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폐지 논란은 이명박 정부의 꽃놀이패? 
정두언 의원의 개정안은 변신중, 교과부는 반대, 야당은 이견...."실체가 없다"
 

사교육비를 줄이고자 하는 정두언 의원의 진정성은 믿는다. 하지만 그의 뜻대로 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아주 천천히, 이 논란을 최소한 내년 지방선거까지는 끌고 갈 것이다."
외국어고등학교 폐지 카드를 꺼낸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의 진정성을 믿는단다. 같은 집권 여당 쪽에서 흘러나온 말이 아니다. 그동안 상극이나 다름없었던 전교조의 엄민용 대변인의 말이다.
모양새가 흥미롭다. '외고 폐지'라는 목적만 놓고 본다면, 정두언-전교조-야당은 같은 편이다. 하지만 정두언 의원과 정부 측 교육과학기술부의 생각은 다르다. 한나라당 내에도 이견이 있다. 
정권 실세로 통하는 정두언 의원의 주장이라면, 정부·여당의 견해로 봐도 무관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이 말은 통하지 않는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3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의 국정감사만 봐도 복잡한 흐름을 알 수 있다.
정두언 의원은 "외고는 유치원부터 사교육을 해야 갈 수 있는 곳으로 공정성을 크게 잃었고, 입시전문고가 돼버린 사교육의 주범"이라며 "정부 대책이 사교육에 영향을 못 주면 교육부 장관은 그만둬야 한다"고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다그쳤다.
하지만 안 장관은 꿈쩍하지 않았다. 안 장관은 "학교 교육이라는 것은 공교육 자체를 살림으로써 사교육을 줄이는 것이 정당한 방법"이라며 "외고 문제도, 사교육 문제도 중요하지만 외고 자체가 갖는 좋은 특성도 있다"고 반박했다. 외고 폐지 반대를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다.

정두언 외고 폐지안은 '변신' 중...교과부는 반대, 한나라당은 이견

또 이철우 한나라당 의원은 "외고는 전입금도 안 내는데 선발권까지 주는 것은 특혜"라며 정 의원 편을 들었다. 하지만 교총 출신인 이군현 한나라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철학은 자율과 다양성, 경쟁인데 외고를 획일적으로 전환, 규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지방교육자치 정신도 훼손하는 것"이라며 안 장관을 옹호했다.
상황이 이 정도면, '외고 폐지'가 당장 한나라당 당론이 되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정두언 의원은 실세답게 외고 폐지 문제에 강한 추진력을 보여주고 있기는 한 걸까? 이것도 확실하지 않다.
정 의원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초안을 22일 발표했다. 하지만 22일 당일에만 한 차례 수정안을 내는 미흡함을 보이더니, 23일 다시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정 의원의 개정안은 ▲외고를 특성화 학교로 전환하고 ▲학생 모집 단위를 전국으로 확대하며 ▲학생의 지원을 받아 추첨으로 선발한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런 초안이 다시 어떤 내용으로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교육계의 많은 인사들은 "도대체 외고를 폐지한다는 것인지, 학생 선발을 어떻게 바꾼다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도 없고, 실체도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23일 국감에서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 잘 정리했다.
"우리가 외고폐지를 주장했을 때는 수월성 교육을 위해 존속시켜야 한다더니, 쟁점이 많아 상정되지도 못할 법안을 갖고 이 혼란을 일으키는 의도가 무엇이냐. 특히 정부 여당이 정리된 입장 없이 중구난방으로 얘기하면서 학생과 학부모가 피해를 보고 있다." 
말 그대로 어리둥절한 사람이 많다.
사교육 업계에서도 "학교 자율과 수월성 교육, 그리고 특목고 확대를 주장하며 집권한 사람들이 갑자기 외고 폐지를 주장하니, 그 진심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고개를 흔들고 있다.
사실, 진짜 외고를 폐지하려고 하면 절차적으로 쉬운 방법이 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중 특목고를 규정하고 있는 90조 내용을 삭제하거나 바꾸면 된다.
이는 행정부인 교과부 소관의 일이다. 즉 교과부가 나서면 정치권에서 굳이 힘들게 법을 바꾸지 않아도 외고 폐지든 전환이든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교조와 야당은 "정권 차원에서 진정으로 사교육을 잡고 싶으면 교과부가 움직이면 될 일인데, 왜 엇박자를 일으키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상정 못할 법안으로 혼란 일으키는 의도가 무엇이냐" 

