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 + 모더니즘 + 제국주의 + 몬스터 + 종교 다섯 가지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를 연대순으로만 생각했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이라는 제목이 ‘욕망’, ‘근대’, ‘제국주의’, ‘괴물’(자본주의/사회주의/파시즘), ‘종교’라는 주제를 키워드로 삼아서 세계사를 조망하리라는 걸 눈치 챘으면서도 역사는 연대순으로 차근차근 전개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진 못했다. 그러니까 나는 ‘욕망’이 주제라면 인류 욕망의 변천사쯤을 기대했던 건지도 모른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런 서술방식이 낯설어서인지 처음엔 맥락이 잘 잡히질 않았다. ‘뭘 얘기하려는 거지? 이거 역사책 맞아?’하는 생각에 당황스러웠다. 첫 장, 욕망의 세계사에서 ‘세계를 양분하는 근대의 원동력’을 이야기하는데 커피와 홍차가 등장하는 것부터가 그랬다. 커피와 홍차, 금과 철, 헐리우드 영화와 홈드라마, 글로벌 브랜드와 도시의 번영,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고 가끔 화제로 떠오르는 것들을 열거하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그런데 뭐?’하는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앞부분에서 나온 내용이 뒷부분의 내용과 연결되면서 조금씩 맥락이라는 게 이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에 대한 내용은 제2장 서양 근대화의 힘에서 살짝 다루어진다. 요지는 자본주의가 직업을 신이 내린 소명으로 생각한 칼뱅의 ‘예정설’에서 비롯되었으며 프로테스탄트 세계를 중심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금욕주의적인 자세로 자신을 위한 재화소비를 죄악시하면서 근면, 검소하게 살았던 프로테스탄트들은 축적된 재화를 투자의 형태로 소비할 수밖에 없었고, 그 투자가 계속 확대 재생산되면서 자본주의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제 4장 세계사에 나타난 몬스터들에서 다시 다루어진다.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인간의 본성(욕망)에서 비롯된 자연적인 시스템이며 인간의 욕망이 멈추지 않는 한 자본주의도 멈출 수 없다는 것. 칼뱅파 프로테스탄트들의 금욕적인 검소함에 뿌리를 두었다는 자본주의는 자기 존재의 근원을 잊고 무한 자기증식을 계속한 결과 욕망을 먹고 사는 덩치 큰 괴물이 되고 말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욕망과 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기호를 소비하는 형태로 발전하면서 글로벌 브랜드, 글로벌 기업을 탄생시키고 경제적 제국주의를 건설하게 되는 것이다.  

종교와 제국주의도 서로 연관을 맺는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면서 제국의 야망과 하나가 되었고, 이슬람교는 관용적인 측면을 갖고 있으면서 전 세계적인 분쟁의 불씨가 되”었다는 글로 정리가 되긴 하지만 종교를 거론하면서 근대의 시작이라는 르네상스에 대한 야콥 부르크하르트와 요한 호이징가의 서로 다른 관점을 설명하는 세밀함도 잊지 않는다. 종교를 앞세워 식민지를 개척, 정복하는 오만하고 폭력적인 제국주의를 현대의 미국과 이라크의 관계에서 재발견한다거나 경제 쪽으로 그 영역을 옮긴 현대의 제국주의는 자기 모습을 감추고 맹렬히 침략을 감행하는 중이라고 경고하고, 종교에 대한 욕구가 다시 높아지고 있는 오늘의 세계가 지향해야 할 것은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일신교적인 세계가 아니라 많은 신들을 포함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신화의 세계일 것이라는 충고하고, 근대에서는 시선을 지배하는 것이 권력이었다면 지금은 ‘정보를 쥐는 자’가 권력의 중심을 장악한다고 조언하고, 신흥자본주의국가라고 할 수 있는 중국과 인도의 거대한 인구가 물건의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게 될 때 지구 환경의 급속한 파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세심함도 마음에 들었다.

