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슬림 - 중남미를 제패한 천재 경영자
디에고 엔리케 오소르노 지음, 김유경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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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슬림과 관련된 경제보고서나 그의 제국에 대한 경제적 시선만 담고 있는 게 아니라, 그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비롯해 그가 끼치는 사회적인 영향, 대중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그의 행동들과 실수를 담았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카를로스 슬림은 어떤 인물인가?

 

카를로스 슬림은 멕시코의 기업인이다. 그는 매년 발표되는 세계 부자 랭킹에서 꾸준히 최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통신재벌'로 알려져있는데, 그가 운영하는 '텔멕스'는 멕시코 유선 통신 시장의 90%를 독점하고 있고, '아메리카모빌'은 2010년 기준 라틴아메리카 18개국에서 가입자가 2억6천만 명에 달하는 남미 최대 규모의 통신사다.

 

뿐만 아니라 금융업, 건설업, 담배, 레스토랑 체인 등 약 200개의 기업을 소유 및 경영하고 있는데 이들 기업체들 모두 멕시코 국내에서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하여 그는 소위 '멕시코 경제 대통령'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나아가 손 대는 사업마다 성공함에 따라 '미다스의 손'이라고도 불린다.

 
10년 넘게 세계 부자 랭킹 1위를 독차지했던 미국의 빌 게이츠를 제치고 그는 2010년 처음으로 세계 부자 랭킹 1위에 등극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13년까지 4년 연속 1위 자리를 유지함으로써 비로소 전세계 최고의 부자로 인정받았다. 참고로 2016년 포브스에서 발표한 그의 추정 재산은 약500억 달러(한화로 약 59조1500억원)인데, 한국의 최고 부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약 11조8013억원)보다 약 5배 많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그가 비교적 젊은 나이인 26세에 창업, 1982년 멕시코의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당시 헐값으로 사들인 수많은 회사들이 엄청난 가치로 불어나면서 슈퍼 리치가 되었다. 특히 1990년 국영 통신 업체였던 텔멕스가 민영화될 때 이를 인수한 것이 세계적인 대부호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많은 인터뷰와 기밀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 책은 세계적인 대부호 카를로스 슬림의 삶을 파헤치고 있다. 저자 디에고 엔리케 오소르노는 정치, 사회, 역사적 보도 기사를 참조할 뿐만 아니라, 카를로스 슬림의 직접적 증언을 통해 탁월한 사업 비전과 함께 수학적인 재능이 뛰어난 레바논 이민자 아들의 독특한 삶을 들려준다.

 
책은 진부한 기업 성공담이나 경제적 지표 나열을 뛰어넘어 개발도상국 멕시코에서 출생해서 <포브스> 부호 순위 1위에 랭크된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들은 그의 출신과 복잡한 가족 및 사회관계들, 특별한 금융 전략들, 넓은 인맥들, 그리고 칭기즈칸이나 버나드 바루크에서 소피아 로렌에 이르는 그의 개인 관심사까지 알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책에서는 권력의 메커니즘과 우리 시대의 신자유주의 도덕 경제를 구현하는 이 사업가의 모순점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특히 그가 학문이나 예술을 장려하고 보호하는 모습이나 방식은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과는 사뭇 다르다. 내러티브 저널리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은 누군가를 비방 내지는 찬양하려는 의도 없이, 충분한 검토 내용을 바탕으로 투명하게 인간 카를로스 슬림이 누구인지를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사람들은 카를로스 슬림을 과시하지 않고도 많은 돈을 셀 줄 아는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그가 해외로 나가게 될 때는 호텔에 있거나, 아니면 집을 빌리거나 친구 집에서 머문다. 해외에는 어떤 저택도 구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30년 동안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그의 홍보팀은 그가 입는 옷이 삭스 백화점의 세련되고 비싼 옷이 아니라, 그의 소유인 시어스 백화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옷이라고 했다. 그는 중요한 자리에서도 세련되지 않은 행동들을 가끔 보인다. 와인보다는 코카콜라 라이트를 선호하고 손에 일본식 땅콩을 들고 먹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한마디로 서민지향적인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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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레이디 - 육영수와 박정희, 그들만의 이야기
류보상 구성, 유정화.주기석.한창학 원안 / 북코리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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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선뜻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또한, 육영수를 겪지 못한 세대에게는 낯선 사람일지도 모른다. 소설 '퍼스트레이디'는 신화로 채색된 육영수의 모습을 걷어 내고 인간 육영수의 사랑과 열정을 조명한다. 20세기를 살았고, 21세기에 더욱 빛나는 그녀의 정신과 삶을 대통령의 아내가 아닌, 한 여인의 일생 속에서 감동적으로 보여 줄 것이다. - '육영수, 그녀는 누구인가?' 중에서

 

 

육영수 여사를 아시나요?

 

충청도 제일 갑부 육종관의 둘째 딸로 태어난 육영수. 적극적으로 돈을 지향하는 아버지와 가치관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녀에게 아버지는 신뢰의 대상이었다. 아버지가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때, 그녀는 변화의 삶을 선택하고, 미련 없이 아버지를 떠난다. 옥천에서 죽향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시골에서 매우 드물게 서울의 명문 배화여학교에 입학했던 것이다.

 

옥천 땅의 만석꾼인 육종관은 학문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이제에는 남달이 집착이 강했던 인물이다. 그의 형들은 고향을 떠나 벼슬길에 올랐지만 그는 고향에 남아 가업을 이어 재산을 몇 배로 불렸던 것이다. 돈 모은 사람들이 다 그렇듯, 그는 매우 인색하고 괴팍하며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었다. 대궐 같은 집에 수입한 장미꽃으로 가득 채우고 영사기를 틀어 활동사진을 감상할 정도였다. 

 

 

 


 

 

 

그녀에게 박정희는 인생 단 하나의 남자다. 불꽃같이 사랑하고, 후회 없이 살았다. 그의 가치관과 그녀의 가치관이 일치했을 때, 정말 행복한 삶이었다. 그가 국가를 위해 헌신할 때, 그녀는 국민을 위해 헌신했다. 누구도 가지 못하는 길을 가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모든 국민의 어머니라는 호칭을 붙여 주었다. 국민의 사랑은 그녀에게 살아가는 긍지였고, 남편의 사랑은 그녀가 살아가는 행복이었다.

