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의 탄생 - 차가움을 달군 사람들의 이야기 사소한 이야기
톰 잭슨 지음, 김희봉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제목에 냉장고가 들어간 책은 대부분이 요리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냉각 기술을 대표하는 냉장고를 둘러싼 온갖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류는 물건을 뜨겁게 하는 방법은 비교적 빨리 배웠다. 마찰을 일으키거나, 불을 지르면 된다. 그러나 차갑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차갑게 하는 방법을 완전히 이해한 것은 근대 학이 거의 성숙 단계에 들어간 뒤의 일이다. - '옮긴이 서문' 중에서

 

 

지금은 너무도 흔한 냉장에 관한 이야기들

 

이 책은 고대의 석빙고 시대부터 현대를 지나 미래에 이르기까지 연대순으로 차가움을 만드는 방법이 알려지게 되는 이야기와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생활에 미친 영향을 다루고 있다. 차가움을 향한 탐구가 진행되는 와중에 프랑스에서는 태자가 독을 탄 얼음물을 마시고 독살되었고, 영국에서는 왕이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인 얼음 창고에서 꾸며진 음모에 의해 퇴출되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대공大公이 얼음을 넣어 만든 칵테일을 마시고 취하곤 했다. 호수에서 얼음을 캐 세계 각지로 팔아 갑부가 된 미국인이 있었고, 이들이 월든 호수까지 진입하는 바람에 은둔의 삶을 즐기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방해받기도 했다.

 

식품 보관과 운반의 거대한 체계가 우리를 지탱해주고 있다. 이 체계가 잠시라도 어긋나면 도시의 일상은 파괴될 것이고, 수십만 명의 도시민들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미친 듯이 싸우는 짐승이 될 것이다... 현대 문명은 냉장고에 의존한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 '새로운 빙하 시대'(1931년에 발행된 한 잡지에 실린) 중에서

 

사실 냉각 기술은 식품 보관 말고도 무궁무진한 용도가 있다. 에어컨은 물론이고, 드라이아이스, 액체 질소, 액체 헬륨 등을 만들 수 있는 극저온 기술은 정자, 배아, 줄기 세포의 보관을 가능하게 만듦에 따라 생명 공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MRI나 자기 부상 열차 등의 편의를 제공하기도 한다.

 

인류는 적어도 10만 년 전에 불을 다루는 법을 터득했고, 그 뒤로 내내 열과 빛을 통제했다. 그리고 우리는 겨우 백 년 전에 차가움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이 승리의 혜택을 모든 인류가 골고루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오늘날 차가움과 뜨거움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은 상식을 넘어선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것을 알아내기 위해 애쓴 수많은 학자들에게는 전혀 명료한 사실이 아니었다. 차가움과 뜨거움의 진실을 밝히려고 했던 학자들은 별똥별을 관찰하고 영구 운동 장치를 만들기도 했지만, 요정의 지혜를 빌리고 생쥐를 고문하는 등의 얼핏 보기에 기이한 일도 벌였다.

 

코르넬리우스 드레벨, 로버트 보일, 제임스 줄 같은 사람들이 밝혀낸 지식은 열역학의 기초가 되었다. 열역학은 에너지의 흐름에 대해 알아보는 물리학의 분야이다. 냉장고는 '열펌프'다. 열펌프의 반대 개념은 '열 배출구'다. 이 개념은 뜨거운 곳의 에너지가 덜 뜨거운 곳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열은 태양에서 쏟아져 나와서 주위의 물체들(지구도 포함된다)을 데운다. 지구는 ㄷ다시 열에너지를 텅 빈 우주, 즉 궁극의 '열 배출구'로 내보낸다. 냉장고의 경우, 냉장실의 열을 밖으로 내보내고, 그 결과로 내부에 있는 것들이 차가워진다.

 

추운 겨울에 만들어진 얼음을 저장했다가 더운 여름에 사용하는 방법은 오랜 옛날에 왕이나 부자, 즉 권력자들을 위한 틈새 기술이었다. 특히 아시아에서 이 기술이 발전했는데, 우리나라에도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빙고를 비롯해 조선시대의 서빙고와 동빙고가 선조들의 유산으로 남아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서기 1세기 신라 3대 노례왕(유리왕)때 얼음창고(빙고氷庫)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는 서기 505년 지증황 때 얼음창고를 관리하는 빙고전氷庫典이라는 관청을 설립했다고 한다. 아무튼 동양의 이 기술은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으로 유래되어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의 귀족들은 차가운 와인와 냉동 디저트를 즐길 수 있었다.   