정두언 의원실도 이걸 부정하지 않는다.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교과부만 움직여 주면 우리가 이런 '생고생'을 안 해도 되다"며 "교과부는 계속 '두고 보자', '용역을 주고 그 결과를 연말에 보자'는 말만 하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물론 외고를 폐지하거나 다른 학교로 전환하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여러 이해 집단을 비롯해 국민 여론을 청취해야 한다. 교과부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럼 여기서 다시 정리를 해보자.
'실세' 정두언 의원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지금도 '변신' 중이다. 한나라당 내에 이견이 많으며, 무엇보다 교과부는 공공연하게 외고 폐지에 반대한다는 방침을 내비치고 있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단일안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폐지든 전환이든 외고 문제가 쉽게 결론 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게다가 교원단체총연합회와 조중동이 외고 폐지에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특히 <조선>의 반발이 거세다. 학교 자율성과 특목고 확대를 주장했던 이명박 정부가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외고 폐지를 밀어붙이는 건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문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외고 폐지 논란 속에서 여당과 정부는 이득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어쨌든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모양새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에 득이면 득이지 절대 손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무엇보다 야당 이슈를 여당의 실세 의원이 선점했다.

"어쟀든 정부와 여당은 이득... 내년 지방선거까지 논란 이어질 것"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 "외고 문제는 교육 문제를 넘어서 정치와 이념문제가 됐고, 쉽게 결정 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며 "결국 이번 사안은 한나라당이 최소한 내년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며 모든 재미를 끝까지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경원 진보신당 교육정책 위원도 "사교육비 경감 문제를 정권 실세 3인방인 정두언 의원(정치권), 이주호 교과부 차관(행정부),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청와대)이 이끌고 있는데도 외고 문제가 쉽게 결론 안 나는 걸 보면 '쇼'로 그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의 한 관계자 역시 "정 의원이 초중등교육법을 손대는 건 결국 교육체계 자체의 변화를 의미하는데, 이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며 "그럼에도 이렇게 판을 크게 흔드는 걸 보면 전형적인 '포퓰리즘'적인 움직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어쨌든 외고 폐지 논란은 시간이 갈수록 명확해지는 게 아니라,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교육 관계자들조차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토로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만 피해 본다"는 주장은 괜한 말이 아니다. 

출처 : 외고 폐지 논란은 이명박 정부의 꽃놀이패?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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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5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섬사이 2009-10-25 23:24   좋아요 0 | URL
허걱, 이런 오타가...!! ㅋㅋ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생각해볼만한 기사인 것 같아서, 시댁 가기 전에 허겁지겁 옮겨놓았더니
실수를 했네요. ^^
 
우리 소리 우리 음악 - 김명곤 아저씨가 들려주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세종도서) 상수리 호기심 도서관 9
김명곤 지음, 이인숙 그림 / 상수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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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등학교 때까지 굿거리장단이니 새마치장단이니 하며 장구채를 두들기며 실기시험을 준비하던 게 내 국악에 대한 지식 전부였던 것 같다. 대학에 들어가서 교양과목으로 ‘국악의 이해’라는 과목을 들으면서 그때서야 수제천도 듣고 영산회상도 들었다. 그 무렵 한창 ‘슬기둥’같은 현대적인 국악 실내악단이 생겨나면서 한번인가, 국악 공연을 보러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요즘은 좀 나아져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단소불기를 독려하는 것 같다. 가끔 음악실기 시험을 본다며 단소를 연습하거나 장단이 흥겨운 국악동요를 부르는 걸 보면 내가 학교 다닐 때에 비해서 국악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는 걸 실감하곤 한다.