 
어느 날, 남편 박정희의 지독한 목적 지향성으로 국민의 눈길이 서늘해졌을 때, 그녀의 번뇌는 깊어졌다. 아버지를 떠나 남편을 선택하고, 국민을 사랑했지만, 이제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는다. 남편과의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고뇌 또한 더욱 깊어졌다. 정체성에 대한 끝없는 탐구, 자기 계발 욕구, 타인에 대한 능동적 태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표현했던 탁월한 유머까지. 그녀는 현대 여성들의 진정한 롤모델일지도 모른다.

 

 

  

 

육군본부 정보국의 박정희 소령, 그는 인민군 피습 때 알게 된 장천웅 일병을 병문안 차 들린 육영수를 처음 만난다. 그녀는 장일병의 주인집 작은 아씨였다. 그때만 해도 지체 높은 집안이나 큰 부잣집에선 머슴살이를 하는 소위 하인들이 있었다. 장일병의 부모는 갑오경장 때 면천免賤을 했지만 양부모가 죽은 바람에 고아 신세가 되자 육씨 집안에서 거둬 키웠다.

 

첫 눈에 호감을 느낀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 후배인 송재천 소위에게 병원 방문록에 기재된 주소를 거론하며 교동리를 잘 아느냐고 묻자 송소위는 자신의 고향을 왜 묻는지 의아해 하던 차에 육영수에 대해 묻자 깜짝 놀라고 만다. 왜냐하면 육영수는 그의 이종사촌 동생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녀는 그 지역에선 모두 알아주는 옥천 땅의 만석꾼 육종관의 딸이었다. 이후 박정희는 송소위를 통해 육영수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인사 올리겠습니다. 박정희라고 합니다"

 

박정희는 송재천을 통해 적극적인 구애 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걸림돌은 그녀의 아버지 육종관이었다. 첫 대면 인사에 육종관은 박정희가 탐탁치 않았는지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 만다. 옆에는 어린 하인이 무릎을 꿇은 채 구겨진 지전紙錢을 다리미로 펴고 있었다. 갑자기 고개를 돌려 박정희에게 백 환짜리 종잇돈을 요구했다. 이에 바지 주머니에서 구겨진 지폐를 건네자 습관적으로 돈을 펴며 "돈 귀한 줄 모르는 것들이 돈을 꼭 험하게 다뤄"라며 다시 그 돈을 박정희 앞에 툭 던졌다. 그런 태도에 박정희의 얼굴은 검붉어졌다.

 

분위기가 매우 어색한 때에 노크 소리와 함께 밝은 미소를 띤 육영수가 다과를 내려놓았다. 이를 본 박정희는 격앙된 감정이 순식간에 누그러졌다. 박정희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에를 갖추고 조용히 방에서 물러났다. 한편, 육종관은 딸을 바라보는 박정희를 어처구니없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코 마누라까지 나가라고 한 후 두 사람만이 방에 남았다. 보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박정희를 매섭게 바라보자, 박정희도 전혀 기죽지 않고 육종관을 마주 보았다. 그러자 육종관은 자신의 면전에서 이렇게 당당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이내 속마음을 숨기고 박정희에게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박정희는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요구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가진 게 얼마나 되나?'

"재산은 없지만, 누구보다도 따님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재산 한 푼 없는 빈털털이 주제에 내 딸을 달라고?"

"그래서 허락을 못 하시겠단 말씀입니까?"

"아니? 이게 어디서 벼르장머리 없는 짓이야?"

"무례한 건 어르신 아니요? 초면에 하대하고 거지 취급을 하지 않나"

"전 영수씨와 교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 줄 아십시오"

"너 같은 놈한테는 딸이 아니라 종년도 못 줘!"

"또 찾아뵙겠습니다"

 

당한 게 분했는지 육종관은 하루 종일 소리를 질러댔다. 한편, 안하무인이던 남편이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나 혼이 난 것이 통쾌했는지 그의 아내, 즉 욱영수의 모친은 중매를 넣었던 송재천을 불러 박소령의 속마음을 알아본 후 딸도 그다지 싫어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으므로 둘의 결혼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마침내 두 사람은 대구 시내의 한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의 결혼을 극구 반대했던 아버지 육종관은 끝끝내 참석하지 않았다. 신부 측 인사로는 그녀의 모친, 이종사촌 송재천, 그리고 장천웅 뿐이었다. 드디어 육영수는 충청도 갑부의 딸에서 가난한 군인의 아내로 신분이 바뀌게 되었다.

 

신혼 생활은 충현동의 셋방에서 출발했다. 인상 사나운 주인집 아줌마는 초인종 소리에 대문을 열어주며 늘 "셋방 주제에 맨날 이렇게 늦으면 어떡해. 문 열어 주기도 귀찮아 죽겠네"라며 면박을 주었다. 셋방 안은 곰팡내가 가득했다. 벽지는 빗물로 얼룩져 있고, 바닥엔 군데군데 판초우의까지 깔려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휴전이 되자 서울로 올라와 오랫 동안 셋방살이를 전전하다가 신당동에 허름한 가옥을 사들임으로써 비로소 마이홈 시대가 열렸다. 집수리를 마치고 입주하는 날 박정희는 집문서를 아내에게 건넸다. '육영수'라고 적혀 있었다. 군인의 박봉을 쪼개고 쪼개서 관리한 노력을 보상했던 것이다. 추후 신당동 집에 젊은 장교들이 모여들었다. 5.16 거사를 위한 선언을 했다. 거사는 성공했다. 박정희는 5월 18일에 귀가했다. 

 

  

 

박정희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리고 육영수는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 젊고 아름다운 영부인이었다. 그녀의 첫 임무는 난민촌 의료소 방문이었다. 행사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럼에도 영부인은 침착하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했다. 난장판이 된 주변 청소를 하다가 쓰레기 봉지를 버릴 곳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의료소 뒤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또 다른 감춰진 세상이 존재했다. 마치 지옥같았다. 천막촌 여인들이 둘러앉아 폐품 처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비단 이불에 쌀밥 처먹던 여자가 뭘 알겠어?'

