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마지막 그림 - 화가들이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읽는 명화 인문학
나카노 교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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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유언에 인생이 농축되어 있듯이 화가의 마지막 작품에는 인생의 찬란함과 어둠이 짙게 고여 있다. 빛나는 명화의 이면에 숨겨진 화가들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시대에 얽매여 비루한 삶을 살아내야 했던 화가들이 생의 끝자락에 남기고 싶었던 '인생의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위대한 화가들이 남긴 최고의 작품과 최후의 그림을 중심으로 화가의 삶과 예술을 함께 녹여낸다.

 

 

위대한 화가들이 남긴 최후의 그림

 

일본 최고의 명화 이야기꾼 나카노 교코 교수는 보티첼리부터 고흐까지 유럽 미술의 황금기(15~19세기)를 이끈 15인의 화가가 어떤 노력 끝에 시대를 초월한 명작을 탄생시켰는지, 생의 마지막 그림으로 무엇을 남겼는지를 들려줌으로써 명화를 넘어 화가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시도는 인문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명화 읽기를 제시하며, 나아가 ‘당신은 생의 마지막에 어떤 그림을 남길 것인가’라는 삶을 뒤흔드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작가, 독일문학자. 서양 역사와 예술에 관한 풍부한 지식을 토대로, 미술 에세이나 역사서 등을 열정적으로 집필·강연하고 있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무서운 그림> 시리즈 세 권을 비롯해 <무서운 그림으로 인간을 읽다>, <잔혹한 왕과 가련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운명의 24시간>, <명화의 거짓말>, <나는 꽃과 나비를 그린다>, <미술관 옆 카페에서 읽는 인상주의> 등이 있다.

 

서양회화사는 대부분 중세를 시작으로 르네상스, 마니에리스모, 바로크를 이야기한 뒤 인상파를 거쳐 현대의 혼란한 상황으로 이어지는 흐름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분류했다. 바로 '화가가 무엇을 그려왓는지,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무엇을 그렸는지'로 나누었다. 이는 '화가가 왜 그것을 그릴 수밖에 없었나'라는 질문과 통한다.

 

이 책은 총 3부, 신(기독교, 그리스 로마 신화)에 몰두한 화가들, 왕과 고용관계를 맺은 궁정화가들, 새로운 세계를 이끄는 시민계급에 바짝 다가간 화가들로 나누었다. 다시 말해 '화가와 신', '화가와 왕', '화가와 민중'이다. 15세기에서 19세기를 살아간 그들이 각각 어떤 문제에 부딪혔고 어떤 노력 끝에 걸작을 탄생시켰는지, 나아가 생의 마지막 작품으로 무엇을 남겼는지까지 살펴본다.

 

 

 

 

 

아펠레스의 중상모략

 

보티첼리가 그린 중상모략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본인에 대한 동성애 의혹, 두 번째는 사보나롤라에게 심취하여 메디치가를 배신했다는 중상모략, 세 번째는 사보나롤라에 대한 비방이다. 이 중 어는 것이 정설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여성의 누드가 갑자기 변했다는 점은 확실하다.

 

사보나롤라를 알기 전의 보티첼리라면 이 정도로 시시한 여체는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모습은 조개껍데기를 타고 서풍에 날려 키프로스 섬으로 떠내려 온 비너스와 비슷하나 그 매력의 차이는 1,000만 광년쯤은 떨어져 있어 안쓰러울 지경이다. 어떻게 하면 보는 사람의 관능을 일깨울 수 있는지 아는 자는 어떻게 하면 관능을 지울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확신범이다.

 

보티첼리의 인기는 빠르게 식었다. 풍성한 이야기가 무미건조한 교과서로 변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보나롤라를 추종하고 그의 부활을 믿었다고 하니 본인은 불행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보나롤라가 처형되고 12년 후에 보티첼리는 가난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과는 달리 부드러운 느낌이 없어 딱딱해 보이는 팔과 곡선이 결여된 나체가 그려져있다.

 

 

그리스도의 변용

 

르네상스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천재들은 바로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다. 이들은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까지 함께 살았던 사람이다. 다빈치는 <모나리자>,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 라파엘로는 <의자에 앉은 성모> 등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에서 후원자를 잃은 다빈치가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1세의 초청을 받아 <모나리자>를 들고 영원히 조국을 떠난 후 로마는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양강체제가 되었다.

 

하지만 라파엘로는 다빈치가 예순일곱 살, 미켈란젤로가 여든아홉 살까지 살았던 것에 비해 서른여섯 살로 생을 마감했다. 사망 원인도 불확실한데, 아마도 오랫동안의 작업활동에 따른 과로와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 인한 쇠약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성병으로 사망했다는 설도 있지만, 앓아누운 지 2주쯤에 사망했으므로 이는 직접 원인이 아님에 분명해 보인다.

 

죽기 직전인 서른일곱 살에 그는 추기경 줄리오 데 메디치의 주문으로 대작 <그리스도의 변용>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엔 큰 그림일수록 제자들에게 부분적으로 대작代作을 맡겼지만, 이 작품만은 손수 그렸고 한 시도 붓을 놓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마지막 완성작은 공방에서 완성되었다. 따라서 그가 어디까지 그렸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라파엘로라는 인물을 평하기를 하늘이 주신 재능 덕분에 성공을 향한 계단을 쉽고 가볍게 뛰어올랐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그는 노력과는 상관 없는 인물로 여겨지기 쉽지만 마지막 작품인 이 그림을 보면 그가 새로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잘 보여 준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날카로운 명암 대비대담한 구도는 차 세대의 바로크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날카로운 명암 대비와 인물의 격렬한 움직임은 바로크를 향해 앞서 나가고 있다.

 

 

엘 그레코의 <라오콘>

 

엘 그레코는 일흔세 살까지 살았지만 만년에는 인기가 급속히 식어갔다. 강렬하고 황홀한 그림이 차츰 시대의 트렌드와 어긋났고 또한 지나친 개성이 오히려 질리게 만든 것이 그 원인이었을 수 있다. 이를 느끼고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리스인이 자신이 그리스 신화를 한 점도 그리지 않았음을 문득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그림은 처음이자 마지막 신화화神話畵인 <라오콘>이다. 트로이전쟁의 유명한 일화 '트로이 목마'가 주제다. 그리스의 속셈을 알아차린 트로이의 신관 라오콘이 성안으로 목마를 입장시키지 말라고 경고하지 이에 화가 난 여신 아테나(미네르바)가 물뱀을 풀어 라오콘과 두 아들을 죽이는 장면이다. 그는 그림의 배경을 톨레도 시가지로 바꾸었다.주제를 신화로 바꾸어도 그의 개성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엘 그레코는 세상을 떠난 뒤 서서히 잊혔다. 두 세기가 지나 1819년에 스페인 마드리드프라도 미술관이 개관했을 때 그의 작품은 단 한 점도 걸리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를 재발견한 사람은 놀랍게도 20세기의 표현주의 화가들이었다. 피카소도 자신의 '청색시대' 인물 묘사는 엘 그레코의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그 그리스인'의 감성이 참으로 새로웠다는, 아니 지나치게 새로웠다는 증거다. 이제, 그의 그림을 감상해보자.

 

 

 

고야의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

 

프란시스코 고야는 1746년 에스파냐의 외딴 시골 마을에서 가난한 장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럽 전체가 근대사회로 전환되어 가는 중에 에스파냐는 여전히 종교재판소가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로 인해 중세적 봉건제도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음에 따라 궁정과 서민 간의 격차는 다른 나라보다 더 컸다.

