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본 다이어리 2015>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카본 다이어리 2015
새시 로이드 지음, 고정아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온실가스가 어떻고, 탄소배출량 감축이 어떻고, 저탄소 녹색성장은 또 뭐고, 교토의정서는 어찌 돌아가는지.... 들은 말은 많았지만 제대로 정리된 것도 없었고, 문제의 심각성도 그다지 와닿지 않았던 것들이다. 환경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는 초등학교 1학년 바른생활 수준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게다.

카본 다이어리, 제목에서부터 탄소(carbon)을 내건 것이 좀 수상타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2015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우리 모습을 상상한 책이다. 그것도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은.

이상기후를 일으키는 온실효과의 주범이 탄소이고, 1997년 일본 교토에서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기후협약을 맺고 그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온실가스감축이다. 그러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의견대립으로 2005년에 가서야 발효가 되었고 그나마 미국은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8%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자국의 산업을 보호한답시고 일찌감치 2001년에 탈퇴 선언을 하는 바람에 제대로 밉상이 되기도 했다. 지금 우리 시대에서 논의되고 있는 온실가스 감축,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이야기가 바로 이 책에 담겨진 이야기다.

런던에 살고 있는 16살 소녀 로라의 일기를 통해 드러나는 재앙과 그 재앙을 견뎌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혹하다. 로라는 ‘정치적인 것은 싫고’, ‘모든 게 그냥 정상적이었으면 좋겠다.’(p.52)는 평범한 소녀이고 무겁고 심각한 것보다는 ‘인생의 재미’(p.52)를 맛보고 싶은 발랄한 소녀이지만 그 모든 것이 여의치 않은 시대를 살아간다.

지구온난화로 세계 곳곳에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영국 국민들이 늦게나마(그러나 세계최초로) 재앙을 해결해보려는 시도가 탄소배급제이다. 각 가정에 탄소배출량을 재는 스마트 미터기가 설치되고 개인에게는 한 달에 200포인트를 쓸 수 있는 탄소카드가 발급된다. 그 규정을 위반했을 경우 ‘탄소 범칙자 재활 센터’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휘발유를 많이 잡아먹는 자동차가 무용지물이 되고, 전력이 수시로 끊기고, 변기물이 노란색을 넘어 갈색이 되어야 물을 내릴 수 있을 만큼 물을 절약해야 하고,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한편에선 약탈이 일어나고, 항공여행은 불가능한 꿈이 되어버리고 마는 세상. 그런 모든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는데도 멈추지 않는 폭설, 폭우, 태풍, 가뭄 등의 이상기후는 사람들의 희망마저도 흔들리게 한다.

로라의 엄마가 “강인해져야 한다는 걸 알지만, 우리 세대 때문에 너무 미안해. 너희 세대의 세상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든 게 우리잖니.”(p.20)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뜨끔했다. 나는 내가 비교적 좋은 시대를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 세대가 겪었던 참혹한 역사의 한 부분을 슬쩍 피해서 태어났을 뿐 아니라, 살아오면서 세상은 점점 더 편리하게 변해갔으니까. 우리 시대만의 아픔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아픔의 중심에 있지 않았던 나는 적당히 견디어 왔었던 것 같다. 그러나 로라의 엄마가 하는 말은 내가 지금 즐기며 누리고 있는 이 행운이 불러올 대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언젠간 나도 내 아이들이나 아니면 내 손자뻘 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해야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앙’에 대한 이 소설 속에서 16살 로라는 사랑을 하고 가족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친구와 이웃 간의 관계의 소중함을 알아간다. 재앙 속에서 꽃피는 사랑과 인간애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 감동과 재미를 더해주기 마련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희망이기도 하고, 재앙을 견디고,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면 U턴이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기도 한 것 같다. 아버지의 재산을 흥청망청 다 써버리고 거덜 낸 못된 자식이 뒤늦게 흘리는 참회의 눈물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탄소에 대한 인식을 촉구하는 장치들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자주 이용하는 생협매장에서는 영수증에 이런 게 찍힌다.  

 

이른바 로컬푸드의 의미를 이용자들에게 알려서 판매를 촉진하고자 하는 의도이긴 하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영수증 하나를 보면서 오소소 소름이 돋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알게 된 것 또 하나. 우리나라에서도 ‘탄소포인트제’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소개글을 그대로 옮겨보면 탄소포인트제란 ‘국민 개개인이 온실가스 감축활동에 직접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로 가정, 상업시설, 기업이자발적으로 감축한 온실가스 감축분에 대한 인센티브를 지자체로부터 제공받는 범국민적 기후변화 대응 활동(Climate Change Action Program) ’이란다. ‘탄소포인트는 현금, 탄소캐쉬백, 교통카드, 상품권 종량제 쓰레기봉투, 공공시설 이용 바우처, 기념품등 지자체가 정한 범위 내에서 선택할 수 있고, 탄소포인트를 탄소캐쉬백으로 전환하는 경우 이마트, 뚜레주르, 11번가 등 5만여 OK캐쉬백 가맹점, 탄소캐쉬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사용가능하다’고 한다.   다행이다. 아직은 『카본다이어리 2015』에서 나오는 탄소카드처럼 ‘채찍’이 아니라 ‘당근’에 더 가까운 포인트제라서. 관심 있으신 분들은 홈페이지(http://www.cpoint.or.kr)를 찾아가 봐도 좋을 듯하다.

우리가 자주 잊고 살아가는 것 중의 하나는 우리가 무척 연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걸 너무 자주 잊는 바람에 너무 오만해지기도 한다. 이 책 속에서 작가는 우리가 편리함을 포기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대해서도 한 마디 잊지 않는다.

‘오늘 본 런던은 내 평생 가장 아름다웠어. 달이 어마어마하게 컸고 별들은 눈부시게 밝았고..... 그리고 환상적으로 고요했지’(p.38)라고 하거나 ‘나무에서 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p.132)는 간단한 문장으로 “침묵의 봄”이 물러갔음을 암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고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모든 공해와 연기와 비행기와 공장과 불필요한 잡동사니 속에 살다보면, 누구나 어느 날 이렇게 낯선 계단에 서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가족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 있다.’(p.383)고. 2015년, 너무나 가까운 미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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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1-05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105쪽까지 읽었는데 밑줄 그은 곳이 똑같네요.
정말 우리 다음 세태에게 미안할 일이죠.ㅜㅜ

섬사이 2009-11-07 10:31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래요. 이 책 읽고 나서 온실가스니 탄소감축이니 하는 보도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