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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너리스 1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평점 :
루미너리스는 점성술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두 별인 해와 달을 뜻한다. 별들이 가장 찬란하게 그 빛을 발한 뒤 소멸하는 것처럼,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좇는 것도 결국엔 그 빛을
잃어버리고 마는 한시적인 환영들일지 모른다. 12개의 별자리를 닮은 12명의 남자와 12개의 진실은 무엇일까? 엇나간 운명 속에 파멸을
향해가지만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희망의 빛을 되살리고자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스스로 택한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의지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돌아보게 한다.
뉴질랜드 골드러쉬 때의 시대상
이 소설은 뉴질랜드
골드러시 당시의 시대상을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을 뿐 아니라 그를 배경으로 정교하게 얽힌 미스터리를 펼쳐놓는다. 이미 이 소설을
읽은 몇몇 독자는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에 견주기도 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어두운 면을 그리고 있고, 빨려 들어가듯 읽을 수
있으며, 스토리의 빠른 전개와 놀라운 반전 등 때문이다. 뉴질랜드 골드러시를 배경으로 모험이 넘치는 살인 미스터리를 전개하고
있다.
1866년 골드러쉬가
한창이던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다 명멸明滅해 간 뭇별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점성술의 세계관을 인용해 주요 등장인물 12명에게 물고기 자리, 황소 자리 등 12개
별자리에 해당하는 각각의 성격 특성을 부여했다. 성격은 타고난 운명 같은 것이지만 각 인물들의 운명이 서로 엇갈리거나 갈등하는 큰 구도 아래
의문의 사망 사고, 젊은 금광 부자의 행방불명 등 불길한 사건들의 비밀이 파헤쳐진다. 후반부로 갈수록 각 장章의 길이가 짧아지는 가운데 양파
껍질을 한 꺼풀씩 벗겨내듯 사건의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맨부커상 최연소
수상 작가 엘리너 캐턴
더욱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것이 천체의 역학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12명의 남자는 각각 황도 12궁을 대표, 별자리에 맞는 성격과 특성을 지니고, 나머지 인물들은 행성에 속해 이들 사이를
넘나든다. 맨부커상 47년 역사상 최연소 수상 작가인 앨리너 캐턴은 "화자의 역할을 하는 무디가 '수성'을
대표하며, 따라서 수성이 관찰되는 시기에 맞춰 그가 이야기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도록 구성했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각각의 캐릭터가 모두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천체의 흐름에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점은 작가가 얼마나 많은 조사와 고민으로 완벽한 구조를 이루어냈는지 보여주는 것이기에 감탄하게
만든다.
각 별자리를 따라가며 인간의 운명을
비춘다. 자궁에서 피투성이의 생명으로 태어나 각기 집단적인 관점을 거부하는 양자리, 주관적 태도를 고집하는
황소자리, 배타적인 규칙을 따르는 쌍둥이자리와 원인을 찾는
게자리, 목적을 추구하는 사자자리와 계획을 바라는
처녀자리를 지나 인간은 드디어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천칭자리는
개념으로, 전갈자리는 재능으로, 궁수자리는 목소리로 그 특성을 발현한다.
염소자리에서 기억을 얻고 물병자리에서 통찰력을 얻은 인간은 12궁에서 가장 오래되고
마지막을 점하는 물고기자리에 와서야 자아를 얻어 완전해진다. 하지만 작가는 이 물고기자리를 "자기
파멸의 궁"이라 명명한다. 운명의 의지이자 운명 지어진 의지를 뜻하는 물고기자리의 두 마리 물고기는 결국 우리 자신이 선택한
스스로의 운명과 결말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12명의 남자를 비롯한 소설의 주요인물들은 저마다 삶에서 밀려나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끈을
쥐고 뉴질랜드의 황량한 금광 마을로 모여든 사람들이다. 그 희망은 황금이기도 하고, 남녀 간 또는 가족 간의 사랑이기도 하며, 복수이기도 하다.
절실한 희망은 그릇된 탐욕을 만나 살인과 배신, 거짓으로 얼룩진다. 엇나간 운명 속에 파멸을 향해가지만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희망의 빛을
되살리고자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스스로 택한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의지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돌아보게
한다.
1866년, 월터
무디는 크게 한몫 잡겠다는 생각으로 금을 찾아 뉴질랜드에 도착한다. 그날 저녁, 그는 황량한 금광 마을 호키티카의 허름한 호텔
흡연실에서 자신도 모르게 12명의 남자로 구성된 비밀 모임에
끼어들게 된다. 실종된 젊은 갑부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창녀,
외딴 오두막에서 살해된 부랑자의 집에서 발견된 어마어마한 양의
금, 삶에서 밀려나 세상의 끝으로 모여든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던
무디는 별자리처럼 얽혀드는 미스터리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간다.
크라운 호텔 흡연실에 모인 열두 남자는 마치 우연히 그 자리에 함께하게 된 무리인 듯 보였다. 뿔단추가 달리고 노란
무명, 삼베, 능직으로 만든 프록코트와 연미복, 노퍽재킷 같은 각양각색의 옷차림과 행동거지를 보면, 서로 오갈 수 없을 만큼 안개가 자욱하고
조수가 뚜렷한 도시의 각기 다른 지역에서 사는 열두 명의 사람이 어쩌다 한 객차에 올라탄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한편에는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변화하는 커다란 세계가 있고, 또 한편에는 공포와 불안으로
이루어진 작고 정적인 세계가 있다. 두 세계는 구 안의 구처럼 서로 꼭
맞아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