'집이 그렇게 부자라면서? 그러니 대통령 마누라 자리도 샀겠지'

'철없는 영부인이 더 무섭네, 걱정이다, 걱정'

 

오늘 들었던 소리가 귓가에 아직도 맴돈다. 마음이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그래!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창밖을 보던 영부인의 얼굴에서 수심이 사라지고 다시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드디어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나환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영부인의 나환자촌 방문에 대해 청와대 사람들 사이에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그리고 비서실을 비롯한 경호실에서는 굳이 나환자촌까지 영부인이 직접 찾아갈 필요가 있느냐는 말들이 솔솔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도 그녀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끈기 있게 준비했기에 드디어 나환자촌 방문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비서실에서 오늘 일정을 취소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연락을 받고 영부인은 급히 부녀회원들이 모인 회의실로 향했다. 그러나 회의실은 텅 비어 있었다. 부녀회장 혼자서 영부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전염병도 도는데 나환자촌은 매우 위험하다고 부녀회원들이 생각하고 있어서 이를 설득시킬 수 없었다는 부녀회장의 보고였다. 그리고 남편과 자식들이 전염되면 영부인이 책임을 지겠냐면서 문둥이한테는 가기 싫다는 말까지 했다.

 

"같이 가자는 소리 안 할테니 그만두세요. 의료협회장 부인이 의료 상식이 없다는 건 분명 남편에게 문제가 있는 겁니다. 이 부분은 대통령에게 직언하겠어요"

 

경호원들과 비서진에게 통보도 없이 영부인은 천웅과 최 비서만을 대동하고 목적지로 향했다. 철조망으로 얼기설기 막혀 있는 좁은 길로 들어서는 나환자촌 입구에는 '나병은 낫는다!'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더 이상 차가 진입할 수 없어서 천웅이 지도를 보면서 앞장 서 길잡이 했다. 정착촌에 들어섰을 때 입구에서 나환잗들이 대형 드럼통에 돼지비계를 삶고 있었다. 시커먼 연기와 악취가 진동했다. 정착촌 자치회장이 놀란 얼굴로 허겁지겁 달려왔다. 못 온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어떻게 왔냐고 놀란 표정이었다.

 

치맛자락을 잡고 매달리는 어린아이를 번쩍 안아 올리고, 손수건을 꺼내 아이의 코를 풀어주는 영부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환자들은 박수를 쳤다. 환영 인사를 마치고 자치회 사무실로 초대되었다. 이런저런 사정 얘기를 나누는데, 노크도 없이 불쑥 들이닥친 환자가 있었다. 당황한 사람은 영부인이 아니라 자치회장이었다.

 

"방 씨, 무슨 일입니까? 이게 무슨 불손한 짓입니까?"

"헤헤, 귀한 손님이 오셨다 해서 이거라도 좀 드셔 보라고 가져왔습니다"

"고마워요, 이리 와서 앉으세요"  

 

육영수 옆에 앉은 방 씨는 보란 듯이 일그러진 손으로 계란을 깠다. 그러고는 두 조막손으로 계란을 받쳐 들고 육영수 앞에 내밀며 씩 웃었다. 그러자 옆자리에 있던 최 비서가 거의 기절할 것처럼 놀라 눈을 감아버렸다. 보다 못한 천웅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게 뭐하는 짓이야?"라면서 방 씨의 팔을 움켜잡았다.

"왜요? 문둥이는 높으신 분들한테 겨란 하나도 대접 못 한답니까? 이 팔 놔요. 대통령 사모님께 겨란 드려야 할 게 아뇨?"

 


비웃는 듯한 방 씨의 묘한 웃음 속에서 장기간 세상의 학대와 멸시를 받아 온 나환자들의 비애를 대변하는 듯한 그의 날카로운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방 씨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음을 영부인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에 육영수는 미소를 지으며 방 씨에게서 계란을 받아들었다.


 

"맛있겠네요, 고마워요"
육영수가 서슴없이 계란을 한입 베어 물고 다시 말했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어요? 여기 사람이 몇인데요?"

 

 


영부인은 행사에 초청할 어린이 명단을 검토하고 있었다. 내일이 바로 어린이대공원 개장일이기 때문이다. 어린이 복지에 유독 관심이 깊었던 터라 어린이를 위한 놀이 공간이 부족한 현실을 늘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마침 능동에 있던 서울 컨트리클럽 골프장이 땅을 기부하는 바람에 어린이를 위한 공원을 조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내가 다음에 데려가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가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옆에서 보던 박정희도 막내도 어린아이인데 데려가자고 거들었다. 그러나, 영부인은 결단코 불가하다고 못을 박았다. 왜냐하면 당일 행사의 주인공은 어린아이들인데, 만약에 막내가 참석하면 막내에게 더 신경을 쓰고 자연히 아이들 대접에 소홀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8.15 경축 행사장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옷장 앞으로 가서 넥타이를 골라 매려고 하자 영부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드릴 게 있는데 꼭 좀 들어주세요"라고 말했다. 박정희가 주춤하다가 대답 없이 넥타이만 계속 고르자 그녀는 호소하는 눈빛으로 할 말을 했다. 이 날이 그녀의 마지막 날일지 어찌 알았겠는가.

 

"떠나야 할 때를 놓치지 마세요.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에요"
박정희가 못 들은 척하고는 육영수에게 다시 재촉했다.
"늦었으니 빨리 준비하라고"
재촉하는 박정희를 보던 육영수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시위하다 다친 학생이 죽었어요"
순간 박정희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듯 다시 물어보려다가 옷장 거울에 비치는 육영수의 얼굴을 보고는 멈칫했다.
"영안실에 가 봐야겠어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박정희가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거길 왜 가? 당신이 가야 할 곳은 국립극장이야. 지하철 개통식이고"
육영수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에 안타깝게 죽은 노동자의 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때 무척 괴로웠어요. 이제 영부인으론 가지 않아요. 인간이자 어머니로서 가는 거예요"
육영수의 말에 감정이 격해진 박정희가 맞받았다.
"당신은 일개 자원봉사자가 아니야, 국모야 국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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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플레
애슬리 페커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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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매우 깊은 절망에 빠지더라도 우리들은 아주 사소한 기쁨만으로도 위로받는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인생이다. 미국의 뉴욕, 프랑스의 파리, 그리고 터키의 이스탄불이라는 세 도시의 부엌에서 바로 이런 힐링의 감동을 보여준다. 헌신적으로 가정을 꾸려왔지만 남편과 자식들에게 외면 받는 중년 주부 릴리아,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삶의 전부를 잃은 것만 같은 마크, 병든 엄마의 간병 때문에 한 순간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페르다, 이 세 사람들이 수플레를 만들며 소소한 삶의 기쁨을 되찾아 슬픔과 좌절을 극복해나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친 영혼에 활력을 불어 넣는 기적의 레시피

 

세 명의 불행한 영혼들은 운명적인 끌림으로 한 날 한 시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수플레-가장 큰 실망>이라는 책을 계기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게 된다. 그들은 매일 책속의 레시피대로 수플레를 만들어도 매번 성공하지 못한다. 수플레 한가운데가 푹 꺼질 때마다 가장 큰 실망을 느끼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수플레가 봉긋하게 부풀어 오르는 그 찰나의 아주 사소한 기쁨이 그들에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가장 큰 희망이 되기 때문이다.