오랜만에 읽은 역사서인데 처음엔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 서술방식이 무척 새로웠다. 역사를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처음 경험한 셈이다. 경제학자 우석훈 씨는 해제글에서 ‘한국의 역사학이 죽었다’며 안타까워한다. 내가 상상하며 읽은 그의 어조는 안타까움을 넘어선 통탄에 가까웠다. 탄탄한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일본의 역사학과 비교도 안 되게 우리의 역사학은 사료가 사라지고 있을 뿐 아니라 한문으로 된 1차 사료를 해독할만한 한문 실력을 갖춘 사람도 명맥이 끊어져 가고 있는 중이란다. 그러니까 우리는 역사를 통해 오늘의 세계를 조망할 수 있기는커녕 지난 시대의 사건과 연대를 찾아내어 묵은 때를 벗기는 일조차 지지부진하다는 것일까. 일본의 역사학자도 아닌 문학부 교수가 쓴 역사책 하나에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내가 좀 청승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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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연하녀네 집에 잠깐 들러 커피를 마실 때였다.
식탁 위에 놓인 자그마한 박스 하나.
박스엔 '봉하 오리 쌀'이라고 적혀있고 그 옆에 낯익은 얼굴 하나가 보였다.   
밀짚모자를 쓰고 펑퍼짐한 콧망울이 돋보이는 얼굴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서있는 사람. 
그리웠던 사람.  

잠깐동안 마음이 갈피를 못잡고 찌르릉 떨려왔다. 
저렇게 밀짚 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 논둑길을 달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하하... 돌아가신지 채 6개월도 안됐는데 상표가 돼서 돌아오셨네.." 

이렇게라도 모습을 뵈니 반갑기도 하고, 어딘지 씁쓸하기도 하고,
봉하마을 사람들은 좋겠네.. 하다가
좀 폼나게 돌아오시지 마음 아파지게 저렇게 나타나냐.. 하다가
참 저 분답다.. 하다가
정말 바보같구나,... 하다가 
저 쌀을 거둬서 그 분도 같이 먹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다가
결국은, 
저 쌀을 나도 사야겠구나,, 했다.
저 쌀로 아무 잡곡도 섞지 않은 하얀 쌀밥을 지어서
아이들도 먹이고 나도 먹어야겠구나 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고
오늘 받았다.   

밥을 지어 먹으려하니 우습다.
저 쌀로 밥을 지어 꼭꼭 씹어 삼켜서 우리 아이들 뱃 속에 그 분에 대한 기억을,
자꾸만 조금씩 날아가서 점점 희미해지려는 그 기억을 새겨주고 싶었던 걸까.
21세기에 이건 또 웬 주술이냐.
나도 참 웃기고 자빠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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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9-11-22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요..절대로 아니에요..그럴수 있는 님 맘이 전 너무 좋아요.
이들의 상술이라고 한다 할지라도..

섬사이 2009-11-24 10:36   좋아요 0 | URL
저 쌀, 밥해서 다 먹었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허전해요. ㅠ.ㅠ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
오주석 지음 / 월간미술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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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주석 님이 2005년 2월 백혈병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 유고집으로 나온 책은 모두 3권인 것으로 안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가 돌아가신지 1년 후인 2006년 2월 출간되었고, 2008년 4월에 '독화수필집'이라는 <그림 속에 노닐다>가, 그리고 올 4월에 이 책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이 출간된 것이다.

생전에 동아일보와 잡지 <북새통>에 연재하셨던 글들로 정해진 지면 탓이겠지만 전작들에 비해 아쉬울 만큼 글들이 짧다. 모두 27점의 그림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중에 김명국의 <달마도>,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김정희의 <세한도>, 김홍도의 <씨름>, <송하맹호도>, <마상청앵도>, 정선의 <금강전도>, 7점이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2권에서 자세히 다룬 적이 있는 작품들이다. 거기에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에 나오는 작품과 겹치는 <이재초상>, 변상벽의 <모계영자도>, 신윤복의 <미인도>, 강세황의 <자화상>, 김홍도의 <해탐노화도> 등을 포함한다면 오주석 님의 책을 꾸준히 접해온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다소 가볍고 싱겁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골몰하기는 싫고 세상의 잡다한 일들에서 눈을 돌려 그저 담백한 마음을 그림과 맞대고 싶어질 때 펼쳐보기에는 그만일 것 같다. 책의 편집에서도 그런 의도가 엿보인다. 본문은 페이지 반쯤까지 내려오고 그 나머지는 여백이다. 종이값이 아깝다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눈이 시원하다. 그렇다고 여백으로 남은 공간이 그저 비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쪽은 작가 소개글로 이어지고, 어느 쪽은 작품의 설명을 도와줄 확대된 부분그림으로 채워지기도 한다. 지난해에 나온 유고집이 <그림 속에 노닐다>였는데, 이 책은 책 속에서 노닐기가 좋다. 눈이든 마음이든..