 

이 모든 세계를 알고 있었던 고야는 유화 500점, 판화 300점, 소묘류 900점 등 엄청난 작품을 묘사했다. 즉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농민부터 최고 권력자인 국왕에 이르기까지, 짐승처럼 서로를 죽이는 인간들로부터 우아하고 아름다운 연애 장면까지 화폭 위에 그려냈던 것이다. 작푼도 감상적인 로코코풍, 내면을 들여다보는 벨라스케스풍, 거친 바로크풍, 뚜렷한 리얼리즘과 기이한 폭력성의 합체, 악몽 같은 환상 등 참으로 다양했다.

 

평범한 사람의 10배, 20배 농축된 인생을 살았던 이 천재는 여든을 넘긴 말년에 검정 콩테로 일종의 자화상을 남겼다. 텁수룩한 머리카락과 긴 수염이 모두 하얗게 센 노인이 등을 구부린 채 양손에 지팡이 두 개를 짚고 간신히 서 있다. 배경은 어둡고 깜깜하지만 두 눈은 아직 번뜩이고 있다. 바로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이다.

 

 

 

<비너스와 삼미신에게 무장해제되는 마르스>

 

다비드는 174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때 철재상을 하던 아버지가 결투로 사망하는 바람에 작은아버지에게 맡겨졌다. 먼 친척 중 로코코의 인기화가 부셰가 있었고, 가족의 지인 중에도 예술가가 많았다. 그는 일찍부터 그림으로 성공해 이름을 알리려 결심했지만 좀처럼 프랑스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미술대회의 최고상인 로마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스물아홉 살 때 겨우 로마상을 받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

 

1784년 루이 16세가 주문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를 발표하여 돌풍을 일으켰다. 전해에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고 공방에는 수많은 제자가 몰려들었다. 바야흐로 다비드의 시대가 오고 있었다. 루이 16세의 권세가 지난날의 태양왕과 비슷했다면 다비드는 그의 궁정화가가 되어 왕의 신격화에 힘썼을 것이다. 그러니 시대는 혁명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만년의 대작 <비너스와 삼미신에게 무장해제되는 마르스>를 보면 보잘것없어진 그림 실력에 놀란다. 이 작품은 그의 최전성기 작품의 서투른 모사에 지나지 않는다. 신고전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아카데미 작품이 빠지기 쉬운 함정, 즉 형식에만 급급하고 영혼은 담지 않은 그림이 되어버린 것이다.

 

원래 다비드의 작품은 권위주의를 회화로 표현한 듯한 면이 있어서 호불호가 갈리기보다 잘 그린 그림의 교과서처럼 보였다. 그래도 나폴레옹을 그렸을 때는 나폴레옹이라는 인물 자체의 뜨거운 피가 전달되었다. 하지만 거기서 나폴레옹과 그의 지위를 빼자 그림은 빈껍데기만 남았다.

 

 

 

밀레가 아카데미 회화에 대해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연극 같은 그림"이라고 퍼부었던 비판을 인정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비제 르브룅의 <부인의 초상>

 

대부분의 여성 화가가 그러하듯이 비제 르브룅의 아버지도 화가였다. 이 시기 여자에게는 미술학교의 문이 닫혀 있었고 나체를 보거나 그리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 역사화에 필수인 골격 연구도 어려워서 작업화가가 될 수 있는 길은 '아버지가 화가여서 집이 공방'인 경우로만 거의 한정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드물게 여든일곱 살까지 장수한 비제 르브룅은 남편과 딸을 저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만년을 다소 쓸쓸하게 지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붓은 버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다운 초상화를 원했고 그 요구에 따라 그녀는 계속 그림을 그렸다. 말년에 가까운 일흔여섯 살 때의 작품이 남아 있다. 러시아풍 헤어스타일을 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성의 초상화인데, 생기 있는 터치가 화가의 나이를 짐작하지 못하게 한다. 훌륭한 작품으로 명성을 떨친 18세기 최고의 프로페셔널 여성 화가는 자신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듯하다. 

 

 

 

 

여인의 헤어스타일이 러시아풍이다

 

 

 

밀레의 <야간의 새사냥>

 

밀레는 죽기 10년쯤 전부터 때때로 심한 두통에 시달렸으며 자리에 자주 누우면서 서서히 몸이 쇠약해졌다. 그래도 붓은 놓지 않았다. 병상에서 끝까지 계속 손을 보았던 마지막 작품 <야간의 새 사냥>은 기묘한 박력이 넘쳐 그린 이가 자기 죽음을 의식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 대해 미국인 화가 히쿡 로가 밀레와 인터뷰를 했었는데, 밀레는 어린 시절 자신이 실제로 본 광경이라는 것이다. 한밤중에 나무에 내려앉은 수많은 들비둘기 떼에게 갑자기 횃불을 비춘다. 눈이 부신 비둘기는 당황하여 날아가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며 날개를 푸드덕거린다. 이때 몽둥이로 내려쳐 비둘기의 숨통을 끊는다. 그림만으로도 날카로운 울음소리, 튀어오르는 피, 으깨지는 소리, 번쩍이는 불빛 등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인생의 맨 마지막에 왜 밀레는 이 광경을 그린 것일까? 소년이었던 밀레를 들비둘기 사냥에 데려간 사람은 아버지였을까? 아버지도 몽둥이를 휘둘렀을까? 갖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노동의 성스러움을 줄곧 그려온 화가는 가축을 도축하는 것과는 다른 사냥의 한 측면도 그림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것일까? 이 또한 농촌 생활의 현실이다라고.......

 

우리들에게 익히 알려진 밀레의 <이삭줍기>

 


 

 

죽음의 냄새가 전해지는 기묘한 작품으로, 기존의 밀레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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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서 구하라
구본형 지음 / 김영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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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구본형의 21권 저작에서 정수를 고른 것이다. '나에게서 구하라'는 제목은 모든 중요한 문제의 답은 우리 자신 안에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기 실린 잠언들은 독자가 자기 안에 있는 답을 발견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 '여는 글' 중에서

 

 

인생 최대의 목적은 자기혁명이다 

 

1998년부터 201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구본형이 남긴 대표 유고작 21권 중 변화와 성장의 핵심 메시지를 담았다. 나만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진심으로 타인과 관계 맺으며, 진정한 성취와 자유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자기경영의 방법!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구본형의 삶과 신념, 인문학과 경영학을 관통하는 깊은 사유의 결정체를 다시 읽으며, 어제보다 아름다운 오늘을 만들어갈 열쇠를 만난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변화한다. 변화하지 않는 것들은 죽은 것이다. 일 년 전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일 년 동안 죽어있었던 것이다. 만일 어제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지난 24시간은 당신에게 죽어있던 시간이다" - 구본형

 

20년간 IBM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일해온 구본형은 현실에 강요당하는 변화가 아닌,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좋아하고, 본래의 우리 자신을 찾아가는 진정한 변화를 더 중시했다. 주체적인 일과 삶을 위해 인문정신이 필요하다고 믿고, 이를 실현하고자 다니던 회사를 나와 '1인 기업'을 세워 혁신적인 자기경영과 변화경영의 패러다임을 전했다. 삶의 분기점을 찾는 이들을 위한 변화지침서인 그의 초기작 <익숙한 것과의 결별>,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는 IMF 때 직장인들에게 절실한 변화의 과제와 방향을 제시하여 출간 직후 20만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모두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하루아침에 쓰여진 것이 아니다. 구본형이 공들인 하루의 기록들이 하나씩 모여서 질적인 변환을 시도하여 나온 결과다. 그리고 그의 삶이 온전히 담겨 있다. 그의 인생 최대의 목적은 자기혁명이었으며 가장 나다운 향기로 공헌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의 글은 '교훈'이 아니라 '감동'이라고 말하고 싶다.