 

 

 

 

달걀흰자를 거품을 낸 것에 그 밖의 재료를 섞어서 부풀려, 오븐에 구워낸 요리 또는 과자인 수플레란 프랑스말로 '부풀다'라는 뜻을 가졌다. 슈(chou) 껍질에 거품을 낸 난백을 섞은 슈 재료, 걸쭉한 커스터드 크림에 거품을 낸 달걀흰자를 섞은 크림 재료, 되직한 베사멜소스에 거품을 낸 달걀흰자를 섞은 베샤멜 재료, 설탕조림을 한 과일을 체로 걸러낸 것에 거품을 낸 달걀흰자를 섞은 푸르트 재료 등의 4가지 재료가 기본이다. 초콜릿, 바닐라, 커피 등을 넣어 여러 종류의 수플레를 만들 수 있다. 수플레는 식으면 부푼 것이 쭈그러들므로 구워낸 즉시 따뜻할 때 내야 한다.

 

 

릴리아는 뉴욕에 산다. 그녀는 필리핀계 미녀 화가로 한때 예술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결혼 후 남편의 요구로 자신의 꿈을 접고 가정에 헌신하며 살아왔다. 입양한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의 비위를 맞추고 살았음에도 결국 세상물정 모르는 무식한 여자라고 가족으로부터 억울한 냉대와 외면을 받을 뿐이었다. 그녀는 텅 빈 부엌처럼 온기 없는 공허한 자신의 인생을 체감하며 우울증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평소 각방을 쓰던 남편의 방문을 열면서 운명의 시험이 시작된다.


 

마크는 파리에서 화랑을 운영한다. 그는 부엌에서 쓰러져 죽어 있는 아내를 발견하고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슬픔에 빠져버렸다. 생전에 그토록 사랑했던 부엌에서 아내를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로워 집 밖으로만 떠돌며 방황한다. 이후 우연의 장난처럼 그는 부엌에 들어가게 되고,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페르다는 이스탄불에서 산다. 그녀는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살다가 갑자기 다친 네시베 부인, 즉 엄마를 모시게 됐다. 허언증을 보이는 엄마는 점점 더 이상한 말을 내뱉고 급기야 남편을 모함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한시도 그녀를 가만두지 않는다. 서서히 가정이 망가져가자 그녀는 해서는 안 될 생각에까지 이르고, 예측하지 못한 반전의 순간이 그녀에게 찾아온다.

 

 

 


세 명의 무너진 인생은 다시 일으켜 세워질 수 있을까?

 

 

 

릴리아는 오늘 아침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남편 아니의 방문 앞에 있는 작은 킬림 양탄자가 제대로 각이 맞춰져 있었다. 이 모습은 바로 아니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의미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다. 양탄자는 한때 이 집에 잠시 머물던 터키 여자가 준 선물이었다. 그녀는 노크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맙소사 아니는 침대 바로 옆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즉시 911로 신고했다. 아니는 올해로 예순이다.

 

힘든 와중에도 그녀는 간신히 어학원에 가서 셋방에 들어올 하숙생 넷을 확보했다. 하숙생들이 들어오면서 집안이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TV만 주구장창 보면서 저녁을 먹었지만 이젠 저녁식사가 매일 밤 작은 축제처럼 변했다. 그녀는 하루 중 저녁식사 시간을 가장 고대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녀가 요리하는 동안 부엌 조리대 근처에서 잔일을 도와주며 대화를 나누곤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니와 친해보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이렇게 많은 수플레가 있을 것으로 상상하지도 못했다. 새우 수플레, 치즈 수플레, 랍스터 수플레, 치즈와 베이컨 수플레, 캐러멜 수플레, 아이스크림 수플레, 호박 수플레, 복숭아 수플레, 모카 수플레, 시금치 수플레, 커피 수플레, 무화과 수플레 등이 있었다. 요리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조리법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나름 요리 경험이 풍부하다고 생각했던 그녀지만 책 중간에서부터도 시작하지 못했다.

 

TV 요리 프로그램에서 수플레를 만들어보려고 시도한 요리사는 한 명도 없다. 심지어 최고급 레스토랑의 요리사들도 손님이 이 전설적인 디저트를 주문하면 두려워한다. 파리의 카르나발레 박물관에 걸린 19세기 그림에 요리 작가의 선조인 미식가 그리모드가 수플레 접시와 같이 그려져 있는 이유가 다 거기에 있다. 음식 비평가는 어떤 레스토랑을 칭찬하거나 망하게 하고 싶다면 항상 이 악명 높은 요리를 선택한다. 평범한 수플레란 없기 때문에 중간도 없다.

   

뉴욕보다 6시간 앞선 파리에서 마크는 손에 열쇠를 든 채 문밖에서 일이 분 정도 기다렸다. 그러다 아무리 코를 허공에 치켜들고 냄새를 맡으려고 해도 커피 향이 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는 시계를 봤다. 다른 금요일과 다름없이 3시 10분이었다. 클라라가 커피를 내리지 않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더구나 연락 없이 외출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불안한 생각이 들어 급히 집으로 들어갔다. 아내 클라라가 부엌 조리대 앞에 오른쪽으로 쓰러져 누워 있었다. 아내의 손목에서 맥이 느껴지지 않았다.

 

"장례식이 끝나고 모두 우리 집으로 오기로 했어요. 내가 아주 실력 있는 출장요리사를 불렀거든요. 클라라도 분명 좋아할 거예요. 당신도 올 거죠, 그렇죠?"

 

아내 클라라의 오랜 친구인 오데트는 냉장고를 비우고, 부엌을 청소하고, 클라라의 사물을 모두 내다버리겠다고 마크에게 동의를 구했다. 이에 동의한 그는 작은 가방을 하나 싸서 작은 호텔에서 기거하기로 작정했다. 과부인 오데트는 평소 친구 부부의 관계를 은근히 질투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자신의 새로운 뮤즈인 부엌이 누군가의 삶을 지배할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때가 되면 사람들은 항상 그 뮤즈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은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녀의 가슴에 기대고 그녀가 주는 물로 세수를 한다. 그렇게 그녀는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녀는 강인하게 기다리면서 아이들이 집에 왔을 때 빵을 줘야 한다. 부엌은 엄마의 가슴이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이며, 우주의 중심이다.