그러고 보니 서양화보다는 우리 옛 그림들이 노닐기 좋다는 생각이 든다. 서양화들은 선과 면, 색채들이 너무 강렬하다. 심지어 모노톤의 그림들도 서양화들은 왁자지껄 소리지르고 아우성치는 것 같다. 뭔가 들어줘야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렇지 않아도 지금을 살아가야 하는 나는 동네 큰 길에만 나가도 밀려 오가는 차들과 네온과 바쁜 사람들 속에 파묻히게 되고 귀에 들려오는 소식은 기쁘고 반가운 일보다 흉흉하고 심란한 것이 더 많다. 어쩌면 우리 삶에 한 점의 담백한 수묵화 속 같은 여백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우리 옛 그림 앞에서는 쉽게 고요해지고 차분해진다.

오주석 님이 해석해주는 우리 옛 그림들의 분위기도 그렇다. 김수철의 청아한 <하경산수도>에서는 천석고황의 정을 읽어내고 이정의 <풍죽도>에서는 어진 군자의 진정을 살핀다. 정선의 <통천문암도>에서는 강원도 통천 앞바다의 성나 넘실대는 파도의 결 속에서 도를 이루어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군자의 뜻을 찾아낸다. 신윤복의 <미인도>는 설레어 애타는 연정을 전해오고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는 자연과 고요히 하나가 되어 어느새 그도 하나의 풍경이 되고 산수가 되어 버린 노인의 평화로운 미소를 보여준다. 정선의 <만폭동도>에서는 우르릉거리며 쏟아져 흐르는 물소리에 내 귀를 씻을 수도 있을 것만 같고, 김명국의 <답설심매도> 속에 아직 눈도 녹지 않은 겨울 끝자락에 매서운 추위를 마다않고 어딘가에 피어있을 매화 한 송이를 찾아 나귀를 타고 훌쩍 떠나가는 선비가 부럽다. 겨울의 끝을 알려줄 어딘가 피어 있을 매화 한 송이.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그 그림 속 선비보다 더 성급해진 나는 겨울이 시작되기도 전에 매화 욕심을 부려본다.

단원에 대한 책을 따로 한 권 묶을 정도로 각별히 단원을 사랑하셨던 분이니 이 책에서도 단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 단원의 그림 6점이 소복하다. <황묘농접도>, <해탐노화도>, <송하맹호도>, <씨름>, <소림명월도>, <마상청앵도>. 세인들에게 단원이 풍속화가로만 알려진 것이 안타까우셨을까. 풍속화 <씨름>과 함께 산수화에 영모도까지 골고루 뽑아 실었다. 유머러스한 단원의 스승 강세황의 작품과 단원의 제자라서 그런지 어쩐지 화풍이 단원과 닮아 보이는 김득신의 작품까지 아울러 감상할 수 있다.

그림들이 숨막힐 정도로 와락 달려들지 않아서 좋다. 그냥 조용히 다가와 나를 살며시 안고 등을 다독여주는 정도랄까. 그렇다고 오주석님의 이 책이 마냥 감상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마냥 감상적인 사람은 지친 누군가를 안고 다독여줄만한 힘이 없는 법이다. 오주석 님은 다른 인물이라고 알려진 초상화를 다른 시기에 그려진 이재초상이라고 밝혀낸 바 있는 아주 예리한 분이시다.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해서 그런 예리함이 날을 감출 리가 없다.