하지만 여전히 국악은 우리 귀에서 너무 멀리 있다. 가요와 팝송이 여기저기서 요란하게 흘러나오고 가끔은 우아한 서양고전음악이 끼어들 때도 있지만, 국악은 하루 종일 들리지 않는다. 자주 들어야 익숙해지고, 익숙해져야 그 맛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국악과의 거리는 왜 이리 좁혀지질 않는지 모르겠다.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했고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 ‘유봉’역을 맡았던 분이 아이들을 위해 이런 책을 낸 것도 아마 사람들이 국악을 너무 몰라주는 데서 오는 섭섭함과 답답함 같은 것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어쩐지 책 앞에서 좀 미안해지기도 했다.

고대의 ‘굿’으로 시작한 음악의 역사는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현대로 흐르면서 각 시대별 대표적인 음악형태와 악기, 축제 등을 망라한다. 음악이라고는 하지만 신라의 향가나 고려의 향악(고려가요), 조선의 판소리처럼 국문학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조선시대의 세종대왕이 대규모의 음악 정책을 실시하면서 ‘정간보’같은 정확한 악보 표기법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가사는 전해질지언정 그 음은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이 노래의 가사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판소리에 대한 설명에 지면을 많이 할애하고 있는데, 판소리의 3요소와 판소리의 구성, 서편제와 동편제의 차이, 판소리 12마당에 대한 설명과 함께 명창들의 계보와 쇠락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

특별부록으로 책 뒷면에 붙어 있는 CD를 틀어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국악을 집중해서 들어보리라 결심하고 틀었는데, 아쉽게도 곡들의 대부분이 중간에서 뚝, 끊어져 버린다. 책 마지막의 CD에 수록된 곡을 정리해 놓은 것을 보면 12곡 중 4곡만 곡의 일부가 실린 것으로 되어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판소리 사랑가도 중간에 뚝 잘라지고 만다. 일부만 실리더라도 너무 표 나지 않게 적당한 곳에서 슬쩍 끊겨도 될 법한데, 판소리가 구성지게 울려 퍼지다가 가사 중간에 뭉툭 잘려나가 버린다. 마치 찬물을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일러스트에만 의존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악기라든가 정간보라든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 유물이라는 경북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등등은 실제 사진 자료로 볼 수 있다면 더 의미가 깊었을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지만 이 책은 쉽고도 재미있게 우리 음악사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파란색 박스 안에 들어 있는 설명들도 재미있어서 아이들이 우리 소리와 우리 음악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주 듣고 익숙해지는 게 우선일 터.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던 황병기의 가야금 연주 CD에 내려앉은 먼지를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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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를 누가 처음 발견했을까>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아메리카를 누가 처음 발견했을까?
러셀 프리드먼 지음, 강미경 옮김 / 두레아이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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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누가 “신대륙 아메리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하고 물으면 눈꼽만큼의 의심도 없이 “콜럼버스!”라고 자신있게 대답했던 나다.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기가 발견한 땅이 인도인 줄 알았다는 설명을 곁들여 가며 아이들 앞에서 잘난 척을 했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작가는 되묻는다. “정말 콜럼버스가 처음일까?”라고.
그래,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한 점이 있기는 했다. 특히 남미 페루 등지의 원주민들을 보면 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으니까. 검은 머리에다 서구인들의 얼굴에 비해 좀 평면적이다 싶은 얼굴이어서 어쩐지 동양적인 분위기가 느껴졌었다. 이상하단 생각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진 않았었다.

물론 콜럼버스가 발견하기 훨씬 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이 책에서 인용한 콜럼버스의 말에 의하면 `균형 잡힌 몸과 선이 매우 고운 얼굴 등 아주 튼튼해 보이‘고 ’다들 키가 큰데 다리가 하나같이 쭉쭉 뻗었고 배가 나온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쿠바와 히스파니(지금의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을 아우르는 섬)에서는 ’이곳에 한 번 들른 사람은 절대 떠나고픈 마음이 들게 하지 않을‘ 곳이며 그 곳에 살고 있는 타이노 족은 ’다정다감하고, 욕심이 없으며, 누구에게나 상냥‘했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며, 세상에서 가장 나긋나긋하고 온화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데다 늘 미소를 짓‘는다고 하니 원주민들은 꽤나 풍요롭고 평화롭게 잘 살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처참한 불행과 멸망을 돌려주었을 뿐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했다고 우리가 믿게 된 것은 어쩌면 그 발견의 결과가 너무나 확실하게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보다 71년 더 앞선 1421년에 정화제독이 이끄는 중국의 막강한 보선 함대가 아프리카의 남쪽 끝을 돌아 아메리카까지 갔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은 영국 해군 잠수함 함장 출신인 개빈 멘지스라는 사람으로 그가 근거로 내세우는 증거들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회의를 품고 있으면서도 ‘그가 인용하는 난파선과 유물 일부는 정말 중국인이 남긴 흔적으로 중국의 해상 여행객들이 소규모로 이따금 아메리카 해안에 상륙했다는 증거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당시 보선 함대의 항해기록이 불태워져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기록이 남아있다면  중국이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려 했는지를 알 수 있을 테고, 서구 열강이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식민지화 했던 것과 비교해 볼 기회도 생겼을 것이다.  

