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테어난 날엔 곰도 춤을 추었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네가 태어난 날엔 곰도 춤을 추었지 내인생의책 그림책 6
낸시 틸먼 지음, 이상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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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은 내 아이가 ‘세상’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 된다. 모든 조명이 내 아이를 향해 밝혀지고, 온 세상이 내 아이를 바라보며 귀를 기울이고, 모든 것이 내 아이를 위해 박수를 치고 환호한다. 내 아이의 탄생은 예수의 탄생보다 극적인 것이 되고, 내 아이는 온 우주의 중심이 된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처음 이 책을 읽어줄 때, 나는 살짝 부끄러웠다. 가끔은 아이가 나에게 와준 게 너무 고마워서 “유빈아, 넌 어느 별에서 왔니?”하고 물으면 아이는 동그란 눈을 깜박이며 “공주별에서 왔어.”하거나 “핑크별에서 왔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나는 “그렇게 먼 데서 엄마 품 찾아서 쏙 들어온 거야?”하며 감격할 때도 있지만, 놀아달라며 매달리는 아이가 귀찮아서 “제발 좀 엄마한테 매달리지 말고 혼자 놀아.”하며 애가 좋아하는 DVD를 틀어줄 때도 많기 때문이다. (두 손을 가슴에 얹고 반성한다.) 그러니 “네가 태어난 날엔 곰도 춤을 추었지.”하는 게 어쩐지 어색함이 잔뜩 묻어버린, 짜고 치는 감동의 세레모니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몇 번을 반복해서 이 책을 읽어주다 보니, 문득 이 그림책 속에 나오는 달과 바람과 비와 곰, 기러기, 무당벌레 등이 마음속에 작은 무늬를 만들기 시작했다.

분명히 아이의 탄생은 축복이다. 생각해 보면 아이가 내 안에 잉태되는 순간 나의 모든 시간들이 아이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포기해야 할 것들이 한 쪽에 쌓여갔고 참고 견뎌야 하는 것들도 다른 한 쪽에 똑같이 쌓여갔다. 도중에 멈출 수 없는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지치고 힘들 때에도 억지로 기운을 짜내며 아이를 보듬어야 했다.  



 

 

 

 

 
















아이는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었고,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포옹하는 우주가 되어버린 것도 사실이다. 엄마인 나는 이 그림책 속에서 아이를 보고 어여쁘다 감동하는 달이고, 아이의 이름을 속삭이는 바람이고 비며, 새벽이 올 때까지 기뻐 춤추는 곰이고, 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무당벌레이며 작은 새이고 , 아이를 위해 노래하는 기러기다. 그래, 틀림없이 이 그림책 속에서 아이를 보고 기뻐하고 감동하는 모든 것이 바로 엄마, 나의 모습이었다.

그림책 속에서 ‘엄마’의 비유들을 느끼고 나니,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나 혼자 울컥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아이에게 “네가 태어난 날엔 곰도 춤을 추었어. 정말 춤을 못 추는 못난이 곰이었는데, 그래도 너무 기뻐서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었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곰처럼 같이 춤추자고 아이랑 손을 마주잡고 음악에 맞춰 숨이 차도록 춤을 추고는 깔깔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짜고 치는 어색한 감동의 세레모니는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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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1-05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멋진 리뷰에요.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는 그 모든 것이 엄마였다는 발견, 놀라워요!!

섬사이 2009-11-07 10:29   좋아요 0 | URL
책에 대해서라면 독보적이라고 할 만큼 고수이신 순오기님 같은 분의 칭찬을 들으면 부끄러우면서도 입이 헤~ 벌어져요.
고맙습니다. ^^
 
똑똑한 동물원 (빅북) 알맹이 그림책 11
조엘 졸리베 지음, 최윤정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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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그림책이다. 가로 35Cm에 세로 45Cm, 우리집에 있는 책들 중에서 가장 큰 판형이다. 아이는 책을 받자마자 크기에 놀랐는지 ‘와!’하고 감탄하더니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도감류의 책들을 좋아하는 유빈이는 커다란 사이즈의 책 속에 빽빽하게 들어있는 동물들을 보고 또 좋아라했다. 이건 뭐야, 저건 뭐야, 물어오는 통에 대답해주기 바빴다.