사소한 아쉬움이 있다. 책 속에서 호초법이니, 어자엽이니, 몰골법, 부벽준, 쌍구법, 해조묘, 태점 같은 우리 그림을 그리는 기법에 대한 용어가 나온다. 미루어 짐작해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좀 더 정확한 설명이 따라 붙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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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1-14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두고 못 읽은 오주석 선생님 책들이 몇 권 있는데 천천히 보고 싶어요. 다 보고 나면 아쉬움이 더 커질 거예요. 한국의 미 특강보다는 만족감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참 좋은 책이었어요.^^

섬사이 2009-11-16 14:23   좋아요 0 | URL
그렇죠? 이 책은 이 책대로의 맛이 있더라구요.
저도 "여전히 참 좋은 책이었어요."^^

순오기 2009-11-17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미 특강을 못 본 분들에게는 좋을 듯해요.
고등학교 독서회에서 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까치'를 토론하곤
이 책을 꼭 보라고 소개해줬어요.^^

섬사이 2009-11-18 02:57   좋아요 0 | URL
그동안 나온 오주석님의 책들이 좀 '빽빽한' 책들이라
좀 헐렁한 분위기의 이 책도 좋았어요. ^^
 
교수대 위의 까치 -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읽기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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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미술관련 책들을 읽는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두 오빠들이 모두 미대를 나온 덕분에 어려서부터 미술 원서들을 보며 자랐지만 작품과 화가들을 연결시켜 기억하거나 전문적인 지식을 얻어 듣거나 어떤 그림 하나에 푹 빠져본 기억은 없다.  그런데 이제와서 어릴 적 스쳐갔던 그림들이 문득문득 궁금하고 그리워져서, 미술관을 기웃거리거나 미술관련 책들을 뒤적이게 된다.  그것도 감히 전문 서적들을 뒤적일 용기는 없어서 비교적 유순하고 친절해 보이는 책들을 골라 읽곤 하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 세 권의 미술서적을 읽었다.  하나는 서경식 씨가 쓴 <나의 서양 미술 순례>이고, 또 하나는 손철주 씨가 쓴 <인생이 그림 같다>, 그리고 가장 나중에 읽은 책이 이 <교수대 위의 까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 사람의 글은 저마다 풍기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서경식 씨의 <나의 서양미술순례>는 저자 자신의 불행한 가족사와 어우러져 세 권의 책 중에서 가장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목에 들어있는 '순례'라는 말에 걸맞게 유럽의 미술관들을 여행하며 만난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작품 속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거나 옥중에 갇혀있는 형들을 걱정하는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순례'는 단순히 타국의 미술관을 여행하며 감상한 미술작품에 그치지 않고 그 길의 여정에서 느끼는 '삶의 고단함'이라든가 '부조리한 인생'을 탐색하는 '과정'의 시간들이 진지하게 흐른다.  지금도 그 책을 떠올리면 축축하게 비가 내리는 어둡고 추운 거리를 홀로 걷는 듯한 기분에 젖는다.
손철주씨가 쓴 <인생이 그림 같다>는 세 권의 책 중에서 가장 부담없이 경쾌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강희맹의 '고사관수도'로 시작하는 이 책은 동서고금의 작품을 총망라하고 있는데다가 걸걸하고 화통하다가도 낭만적인 감상이 슬그머니 끼어드는 글이어서 시원시원하면서도 애틋한 맛이 나기도 한다.  

그에 비해서 진중권 씨의 글은 명쾌하고 단호하며 빈틈이 없어 보인다.  미술에 대해 식견이 어두운 내가 느끼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얼마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지 그의 글을 읽다보면 일요일 늦은 아침처럼, 부스스한 머리에 눈꼽도 떼지 않은 눈으로  멍하니 세상을 바라보는 일 같은 건 거의 죄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처음에 말했듯이 난 '비교적 유순하고 친절해 보이는 책'들을 골라 읽는 편인데 솔직히 진중권 씨의 글은 유순하기 보다는 까칠하고 친절하기 보다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낭만적 감성이 슬쩍 새어나오는 건 기대도 하면 안되고, 내 기억으로 사적인 여담을 슬그머니 내비친 건 알브레히트  뒤러의 <책을 삼키는 요한>이라는 목판화를 다루는 장에서 유학 시절 뒤러의 목판화 전집을 싸게 구입하게 된 이야기와 피터르 브뤼헐의 <교수대 위의 까치>를 이야기하는 장에서 어릴 적 '배꼽이 배보다 크다'는 속담을 듣고는 그 모습을 상상하며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는 이야기가 전부였던 것 같다.   그래서 머리말에 진중권 씨가 "이 책이 강단에서 미처 하지 못한 수업의 강의록이 되었다."라고 밝히지 않았더라도 나는 명강을 하는 엄한 선생님 앞에 앉은 얌전한 학생의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작가, 작가의 삶, 연대, 당시의 사회,정치적 상황, 예술사조 등을 모두 무시하고도 작품과 나, 단 둘만의 내밀한 관계 맺기를 통해서 감상이 가능하다는, 그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도 손철주 씨와 진중권 씨의 말투는 참 다르다.
손철주 씨는 머리말에서 선배에게 쓰는 편지글 형식을 빌어 이렇게 쓰고 있다.
'.... 저는 떠들 게 있으면 더 떠들어라 하는 주의입니다.  창피당하면 어떻습니까.  연습이 천재를 만드는 거나 무쇠가 두들겨 맞고 단련되는 거나 같은 발버둥 아닙니까.  수업료 안 내고 익히려 드는 게 도둑놈 심보지.  클 놈치고 좌충우돌 안 하는 거 봤습니까.  그림도 마찬가집니다.  보이는 대로 한 마디씩 지껄이고 쥐꼬리만한 지식이라도 갖다 붙여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그러면서 눈이 트이는 겁니다.
맞습니다, 김선배.  전문가들 말 어렵게 하는 건 큰 병폡니다.  그거 다 믿지 마세요.  누가 뭐라 하든 제 눈에 꽂히면 다죠, 뭐. ' 
읽으면서 큭큭 웃음이 날 만큼 마음이 느슨하고 가벼워진다.   

