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위한 반 고흐 어린이를 위한 예술가
실비아 뤼티만 지음, 노성두 옮김, 로렌스 사틴 그림 / 다섯수레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재작년인가에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읽으며 고흐의 동생 테오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고흐가 불꽃이라면 테오는 불꽃이 계속 타오를 수 있도록 하는 장작 같고, 불꽃의 강렬함에 가려진 그림자 같다고나 할까. 테오의 희생적인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고흐가 37년의 짧은 삶을 살면서 800점이 넘는 유화와 1000점이 넘는 스케치를 남길 수 있었을까. 늘 테오를 생각하면 고흐의 비극적인 생애 못지않은 애처롭고 안쓰러운 기분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래서일까. 고흐를 이야기하는 수많은 책들 속에서 테오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 같다. 그들의 각별한 형제애는 둘 사이를 오간 700여통의 편지를 통해 오롯이 드러나고, 고흐 사망 6개월 후에 테오도 병으로 죽음에 이르러 현재 그 둘이 묘비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부분에서는 자못 숙연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도 동생 테오가 화자가 되어 형 고흐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간다. 사실 그림책으로는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로 유명한 이세 히데코 글,그림의 『나의 형, 빈센트』를 먼저 만났었다.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이 책도 동생 테오가 화자인데 고흐가 죽고 난 뒤에 형을 추억하는, 시적이지만 우울한 줄거리이며 이세 히데코 특유의 축축하게 젖어 부드럽게 번진 듯한 그림이 일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흐의 그림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어린이를 위한 반 고흐』, 이 책이 반가웠던 것은 테오가 좀 더 밝은 톤의 목소리로 우리에게 고흐의 작품을 쉽게 설명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한 쪽 페이지를 독차지하는 제법 큰 사이즈의 작품 사진이 여러 개 실려 있기 때문이다. 고흐의 원작을 본 적이 없으니 인쇄된 작품 사진이 원작의 색감을 잘 살려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이와 그림을 감상하기엔 무리가 없다.

본문에 수록된 작품은 1887년부터 1890년까지 약 4년 동안의 작품이다. 파리에 머물던 시기부터 가장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던 아를, 그리고 착란증세로 1년여 동안 머물렀던 생 레미 정신병원 시절과 오베르로 옮겨 와 권총부상으로 사망하기까지의 불꽃같았던 열정의 시간들이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책의 뒷 부분에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또 다른 작품들’이라는 꼭지에서 고흐의 모델이 되어주었던 여인 ‘시엔’의 스케치 <슬픔>(1882년작)을 볼 수도 있고 (사실 시엔은 추운 암스텔담 거리를 떠돌던 알콜중독자에 매춘부였으며 고흐가 시엔을 발견할 당시 임산부이기도 했다. 고흐는 시엔을 데려와 함께 지냈는데 고흐는 그녀에게서 평범한 숭고함을 느낀다고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은 적이 있다. 2년만에 헤어지고 말지만 고흐는 그녀의 불행을 연민하고 사랑했던 것 같다.),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점점 몰락해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그린 <직조공>(1884년작)과 1886년작 <구두 한 켤레>도 아주 작은 판형이지만 감상할 수 있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구두 한 켤레>를 본문에 실린 1887년작 <구두 한 켤레>보다 더 좋아한다.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1888년 9월 3일자 편지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고 한다.   
“나는 늘 두 가지 생각 중 하나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색에 대한 탐구다. 색채를 통해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서로 보완해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함으로써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루어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표현하는 일,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톤의 광채로 빛나게 해서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 이런 건 결코 눈속임이라 할 수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걸 표현하는 것이니까.”    
  
 아이들은 이 책 속에서 고흐가 그토록 표현하고자 했던 사랑, 신비로운 떨림, 사상, 희망, 열정들을 흐릿하게라도 느끼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고흐와 테오의 극진한 형제애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기지 않을까. 먹고 사는 일보다, 경쟁에서 이기고 앞서 나가는 것보다, 남들보다 부유해지고 그것을 뽐내며 사는 것보다 때로는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땅히 흘러야 할 것들이 차단되고 막히는 오늘날에, 고흐와 테오의 형제애는 우리가 눈여겨 살피고 가슴에 새겨야할 가장 빛나는 작품이 아닐까. 이 책을 통해서 아이들이 고흐의 미술작품 뿐 아니라 그 너머의 더 많은 것을 보고 느껴주기를 바라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