또 하나의 가설은 북유럽에 내려오는 바이킹 무용담에서 시작된다. 사람들 사이에 구전되어 온 ‘빈란드 무용담’에 의하면 레이프 에릭손이라는 노르웨이 농부의 아들이 정착학 새로운 땅을 찾아 항해에 올랐다가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지나 지금의 캐나다의 뉴펀들랜드 남단 랑스오메도 지역에 정착촌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그 시기는 콜럼버스보다 50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이들이 원주민들과 어떻게 접촉했는지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원주민들과 교역이 있었으며 그 와중에 오해가 생겨 폭력사태가 뒤따랐고 이 때문에 레이프의 동생이 죽었다는 내용이 무용담에 전해져 오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원주민의 숫자가 너무 많다고 여겨 포기하고 그린란드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랑스오메도 지역에서 고고학자 앤 스타인 잉스타드와 그녀의 남편 헬게 잉스타드에 의해 정착촌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중국의 보선이 아메리카에 닿았다는 설보다는 증거가 더 확실해 보인다.

아메리카 대륙 발견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를 듣고도 채워지지 않는 의문은 이어진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없었을까, 하는. 작가는 약 13,500년 전으로 추정되는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 클로비스 야영지와 약 18,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피츠버그 근처의 메도크로프트 유적지 등등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또 유전학자들은 최초의 발견자, 그러니까 최초의 이주민을 2만 년 전에서 3만 년 전 사이로 보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그러나 그렇게 따지자면 각 대륙의 최초의 발견자를 찾는 것처럼 까마득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인류의 조상이라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까지 거슬러 올라가 발견자를 찾아야 할 것이고, 그 최초의 발견자를 찾는다고 해도 그 발견자는 또 어디서 왔느냐가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의 인류의 기원에 대한 문제가 되고 만다. 일설에 따르면 인류의 시작이 60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기원한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외계인을 기원에 두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쓴 작가의 의도는 발견의 가장 처음을 찾자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 보다는 바늘 끝만큼의 의심도 하지 않고 누군가가 가르치는대로 그냥 꿀꺽 삼켜서 믿어버리는 우리의 단순하고 경직된 사고체계를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 유연한 체계로 바꿔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이제 누군가 ‘아메리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이라고 묻는다면 ‘콜럼버스!’라고 대답하진 않을 것이다. 그는 가장 늦게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고, 그 이전에 아메리카 대륙은 이미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다양한 그림과 사진, 지도가 있어 읽기가 더욱 즐거웠다. 그러나 사진이나 그림을 설명하는 독특한 글자체가 잘 읽히질 않았다. 본문이 시작되는 맨 앞장의 오른쪽 하단의 글씨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좀 더 번역이 매끄러웠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특히 ‘마지막 빈란드 항해는 레이프의 상처한 이복 여동생 구드리드와 결혼한 이아슬란드 상인 토르핀 칼세프니가 이끌었다’(66쪽)라는 문장은 몇 번을 다시 읽어도 껄끄러워서 난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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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그림 속 우리 얼굴>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옛 그림 속 우리 얼굴 - 심홍 선생님 따라 인물화 여행
이소영 / 낮은산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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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예쁘장한 이층집이 좋았는데 지금은 푸근하고 아늑한 한옥에 끌리는 것은 아마 나이 탓일 게다. 우리의 옛 그림이 좋아지는 것도 나이에 따른 변화일까. 좋아졌다고 해서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옛 그림 속에서 예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정취라든가 편안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을 받고 표지의 ‘황현상’을 마주했다. 비교적 근대에 그려진 그림인데 피부의 결이며 눈가의 잔주름, 약간 사시인 눈동자, 그리고 눈썹 한 올까지 무척 세밀했다. 재작년이던가. 덕수궁미술관에서 비엔나 미술관전이 열렸을 때, 발타자르 데너의 ‘늙은 여인’이라는 작품을 보았을 때에도 극사실주의적 묘사에 무척 강한 인상을 받았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극사실주의적 묘사를 통해 드러난 인물의 카리스마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윤두서의 <자화상>을 비롯해서 이명기의 <채제공>초상 등 거의 모든 우리의 전통 초상화에서 인물들의 뚜렷한 분위기가 흘러나온다.  경직된 부동자세의 무표정한 얼굴인데도 그 앞에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 “으흠.”하는 헛기침을 시작으로 내게 말을 걸어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말을 걸어올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는 건, 그림 속 인물이 이국인의 얼굴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얼굴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책이 초상화를 통해서만 우리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좀 더 다양한 그림을 통해 우리의 얼굴을 느끼게 한다. 신석기 시대의 <얼굴 모양 조가비>에서 시작한 얼굴은 고구려 무용총의 <접객도>를 거쳐 조선시대의 전통초상화들을 살피다가 미인도 등을 통해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러다 풍속화 속의 인물들의 표정과 속마음을 살피기도 한다.