진중권 씨는?  자신이 선호하는 미술작품의 취향을 설명하는 데도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수준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  정서적 감동, 지각적 쾌감, 지성적 자극, 영성의 울림. 그렇게 분류하고 나서야 자신이 작품의 지적 측면에 끌리는 편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다음 자신이 예술작품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제시한다.  애니그마, 창조적 독해, 회화의 푼크툼. 이 세 가지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국 수많은 암호를 생성해내는 애니그마 머신에 가까운 예술작품을 제대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문제를 제기하고 의제를 설정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수용자의 개별적이고 사밀한 체험을 통해 작품의 해석을 다양화할 수 있는 문학으로서의 해석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롤랑 바르트는 푼크툼이라고 했다) 
진중권 씨의 글이 훨씬 더 분석적이고 집요하며 지적 분위기를 풍긴다.  진중권 씨가 들으면 질색하실 테지만, 그가 이 책에 부려놓은 그만의 푼크툼이 나에겐 또 하나의 스투디움이 되어버린 것 같다.   

당연히, '소장하고 싶은 작품들의 가상 컬렉션'이라는 12점의 그림 속을 그는 파,고,든,다.  마치 "대충 넘어가는 일 따위 내 사전엔 없어!"하는 것처럼 단호하고 철저하다.  한  점의 그림을 설명하기 위해 딸려 나오는 작품들의 수는 어떤가.  예를 들면 '사라진 주체'라는 제목이 붙은 7장에서 요하네스 굼프의 1646년작 <자화상>이 등장한다.  자화상을 설명하기 위해 끌어들인 작품이 무려 20여 점에 이른다.   각 장마다 작품을 설명하는 데 인용한 회화이론과 기존의 해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철학을 비롯해 신경생리학까지 망라하는 배경 지식들을 가지고  자신만의 푼크툼을 직조(織造)해가는 솜씨 또한 일품이다.  "이 책은 독자들을 향한 적극적 독해의 요청, 다시 말해 '그림을 이처럼 읽어보라.'거나 '이와는 다른 식으로 읽어보라.'는 채근에 가깝다"(p.18) 라고 했지만 미안하게도 지금 나는 그가 쓴 이 책 한 권을 곱씹고 있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행복하다.    