 

 

 

 

 

 

페르시아의 냉각 기술

 

페르시아의 냉각 기술은 바지르, 카나트, 야크찰이라는 세 부분을 바탕으로 한다. 야크찰은 말 그대로 '얼음 구덩이'를 뜻하며, 현대의 페르시아에서 냉장고라는 뜻으로 쓰인다. 카나트는 일종의 지하 관개수로이며, 바지르는 '바람을 잡는다'는 뜻으로,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통풍 설비이다.


페르시아가 고대 세계에서 얼음의 중심지가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연중 기온 차가 크다. 물이 얼 정도로 추운 겨울밤이 많고, 여름낮에는 얼음이 귀한 대접을 받을 만큼 덥다. 둘째, 이 지역은 큰 강이 없고 건조하다. 공기 중의 습도가 낮아서 얼음이 잘 얼고, 지표수가 부족해서 지하수를 관개에 이용해야 했고, 증발을 막기 위해 관개수로를 지하에 만들어야 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고대 페르시아 사람들은 물을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차가움의 궁극적인 원인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이 경구는 수백 년 동안 떠돌면서 차가움을 이해하려는 노력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차가움의 궁극적인 원인'은 바로 물이었다. 고대에는 북극에 거대한 차가움의 저장소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죽을 무렵, 그리스의 탐험가 피테아스가 이 신화적인 땅에 방문했다지만, 이 항해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남아있지 않다.

 

피테아스는 이 탐험에서 영국 섬을 발견했고(사실은 그가 여행하기 전에도 이미 알려져 있었다), 북쪽으로 엿새 동안 더 항해해서 북극에 도착했다고 한다. 거기에서 그는 원소들이 진창과 얼어붙은 안개 속에서 뒤엉키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설명으로 추측컨대, 아마도 북극 부근을 여행한 듯하다. 학자들도 그가 북해를 둘러가서 노르웨이 해안의 트론드하임에 가까운 어딘가에 도착, 영국 해안을 따라 귀환했다고 추측한다.

 

잠비스타 델라포르타'차가움의 궁극적인 원인'을 밝혀냈다. 그는 염화암모늄과 보통의 소금을 섞어서 물을 차갑게 했고, 그다음에는 눈을 많이 넣었다. 여기에 물이 가득 찬 유리병을 담갔다. 이 유리병을 부드럽게 두드리면서 휘저어서 속에 든 물이 순식간에 얼렸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놀라거나 공포에 떨었다. 이 기술은 실생활에 바로 적용됐는데, 프란체스코 대공은 궁전에서 시원한 포도주를 마시고 곤드레만드레가 되었다. 그는 대공의 자리를 탐내던 동생에게 결국 독살을 당했다.

 

 

얼음의 제왕 튜더 가족

 

1820년대 중반까지, 튜더 가족은 날로 커져가는 얼음 시장에서 가장 큰 사업자였다. 경쟁은 집에서 시작되었다. 강과 호수에서 어는 얼음을 소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먼저 가는 사람이 임자였다. 얼음을 깨서 마차에 싣고 부두로 끌고 가는 형태로 매우 세련되지 못한 과정을 밟았다.

 

튜더 가족은 여러 해 동안 록우드의 연못에서 얼음을 얻었고, 다른 지역에서도 얼음을 가져다 썼다. 얼음 공급자 중의 한 사람인 내더니엘 위스가 1825년에 얼음을 일정한 모양으로 자르는 장치를 개발했다. 그의 장치는 말이 끄는 절단기로, 쟁기와 톱의 중간쯤 되는 것이었다. 얼음 절단기를 말이 끌고, 말발굽에 스파이크를 신겨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했다. 절단기 날은 얼음에 일정한 간격으로 깊은 자국을 새겼다. 절단기를 여러 번 다시 돌려서 사람이 손으로 떼어 낼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자국을 만들었다. 그들은 긴 톱과 끌 같은 거대한 목공 연장을 사용했다. 쪼개진 얼음 블록을 물에 띄워서 갈고리와 장대로 둑으로 가져간다. 거기에서 거대한 집게로 얼음 블록을 강변으로 끌어올린다.

 

위스의 장치는 얼음 채취에 매우 효과적이었고, 더 많은 얼음을 한꺼번에 운반하거나 저장할 수 있게 했다. 얼음 블록은 모양이 일정해서 깨진 얼음보다 서로 더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효율은 1827년과 1828년의 계절답지 않게 따뜻한 겨울에 얼음 채취 경쟁에서 가치를 입증했다.

 

하지만 얼음 산업이 누구에게나 다 환영받지 않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사람들의 활동을 기술하고 있다. 그는 프레더릭 튜더 같은 사람이 호수에서 얼음을 모아 엄청난 부자가 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고, 과연 이런 일이 사회에 어떤 점에서 좋은지 묻고 있다. <월든>은 현대의 녹색 운동의 뿌리가 되었다.