요즘 나오는 도감 책들은 책을 펼친 양쪽 면에 한 가지 동물과 그 동물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는 게 대부분이다. 하나의 동물, 하나의 식물을 집중해서 관찰해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겠지만 한편으로는 펼쳐진 양면에 동물이나 식물이 여러 개가 한꺼번에 들어 있다면 한 눈에 다양한 모습을 비교하고 분류해볼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똑똑한 동물원』은 내가 갖고 있던 그런 아쉬움을 싹 해결해 준 셈이다. 무려 400여 개의 동물이 페이지를 가득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동물분류에 있어서도 포유류, 조류, 파충류 등등의 분류법이 아니라 ‘더운 곳에 산다’, ‘추운 곳에 산다’, ‘땅 속에 산다’, ‘밤에 활동한다’, ‘까맣고 하얗다’ 등등으로 동물들을 분류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참신함이 돋보인다. 단순하고 유아적인 분류에 동물들만 잔뜩 그려놓았다고 불만스러워 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책의 뒷부분 <우리가 몰랐던 동물들의 사생활>이라는 꼭지를 보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대부분의 도감류 책들에는 동물들에 대한 설명이 복잡하고 길고 딱딱할 뿐 아니라 각 동물들에 대한 설명 방식도 비슷해서 읽다보면 그게 그거같은 지루함에 빠져들고 만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에게 읽어주려면 참 곤혹스러운데, 이 책은 한 두 줄의 설명이 전부다.

예를 들어 ‘돼지’에 대한 설명을 비교해본다면, 집에 있는 도감에는 ‘돼지는 고기를 먹으려고 집에서 기르는 젖먹이 동물입니다.’로 시작해서 9,000년 쯤 전부터 사람들이 기르기 시작했고, 먹성이 좋고, 아침 6~10시, 오후 3~6시에 활동성이 제일 크고, 코로 땅을 파기도 하고, 땀샘이 있지만 땀을 흘리지는 않고,, 등등의 설명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림 밑에는 ‘포유류 소목 멧돼지과’ 등등의 도식적인 분류가 쓰여 있다. 그에 비해 이 책에는 다른 동물에 비해 비교적 길게 세 줄이나 설명이 쓰여 있는데, “돼지는 아무거나 잘 먹는 잡식성이다. 이슬람교도들은 돼지를 더럽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돼지는 깨끗한 것을 좋아하며 새끼를 낳아 잘 기른다.”라고만 되어 있다. 유아들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이해하고 동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적당한 군더더기 없는 설명이다.

‘도망갈 때는 날지 않고 뛴다.’라는 설명이 전부인 꿩이나 집게벌레의 ‘집게를 뭐하는 데 쓰는지 모른다. 적을 위협하는 데 쓸 수도 있겠다.’라는 추측성 설명을 읽어주다 보면 사실 아이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이 동물이 포유류인지 조류인지, 어디에 살고 새끼나 알을 얼마나 낳는지 따위보다는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판화느낌이 나는 굵은 선의 비교적 단순한 동물그림들도 인상적이다. 세밀화가 대세이긴 하지만 동물들의 특징을 잘 살려낸 그림들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좀 큰 아이들이라면 한 번쯤 따라 그리기를 해봐도 좋을 듯하다.

판형이 너무 커서 아이랑 누워서 읽어주기엔 무리라는 것, 책장에 세로로 세워서 꽂아둘 수가 없다는 점이 좀 아쉽지만, 바닥에 펼쳤을 때의 시원시원한 크기를 생각하면 그런 사소한 아쉬움 따위, 쉽게 용서될 뿐 아니라 ‘좀 더 커도 괜찮겠다’하는 욕심도 살짝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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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본 다이어리 2015>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카본 다이어리 2015
새시 로이드 지음, 고정아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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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가 어떻고, 탄소배출량 감축이 어떻고, 저탄소 녹색성장은 또 뭐고, 교토의정서는 어찌 돌아가는지.... 들은 말은 많았지만 제대로 정리된 것도 없었고, 문제의 심각성도 그다지 와닿지 않았던 것들이다. 환경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는 초등학교 1학년 바른생활 수준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게다.