 

 

 

 

밥벌이에 지지 말라

 

밥벌이에 지지 말자.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을 두려워 말자. 꿈을 꾸자. 삶의 어디에서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음을 보이자. 현실과 꿈 사이를 일상의 좋은 감촉으로 채워 넣자. 기쁨으로 시작한 삶이 지혜로 끝나게 하자. 그리하여 시처럼 인생을 살자.

 

언제나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내가 되고 싶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늘 더 좋은 존재가 될 수 있으며, 늘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지금의 자기 자신보다 나아지려고 애쓰다 보면, 나는 언젠가 나를 아주 좋아하게 될 것이다.

 

삶은 일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일상은 바로 하루하루 속에 있다. 하루를 개편하지 않고는 일상적 삶을 바꿀 수 없다. 물리적 현실을 개편하지 못하는 정신은 허 망한 꿈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기혁명은 하루 속에서 자신이 지배하는 시간을 넓혀 가는 것이다. 하루의 십 퍼센트를 지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 하루 속에서 잃어버린 두 시간을 찾아내어 자신에게 돌려주자.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현실적 이고 실용적인 대안을 찾아보려고 노력하였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이 나를 구한다

 

 


당신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고,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보라. 당신은 스스로를 좋아하는가? 아니라면 지금 당장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욕망을 찾아 떠나라. 당신의 미래가 복제된 작은 도토리를 심어라. 그리고 하루에 두 시간은 이 꿈을 키우기 위해 써라. 밥 한 그릇과 옷 몇 벌을 사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을 파는 것은 노예다. 결국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삶을 살며, 언제나 상황의 희생자일 뿐이다. 세상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 욕망에 솔직해져야 한다. 그리고 오직 하나의 욕망에 평생을 걸어야 한다. 선택은 다른 것을 버린다는 것이다. 선택된 욕망에 모든 것을 내주어라. 사랑해줘라. 그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규정할 수 있다.

 

욕망이 없는 삶은 이미 속세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욕망과 화해하고 대항해 싸우는 수도사가 될 필요는 없다. 나는 욕망을 사랑한다. 욕망만큼 강력한 모티베이션은 없다. 일상의 삶은 그것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삶이 어려운 것은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다. 욕망이 죽어가기 때문이다. 질병에 걸리는 것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다. 우리 몸속에 이미 이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 병은 마음에 있다. 욕망을 잃은 삶은 죽은 것이다. 재미가 없다.  

 

 

탐험의 시작

 

내가 계획한 어딘가에 반드시 도착하고 싶었다. 도착하는 것이 곧 성공이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도착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정 자체로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 위에서 끝나는 여행도 위대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십 년 동안 내 길을 가려는 노력의 결과로 알게 된 평범한 깨달음이었다. 길 위에서 죽는 여행자처럼 완벽한 여행자가 어디 있겠는가!

 

차이는 다름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더 다르게 만들려는 열정이다. 더 많은 차이를 만들기 위해 차이를 끊임없이 생산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달라야 한다. 자기경영의 근간이 되는 것은 실천의 철학이다. 바로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어둠을 품은 밝음

 

어둠은 나의 약점이기도 하고 나의 문제점이기도 하고 나의 실수와 상처이기도 하다. 밝음은 나의 강점이며, 나의 성공이기도 하고 나의 감탄과 삶의 기쁨이기도 하다. 나는 어둠을 품은 밝음이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의 밝음을 확산하는 것이다. 어둠을 지우는 대신 먼저 밝음을 키우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내 전략이다.

 

때때로 인생이 우리를 겁주더라도 두려움에 지지 말자. 용기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다. 두려운 상황에서는 두려움을 느끼되, 마음을 달래 세워 두려움이 우리를 쓰러뜨리지 않게 하라. 젊음은 단명하기에 아름답고, 인생은 길기에 누구나 뜻을 세워 살고 싶은 삶에 도전해볼 수 있다. 누구든 자신의 꽃이 한 번 필 것이고, 그때는 그 향기가 진할 것이다.

 

 

좋은 사랑은 인간을 깊게 한다

 

사랑은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목이다. 그러므로 너는 한 사람이라도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청년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어라. 모든 사람이 더 젊어서 사랑에 빠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단다. 깊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각별한 신의 은총임을 잊지 말아라. 좋은 사랑은 인간을 깊게 한다.

 

나는 평범한 인간 속에 살고 있는 위대함에 열광한다. 자신의 삶 속에서 그 위대함을 끄집어내어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 평범한 사람들의 잠재력에 몰두한다. 나는 평범하고 초라한 사람들이 어느 날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위대한 순간을 목격하고 싶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고 싶다. 그들이 꽃으로 피어날 때 그 자리에 있고 싶다. 이것이 내 직업이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광이다. 

 

 

영성가 구본형을 추억하며

 

구본형 선생이 남긴 소중한 가르침과 그의 삶이 우리 모두에게 계속해서 양식이 되 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먹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음식이 되어서 모두를 풍요롭게 하고, 또 우리 안에 있는 새로운 영적인 생명을 위한 양식이 되었으면 좋겠 습니다. 그러기 위해 구본형을 다시 읽어야 합니다. 그가 남긴 책을 읽는 것뿐만 아 니라 그의 삶을 읽고, 그의 생각을 읽어내고, 생각 속에 들어있는 그 본질을 읽어내야 합니다. - 강순건,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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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의 기술 - 트럼프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 The Art of the Deal 한국어판
도널드 트럼프 지음, 이재호 옮김 / 살림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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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 때문에 거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은 얼마든지 있다. 내게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다. 나는 거래 자체를 위해서 거래를 한다. 거래는 나에게 일종의 예술이다. 어떤 사람들은 캔버스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또 훌륭한 시를 쓴다. 그러나 나는 뭔가 거래를 하는 것이 좋다. 그것도 큰 거래일수록 좋다. 나는 거래를 통해서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 거래는 내게 하나의 예술이다. - '거래는 예술이다' 중에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도널드 트럼프가 사실상 11월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후보로 확정되었다. 그의 막말은 도를 넘어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미 그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어프렌티스>에서 "너는 해고야!(You’re fired!)"라는 말로 사람들을 휘어잡았던 터라 이런 막말 뒤에 숨겨진 다른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하는 사람들도 많다.

 

 

"무슬림 입국을 전면 통제하겠다", "멕시코 이민자들이 못 넘어오게 국경을 봉쇄하겠다", "한국에 주한미군의 주둔 비용을 물리겠다", "중국이 미국(경제)을 성폭행하고 있다" 등등 그의 말들은 연일 화제거리였다. 어디 정치인들의 폭언이나 실언이 미국에만 해당되겠는가. 한국의 정치판에도 자주 이슈가 되는 일이다.

 

대개 막말 시비가 생기면 본질은 아예 숨어버린다. 한국정치판에서도 자주 목격되는 것처럼, 트럼프의 막발 시비도 그런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는 후보 지명이 거의 굳어지자 자신의 그런 말들을 뒤집어버렸다. 즉 자신은 일종의 제안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지, 꼭 그렇게 실행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말을 바꾸었다. 후보 지명을 위해서 철저하게 계산된 언행을 한 셈이다.

 

트럼프는 펜실베이니아 와튼 스쿨을 졸업하고 1971년 뉴욕 맨해튼에 사무실을 개소해 부동산업에 뛰어들엇다. 그때 그의 나이는 25살이었다. 당시 그의 수중엔 20만 달러가 있었다. 당시 임대주택사업을 하던 아버지를 도우면서 번 돈이었다. 이 돈도 대부분 부동산에 묶여 있어서 빈손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34살에 맨해튼에 그랜드 하얏트 호텔을 세웠다. 이는 그의 신화 창조 서막이었다.