 

그는 몇 년 동안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어느 날 삶이 불도저처럼 그를 으스러뜨렸다. 심지어 지금도 그는 여전히 같은 길을 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또다시 삶에서 변함없는 일상을 만들었다. 그의 삶의 흐름은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일정한 패턴에 따라 흘러갔다. 유일한 차이점은 이제 이것 역시 얼마나 쉽게 파괴될 수 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잘 알게 됐다는 것이다.

 

 

파리보다 한 시간 앞선 4시 10분, 페르다는 방금 압력솥의 불을 줄이고 알람을 20분 후로 맞췄다. 전화벨 소리는 딸로부터 걸려온 것이다. 파리에 살고 있는 딸 오이쿠는 매주 금요일 출근 직전 엄마와 통화하면 매우 행복한 주말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식구들의 안부와 한 주 동안 발생한 일들에 대해 물어본다. 비행기를 타면 세 시간밖에 안 걸리므로 보고 싶으면 언제라도 파리로 오라고 말하는 딸에게 엄마인 페르다는 그럴 수 없는 이유를 말할 수 없다.  

수술을 마치고 며칠 지나서 네시베 부인은 요란한 신음소리를 내며 퇴원했다. 통증이 심하다고 투정대지만 눈에는 눈물방울 하나 없었다. 부인은 2분 간격으로 딸의 이름을 불러댄다. 페르다의 남편 시난은 어렸을 때부터 장모를 잘 알고 있었다. 결혼한 지 35년이나 지났지만 막상 결혼한다고 했을때 장모의 행실을 익히 잘 아는 그의 가족은 "정말 그러고 싶어?"라고 질문했을 정도였다. 네시베 부인은 언제든 원할 때마다 기절하는 데 탁월한 소질을 지닌 인물이다.

 

새벽에 그년는 엄마가 "경찰! 경찰!"이라고 지르는 비명 소리에 눈을 뜬 후 911에 전화를 했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 팔을 휘저으며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집안에 누군가 침입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시난은 과거에 심장마비를 겪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가슴 통증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남편의 입에 작은 알약을 투여하고 전화기로 이번엔 구급차를 불렀다. 잘못 신고했다고 말하는 걸 깜빡한 사이 경찰이 도착했고 이어서 구급대원까지 들이닥쳤다. 출동한 경찰에 상황을 설명했지만 그들은 노부인과 대화를 하고 싶다며 엄마 방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부인.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이 사람들이 날 고문하고 있어요. 이사람들이 날 때려요"

"누가요?"

"이 사람들이요"

"따님과 사위분이요?"

"이 여자는 내 딸이 아니에요. 그리고 저 남자는 남편도 아니고"

 

심지어 돈을 받고 판다는 말까지 나오자 페르다는 그 충격에 뱃속에 불덩이가 찬 것처럼 울화가 치밀었다. 남편의 발작이 우려되어 침대를 돌려보내려 하자 경찰은 사실 관계 확인을 요구했다. 그래서 그녀는 엄마 신분증과 남편 신분증, 그리고 혼인 증멍서까지 보여주고서 이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완전히 잠이 깬 그녀는 며칠 전에 산 요리책을 훑어봤다. 수플레 책의 초판이 1841년인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 요리가 그렇게 오래됐는지도 몰랐고, 이걸 만들기가 얼마니 어려운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딸 오이쿠와 함께 수플레를 몇 번 먹어봤지만 주문한 수플레가 식탁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한가운데가 푹 꺼져 있었기 때문에 이게 다 실패작이었음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책에서 초콜릿 수플레 조리법을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수플레, 지친 영혼에 새로운 활기를 전하는 레시피

 

이렇게 외면당한 여자, 사랑을 앓은 남자, 그리고 삶에 지친 여자의 이야기들이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각기 다른 나라, 다른 도시의 부엌에서 수플레 요리라는 공통점이 대두된다. 힘들고 지칠 때 우리들은 따뜻한 품이 그립게 마련이다. 기댈 곳 없은 세 영혼들에겐 요리를 할 수 있는 부엌이 바로 따뜻한 품인 셈이다. 이들에게 과연 새로운 인생은 찾아올까? 책을 마지막까지 다 읽고 난 뒤,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은 이 소설을 분명히 영화로 만들 것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한국이 주무대가 된다면 서울, 경상도 통영, 전라도 해남이면 어떨까, 또 배우는 상처상처한 남자 마크, 남편을 잃은 미녀 화가 릴리아, 괴팍한 엄마한테 시달리는 페르다는 누가 배역을 맡으면 좋을지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되었다. 바쁘고 지친 삶에 피곤한 현대인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멋진 치유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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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집사 - 집사가 남몰래 기록한 부자들의 작은 습관 53
아라이 나오유키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4.0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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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부자 대부분은 일반적인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랐고, 오히려 우리와 비슷하게 치열한 구직 활동과 직장 생활을 경험했다. 짧은 시간 안에 재산을 일군 한 부자는 "15년 전에는 정말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할 만큼 가난했네"라고 이야기했다. 또 부자들 중에는 스스로를 향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인간'이어서 부자가 된 것 아닐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겸손이나 자기 비하가 아니라 오직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말들이었다. - '프롤로그' 중에서

 

평범한 그들은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

 

금수저, 흙수저 논쟁이 한창인 시절이다. 대체로 우리들은 비교적 젊은 부자에 대해 돈많은 부모로부터 사전에 유산을 많이 물려받았을 것으로 대충 짐작한다. 과연 그럴까? 물론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아라이 나오유키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버틀러&컨시어지'의 대표인데, 이 회사는 소위 세계적인 대부호의 집사 서비스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회사의 주고객은 보유 자산 500억 원이상, 연수입 50억 원 이상이라는 조건을 구비한 '톱 클래스'들이다. 창업 후 이 회사는 누적 기준으로 100명 넘는 이들에게 관련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이런 일을 하면서 그는 이토록 부자가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했고, 더욱 예상밖의 사실은 회사 고객들은 부모들의 재산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자신 손으로 부를 일군 자수성가형 부자였다.