카본 다이어리, 제목에서부터 탄소(carbon)을 내건 것이 좀 수상타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2015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우리 모습을 상상한 책이다. 그것도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은.

이상기후를 일으키는 온실효과의 주범이 탄소이고, 1997년 일본 교토에서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기후협약을 맺고 그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온실가스감축이다. 그러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의견대립으로 2005년에 가서야 발효가 되었고 그나마 미국은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8%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자국의 산업을 보호한답시고 일찌감치 2001년에 탈퇴 선언을 하는 바람에 제대로 밉상이 되기도 했다. 지금 우리 시대에서 논의되고 있는 온실가스 감축,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이야기가 바로 이 책에 담겨진 이야기다.

런던에 살고 있는 16살 소녀 로라의 일기를 통해 드러나는 재앙과 그 재앙을 견뎌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혹하다. 로라는 ‘정치적인 것은 싫고’, ‘모든 게 그냥 정상적이었으면 좋겠다.’(p.52)는 평범한 소녀이고 무겁고 심각한 것보다는 ‘인생의 재미’(p.52)를 맛보고 싶은 발랄한 소녀이지만 그 모든 것이 여의치 않은 시대를 살아간다.

지구온난화로 세계 곳곳에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영국 국민들이 늦게나마(그러나 세계최초로) 재앙을 해결해보려는 시도가 탄소배급제이다. 각 가정에 탄소배출량을 재는 스마트 미터기가 설치되고 개인에게는 한 달에 200포인트를 쓸 수 있는 탄소카드가 발급된다. 그 규정을 위반했을 경우 ‘탄소 범칙자 재활 센터’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휘발유를 많이 잡아먹는 자동차가 무용지물이 되고, 전력이 수시로 끊기고, 변기물이 노란색을 넘어 갈색이 되어야 물을 내릴 수 있을 만큼 물을 절약해야 하고,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한편에선 약탈이 일어나고, 항공여행은 불가능한 꿈이 되어버리고 마는 세상. 그런 모든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는데도 멈추지 않는 폭설, 폭우, 태풍, 가뭄 등의 이상기후는 사람들의 희망마저도 흔들리게 한다.

로라의 엄마가 “강인해져야 한다는 걸 알지만, 우리 세대 때문에 너무 미안해. 너희 세대의 세상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든 게 우리잖니.”(p.20)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뜨끔했다. 나는 내가 비교적 좋은 시대를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 세대가 겪었던 참혹한 역사의 한 부분을 슬쩍 피해서 태어났을 뿐 아니라, 살아오면서 세상은 점점 더 편리하게 변해갔으니까. 우리 시대만의 아픔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아픔의 중심에 있지 않았던 나는 적당히 견디어 왔었던 것 같다. 그러나 로라의 엄마가 하는 말은 내가 지금 즐기며 누리고 있는 이 행운이 불러올 대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언젠간 나도 내 아이들이나 아니면 내 손자뻘 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해야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앙’에 대한 이 소설 속에서 16살 로라는 사랑을 하고 가족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친구와 이웃 간의 관계의 소중함을 알아간다. 재앙 속에서 꽃피는 사랑과 인간애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 감동과 재미를 더해주기 마련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희망이기도 하고, 재앙을 견디고,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면 U턴이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기도 한 것 같다. 아버지의 재산을 흥청망청 다 써버리고 거덜 낸 못된 자식이 뒤늦게 흘리는 참회의 눈물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탄소에 대한 인식을 촉구하는 장치들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자주 이용하는 생협매장에서는 영수증에 이런 게 찍힌다.  

