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계절 중학년 문고 16
류호선 글 / 정지윤 그림 / 사계절 / 2009
‘사투리의 맛’은 어떤 맛일까. 제목을 보자마자 작가가 사투리를 소재로 어떤 글을 썼기에 표지에다 ‘사투리의 맛’이라는 식당 광고 글 같은 제목을 걸어놓았을까 궁금했다. 따지고 보면 사람마다 그 특유의 글맛이라는 게 있긴 하다. 맛깔나는 표현으로 이야기의 맛을 더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도 있고, 좀 싱거운 듯해도 오래오래 곱씹다보면 은은한 맛이 감도는향기로운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맵고 거친 글로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조미료를 지나치게 많이 넣은 달달한 글로 쉽게 끌렸다가 쉽게 질리는 글을 쓰기도 한다. 어디 글뿐일까.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것도 마찬가지다.
책의 제목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말과 글로 어떤 맛을 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별로 감성이 풍부한 편은 못되니 꽤나 푸석푸석 메마르고 밋밋한 맛을 내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된다. 아마 사람마다 자기의 말과 글로 음식을 만들어 판다면, 나는 별로 성공적이지 못할 것 같다. 솔직히 망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다, 싶다. 그러고 보니 표지의 글씨체나 디자인이 번쩍번쩍하는 네온싸인과 꽤 비슷하다.
우리에게 사투리의 맛에 대해 가르쳐줄 사람은 여수 돌산도 금봉분교에 다니는 구철환이라는 3학년 남자 아이다. 구철환은 ‘인물도 훤허고 목소리도 참기름맹키로 맨지르르헌’ 여수 돌산도의 모범적인 예비 아나운서다. 학교에서 조회를 할 때면 조회대 위로 올라가 ‘정말 아나운서처럼 매주 주훈을 읽거나, 그날그날의 우리 동네 소식을 발표’하기 때문이다. 구철환의 ‘우리 동네 뉴스’가 얼마나 재미있고 정겨운지 읽다보면 철환이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물고기 질병 치료사인 아빠가 직장을 서울로 옮기는 바람에 가족이 모두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구철환의 역경이 시작된다. 여수 돌산도에 비해서 무엇이든 다 크고 높고 세련된 서울은, 철환이에게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다. 온마을 사람들이 가족같던 여수 돌산도에 비해서 서울은 너무 단단하고 까칠하며 사람 사이의 경계가 분명하다. 게다가 표준말을 쓰는 서울 사람들에겐 사투리가 고추냉이나 고수처럼 섞이기 힘든 버거운 맛으로 느껴졌는지, 구철환의 ‘참기름맹키로 맨지르르한’ 말재주는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오히려 놀림감이 되고 만다. 전학 온 학교에서 방송실을 발견한 구철환은 반드시 학교 아나운서가 되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하고 표준말 연습에 들어가는데, 같은 반 친구 ‘백여시’ 혜향이가 철환이를 돕는다.
말이든 글이든, 그건 서로에게 스며들라고 있는 게 아닐까. 철환이에게 여수 돌산도가 소통의 공간이었다면 서울은 단절의 공간이었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친구들에게 ‘사투리의 맛’과 ‘고향의 맛’을 알리는 ‘특파원 구철환’이 되고 나서야 그 단절은 극복된다. 극복을 위한 결정적인 역할을 혜향이나 철환이가 아닌 어른인 선생님이 맡았다는 게 좀 아쉽다. 혜향이를 통해서도 극복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이 책의 마지막엔 여수 돌산도와 서울을 가르던 경계가 좀 희미해진다. ‘사투리 신데렐라’라는 연극을 하는 철환이네 반 친구들, 철환이가 사투리로 전하는 여수이야기에 재미있어 하는 서울학교 아이들이 염생이가 새끼를 낳았다고 동네 아이들에게 수수부꾸미를 부쳐주시는 혁이네 할머니, 학교 운동장으로 냅다 도망쳐 들어온 진우네 돼지 새끼를 잡으려고 모두 함께 운동장을 달리는 아이들과 선생님, 동네어른들, 전교생을 모아도 축구할 인원이 모자라는 걸 알고 기꺼이 골키퍼가 되어주시는 학교 할아버지와 서로 닮아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물론 제목처럼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맛은 정말 꽤 훌륭하다. 그러나 이 책은 더 나아가 ‘사투리의 맛’을 인정했다면 까다롭게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대충 넣어도 맛있는 잡탕찌개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 맛보다도 어쩌면 온도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맛있는 잡탕찌개라도 식어버리면 맛이 없으니까.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소통)도 때로 맛은 좀 없더라도 따끈한 게 나는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