 

 

 

 

 

 

 

 

 

 

 

이 책에서 드러난 트럼프는 매우 영리하고 치밀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세상의 변화를 남보다 빨리 읽고,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의 신조는 '크게 생각하되, 발로 뛰고, 언제나 최고의 물건을 만들라'는 것이다. 일을 되도록 하려면 '지렛대'도 사용하고 언론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충고할 정도로 야비한 냉혈한으로 비춰진다. 이미 이번 미국의 대선은 지저분한 폭로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나에게 자선 만찬을 주재해달라거나, 자선 모임에 나와 연설을 해달라고 부탁할까? 나는 솔직해지고 싶다. 그것은 내가 위대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은 내가 부자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만찬회에 나가면 부자 친구들이 몰려와 테이블을 사고 물건을 사기 때문이다. 나는 그 게임을 이해한다. 싫다 해도 멋지고 근사하게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것이다. - '나의 일주일' 중에서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사업 스타일과 생활 방식, 부를 축적해 온 과정들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있다. 뉴욕 시에 초호화 빌딩인 트럼프 플라자를 지어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만든 과정, 애틀랜틱시티 최고의 카지노를 손에 넣게 된 거래 등 구체적인 협상의 뒷얘기까지 빼놓지 않고 들려주고 있다. 막대한 부와 권력을 쥔 재벌이 이렇게도 솔직하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다.

 

 

 

 

크게 생각하라

 

트럼프는 크게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대개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 일을 성사시킨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 때문에 규모를 작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이 그에게는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의 아버지는 브루클린과 퀸스에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을 건축했는데, 당시에도 그는 더 좋은 장소에 구미가 당겼다. 퀸스에서 일할 때 그는 포리스트힐스 쪽이 유망하다고 생각했으나, 조금 나이가 들어 보니 포리스트힐스보다는 5번로가 훨씬 유리한 장소였다. 그래서 일찍부터 맨해튼 쪽을 노리게 됐는데 이런 것으로 보아 그는 목표에 대한 센스가 있는 것 같다. 그는 좀 여유 있게 산다고 해서 만족하지는 않았다. 뭔가 기념비적인 건물, 큰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는 건물을 짓고 싶었다.

 

 

항상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라

 

트럼프는 부정적 사고의 능력을 믿는다고 말한다. 항상 최악의 경우를 고려한다는 것이다. 그는 위험부담을 최대한 줄이는 식으로 투자했다. 가장 좋은 예는 애틀랜틱시티에서의 경험이다. 별로 전망이 좋지 않은 대지 여러 필지를 구입했는데 성공 여부는 이 땅들을 한 필지로 팔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이 땅들을 하나로 묶은 뒤에도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취득세를 물고 수백만 달러의 경비를 들여가며 도박장 허가가 나오기 전까지 천천히 건물 공사를 진행시켰다.

도박장 허가가 나온 뒤에도 서두르지 않았다. 홀리데이 호텔그룹에서 동업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주변 사람들은 왜 수익의 절반을 포기하면서 동업을 하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홀리데이는 트럼프가 토지를 구입하기 위해 지불한 대금과 건축하는 몇년 동안 입은 손해까지 지불하겠다고 제안했다. 트럼프는 위험 부담을 다 떠안으면서 혼자 카지노를 소유하느니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절반만 소유하겠다고 말했다.

 

 

발로 뛰면서 시장을 조사하라

 

트럼프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그럴듯한 시장조사는 믿지 않는다. 언제나 스스로 조사를 해서 결론을 낼 뿐이다. 그는 결론을 내기 전에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기를 좋아한다. 땅을 살 생각이 있으면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학교는 어떤지, 도둑은 없는지, 장보러 다니기는 편리한지 물어본다. 자신이 사는 지방이 아닐 경우에는 택시를 잡아탄 뒤 운전사들에게 질문을 하기도 한다. 묻고 묻고 또 물어서 의문을 해결한 뒤에야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신통하게 아무에게든 직접 물어서 얻는 결론이 항상 자문회사의 조사 결과보다 유용했었다. 자문회사는 보스턴에서부터 직원을 보내 뉴욕에 방을 빌린 뒤 10만 달러씩 대가를 받고 조사를 해주지만, 별 신통한 결론이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조사가 끝났을 때는 이미 그의 사업이 완결된 경우가 허다하다.


그는 또 비평가들도 신통하게 보지 않는다. 비평가들이란 서로서로 영향을 주기 위해서 무언가 끄적거릴 뿐이며, 유행에 따라 너무나 잘 변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날은 하늘을 향해 치솟은 유리탑을 칭찬하다가 다음 주가 되면 옛날 건물을 끄집어내 세세한 부분과 장식들을 높이 평가하는 변덕쟁이들이다. 그들은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다.

 

 

지렛대를 사용하라

 

남이 갖고 있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해야 이긴다. 그렇지 않고서는 남보다 다소 유능하더라도 부족하다. 겨우 남과 비등해서는 일을 제댜로 할 수가 없다. 때로는 상상력과 세일즈맨으로서 자질이 필요할 경우가 있다. 거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상대방을 설득시켜야 한다. 거래를 할 때는 무엇인가 일을 추진시킬 지렛대를 이용해야 한다.

 

 

언론을 이용하라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물건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모른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프랭크 시나트라처럼 좋은 목소리를 가진 가수가 매일 그의 차고에서만 노래를 부른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남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동요를 일으키게 해야 한다.

 


홍보 책임자를 고용해 많은 돈을 주고 당신의 소유물을 팔리게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시장조사를 위해 조사원을 고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당신 스스로 활동하는 만큼의 효과는 절대로 얻을 수가 없다.


언론은 항상 좋은 기삿거리에 굶주려 있고, 소재가 좋을수록 대서특필하게 된다는 속성을 나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 당신이 조금 색다르거나 용기가 뛰어나거나 무언가 대담하고 논쟁거리가 되는 일을 하면 신문은 당신의 기사를 쓰게 된다. 따라서 나는 일을 조금 색다르게 처리했으며, 논쟁이 빚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내가 관여한 거래는 다소 허황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성격 덕분에 나는 아주 젊어서부터 꽤 사업 수완을 보였다. 신문이 나를 주목하게 되어 내 기사를 쓰지 못해 안달을 하게 됐다.


언론이 항상 나를 좋아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떤 때는 긍정적인 기사를 쓰지만 어떤 경우에 헐뜯는 기사가 나올 때도 있다. 그러나 순전히 사업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사가 나가면 항상 손해보다는 이득이 많기 마련이다. 수치로 보아도 명백하다. <뉴욕 타임스>에 1쪽짜리 전면광고를 하려면 4만 달러가 든다. 그래도 독자들은 광고 내용을 의심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가 그의 사업에 관해 다소 호의적인 기사를 한 줄이라도 쓰면 돈 한 푼 들지 않았지만 그 효과는 4만 달러 이상 나타난다.


흥미로운 것은, 개인적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비판적인 기사일지라도 사업적인 측면에서는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신시내티 촌놈, 부동산 사업에 눈뜨다

대학 시절 친구들이 신문의 만화나 가십을 읽고 있을 때 트럼프는 연방 주택관리국(FHA)의 저당권 상실 명단을 살펴보곤 했다. 이 명단은 정부에서 융자를 받았다가 저당권을 잃은 건물의 목록이었다. 여기서 트럼프는 스위프튼 빌리지를 찾아냈다. 대학생 시절 아버지와 함께 건물을 사들였는데 그가 벌인 최초의 큰 사업이 됐다.

여기서 그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려준다. 정부 부처와 저당권이 압류된 물건을 거래해보면 정부는 될 수 있으면 빨리 손을 떼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일을 떠맡을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건물들은 매우 싼 가격으로 사들일 수 있다고 충고한다. 트럼프 부자부자는 남들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스위프튼 빌리지에 최소의 가격으로 입찰을 했고, 건물을 낙찰받았다. 

