고 선수 2명이 스톤을 따라가면서 스톤이 잘 미끄러지도록 얼음길을 닦아주는 경기다. 자식들 앞에 놓인 온갖 장애물을 미리미리 다 치워주는, 의욕 넘치는 부모들을 풍자한 표현이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인생이라는 얼음판 위에서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미끄럼을 탄다. 완벽주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조부모가 사망해도 아들과 딸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한다. 예스퍼 율의 견해에 따르면,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타인에 대해 무지할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인간이 된다. 슬픔이나 두려움도 모르고, 동점심이나 연민도 없다.

 

 

절도와 완벽주의

 

절도는 완벽주의라는 주제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절도라는 미덕에서 비롯된 건강한 자기 절제는 완벽주의와 외형적으로는 유사하다. 하지만 완벽주의자에게는 지나쳐도 안 되고 모자라서도 안 되는 중용이 없다. 그래서 절도라는 미덕은 완벽주의와 다른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비교하고 그 차이점을 밝히면 완벽주의가 어떻게 치유되고 극복되는지 상세히 알 수 있다.

 

셀리그먼이 제시한 절도는 그 옛날의 기본 도덕이었던 '템페란티아 temperantia'와 관련이 있다. 절도와 완벽주의는 신뢰, 규율, 자기 수양, 실수 줄이기 등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미덕은 완벽주의자들의 생각이다. 절도는 완벽주의자가 간절히 원하는 마음의 안정을 주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는 '템페란티아'를 무의식적으로 흉내 내지만, 내면적으로 실현하지 못한다. 완벽주의자는 이상을 성취하지 못하며, 따라서 그의 내면은 텅 비어 있다.

 

 

 

 

당신은 완벽주의 성향을 지니지 않았는가?

 

모든 일을 반드시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완벽주의자들은 마음이 자유롭지 목하며 온갖 불길한 두려움에 고통받고 있다. 즉 실수에 대한 두려움, 실수하면 타인들이 자신을 싫어할 거라는 두려움, 그리고 사회에서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으로 늘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완벽주의자는 자유롭지 못하다. 두려움에 이끌려 꼭두각시 인형처럼 움직인다.

 

내적으로 자유로우려면 자기중심적 사고, 자신의 결점 억압, 잘난 척하는 태도, 권력욕 등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또한 자만심, 타인을 컨트롤하려는 생각, 실수않겠다는 욕심, 책임 전가 등에서 탈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내적 자유를 얻게 되면 시기심과 분노, 태만, 욕망, 소유욕, 폭음, 폭식, 자만심 등을 인지함으로써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한편, 완벽주의자들은 최고의 성과를 내려고 하지만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안간힘을 쓰면서도 자신들의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른다. 또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하지만 마음은 항상 불안하다. 그들은 규형 감각이 없고, 본인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이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물론 그게 뭔지도 모른다. 혹시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보이지 않으면 믿지도 않는다'는 불가지론자로서 내세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기대도 품을 수 없었던 그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죽음에 대해 유쾌한 토론을 벌인다. 신을 그리워하는 태도를 질척하다고 일갈해버리는 철학과 교수 형, 무신론자이자 공산주의자 어머니, 전신을 지배하는 병마와 싸우다 병실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까지, 이 책은 누군가의 아들이자 형제인 줄리언 반스와 영국 문학의 제왕으로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죽음을 면밀히 파헤친 줄리언 반스가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해낸 에세이다.

 

 

 

 

 

 

죽음에 관하여 유쾌한 토론을 벌이다

 

책의 저자 줄리언 반스<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또한 그는 <플로베르의 앵무새>로 영국

 

 

 

 

 

 

프랑스 비평가 샤를 뒤보스는 죽음에 대한 인식에 관해 '죽음의 숙명을 알리는 모닝콜'이라는 문구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낯선 호텔 방에서 이전에 묵었던 투숙객이 맞춰놓은 자명종이 울리는 바람에 야심하기 그지없는 시간에 느닷없이 잠에서 깨어나 암흑과 공포 속으로 내던져진 채, 현세가 잠시 세 들어 사는 세계임을 통렬히 자각하게 되는 것과 같다.

 

최근에 저자의 친구 R은 그에게 얼마나 자주, 어떤 상황에서 죽음을 생각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이에 그는 잠에서 깨어 있는 하루 동안 적어도 한 번은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런 후 간간이 일어나는 야간 침입들이 있다고도 했다. 외부 세계가 뚜렷한 평행선을 그릴 때, 저녁으로 접어드는 시간, 낮이 짧아질 때, 혹은 긴 하루 동안의 하이킹이 끝나갈 때, 자주 죽음의 필연성이 불청객처럼 그의 의식을 비집고 들어온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절망의 종교를 가져야만 한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신의 운명을 감당해야 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운명처럼 무감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군! 그런 거군!' 하고 말함으로써, 그리고 발아래 놓인 검은 구덩이를 응시함으로써 사람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법이다" - 플로베르

 

 

당신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쪽을 택하겠는가,

아니면 두려워하지 않는 쪽을 택하겠는가?