이야기 하듯 ‘~어요’체로 쉽게 풀어쓴 글이 부드럽고, 아래 사진처럼 그림 속 인물에 대한 설명글마다 작은 원모양으로 인물 그림을 따 놓아 아이들이 그림 속에서 그 인물을 찾아보기 쉽게 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자화상 그리기’로 아이들이 자기 얼굴을 그려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왼쪽 면에는 얼굴형, 눈, 코, 입, 귀 등등의 예가 각각 나오고 오른쪽 면의 청동거울 모양 안에 자기 얼굴을 관찰하며 그려볼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엔 빈 종이와 화선지가 붙어 있어서 직접 먹선을 그리고 채색을 해서 완성해 보도록 이끈다. 책 중간중간 <김유 초상> 속 호랑이 가죽의 가려진 얼굴 부분을 그려보라고 하거나, 김홍도의 풍속화들 속에서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얼굴’을 찾아보라거나, 옛 그림 속 우리 옷과 쓰개를 소개하는 것도 아이들의 흥미를 돋울 것 같다.




이 책이 좋은 것은 단순히 우리의 전통회화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들을 통해 우리의 옛 그림이 오늘의 그림으로 이어지도록 하고, ‘자화상 그리기’를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얼굴과 아름다움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옛 그림들과 마주하며 참 좋구나, 하고 느낄 때마다 어릴 때 우리 옛 그림이나 도자기 등의 유물을 좀 더 자주 접하고 배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일곤 했다. 미술교과서마저도 서양미술과 그 기법에 대한 소개로 가득했던 것이 기억나서 아이들에게 전통 예술에 대한 길라잡이 역할을 해줄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그래서 적어도 아이들이 서양미술보다 우리 옛 그림을 더 낯설어 하며 자라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지나치게 서구화된 미의 기준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옛 그림 속 그 얼굴이 바로 가장 자연스러운 우리의 얼굴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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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7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섬사이 2009-10-28 07:40   좋아요 0 | URL
정말 나중에 읽어보면 꼬인 문장도 보이고, 오타도 보이고...
읽어주시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꾸벅~
 


   사계절 중학년 문고 16 

  류호선 글 / 정지윤 그림 / 사계절 / 2009
 

 

 

‘사투리의 맛’은 어떤 맛일까. 제목을 보자마자 작가가 사투리를 소재로 어떤 글을 썼기에 표지에다 ‘사투리의 맛’이라는 식당 광고 글 같은 제목을 걸어놓았을까 궁금했다. 따지고 보면 사람마다 그 특유의 글맛이라는 게 있긴 하다. 맛깔나는 표현으로 이야기의 맛을 더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도 있고, 좀 싱거운 듯해도 오래오래 곱씹다보면 은은한 맛이 감도는향기로운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맵고 거친 글로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조미료를 지나치게 많이 넣은 달달한 글로 쉽게 끌렸다가 쉽게 질리는 글을 쓰기도 한다. 어디 글뿐일까.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것도 마찬가지다.