아파트 단지를 인수한 뒤의 성공 여부는 관리 및 임대에 따라 결정된다고 그는 말한다. 임대료를 낼 능력도 없고 건물을 험하게 쓰는 나쁜 입주자는 오히려 내보내는 게 득이다. 나쁜 입주자를 내보낸 뒤에는 약간의 손질로 임대료를 올려받아 수익을 올린다. 당시 뉴욕에서는 보수를 하더라도 임대료를 올릴 수 없게 법으로 제한돼 있었지만, 신시내티에서는 가능해 즉시 임대료를 올려 수입을 늘렸다. 특히 그는 청소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아파트 관리인을 고용할 때 그의 기준은 도덕성이 아니라 철저하게 성과주의였다. 그는 전과자여도 일만 효율적으로 하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고용했던 전과자 출신 관리인이 빼돌린 돈이 1년에 5만달러쯤은 될 것이라고 추산했지만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한다고 판단해서 계속 고용했다. 

 

 

레 클럽에 가입하다

트럼프가 맨해튼에서 첫 번째로 했던 일은 당시 가장 인기 있고 배타적이던 사교클럽 '레 클럽'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이스트 54번가에 위치한 이 클럽은 75세의 부유한 노인네가 스웨덴 출신의 금발 미녀 세 명을 데리고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이 클럽에 가입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전화로 가입 신청을 했다가는 퇴짜 맞기 일쑤였다. 어느날 그는 클럽 회장에게 보낼 것이 있다는 거짓말로 연락처를 알아낸 후 직접 회장을 만나 가입 승낙을 받았다.

레 클럽에 나가는 동안 성공한 사람들과 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밤마다 밖에 나가 즐거운 시간을 가졌지만 그것 역시 일의 연장이었다. 뉴욕이라는 곳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배울 수 있었으며, 뜻하지 않던 사람을 만나 거래를 틀 수 있었다. 또 유럽과 남미 같은 곳에서 온 갑부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나중에 트럼프 타워와 트럼프 플라자에서 가장 비싼 방들을 사들였던 것이다.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트럼프 호텔

 

 

카지노 사업을 시작하다

트럼프는 1975년 말 어느 날 카지노 사업이 경제성이 있다는 사실에 눈떴다. 오랫동안 공을 들였던 코모도어 호텔에 관한 상담 때문에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들은 라디오 뉴스 덕분이었다. 라스베이거스와 네바다에서 호텔 종업원들이 투표를 통해 파업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라스베이거스에 2개의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던 힐튼 호텔의 주가가 폭락했다는 것에 관심이 끌렸다. 전 세계에 걸쳐 최소한 100개의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의 주가가 그 중 겨우 2개의 호텔에서 파업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렇게 폭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해답은 카지노에 있었다. 힐튼은 전 세계에 걸쳐 150개 이상의 호텔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2개의 카지노 호텔에서 얻는 수익이 이 회사가 거두어들이는 순이익의 거의 40%를 차지하고 있었다.

동물적 감각이 뛰어난 그는 먹잇감을 놓칠리가 없다. 지체없이 카지노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애틀랜틱시티로 떠났다. 당시엔 에틀랜틱시티에 국한하여 도박을 합법화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는 도박을 즐기지는 않았지만 도박 자체에 대한 도덕적인 저항감은 없었다. 오히려 뉴욕 증권거래소야말로 세계 최대의 도박장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힐튼 카지노 쟁탈전

트럼프는 힐튼 카지노를 인수 협상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방의 자존심을 긁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힐튼이 계약을 무효로 하려는 낌새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3일간 계속 협상을 해놓고 한마디 해명도 없이 발뺌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비도덕적인 일일 뿐 아니라 명예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파렴치한 짓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언성을 높여 나무라지는 않았다. 거래의 대부분은 이미 협상을 거쳐 합의점을 찾았기 때문에 공연히 힐튼 측이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계약에 합의했다.

 

 

행동하는 실천가를 선호하다

트럼프는 방송국 NBC가 자신의 건물에 들어오고 싶어할 정도로 매력적인 건축물을 만들고 싶어했다. 당시 두 사람의 건축가와 면담을 했는데 한 사람은 리처드 메이어로 뉴욕 건축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비평가들도 칭찬했고 추종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사색하고 분석하고 논리를 따지며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는 메이어가 열정적인 인물이 아님을 간파했다.

다른 건축가 헬무트 얀은 달랐다. 독일 태생인 얀은 시카고를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었고 뉴욕 건축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국외자였지만 사업에 대한 안목이 높고 선전에 아주 능했다. 그는 처음 만난 지 3주일도 안 돼 건물의 축소모형을 가지고 와 트럼프를 흡족하게 했다. 트럼프는 1985년 얀을 건축 책임자로 고용했다.

 

 

다음엔 무엇을?

"나와 내 인생에서 자랑거리라고는 두 가지밖에 없다. 난관을 잘 극복한다는 점과 좋은 사람들로 하여금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준다는 점이다. 앞으로 남은 한 가지 과제는 지금까지 나 자신만을 위해 써온 이 같은 재능들을 이제부터는 남을 위해 훌륭히 발휘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렇다고 오해하진 말라. 나는 다시 거래, 큰 거래를 할 계획을 세울 것이다, 그것도 불철주야로"

 

 

항상 최고를 지향하다

 

항상 최고를 지향하는 트럼프는 "거래를 위해 거래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거래 자체를 사랑하는 프로페셔널이다. 미국 대통령에 도전하는 것도 바로 그에겐 거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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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동서대전 - 이덕무에서 쇼펜하우어까지 최고 문장가들의 핵심 전략과 글쓰기 인문학
한정주 지음 / 김영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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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8세기를 중심으로 멀게는 14세기부터 가깝게는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을 비롯해 중국, 일본 그리고 서양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장가 혹은 작가들이 선보인 글쓰기의 미학과 방법을 교차 비교해 살펴보면서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라는 문제에 대해 필자 나름대로 접근해 본 작업의 결과물이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동서양 글쓰기의 핵심은 무엇일까?

 

18세기 조선을 강타한 동심童心의 글쓰기는 무엇이었는가? 신세계를 향해 떠난 미친 선비 서하객의 60만자 일기에는 어떤 욕망과 포부가 담겨 있었는가? 조닌 계급의 애욕과 삶을 대변한 이하라 사이카쿠의 소설은 어떤 시대적 상황 속에서 태어났는가? 풍자의 글쓰기가 유행했던 18세기 영국과 19세기 일본의 제국주의 사회는 어떻게 서로 닮아 있었는가? 서양의 마르코폴로에서 중국의 이탁오와 공안파, 그리고 조선 호모 스크립투스 심노숭에 이르기까지 39명의 동서양 글쓰기 천재들로부터 글쓰기의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 이는 고故 김수영 시인의 문장론이다. 전위 문학을 고전에 적용하면 '기궤첨신奇詭尖新'한 문학이다. 여기서 기궤奇詭란 '기이하고 괴이하다'는 뜻이고, 첨신尖新이란 '날카롭고 새롭다'는 말이다. 조선에서 기궤첨신한 문학의 대표 작가로는 스승 이익을 넘어 문원文苑(재야 문단)의 권력을 지배했던 혜환 이용휴를 꼽을 수 있다.