 

 

냉장고의 탄생

 

초기의 냉장고 중에서 상징적인 모델 중의 하나는 제너럴일렉트릭모니터 톱으로, 이 기계는 위쪽으로 원통형 압축기와 응축기가 돌출되어 있었다. 이 튼튼한 장치의 이름은 독립 전쟁 때의 철갑 전함에서 따왔지만, 상자 모양의 설계는 주방에 얼굴 없는 로봇이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모니터 톱은 아무 무거워서 냉장고가 안전하다는 확신을 주었다.

 

"이것은 완벽하게 안전합니다. 철갑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모니터 톱은 골동품이 되었지만, 여전히 잘 작동하는 것들도 많다. 이 장치를 살펴보면 최신 냉장고도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압축기는 안쪽으로 숨었고, 응축 코일은 뒤쪽에 배치되었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냉장고 위쪽에 얼음 상자가 있어서 작은 냉동실 역할을 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알루미늄 판으로 만든 냉각 코일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것이 차가움을 얻는 부분이고, 냉각된 공기가 아래쪽으로 내려가고, 가장 덜 차가운 아래쪽에 채소 보관함을 둔다.

 

현대의 냉동-냉장고는 일반적으로 이 부분을 패널 뒤쪽으로 숨기고, 아래쪽에 있는 냉동실과 접촉시킨다. 미국식의 양문형은 양쪽에 따로 냉각 시스템을 배치한다. 유럽은 뒤늦게 냉장고 시장에 뛰어들었고, 유럽에서 만든 냉장고는 대개 미국에 비해 부피가 절반쯤 된다.

 

가정용 냉장고 수요가 급증하면서 프레온(염화불화탄소)도 계속 생산되었다. 1937년에 북미 지역에 냉장고 2백만 대가 보급되었고, 이후 1980년에는 전 세계에 수억 대의  냉장고가 보급되었다. 염화불화탄소의 사용이 증감함에 따라 오존층에 구멍이 생기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제 냉매는 밀려나고 대신에 과불화탄소를 사용한다. 2010년 이후로 대기중에 염화불화탄소는 사라지고 오존 구멍은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냉장고는 이제 위험하지 않은가? 이는 생각하기 나름일 것이다.

 

 

냉장고의 분신들

 

냉장고는 언제 냉장고가 아닌가? 뻔한 답은 에어컨이 될 테지만, 이보다 더 기발한 답도 있다. 냉장고는 가스 공장이 될 수도 있고, 로켓엔진, 데이터 센터, 심지어 수소폭탄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구멍을 파고, 댐을 건설하고, 아원자 입자를 추적하고, 뇌의 영상을 찍고, 세계의 절반을 먹여 살리는 데 사용된다(물론 식품 냉장에 사용하지 않고). 이것이 숨겨진 차가움이다. 풍악도 울리지 않고 조용히, 냉각 기술은 현대문명의 깊숙한 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미국의 건물들 중에서 3분의 2가 에어컨을 갖추고 있다. 이 에어컨들은 미국의 발전소에 생산하는 전력의 5%를 사용하며, 매년 110억 달러를 쓰고 있다. 에어컨은 한 해의 가장 더운 계절에 공기를 냉각하고자 설계되었다. 심지어 어떤 곳에선 일 년 내내 켜두기도 한다. 한겨울에도 가동된다는 말이다. 에어컨은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내뿜는다. 모든 에어컨은 공기를 덥게 한다.

 

 

 

 

냉장 체인이 끊어지면 사회는 붕괴한다

 

냉각 기술은 세계를 변화시켰다.  지금 세계는 새로운 연료와 새로운 힘의 저장법을 필요로 한다. 태양에너지나 풍력 등 재생 에너지는 우리가 필요로 할 때 켜고 끌 수 없다. 따라서 이 에너지를 재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저장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들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냉장고는 1750년에 처음 우리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대량판매가 가능할 정도로 개발되는데는 170년이나 더 걸렸다. 차가움은 이젠 우리들의 일상에서 뗄 수 없을 정도로 불가결한 요소가 되어 버렸다. 이는 와인, 디저트, 고기, 과일 등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책의 후반부에 거론되는 스마트 냉장고는 2000년에 LG가 세계 최초로 출시했는데 가격이 무려 2000만원이었다. 문을 열지 않고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있는 대가로 지불하기에는 비싼 금액이었다. 십여년이 경과한 지금, 스마트 냉장고는 집 안의 모든 기기들을 연결하는 '허브'로까지 발전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보던 양문형 냉장고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데 걸린 시간만큼 스마트 냉장고가 선남선녀의 집으로 들어오는 데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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