책의 제목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말과 글로 어떤 맛을 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별로 감성이 풍부한 편은 못되니 꽤나 푸석푸석 메마르고 밋밋한 맛을 내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된다. 아마 사람마다 자기의 말과 글로 음식을 만들어 판다면, 나는 별로 성공적이지 못할 것 같다. 솔직히 망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다, 싶다. 그러고 보니 표지의 글씨체나 디자인이 번쩍번쩍하는 네온싸인과 꽤 비슷하다.

우리에게 사투리의 맛에 대해 가르쳐줄 사람은 여수 돌산도 금봉분교에 다니는 구철환이라는 3학년 남자 아이다. 구철환은 ‘인물도 훤허고 목소리도 참기름맹키로 맨지르르헌’ 여수 돌산도의 모범적인 예비 아나운서다. 학교에서 조회를 할 때면 조회대 위로 올라가 ‘정말 아나운서처럼 매주 주훈을 읽거나, 그날그날의 우리 동네 소식을 발표’하기 때문이다. 구철환의 ‘우리 동네 뉴스’가 얼마나 재미있고 정겨운지 읽다보면 철환이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물고기 질병 치료사인 아빠가 직장을 서울로 옮기는 바람에 가족이 모두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구철환의 역경이 시작된다. 여수 돌산도에 비해서 무엇이든 다 크고 높고 세련된 서울은, 철환이에게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다. 온마을 사람들이 가족같던 여수 돌산도에 비해서 서울은 너무 단단하고 까칠하며 사람 사이의 경계가 분명하다. 게다가 표준말을 쓰는 서울 사람들에겐 사투리가 고추냉이나 고수처럼 섞이기 힘든 버거운 맛으로 느껴졌는지, 구철환의 ‘참기름맹키로 맨지르르한’ 말재주는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오히려 놀림감이 되고 만다. 전학 온 학교에서 방송실을 발견한 구철환은 반드시 학교 아나운서가 되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하고 표준말 연습에 들어가는데, 같은 반 친구 ‘백여시’ 혜향이가 철환이를 돕는다.

말이든 글이든, 그건 서로에게 스며들라고 있는 게 아닐까. 철환이에게 여수 돌산도가 소통의 공간이었다면 서울은 단절의 공간이었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친구들에게 ‘사투리의 맛’과 ‘고향의 맛’을 알리는 ‘특파원 구철환’이 되고 나서야 그 단절은 극복된다. 극복을 위한 결정적인 역할을 혜향이나 철환이가 아닌 어른인 선생님이 맡았다는 게 좀 아쉽다. 혜향이를 통해서도 극복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이 책의 마지막엔 여수 돌산도와 서울을 가르던 경계가 좀 희미해진다. ‘사투리 신데렐라’라는 연극을 하는 철환이네 반 친구들, 철환이가 사투리로 전하는 여수이야기에 재미있어 하는 서울학교 아이들이 염생이가 새끼를 낳았다고 동네 아이들에게 수수부꾸미를 부쳐주시는 혁이네 할머니, 학교 운동장으로 냅다 도망쳐 들어온 진우네 돼지 새끼를 잡으려고 모두 함께 운동장을 달리는 아이들과 선생님, 동네어른들, 전교생을 모아도 축구할 인원이 모자라는 걸 알고 기꺼이 골키퍼가 되어주시는 학교 할아버지와 서로 닮아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물론 제목처럼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맛은 정말 꽤 훌륭하다. 그러나 이 책은 더 나아가 ‘사투리의 맛’을 인정했다면 까다롭게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대충 넣어도 맛있는 잡탕찌개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 맛보다도 어쩌면 온도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맛있는 잡탕찌개라도 식어버리면 맛이 없으니까.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소통)도 때로 맛은 좀 없더라도 따끈한 게 나는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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