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연하녀네 집에 잠깐 들러 커피를 마실 때였다.
식탁 위에 놓인 자그마한 박스 하나.
박스엔 '봉하 오리 쌀'이라고 적혀있고 그 옆에 낯익은 얼굴 하나가 보였다.   
밀짚모자를 쓰고 펑퍼짐한 콧망울이 돋보이는 얼굴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서있는 사람. 
그리웠던 사람.  

잠깐동안 마음이 갈피를 못잡고 찌르릉 떨려왔다. 
저렇게 밀짚 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 논둑길을 달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하하... 돌아가신지 채 6개월도 안됐는데 상표가 돼서 돌아오셨네.." 

이렇게라도 모습을 뵈니 반갑기도 하고, 어딘지 씁쓸하기도 하고,
봉하마을 사람들은 좋겠네.. 하다가
좀 폼나게 돌아오시지 마음 아파지게 저렇게 나타나냐.. 하다가
참 저 분답다.. 하다가
정말 바보같구나,... 하다가 
저 쌀을 거둬서 그 분도 같이 먹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다가
결국은, 
저 쌀을 나도 사야겠구나,, 했다.
저 쌀로 아무 잡곡도 섞지 않은 하얀 쌀밥을 지어서
아이들도 먹이고 나도 먹어야겠구나 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고
오늘 받았다.   

밥을 지어 먹으려하니 우습다.
저 쌀로 밥을 지어 꼭꼭 씹어 삼켜서 우리 아이들 뱃 속에 그 분에 대한 기억을,
자꾸만 조금씩 날아가서 점점 희미해지려는 그 기억을 새겨주고 싶었던 걸까.
21세기에 이건 또 웬 주술이냐.
나도 참 웃기고 자빠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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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9-11-22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요..절대로 아니에요..그럴수 있는 님 맘이 전 너무 좋아요.
이들의 상술이라고 한다 할지라도..

섬사이 2009-11-24 10:36   좋아요 0 | URL
저 쌀, 밥해서 다 먹었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허전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