부채를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고, 물을 뿜어 무지개를 만든다. 재 가루로 달무리를 이지러뜨리고, 끓는 국으로 여름철 얼음을 만든다. 나무로 만든 소를 걸어가게 하고, 구리로 만든 종을 스스로 울게 한다. 소리로는 귀신을 불러오고, 기운으로는 뱀과 호랑이를 막아낸다. 서방 세계의 끝에서부터 동해 바다의 끝까지를 상상 속에서 눈 깜빡할 동안에 한번 둘러보고, 천상 세계에서부터 지하 세계까지를 생각 속에서 순식간에 도달한다. 백세百世 이전의 과거로 거슬러올라가 그 세상을 기록하고, 천 년 이후의 미래를 미루어 헤아려 그 세상을 예측한다. 비록 지나가버린 옛날의 수많은 철인哲人들도 오히려 타고난 재주와 주어진 역량을 다 발휘하지 못했다. 이렇게 거대한 직관과 지혜 그리고 거대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피와 살덩이에 불과한 7척 몸뚱어리에 부림을 당해서 주색과 재물과 혈기에 빠져서 지낸다면 어찌 크게 애석한 일이 아니겠는가? - '이용휴, <혜환잡저>, 조운거 군에게 주다' 중에서 

마치 상상 속 동물인 곤어鯤魚와 대붕의 변신과 비상을 담은 우화를 통해 자유정신을 묘사한 <장자> '소요유逍遙遊' 편을 읽는 것 같다. 특히 상상을 통해 서방 세계의 끝에서 동해 바다의 끝까지 그리고 천상 세계에서 지하 세계까지를 경각頃刻의 시간에 일주한다는 발상과, 백세 이전의 과거를 기록하고 천 년 이후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묘사는 이용휴가 문장 속에 담은 기상과 기백이 얼마나 거대하고 담대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용휴의 잠언 <환아잠還我箴>은 유학사 최고의 이단자 이탁오의 <동심설>을 다시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환아잠>에서 이용휴는 본래의 나를 순수한 천리로 본 다음, 성장하면서 생겨나는 지각과 견식과 재능이 도리어 순수한 천리를 해쳐 참다운 나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논리를 구사하는데, 강명관 교수는 이용휴의 <환아잠>이 이탁오의 <동심설>을 18세기 조선 버전으로 번역한 것이라고 하면서 두 글의 논리가 완전히 동일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왜 이용휴는 <동심설>을 직접 인용하지 않았던 것일까? 강명관 교수는 그 까닭을 "당시의 조선 지식인이 도저히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 없는 이탁오의 이단성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유의 연장선상에서 이용휴는 "모든 성인은 지나가는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언사까지 서슴지 않았다. 주자 성리학적 이데올로기를 전면적으로 거부한 이탁오의 이단적 사유를 이용휴 자신의 글에 담았던 것이다. 생명체의 진화와 혁신은 '돌연변이의 출현'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법칙은 문장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당대 사람들에게 낯선, 즉 익숙하지 않은 실험적이고 창조적인 문장은 대개 기이하고 괴상한 문장으로 취급받아 배척당하기 일쑤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이러한 문장의 출현이 글쓰기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하고 일거에 혁신했다.

 

 

동심의 글쓰기

소품의 글쓰기

풍자의 글쓰기

기궤첨신의 글쓰기

웅혼의 글쓰기

차이와 다양성의 글쓰기

일상의 글쓰기

자의식의 글쓰기

자득의 글쓰기

 

 

풍자의 글쓰기

 

조너선 스위프트는 여행기의 형식을 빌려 세상과 인간을 통렬하게 비판 풍자한 <걸리버여행기>를 집필했다. 일찌기 그는 "풍자란 그것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자신의 얼굴만 빼놓고 다른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거울이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따라서 풍자가는 마땅히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하고 쾌하고 분하게 만들어 자신과 세상과 인간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소인국은 전통적으로 계란의 큰 쪽 끝부터 먼저 깨는 관습이 있었다. 그런데 현 황제의 할아버지가 어릴 적 관습대로 계란의 '큰 쪽 끝'을 먼저 깨다 손가락을 다치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 계란의 '작은 쪽 끝'을 먼저 깨야 한다는 새로운 법령을 만들어 시행한다. 그리고 이 법령을 위반한 사람에 대해서는 엄벌에 처했다. 그러자 전통적인 관습에 충실한 사람들이 수차례에 걸쳐 반란을 일으켰고, 이 때문에 어떤 황제는 목숨을 잃고 어떤 황제는 왕위를 잃었다. 그런데 이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들이 모두 이웃한 제국 블레프스큐의 황제들이다. 그들은 반란을 지휘하다가 진압되거나 실패하면 자기 제국으로 몸을 피했다가 다시 소인국에 나타나 반란을 일으키곤 했다. 이 때문에 걸리버가 소인국에 갔을 때, 이 나라는 블레프스큐 제국과 36개월 동안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영국의 종교 분쟁, 즉 구교와 신교 간의 논쟁과 다툼을 풍자한 것이다.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계란의 '큰 쪽 끝'을 깨야 한다고 주장한 측은 구교를, 새로운 법령에 따라 계란의 '작은 쪽 끝'을 깨야 한다고 주장한 측은 신교를 비유한 것이다. 스위프트가 계란의 어느 쪽 끝을 깨느냐를 두고 다투는 소인국의 이야기에 빗대 신교와 구교의 종교 분쟁을 풍자한 것은 곧 이 종교 논쟁과 다툼이 별반 중요하지 않는 지극히 사소한 문제를 두고 싸우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는 조롱과 비웃음이다.

 

여기에서 현 황제의 할아버지는 종교개혁을 주도한 헨리 8세를, 반란 도중 목숨을 잃은 황제는 청교도혁명 때 처형당한 찰스 1세를, 왕위를 잃은 황제는 명예혁명 때 프랑스로 망명한 제임스 2세를, 그리고 블레프스큐 제국은 영국의 신구교 종교 분쟁과 왕위 계승에 개입한 프랑스를 상징하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소인국의 나라' 속 풍자는 현실 세계에 대한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다.

 

 

기궤첨신의 글쓰기

 

사이카쿠의 소설이 대중적으로 성공한 배경에는 "조닌들의 성격과 당대 도시의 풍경을 사실적이고 생생하며 유머러스하게 풍자하는 데 특출난 문학적 재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두 사이카쿠 자신이 상인 계급, 곧 조닌 출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호색일대남>에 묘사되고 있는 오사카, 교토, 에도 등 대도시 유곽의 주요 향유자는 조닌들이었기 때문에, 유곽의 풍경과 그곳에서 일어난 온갖 사건들은 곧 상인 계급의 생활 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조닌 문화 중 하나였다. 오사카의 유곽 문화와 뒷골목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그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린 다음과 같은 대목은 일찍이 존재했던 그 어떤 문학작품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다. <호색일대남>이 호색 소설 혹은 풍속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리얼리즘 문학의 원형이라는 찬사를 받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오사카에 도착한 요노스케는 오사카 동남부, 다니마치 거리의 후지노다나에 집을 얻어 귀이개 등을 만들며 덧없는 나날을 보냈다. 여전히 연애질은 계속되었고, 고타니나 후다노쓰지의 사창, 월정 계약의 첩, 남자를 좋아하는 식모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찾아다녀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가 본디 이 길에 몸 바쳐왔던 터라 남들이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기생들의 기둥서방을 하기도 했다. 이런 유의 일에 종사하는 여자들은 호적 조사가 두려워 한 남자를 지아비로 가장하고 자신은 매춘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이 관례이기도 했다. 나카데라초나 오바시 등 절이 많은 동네의 중을 상대로 하는 사창이 있긴 하나 기둥서방들은 연말에 유곽 부근은 얼씬도 못하는 노인네들 돈을 등쳐먹는 일을 하기도 한다. 오, 파파노인이 되어도 색의 번뇌는 어찌할 수 없나니.

 

 

차이와 다양성의 글쓰기

 

박제가<정유각집>에서 정조에게 음식과 맛에 비유해 사물의 천성은 제각각 달라서 어느 한 가지로 귀결시킬 수 없는 것처럼, 문장이란 다양한 것, 곧 시대에 따라 변하고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이 본성이기 때문에 "문장의 도는 한 가지로 일괄해서 말할 수가 없다"라고까지 주장했다.