책을 읽으면서 그가 참 철저하고 유능하며 성실한 지식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사회에 대한 그런 성실성 때문에 이 수상쩍은 세상을 살아가며 나처럼 어수룩하고 더덜뭇한 사람에 비해 더 큰 상처를 입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작은 몸통에 커다란 머리를 가진 역사의 천사는 아마도 지식인을 가리킬 것이다.  천사의 작은 몸통은 현실의 무능함을, 커다란 머리는 과도하게 발달한 그의 관념성을 상징한다.  정의는 관념이고, 폭력은 물질이다.  그리고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원시적인 물질의 힘이다.  그 때문에 천사는 날개를 편 채로 거센 바람에 밀려 끝없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부조리야말로 삶의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정상적 상태라는 것, 그것이 교수대 위의 까치가 연출하는 풍경만큼이나 을씨년스러운 세상의 진리,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 말하지 않는 비밀인 모양이다.'라는 그의 글이 성실한 지식인으로서의 자조적인 한탄처럼 들려서 마음에 턱하니 걸린 채로 안쓰럽게 펄럭인다.   그가 <교수대 위의 까치>를 보며 '세상에 태어나면서 둘로 쪼개져야 했던 자신의 반쪽'같은 느낌을 받는 건, 그가 브뤼헐이 보았던 세상의 부조리를 지금 이 자리에서 똑같이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그는 '섣불리 세상을 바꿔놓으려는 노력은 외려 세상을 재앙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그는 이 뒤집힌 세계를, 그것의 부조리함, 그것의 불합리함을 있는 그대로, 주어진 사실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런 부조리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 사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조건이 아닌가?'하는 말로 공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의 상처가 문득 걱정스러워진다.  그는 아끼고 싶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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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11-13 0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이렇게 세권의 책을 비교, 분석해주신 님의 꼼꼼함도 대단하십니다.
이 책, 안 읽고 못 지나가겠는걸요? ^^

섬사이 2009-11-13 11:40   좋아요 0 | URL
분석까지는 아니구요...^^;;
읽어보실만 할 거예요.

순오기 2009-11-17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댓글 달았는데 교수대 위의 까치가 여기 있군요.^^
우리도 지난 금욜 이 책 토론했는데,
회원들께 좋은 책 추천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들었어요.^^

섬사이 2009-11-18 02:57   좋아요 0 | URL
예, 진중권 씨의 글은 '딱' 떨어져서 좋아요. ^^

프레이야 2009-11-26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추천이야요^^
저도 지금 이 책 읽고 있어요.
그는 매력적인 사람, 분명 맞아요.


섬사이 2009-11-27 00:34   좋아요 0 | URL
이번에 진중권 씨가 경비행기 타러 필리핀으로 떠나 몇 년 머물 거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정말 참 멋진 분이에요.
 

<신명호 씨가 소개하는 논픽션 그림책들 >  

일본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원서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알라딘에서 뒤져봐도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 책들과 번역되어 출간된 책들 위주로 꾸려봤다.

 

 

  

 


 

 

 

 

 

 

 

 

 

 

 

 

<재미있는 논픽션 그림책> 

1.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람 이야기가 담긴 논픽션 그림책- 

  

 

 

 

 

 

 

  

 

 

 

2.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생명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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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랑 2009-11-12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몰랐던 책들도 가득이네요 덕분에 보관함이 또 꽉 차겠어요 ^^;;감사합니다.

섬사이 2009-11-12 21:17   좋아요 0 | URL
요즘 논픽션 그림책들이 많아진 것 같긴 해요.
교육의 의도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 그림책들을 보면 좀 불편하긴 하지만 재미있는 것들도 많더라구요. ^^

마노아 2009-11-13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읽은 책과 궁금했던 책과, 그리고 몰랐던 책들 다수예요. 별찜 해두고 자주 참고해야겠어요. 고딕성당은 있는데 '성'은 저한테 없는 것 같아요. 저녀석부터 공략하렵니다.^^

섬사이 2009-11-13 11:39   좋아요 0 | URL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책은 참 매력이 있죠? 건축물 시리즈들도 그렇지만,
<도구와 기계의 원리>를 도서관에서 빌렸었는데 남편도 좋아라 들여다 보더라구요. <놀라운 인체백과>도 참 궁금한데, 도서관엔 아직 들어와 있지 않고, 가격은 사악하고.. ^^;;

마노아 2009-11-13 13:10   좋아요 0 | URL
두 책 모두 사악한 가격이네요^^.... 도구와 기계의 원리는 출간일도 한참인데 좀 떨어뜨려주지....;;;;;

섬사이 2009-11-14 09:21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갑자기 장근석이 나타나서 깜짝 놀랐어요. ㅎㅎㅎ
배우로 꾸준히 잘 성장해서 오래갔으면,, 하고 바라는 젊은 배우 중 하나거든요.
<도구와 기계의 원리>, <놀라운 인체백과>.. 책값이 많이 사악하죠?
그런데 요즘 책값들이 전체적으로 점점 사악해지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