 

언뜻 쉬운 문제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떨까? 당신은 죽음 같은 건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고,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고, 도락道樂을 좇고, 소임을 다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그런 후 마침내 죽음이 임박했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때를 맞았다. 그런데 바로 앞 문장의 마침표를 찍으며, 지금까지 이어져온 당신 인생사가 다 헛소리였음을 새로이 자각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애초에 언젠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실이 지닌 의미는 무엇인지를 깨달았다면 전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까? 

1882년 3월 6일 월요일, 도데, 투르게네프, 에드몽 드 공쿠르와 함께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졸라'르 레베일 모르텔'의 이러한 영향들에 관해 털어놓았고, 공쿠르가 그의 이야기를 낱낱이 받아 적었다. 그날 저녁, 그들 중 넷(1880년 플로베르가 사망했으므로 '다섯 명의 저녁 식사'에서 한 명이 빠졌다)은 죽음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설가 투르게네프는 이렇게 (살짝 손짓으로 시범을 보이면서) 그 생각을 떨쳐버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인들은 골칫거리를 '슬라브의 안개' 속으로 사라지게 할 줄 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인들은 논리적이지만 성가실 정도로 끈질기게 떠오르는 상념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이 안개를 불러 모은다고 했다. 가령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 폭풍에 갇히게 되면 추위에 대해선 의도적으로 생각을 말아야지 안 그러면 얼어 죽고 말 것이다. 더 큰 사안에도 이와 똑같은 방법을 적용해 이겨낼 수 있었다. '이렇게' 떨쳐버리면 되었다.

 

 

 

우리가 예술을 탄생시키는 이유는 죽음을 무릎 꿇리려고, 안 되면 최소한 반항이라도 해보기 위해서일까? 죽음을 초월하기 위해서? 죽음에게 제 분수를 알게 해주기 위해서? 취향은 변한다. 진실도 클리셰가 되어버린다. 모든 예술의 형태들은 사라진다. 심지어 죽음을 뛰어넘은 위대하기 그지없는 예술의 승리조차 실소가 나올 정도로 단명한다. 소설가는 다음 세대의 독자들에게 희망을 걸지 모르며, 그러는 것으로 죽음을 비웃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은 사형수 독방의 벽을 긁어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그러는 이유는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도 여기 있었다, 라고.

우리는 살고, 우리는 죽고, 우리는 기억되고, 우리는 잊힌다. 즉시 잊히는 것이 아니라, 한 켜 한 켜씩 잊힌다. 우리가 기억하는 우리의 부모는 대개 그들의 성인기를 통해서다. 우리가 기억하는 우리의 조부모는 그들 인생의 마지막 3분의 1이라 할 수 있는 노년기를 통해서다. 그 외에 기억나는 다른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따끔거리는 턱수염에 지독한 냄새, 아마도 생선 냄새 같은 걸 풍기는 증조부 정도가 있지 않을까. 그다음엔? 사진들, 그리고 얼마간 우연히 발견하는 기록들일 것이다. 미래에는 내가 하는 일처럼 바닥이 얕은 서랍에 기록을 보관하는 일이 아니라 뭔가 기술상의 갱신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수 세대에 달하는 조상들이 영화와 테이프와 디스크를 통해서 살아남아 움직이고 말하고 미소 짓고, 그들도 여기 있었음을 증명할 것이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 없다

 

정신이 멀쩡할 때 죽음을 선고받는 것이 어쩌면 최상의 죽음일 것이다. 하지만 노환을 앓는 대부분의 노인들은 죽음이 가까이와 있음을 예견하면서도 가족들의 철저한 보안 속에 목숨을 연명하다가 별다른 준비 없이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아버지도 그랬다. 노인대학원에선 배움의 즐거움을, 성당에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환희를 경험하다가 갑자기 허리가 아파 치료차 병원에 입원한 뒤로 병상 밖으로 결국 나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살아있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책 대신 음악과 함께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 날들 동안 이것저것 확인할 게 많다고 한다. 우선 자신도 생선 냄새를 풍기게 될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될지를 말이다. 죽음과 이에 대한 두려움에 대하여 저자는 화해로 결론내는 듯하다. 그는 단 한 명의 독자도 남지 않게 될 작가의 절멸을 상상하며 받아들인다. 책의 원제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 없다(Nothing to be frightened of)>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