 

정조의 문체반정을 반박하는 박제가의 논리는 이렇다. 짠맛, 신맛, 매운맛, 쓴맛, 단맛 등 음식의 맛이란 차이와 다양성이 본질이며 천성이다. 그런데 짠맛이 나는 소금과 매운맛이 나는 겨자와 쓴맛이 나는 찻잎을 두고 매실과 같은 신맛이 나지 않는다면서 나무라거나 처벌한다면, 그것은 소금과 겨자와 찻잎의 본성을 무시하는 것일뿐더러 사물이 지니는 천성을 폐기하려는 것에 다름없다. 만약 이렇게 세상의 모든 맛을 매실의 신맛에 맞추라고 한다면 온 천하의 맛은 반드시 사라지고 말 것이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정조의 명령대로 세상의 모든 문장을 순정한 고문에 맞추라고 한다면 이로 인해 온 천하의 문장은 반드시 없어지고 말 것이다.

 

맛으로 말한다면 소금으로는 짠맛을 내고, 매실로는 신맛을 취하고, 겨자에서는 매운맛을 가져오고, 찻잎으로는 쓴맛을 냅니다. 지금 짜지도 않고 시지도 않고 맵지도 않고 쓰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소금과 매실과 겨자와 찻잎에게 죄를 묻는 것은 마땅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반드시 소금과 매실과 겨자와 찻잎이 그러한 것을 책망하면서 "너는 어찌하여 서적과 같지 않느냐?"하고 하거나 국과 고기에게 "너는 왜 상의 앞에 자리하지 않느냐?"라고 말한다면, 지목을 당한 것들은 실질을 잃어버리고 천하의 맛은 폐해지게 될 것 입니다. - '<정유각집>의 비옥희음송 병인' 중에서 

 

 

일상의 글쓰기

 

상추쌈을 예찬하며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듯이 세밀하고 생동감 넘치게 상추쌈을 먹는 방법을 묘사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음식인 용미봉탕龍味鳳湯이나 팔진고량八珍膏粱과 같은 음식보다 더 맛있다고 한 글 역시 일상의 하찮은 일을 소재로 삼아 맛깔나게 지어낸 한 편의 희작이다. 특히 상추쌈을 먹는 중에 우스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번 크게 웃기라도 하면 밥알과 상추 잎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사방에 흩뿌려질 것이니 조심하라는 경고 아닌 경고 앞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서 식사나 회식 중에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광경이기 때문이다.

매년 여름 단비가 처음 지나가고 나면 상추 잎이 아주 잘 자라서 마치 푸른 비단 치마처럼 싱싱해 보인다. 커다란 동이의 물에 한참 동안 상추를 담갔다가 깨끗하게 씻어낸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받아 두 손을 정갈하게 씻는다. 왼손을 크게 펼쳐서 하늘에서 내리는 장생불사의 감로수를 받아먹기 위해 만들었다는 승로반承露盤처럼 손 모양을 만든 다음 오른손으로 두텁고 커다란 상추를 골라서 두 장을 뒤집어엎고 손바닥 위에 펼쳐놓는다. 이때 비로소 흰밥을 취해 큰 숟가락으로 두드려서 마치 거위 알처럼 둥글게 모양을 만들고 상추 위에 얹어놓는다. 그리고 흰밥의 가장 윗부분을 약간 평평하게 다져놓고 다시 젓가락을 들고 얇게 회를 뜬 소어蘇魚(송어)를 집은 다음 황개장黃芥醬에 담갔다가 흰밥 위에 올려놓는다. ... 처음 상추쌈을 씹을 때에는 옆 사람과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약 삼가 그렇게 하지 않고 한 번 깔깔거리며 웃기라도 하면, 입에서 내뿜은 하얀 밥알이 이리저리 튀고 파란 상추 잎이 이곳저곳으로 흩뿌려질 것이다. 반드시 입에 든 모든 것을 다 뱉어내고 난 다음에야 멈추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10여 차례 상추쌈을 목구멍 아래로 삼키고 나면, 나는 진실로 천하의 진기한 맛인 용미봉탕과 천하의 진귀한 맛인 팔진고량과 같은 허다한 음식조차 알지 못하는 지경이 되고 만다. - '이옥, <백운필>의 <담채>' 중에서

특히 상추쌈을 즐겨 먹었던 우리의 음식 문화를 호방하고 유쾌한 필치로 묘사한 이 글을 보고 있으면, 이옥이 글감의 선택에서 얼마나 얽매임이 없이 자유로웠는가, 표현의 기법에서 얼마나 개성적이고 자유분방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자신만의 감성을 담아 세태기 혹은 풍속기를 즐겨 썼던 이옥의 글을 통해, 필자는 다시 한 번 일상생활 속 신변잡기와 잡감을 기꺼이 글로 옮겼던 18세기 특유의 미학 의식, 즉 일상성을 접하게 된다. 

 

 

자득의 글쓰기

 

'자득'에 관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첫째 독서, 둘째 사색, 셋째 글쓰기 등 세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쇼펜하우어의 독서에 관한 자득의 철학부터 알아보자. 독서는 분명 글쓰기에 필수불가결한 주춧돌이다. 그러나 모든 독서가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해로운 독서도 있다. 그렇다면 해로운 독서란 어떤 독서인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독서, 생각을 마비시키는 독서가 바로 해로운 독서이다. 쇼펜하우어는 "너무 많이 책을 읽는 사람, 거의 종일토록 독서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마치 "말만 타고 다니는 사람이 걸어 다니는 것을 점차 잊어버리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주장한다. 대개 학자라는 사람들의 독서라는 게 그렇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독서에 대해 매우 근본적인 비판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독서는 무용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일 만큼 그의 견해는 급진적이다.

독서란 자기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대신하여 생각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그 사람 마음속의 과정을 반복하는 데에 그친다. ... 많은 학자의 경우가 이러하다. 그들은 독서를 함으로써 바보가 되었다. 여가가 생기면 곧 책을 손에 쥐는 것처럼 쉬지 않고 독서를 계속하는 것은 쉬지 않고 손을 놀리는 일 이상으로 정신을 불구로 만든다. ... 스프링이 계속 다른 물체의 압력을 받으면 탄력을 잃는 것처럼 정신 또한 다른 사람의 사상을 받으면 탄력을 잃게 된다. 영양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위를 해치고, 그 때문에 몸 전체를 해치는 것처럼 정신의 영양도 너무 많이 섭취하게 되면 정신은 질식해버린다. - '쇼펜하우어, <인생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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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브릭 로맨스 - Sewing in the Garden
정은 지음 / 성안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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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메마르지 않는 감동이 필요하다. 특히 가슴 사무치게 느껴지는 감동은 우리의 작업에 흠뻑 스며들어 강력한 빛을 발하게 된다. 집중을 요하는 작업을 앞두고 있다면 급하게 작업에 뛰어들기보다 우선은 충분히 숙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럴 때 자신의 작업에 영향을 주면서 마음의 위안을 안겨주는 아티스트를 안다는 건 커다란 이점이다. 언제라도 그들의 책을 꺼내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홀로 나서는 산책, 여행, 명상의 시간 속에서 앞으로의 몰입을 이어나갈 에너지를 채울 수 있다. - '프롤로그' 중에서

 

 

패브릭과 사랑에 빠지다

 

얼마전 아내의 요청으로 시골집에 다녀왔다. 홀로 계신 어머님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러 가는 길에 부탁을 받았다. 결혼 후 아내는 어머님이 사용하시던 물품 중에서 물려받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어머님의 오랜 손 때가 묻은 재봉틀이었다. 요즘은 그리 흔하지 않은 '싱어'사 제품이다. 이것을 오는 길로 가져와 달라는 것이었다.