 

뭔가 특별한 구석이 있을 거란 그의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졌던 것이다. 대부분 이들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특별 과외를 받은 바도 없었다. 오히려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치열한 구직 활동과 직장 생활을 경험한 이들이었다. 만약 평범한 과거를 딛고 큰돈을 모은 부자들의 공통적인 습관을 발견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똑같이 따라 한다면 우리도 분명 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한다. 상습적인 지각 때문에 회사에서 해고당한 소위 '불량 사원'이 현재 부자라는 사실이다. 대체로 부자들은 '아침형 인간'인데, 이 사람은 밤이 깊어질수록 생기가 도는 '올빼미형 인간'이었다. 그는 기술계 전문학교를 졸업, 건물 설비 관리회사에 평사원으로 취직했지만 워낙 술을 좋아해 매일 새벽에 귀가했고, 숙취로 인해 늦잠 자기 일쑤였다. 지각하는 일이 빈번하자, "이제 그만 나오게"라는 통보를 받고 말았다.

 

이 사람의 성공스토리는 우리 주변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사례였다. 퇴직 후 그는 건물 설비를 관리하는 회사를 창업했는데, 워낙 술친구가 많아 폭넓은 인맥을 쌓은 게 효자 노릇을 했다. 주변에선 다니던 회사에서 짤려 힘들겠다고 많은 일감을 몰아주는 통에 성공이 가능했다. 특히, 당시는 일본 경제가 거품 시기로 하룻밤 사이에 고층 빌딩이 몇 채씩 올라가는 순풍이 불고 있었다. 운이 좋은 과부는 넘어져도 가지밭에 넘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이제, 책을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불에 타는 것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이는 화재를 말하는 게 아니다. 부자들은 지금 막 투자하려는 상품이 있으면 여기에 상상만으로 불을 불여보고 진짜로 타는지 생각해본다. 즉 아무리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 있더라도 불에 타느냐, 타지 않느냐를 따져본다. 예를 들어 한 증권사에서 주식종목을 추천하면 이 회사가 도산할 때 잔존가치가 있을지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렇다면 대체 부자들은 어떤 상품에 투자할까? 그들은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은 상품에만 투자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토지'다. 부동산 투자를 선호하는 부자들은 '건물은 타지만 토지는 절대로 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는 확고한 신념을 지녔다. 즉,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부동산 개발 정책까지도 꼼꼼하게 고려한다.

 

토지를 포함해 '금'이나 '백금'도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다. 설령 지금 살고 있는 국가의 재정이 파산해도 금이나 백금의 가격은 폭락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질로서의 금과 백금은 고온에서 녹아 없어지지만, 분쟁이나 천재지변에는 비교적 잘 견디는 투자 상품으로 인정받는다. 또 애초에 태울 수 없는 것에도 투자한다. 특허권이 한 예다.

 

 

남이 권하는 투자 상품은 의심해본다

 

부자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꼬인다.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등 투자를 추천하는 종목들이 많다. 하지만 부자들은 이에 선뜻 투자하지 않는다. 더구나 적극적으로 추천하면 더욱 의심하고 한 발을 뒤로 뺀다. 정말로 이익이 나는 상품이라면 자신들이 먼저 참여하지 남에게 투자를 권할리 없다는 소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정기 예금도 은행 직원이 '부르는 금리'대로 순순히 가입하지 않는다. 은행에 게시된 금리에는 눈길도 보내지 않고 반드시 협상을 시도한다. 그리고 항상 남보다 높은 금리를 받는 데 성공한다. 심지어 예금액에 따라서는 1~2퍼센트까지 인상해 가입하는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다. 은행에서 공표하는 금리대로 예금을 하거나 대출을 받을 필요는 없다. 금리도 흥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실제 시장에서 상품을 구입하듯 금융 소비자에게는 은행에서 제시한 가격인 이자에 대해 흥정할 권리가 있다.

 

 

절약, 최고의 투자법이다

 

주식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도 "세상에서 최고의 재테크는 바로 절약이다"라고 말했다. 재테크란 돈을 증식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부자들은 자산을 모으고 늘리는 것보다는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일'에 더욱 신경을 쓰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돈을 늘리는 최고의 투자가 '절약'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식비' 절약에 노력을 기울인다. 저자는 한 부자와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평소에는 항상 밥을 사주던 그가 그날은 웬일인지 "각자 냅시다"라고 말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메뉴판을 보다가 저자는 별생각 없이 그와 같은 메뉴를 골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고 막 포크를 집는데, 그는 "자네는 왜 나와 같은 음식을 주문했나?"라고 물었다. 이에 당황한 저자는 "아무래도 같은 음식을 먹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우물쭈물 대답했는데 뜻밖의 말이 돌아왔다.

 

"자네의 자산은 내 자산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지 않은가. 그렇게 돈을 함부로 써서 어느 세월에 돈을 모으겠어? 만약 자네의 자산이 내 자산보다 1000배 적다면, 가격도 1000배 더 싼 음식을 먹어야 하네"

 

 

9900원이란 숫자놀음에 속지 않는다

 

'뇌동매매'란 말이 있다. 이는 주위 사람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의 판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같은 주식의 매수 또는 매도에 동참하는 매매방식을 일컫는다. 이는 소위 주식꾼들이 불공정매매를 유도하기 위해 허위로 매매 주문을 내거나 거짓 정보를 흘리면서 분위기를 자신 쪽으로 유리하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특히, 시장이 강세장 또는 약세장일 경우 이게 횡횡하므로 뇌동매매를 하지 말라는 주의령을 발동하기도 한다.  

부자들은 대개 절대적인 금전 감각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오늘만 80퍼센트 할인'이라는 영업 멘트에 넘어가는 법도 없다. 반면에 우리들은 대개 이런 멘트에 즉각 반응한다. 즉 지금 사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에 쓸데없이 많이 사거나 불필요한 물건까지 구매한다. 하지만 부자들은 결코 이런 어리석은 소비를 하지 않는다.

 

우리도 물건을 살 때 '이 상품은 어째서 이러한 가격으로 팔리는 걸까', '이 가격을 붙인 의도는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하고 판매자의 심리를 파악해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가게의 속내를 알게 될 것이다. 적어도 돈을 쓰기 전에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사탕발림 영업 멘트에 넘어가거나 숫자놀음에 속아 넘어가 무심코 돈을 쓰고는 후회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면 돈을 사용하는 방법이 크게 변하고, 불필요한 소비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절대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친한 친구나 지인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가 이자는커녕 원금도 회수하지 못하고 몽땅 날린 경험은 없는가? 빌려준 금액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런 낭패를 당한 경험들은 다들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자들은 돈을 빌리러 온 사람들을 모두 내쫓을까? 그렇지 않다. 부자일수록 상대를 '적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신념이 강하기 때문에 빌려주는 대신 그냥 줘버린다.