 

이른바 로컬푸드의 의미를 이용자들에게 알려서 판매를 촉진하고자 하는 의도이긴 하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영수증 하나를 보면서 오소소 소름이 돋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알게 된 것 또 하나. 우리나라에서도 ‘탄소포인트제’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소개글을 그대로 옮겨보면 탄소포인트제란 ‘국민 개개인이 온실가스 감축활동에 직접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로 가정, 상업시설, 기업이자발적으로 감축한 온실가스 감축분에 대한 인센티브를 지자체로부터 제공받는 범국민적 기후변화 대응 활동(Climate Change Action Program) ’이란다. ‘탄소포인트는 현금, 탄소캐쉬백, 교통카드, 상품권 종량제 쓰레기봉투, 공공시설 이용 바우처, 기념품등 지자체가 정한 범위 내에서 선택할 수 있고, 탄소포인트를 탄소캐쉬백으로 전환하는 경우 이마트, 뚜레주르, 11번가 등 5만여 OK캐쉬백 가맹점, 탄소캐쉬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사용가능하다’고 한다.   다행이다. 아직은 『카본다이어리 2015』에서 나오는 탄소카드처럼 ‘채찍’이 아니라 ‘당근’에 더 가까운 포인트제라서. 관심 있으신 분들은 홈페이지(http://www.cpoint.or.kr)를 찾아가 봐도 좋을 듯하다.

우리가 자주 잊고 살아가는 것 중의 하나는 우리가 무척 연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걸 너무 자주 잊는 바람에 너무 오만해지기도 한다. 이 책 속에서 작가는 우리가 편리함을 포기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대해서도 한 마디 잊지 않는다.

‘오늘 본 런던은 내 평생 가장 아름다웠어. 달이 어마어마하게 컸고 별들은 눈부시게 밝았고..... 그리고 환상적으로 고요했지’(p.38)라고 하거나 ‘나무에서 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p.132)는 간단한 문장으로 “침묵의 봄”이 물러갔음을 암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고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모든 공해와 연기와 비행기와 공장과 불필요한 잡동사니 속에 살다보면, 누구나 어느 날 이렇게 낯선 계단에 서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가족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 있다.’(p.383)고. 2015년, 너무나 가까운 미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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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1-05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105쪽까지 읽었는데 밑줄 그은 곳이 똑같네요.
정말 우리 다음 세태에게 미안할 일이죠.ㅜㅜ

섬사이 2009-11-07 10:31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래요. 이 책 읽고 나서 온실가스니 탄소감축이니 하는 보도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어요. ㅠ.ㅠ
 

아파트 단지내 놀이터에서 모래밭을 없애고 푹신한 스펀지 타일을 까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두어달 전부터 모래밭을 없애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지만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를 한 것도 아니고, 모여서 정식으로 찬반의견을 듣는 회의를 연 적도 없어서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은 몰랐다. 그냥, 무조건, 위생상 좋지않고 관리가 어렵다는 게 이유고, 게,다,가, 구청에서 사업비를 지원받아 하는 거라 꼭!!! 해야 한단다. 

유빈이가 걸음마를 시작하고 놀이터에 나가면서부터 모래밭은 최고의 놀이공간이었다.  모래놀이셋트에 일회용 숟가락 몇 개, 케이크 살 때 넣어주는 빵칼 두어 개, 낡은 주걱 하나, 장난감 자동차 하나를 더 보태어 넣어주면 모래밭에 앉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고, 한가득 쏟아놓은 모래장난감들은 유빈에게 같이 어울려 놀 친구, 언니, 오빠들을 불러주었다.  유빈이는 모래놀이를 통해서 여럿이 함께 노는 법을, 장난감을 나누어서 갖고 노는 법을 배웠다.

모래로 케이크를 만들어 나뭇잎과 꽃잎으로 장식하고 나뭇가지 몇개 주워와서 초라고 꽂아놓고 신나게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는 작업 하나로 유빈이는 미술과 음악 공부를 동시에 했다.  모래 떡 만들어서 떡장사 놀이를 하며 유빈이는 "3천원 임다~~"하며 사회를 익혔다.  좀 더 커서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터널과 길을 만들었다.  모르긴 해도 그 과정에서 협동을 익히고 공간과 방향에 대한 개념도 터득했을 것이다.  맨발로 모래밭을 뛰어다니며 촉감을 느꼈고, 그것은 유빈이의 뇌를 자극하기도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모래밭은 가장 가깝고 친숙한 자연이 아니었을까.   비싼 놀이학교 등에는 실내에 깨끗한 모래함을 설치한 곳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곳엔 바람이 없고, 꼬물꼬물 기어가는 개미도 없고,  근처에 이파리를 딸 만한 나무도 없을테고... 어쩐지 시시하지 않은가.