 

아내는 나의 어머님 만큼이나 재봉질을 좋아했다. 두 딸을 기르면서 왠만한 옷들은 손수 제작하거나 고쳐서 입히곤 했다. 우리들의 결혼은 한참 늦은 만혼晩婚인 탓에 아내의 친구들은 자녀들에게 입히던 깨끗하고 예쁜 옷들을 골라 아내에게 주곤 했다. 버리기엔 아까운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시집올 때 혼수로 장만해 온 'ㅂ' 미싱이 자주 고장나서 속을 태우곤 했었다.

 

심지어 내가 입는 잠옷, 덮고 자는 이불과 요, 베개 커버, 식탁 보, 책상 보 등은 모두 아내의 작품이었다. 집안의 어른끼리 맺어준 인연이라 사실 아내를 잘 모르고 결혼했기에 이런 궁금증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는 미대에 진학하려고 했을 정도로 예술적 재능이 있었지만 장인 어른의 극구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아내에게 선물하려 한다. 아내의 취향에 꼭 들어맞고 평소에도 늘 관심이 많은 패브릭 관련 제품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서다. 책의 내용은 모두 여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작가의 스튜디오, 가방, 앞치마, 스커트, 이불, 커튼, 자투리 원단 등이 잇달아 소개되고 있다. 특히, 화려한 색상과 많은 사진 컷들이 나에겐 무척 인상적이다.

 

작가 정은은 영어학을 전공한 후 지금껏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본업으로 삼고 있다. 취미 생활로 시작한 패브릭 작업이 이젠 그녀의 일상에 있어 중요한 한 축을 맡고 있다. 2012년 개인전을 시작한 이래 매년 전시회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진행해 온 작업과 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 책에 담고 있다. 

 

 

             

 

작가의 작업 공간은 전주시에서 번화가에 속하는 중화산동에 위치하고 있다. 8년 전 이곳에 발을 내딛었을 때는 골목에 커피숍이 한 곳이었고, 듬성듬성 이런저런 가게들이 있었다. 이후 몇 차례 이사 끝에 현재의 1층에 작업실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패브릭 작업을 행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고 나아가 이들이 소중한 인연으로 연결될 수 있기에 굳이 1층을 고집했다.

 

비록 북적거리는 도심 속에 작업실이 있지만 한 골목 차이로 비교적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이다. 가끔 진열창 외부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행인들도 있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용기를 내서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한적한 동네에 굳이 갤러리로 꾸미지 않아도 충분히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작업실을 보여줄 수 있다.

 

수국, 리시안셔스, 아네모네, 라넌큘러스, 카네이션, 금어초, 델피니움, 양귀비, 설유화, 금잔화, 부르니아, 동백꽃, 튤립, 접시꽃 등 책 속엔 많은 꽃 사진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패브릭 작업을 몰랐다면 아마도 꽃을 다루는 플로리스트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게 꽃이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슬그머니 웃음을 지었다. 나도 한때 야생화에 미쳐서 넓은 화단이 있는 아파트 1층으로 이사했고, 철철이 야생화를 만나려고 이산저산 다녔던 생각이 떠올라서다.

 

 

 

 

작가는 패브릭작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만들었던 작품이 가방이란다. 4년 전에 기록한 갯수가 1,000을 넘어섰다. 이렇게 많이 제작하다보니 이젠 선호하는 가방이 몇 종류로 압축된다고 한다. 친환경 에코백, 크로스백, 클러치백, 빅백, 백팩 등이 차례로 책에 소개되면서 에코백 만들기와 염색하기도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여성들의 패션에 있어서 가방은 필수적인 아이템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적어도 가방을 두 개는 메고 나온다. 서너 권의 책과 스카프, 파우치를 넣을 수 있는 비교적 큰 사이즈의 가방 하나와 핸드폰과 지갑을 넣을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크로스백 하나. 이 두 가방은 어딜 가나 나의 필수품이다. 가끔 짐이 더 있으면 가볍게 접을 수 있고 은근히 수납도 많이 되는 에코백을 활용한다. 여행할 때도 백팩의 앞주머니에 에코백을 작게 접어서 꼭 넣고 다닌다. 이게 정말 유용하게 사용된다" - 36 쪽에서

 

피곤하고 지친 자들은 모두 이곳으로 오라. 남녀노소 불문하고 뭔가 허전하거나 피곤할 때 찾는 것이 있다. 바로 쿠션이다. 포근한 감촉이 좋아서다. 의자에도 소파에도 쿠션은 이들의 친구다. 크기도 색상도 각양각색이라 어떨 때는 베개와 헷갈리기도 한다. 커버를 많이 준비해둔다면 자주 교체함으로써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으므로 기분 전환에도 무척 좋다. 

 

 

 

어느 집에나 앞치마는 하나쯤 있을 것이다. 앞에서 보면 마치 스커트를 입은 것처럼 보이는 스커트형 앞치마를 작가는 선호한다고 한다. 원피스형이든, 스커트형이든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든다면 더욱 애착이 갈 것이다. 취미로 뭔가를 만드는 핸드메이드의 진수는 무엇을 표현하는 것에 있다. 눈과 귀, 촉감 등 우리 몸 감각기관의 촉을 세우고 진지하게 집중해보라. 그 과정 자체가 바로 기쁨이 된다. 서툴고 귀찮다고 방치해두지 말고, 한 번쯤 관용을 베풀어서 당신의 손이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기회를 줘보면 어떨까? 

작업을 하다 보면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용도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 어떤 수작업이든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패브릭 작업은 용도의 전환이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이 작품 역시 싱글사이즈 이불을 생각하면서 시작했으나 결과물은 커튼이 되었다. 햇살이 쏟아지기라도 하면 그 느낌은 마치 성당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는 것처럼 찬연해진다.

 

비록 결과물이 커튼이 되었을지라도 그 용도는 도 다시 바뀔 수 있다. 어중간한 공간을 가리거나 공간을 분리하고 싶을 때 가리개로 사용하면 딱이다. 커튼이든 가리개든 한 폭의 패치워크가 선사해주는 다챠로운 색상의 에너지가 우리들에게 한없이 생기를 준다. 잠시 시선을 고정해 이를 바라볼 때 마음 한 가득 풍요로움이 느껴질 것이다.

 

 

작가가 패브릭 작업에 주로 사용하는 원단은 디자이너 원단이다. 텍스타일 디자이너 특유의 개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작업시 기분이 좋다. 그리고 색감의 표현이 우수하고 세탁 후에도 색이 전혀 변하거나 탈색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패브릭은 20수 새틴 원단과 30수 원단을 사용한다.

 

본격적으로 바느질 작업을 할 때엔 꼭 필요로 하는 도구들이 있다. 가위, 쪽가위, 시접자, 재봉틀, 다리미, 줄자, 연필, 시침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천을 자를 때 커터기를 사용하면 여러 장을 한꺼번에 편리하게 자를 수 있지만 칼날의 교환이 번거롭고 날카로운 칼날에 손을 베일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묵직한 쇠가위가 의외로 섬세하게 천을 잘라주지만 오래 작업하다 보면 손목이 아프다. 그래서 작가는 스프링이 달린 가위를 추천한다.

 

 

자신만의 감성을 표현하자

 

책을 덮는 순간 자신이 직접 만들어봐야겠다는 결심이 설 것이다. 남자인 나도 그런데 여성들이라면 더 할 것이다. 꽃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머그컵을 사더라도 꽃 그림이 있는 제품을 찾듯이 각자의 감성에 따라 패브릭 작업은 각양각색으로 진행될 것이다. 벌써 머리로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재봉질을 즐겨하는 아내에게 이 책을 선물하면서 야생화 그림이 들어간 등받이 쿠션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잠재되어 있는 스스로의 내면의 끼를 발산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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