 

그게 결국 같은 말 아니냐고 다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빌려준다'와 '그냥 준다'는 다르다. 언제까지 갚으라고 기한을 정하면 빌려주는 상황이다. 만약에 빌린 사람이 이를 이행할 수 없을 경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정말로 도망치면 회수할 방법이 없게 된다. 반면에 기한을 정하지 않고 덕담까지 전하며 돈이 생길 때 갚으라고 하면 비린 사람이 절대로 도망치지 않는다. 이리 되면 고마은 마음에 갚으려고 노력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단, 이럴 때 부자들은 요령이 있다. 상대방의 능력을 간파하고 요구하는 금액을 모두 주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판단해서 적당한 금액을 내놓으면서 덕담까지 건낸다. 이처럼 부자들은 선수를 친다. 이렇게 일을 처리함으로써 상대방을 절대로 적으로 만들지 않고 졸은 인간관계를 유지해나간다. 누가 알겠는가. 머지 않은 장래에 상대방이 돈벼락을 맞을지.

 

 

지갑에 얼마가 있는지 항상 파악한다

 

'당신의 지갑에 얼마가 들어 있는가?', 이런 질문을 받고 적잖이 당황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대부분은 지갑 속을 들춰봐야 얼마가 있는지 알 것이다. 만약에 그 금액을 맞춘 사람이라면 분명히 얼마전에 은행을 다녀온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부자들은 항상 지갑 속에 돈이 얼마 들어 있는지를 정확하게 안다.  

 

한 부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지방에서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이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줄 때가 되어 "지금 네 지갑에 얼마가 들었는지를 아느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물음에 곧장 대답하지 못했는데, "자기 지갑에 얼마가 들었는지도 모르는 녀석이 회사를 어떻게 경영하겠다는 거냐!"라고 큰소리로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지갑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산'이다. 자기 자신이 소지한 돈을 분명하게 파악하는 일은 자산 관리의 기본 중에 기본이다. 비록 적은 돈일지라도 놓치지 않고 제대로 관리해야 큰돈도 잘 관리할 수 있는 법이다. 이토록 지갑이 가진 의미기 깊은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부끄럽기만 하다.

 

 

부자에 대한 편견을 깨트리다

 

부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집사야말로 그들의 아내나 자식보다 더 신뢰받는 조력자이다. 수백억 대의 자산을 가진 부자들을 지근거리에서 모신 집사가 그들의 곁에서 직접 목격한 사실들을 기록한 내용들을 책에서 공개한다. 이는 바로 53가지의 돈의 철학이다. 부자들의 삶과 성공 스토리를 한꺼번에 만나게 된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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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만드는 사람들 - 모두가 아니라고 말하는 "그곳"에 기회가 있다
치키린 지음, 이민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자파넷다카타는 지나칠 정도로 많은 상품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는 '누군가가 대신 선택해주는 가치'가 팔리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카테고리별로 한 제품 혹은 고급 상품 한 개와 보급형 상품 한 개 등 매우 한정된 수의 상품을 다루며, 상품의 특징과 사용법, 나아가서는 고객이 왜 그 상품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통신판매 분야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찾은 자파넷다카타는 일본 통신판매 시장 점유율 3위를 차지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처럼 작고 사소한 것에서 비즈니스의 기회를 발견해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사람을 '마켓 크리에이터'라고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이들은 어떻게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을까?

 

책의 저자 치키린은 일본에서 거품 경제가 한창이던 시기에 증권 회사에서 근무한 후, 미국의 대학원으로 유학했다. 졸업 후 현지 글로벌 기업에서 매니저로 일했었다. 2011년 9월 4일 마지막 회사를 퇴사한 후, 현재까지 무려 6년 동안 직장에 적을 두지 않고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마켓 크리에이터였기 때문이다. 

그는 "스마트한 생각법만 배우면 누구라도 마켓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켓 크리에이터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거창한 사업 아이템을 발명하는 사람을 일컫는 게 아니다. 그들은 기존에 존재하던 것에서 다른 사람은 찾지 못한 ‘잠재적인 가치를 깨닫는 사람’일 뿐이다. 따라서 저자는 ‘시장을 만든다’고 해서 거창하고 대단한 것을 상상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작고 사소한 불만이나 주변에 널린 나뭇잎에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곧 비즈니스가 된다는 것이다. 관점만 조금 달리하면 누구나 마켓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시장을 만든다고 해서 대단한 것으로 상상할 필요는 없다. 작고 사소한 불만을 대신 선택해주는 행위에 가치가 있음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그 자체가 바로 비즈니스가 된다. 이렇게 관점을 조금 달리하면 누구나 마켓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만 마켓 크리에이터가 돼야 한다는 건 아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잘 팔릴 수 있는 시장을 확보해야만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매일 새로운 기술과 시장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들은 변화의 징조를 빨리 알아채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가치를 제공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마켓센싱의 의미를 살펴보고, 나아가 이를 활용해 마켓 크리에이터가 되는 방법을 배우도록 하자.

 

 

 

나뭇잎으로 부자가 되다

 

일본의 도쿠시마 시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쯤 가다 보면 가미카쓰초라는 작은 산간 마을이 나온다. 마을의 총인구 1,840면명 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49퍼센트에 달한다. 일본 전국의 평균 고령자비율 25퍼센트를 훨씬 웃도는 고령화 마을이다. 과거 이 마을의 주력 산업은 임업과 귤 재배였지만 이미 쇠퇴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이 마을은 어떻게 먹고살까?

 

이 마을은 현재 일본 전역의 지자체로부터 주목받고 있는데, 이는 고령화 마을 때문이 아니라 정말 독특한 '나뭇잎 비즈니스' 때문이다. 우리들이 일본 요릿집에서 회를 먹을 때 접시 바닥에 데코레이션되어 있는 단풍잎이나 연꽃잎 등을 보게 된다. 이것을 비즈니스화한 마을이다. 일본에선 이를 '쓰마모노'라고 부른다. 이 마을에선 도시의 고급 요릿집에서 주문받은 나뭇잎을 매일 산에서 채취해 판매한다.