모래밭이 없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좀 착잡하고 씁쓸하다.  내년이면 유빈이는 여섯살, 어쩌면 모래밭에서 놀만큼 놀았다고 볼 수 있는 나이다.  이제 슬슬 모래밭을 졸업할 나이인지도...  그래서인지 아파트 안에서  유빈이보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더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모래가 더럽다고 하는데, 예전에 TV 뉴스에서는 모래보다 스펀지 타일이 더 비위생적이라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모래는 바람에 마르고, 햇볕에 어느 정도 소독도 되는데, 스펀지 타일은 열을 받으면 유독성분이 나올 수도 있고 비에 젖으면 쉽게 마르지 않아서 타일 안쪽이 부패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냥,  보기에만 좀 깔끔해 보일 뿐이다.  결국은 어른 입장에서 모래가 골치가 아프기 때문에 없애는 것 뿐이다.  집안에 모래를 묻혀오고 놀이터 여기저기에 모래를 흘리고 다니는 아이들 모습이 신경에 거슬리기 때문인 것이다.

모래가 스펀지 타일보다 비위생적이라고 쳐도, 좀 우습다.  모래보다 비위생적인 것 천지인 이 세상에서,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위생에 그렇게 신경을 쓰고 싶다면 당장 대기오염, 수질오염, 먹거리오염에 대해선 왜 그리 너그러운가 말이다.  그것도 가만히 보면 공기가 나빠지고 물이 좀 더러워지고 먹거리가 오염되는 쪽이 어른들이 생활하는 데 편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놀이터 모래밭 말고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걱정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수입쇠고기 불매하고 친환경 먹거리를 구매함으로써 올바른 농부들을 응원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분리수거를 잘하고, 쓰레기를 줄이고, 자연을 파괴하는 개발에 반대하고, 교육이 폭력이 되지 않게 조심하고....

모래밭 자리에 깔린 바둑판 무늬의 스펀지 타일을 보고 있자니, 아이들에게 또 즐겁게 뛰놀 자연을 하나 빼앗은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우리 어른들의 치졸하고 옹색한 모습이 거기 있는 것 같아서 유빈이 앞에서 공연히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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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0-28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을 하나씩 망가뜨리는 것이 이 정부가 하는 일이군요.ㅜㅜ
자연과 더불어 자라야 할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가하는 폭력은 상상을 초월하죠.

섬사이 2009-10-28 21:46   좋아요 0 | URL
그 어른들 속에 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슬퍼요.
저도 그들과 별로 다를 게 없는 어른이거든요. ㅠ.ㅠ

마노아 2009-10-28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흙과 모래를 밟아보는 최소한의 경험도 못하게 되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질 거예요. 조카들 사는 집 아파트에도 푹신한 스펀지 타일이에요. 요새 초등학생들은 고무줄놀이, 얼음땡, 허수아비, 땅따먹기 등등을 알까요? 알아도, 해보기는 했을까요? 자연에서 멀어지고, 함께 놀며 즐기며 자라가는 모습도 사라져 가고, 안타까운 게 너무 많아요...ㅜㅜ

섬사이 2009-10-28 21:49   좋아요 0 | URL
지난 여름 유빈이는 처음으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놀이를 배웠어요.
동네 아이들 여럿과 함께 어울려 노는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어요.
제가 어릴 적의 골목풍경이 그대로 살아나는 것 같았거든요.
무조건, 아이들은 일단 놀아야하는데 말이죠.
그 때가 아니면 언제, 그렇게 놀겠어요..에휴..
 