 

이 비즈니스의 연 매출이 2억 6천만 엔을 넘는다. 나뭇잎을 산에서 따는 것을 담당하는 할머니 중에는 연 소득 1천만 엔이 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 비즈니스를 주도하고 있는 회사는 주식회사 이로도리이다. 이렇게 가미카쓰초의 부활 스토리가 바로 시장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금껏 세상에 없던 가치를 발견하라

 

대부분의 비전통적인 가치는 아직 상품명조차 없던 단계에서 소비자가 주목하고 사실상의 대가를 지불한다. 그리고 그 가치에 이름이 붙는 단계에서는 시장이 이미 상당히 커져 있다. 몇 년 전부터 코칭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공부나 금연, 다이어트 등 어떤 성과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거나 상담에 응하는 일이 가치로 인정되어 코치라는 직업이 성립된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는 친구나 가족에게도 밝힐 수 없는 고민을 아무런 조언 없이 들어주기만 하는 직업도 등장하지 않을까? 코칭도 그 호칭이 붙는 순간에 그럴듯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현시점에서 직업명이 없어도 '그것을 가치로 느끼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새로운 시장이 탄생하는 것이다.

 

 

"어떤 불만도 삽니다"

 

몇 년 전 '어떤 불만이라도 삽니다!'라는 비즈니스를 시작한 회사가 있다. 이 불만매입센터는 '레스토랑의 테이블이 작다'거나 '접는 우산을 집어넣는 비닐이 좁다'거나 하는 불만을 하나당 10엔에 사들였다. 이렇게 사들은 불만은 정리, 분류한 다음 관심을 보이는 기업에 하나당 5엔에 팔았다.

 

불만을 구입하는 쪽은 주로 레스토랑이나 호텔, 토산품 업체나 소매점 등이다. 이들은 이렇게 구입한 불만 정보를 자사의 업무 개선이나 상품 개발에 활용한다. 꼭 자기 점포에 대한 불만이 아니더라도 같은 업태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은 그것만으로 유용한 정보가 된다. 게다가 1만 건의 불만이라고 해봤자 겨우 5만 엔이면 살 수 있으므로 대규모의 소비자 조사에 비하면 푼돈이라 할 수 있다.

 

'잠재적인 가치를 깨닫는 사람'이야말로 마켓 크리에이터다. 고교생 야구 동호회의 전국대회나 작은 마을의 부흥을 위해 시작된 이벤트에 주목한, 마켓센싱이 날카로운 누군가가 그 가치를 깨닫고 시장화해서 이렇듯 큰 존재로 성장시킨 것이다. 기존 시장을 쟁탈하는 경쟁에서는 이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만큼 지는 사람이 있는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면 새로운 시장 그리고 커다란 경제가치가 탄생한다.

 

 

비즈니스맨의 필수 능력

 

10년 전까지 저자는 비즈니스맨에게 필요한 능력으로 논리적 사고 능력, 영어 능력, 리더십, 컴퓨터 활용 능력 등을 꼽았다. 하지만 최근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미래에는 구체적인 기술보다 더 상위에 위치하는 마켓센싱처럼 더 추상적이고 범용적인 고차원적 능력이 요구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영어 능력의 중요성은 다소 회의적이다. 현재 서양의 글로벌 기업은 필리핀에 경리 처리 센터를 세우고, 인도에 IT지원 센터를 만들어 자사의 경리 작업과 IT지원 업무를 그 나라 사람들에게 맡기고 있다. 이로써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의 사무실에서는 영어가 가능한 경리 직원이나 IT지원 직원이 필요 없어졌다. 이제는 '영어로 일할 수 있는 능력'이 매우 보편화해 공급이 많고 단가가 싼 일이 되고 있다.

 

인도나 필리핀은 앞으로도 계속 인구가 늘고, 교육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어 능력뿐 아니라 비즈니스 수행 능력도 뛰어난 '영어 인재'가 세계 노동시장에 대량으로 공급된다. 일본인은 영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어도 영어를 할 수 있어서 굉장히 유리했던 시대는 이미 끝난 것이 아닐까?

 

 

자신이 높게 팔리는 시장은 어디인가?

 

예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결혼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20대 남성을 취재한 적이 있다. 연봉 300만 엔(약 3,200만원) 미만이고 학력도 높지 않은 이 남성은 직장에서 여성과 만날 기회각 없어 결혼 정보 서비스 회사에 등록했다. 그는 무려 200명이나 되는 여성에게 데이트를 신청했지만 전부 거절당하고 말았다. 이 남성은 호감형 얼굴에 키도 크고 말주변도 좋았다.

 

이 남성에게 부족한 것은 학력이나 연봉이 아니라 마켓센싱이다. 젊음과 외모와 성격 등 자신의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시장을 선택해 구혼 활동을 했다면 200연패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같은 남성을 좋아할 여성은 다른 시장에는 얼마든지 많을 뿐 아니라 단체 미팅이라면 '상대가 20대 여성이면 좋겠다'는 조건도 절대 허황된 희망이 아니다. 나 자신을 팔 수 있는 시장을 선택하라.

 

 

마켓 크리에이터가 되는 5가지 훈련법

 

가격 결정력을 익혀라. 잠재적인 가치를 깨닫기 위한 훈련이다. 
인센티브 시스템을 파악하라. 수요자와 공급자가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 수 있다. 
사장(조직)에게 높이 평가받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시장)의 지지를 받는 법을 배워라.

실패는 성공에 이르는 길 속에 있는 배움의 기회라는 것을 이해하라. 
시장성이 높은 환경으로 진입하라.

 

 

마켓 크리에이터는 자신이 현재 몸담고 있는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새로운 시장을 창조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계획적으로 시장성이 높은 환경을 선택해 커리어를 형성해나간다. 책에 소개된 마켓 크리에이터의 5가지 핵심 전략을 매일 연습하고 익힌다면, 앞으로 더욱 치열하게 변화할 미래에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빨리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변화를 즐겨라

 

앞으로 사람들은 특정한 자격이나 전문성을 익히거나 특정한 기업에 입사하기보다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즐겨야 한다. 변화가 일어나면 지금까지 필요했던 것이 필요 없어지고,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요가 발생한다. 과거 인기 상품을 만들었던 기업의 일자리는 줄겠지만 그렇다고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빨래판이 안 팔리게 되었다고 슬퍼하기보다는 세탁기가 팔리기 시작한 것을 기뻐해야 하지 않을까? 변화를 스스로 느끼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빨리 판단해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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