어린이를 위한 반 고흐 어린이를 위한 예술가
실비아 뤼티만 지음, 노성두 옮김, 로렌스 사틴 그림 / 다섯수레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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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인가에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읽으며 고흐의 동생 테오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고흐가 불꽃이라면 테오는 불꽃이 계속 타오를 수 있도록 하는 장작 같고, 불꽃의 강렬함에 가려진 그림자 같다고나 할까. 테오의 희생적인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고흐가 37년의 짧은 삶을 살면서 800점이 넘는 유화와 1000점이 넘는 스케치를 남길 수 있었을까. 늘 테오를 생각하면 고흐의 비극적인 생애 못지않은 애처롭고 안쓰러운 기분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래서일까. 고흐를 이야기하는 수많은 책들 속에서 테오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 같다. 그들의 각별한 형제애는 둘 사이를 오간 700여통의 편지를 통해 오롯이 드러나고, 고흐 사망 6개월 후에 테오도 병으로 죽음에 이르러 현재 그 둘이 묘비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부분에서는 자못 숙연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도 동생 테오가 화자가 되어 형 고흐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간다. 사실 그림책으로는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로 유명한 이세 히데코 글,그림의 『나의 형, 빈센트』를 먼저 만났었다.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이 책도 동생 테오가 화자인데 고흐가 죽고 난 뒤에 형을 추억하는, 시적이지만 우울한 줄거리이며 이세 히데코 특유의 축축하게 젖어 부드럽게 번진 듯한 그림이 일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흐의 그림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어린이를 위한 반 고흐』, 이 책이 반가웠던 것은 테오가 좀 더 밝은 톤의 목소리로 우리에게 고흐의 작품을 쉽게 설명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한 쪽 페이지를 독차지하는 제법 큰 사이즈의 작품 사진이 여러 개 실려 있기 때문이다. 고흐의 원작을 본 적이 없으니 인쇄된 작품 사진이 원작의 색감을 잘 살려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이와 그림을 감상하기엔 무리가 없다.

본문에 수록된 작품은 1887년부터 1890년까지 약 4년 동안의 작품이다. 파리에 머물던 시기부터 가장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던 아를, 그리고 착란증세로 1년여 동안 머물렀던 생 레미 정신병원 시절과 오베르로 옮겨 와 권총부상으로 사망하기까지의 불꽃같았던 열정의 시간들이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책의 뒷 부분에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또 다른 작품들’이라는 꼭지에서 고흐의 모델이 되어주었던 여인 ‘시엔’의 스케치 <슬픔>(1882년작)을 볼 수도 있고 (사실 시엔은 추운 암스텔담 거리를 떠돌던 알콜중독자에 매춘부였으며 고흐가 시엔을 발견할 당시 임산부이기도 했다. 고흐는 시엔을 데려와 함께 지냈는데 고흐는 그녀에게서 평범한 숭고함을 느낀다고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은 적이 있다. 2년만에 헤어지고 말지만 고흐는 그녀의 불행을 연민하고 사랑했던 것 같다.),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점점 몰락해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그린 <직조공>(1884년작)과 1886년작 <구두 한 켤레>도 아주 작은 판형이지만 감상할 수 있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구두 한 켤레>를 본문에 실린 1887년작 <구두 한 켤레>보다 더 좋아한다.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1888년 9월 3일자 편지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고 한다.   
“나는 늘 두 가지 생각 중 하나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색에 대한 탐구다. 색채를 통해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서로 보완해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함으로써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루어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표현하는 일,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톤의 광채로 빛나게 해서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 이런 건 결코 눈속임이라 할 수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걸 표현하는 것이니까.”    
  
 아이들은 이 책 속에서 고흐가 그토록 표현하고자 했던 사랑, 신비로운 떨림, 사상, 희망, 열정들을 흐릿하게라도 느끼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고흐와 테오의 극진한 형제애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기지 않을까. 먹고 사는 일보다, 경쟁에서 이기고 앞서 나가는 것보다, 남들보다 부유해지고 그것을 뽐내며 사는 것보다 때로는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땅히 흘러야 할 것들이 차단되고 막히는 오늘날에, 고흐와 테오의 형제애는 우리가 눈여겨 살피고 가슴에 새겨야할 가장 빛나는 작품이 아닐까. 이 책을 통해서 아이들이 고흐의 미술작품 뿐 아니라 그 너머의 더 많은 것을 보고 느껴주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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