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 + 모더니즘 + 제국주의 + 몬스터 + 종교 다섯 가지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를 연대순으로만 생각했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이라는 제목이 ‘욕망’, ‘근대’, ‘제국주의’, ‘괴물’(자본주의/사회주의/파시즘), ‘종교’라는 주제를 키워드로 삼아서 세계사를 조망하리라는 걸 눈치 챘으면서도 역사는 연대순으로 차근차근 전개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진 못했다. 그러니까 나는 ‘욕망’이 주제라면 인류 욕망의 변천사쯤을 기대했던 건지도 모른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런 서술방식이 낯설어서인지 처음엔 맥락이 잘 잡히질 않았다. ‘뭘 얘기하려는 거지? 이거 역사책 맞아?’하는 생각에 당황스러웠다. 첫 장, 욕망의 세계사에서 ‘세계를 양분하는 근대의 원동력’을 이야기하는데 커피와 홍차가 등장하는 것부터가 그랬다. 커피와 홍차, 금과 철, 헐리우드 영화와 홈드라마, 글로벌 브랜드와 도시의 번영,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고 가끔 화제로 떠오르는 것들을 열거하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그런데 뭐?’하는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앞부분에서 나온 내용이 뒷부분의 내용과 연결되면서 조금씩 맥락이라는 게 이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에 대한 내용은 제2장 서양 근대화의 힘에서 살짝 다루어진다. 요지는 자본주의가 직업을 신이 내린 소명으로 생각한 칼뱅의 ‘예정설’에서 비롯되었으며 프로테스탄트 세계를 중심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금욕주의적인 자세로 자신을 위한 재화소비를 죄악시하면서 근면, 검소하게 살았던 프로테스탄트들은 축적된 재화를 투자의 형태로 소비할 수밖에 없었고, 그 투자가 계속 확대 재생산되면서 자본주의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제 4장 세계사에 나타난 몬스터들에서 다시 다루어진다.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인간의 본성(욕망)에서 비롯된 자연적인 시스템이며 인간의 욕망이 멈추지 않는 한 자본주의도 멈출 수 없다는 것. 칼뱅파 프로테스탄트들의 금욕적인 검소함에 뿌리를 두었다는 자본주의는 자기 존재의 근원을 잊고 무한 자기증식을 계속한 결과 욕망을 먹고 사는 덩치 큰 괴물이 되고 말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욕망과 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기호를 소비하는 형태로 발전하면서 글로벌 브랜드, 글로벌 기업을 탄생시키고 경제적 제국주의를 건설하게 되는 것이다.  

종교와 제국주의도 서로 연관을 맺는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면서 제국의 야망과 하나가 되었고, 이슬람교는 관용적인 측면을 갖고 있으면서 전 세계적인 분쟁의 불씨가 되”었다는 글로 정리가 되긴 하지만 종교를 거론하면서 근대의 시작이라는 르네상스에 대한 야콥 부르크하르트와 요한 호이징가의 서로 다른 관점을 설명하는 세밀함도 잊지 않는다. 종교를 앞세워 식민지를 개척, 정복하는 오만하고 폭력적인 제국주의를 현대의 미국과 이라크의 관계에서 재발견한다거나 경제 쪽으로 그 영역을 옮긴 현대의 제국주의는 자기 모습을 감추고 맹렬히 침략을 감행하는 중이라고 경고하고, 종교에 대한 욕구가 다시 높아지고 있는 오늘의 세계가 지향해야 할 것은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일신교적인 세계가 아니라 많은 신들을 포함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신화의 세계일 것이라는 충고하고, 근대에서는 시선을 지배하는 것이 권력이었다면 지금은 ‘정보를 쥐는 자’가 권력의 중심을 장악한다고 조언하고, 신흥자본주의국가라고 할 수 있는 중국과 인도의 거대한 인구가 물건의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게 될 때 지구 환경의 급속한 파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세심함도 마음에 들었다.

오랜만에 읽은 역사서인데 처음엔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 서술방식이 무척 새로웠다. 역사를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처음 경험한 셈이다. 경제학자 우석훈 씨는 해제글에서 ‘한국의 역사학이 죽었다’며 안타까워한다. 내가 상상하며 읽은 그의 어조는 안타까움을 넘어선 통탄에 가까웠다. 탄탄한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일본의 역사학과 비교도 안 되게 우리의 역사학은 사료가 사라지고 있을 뿐 아니라 한문으로 된 1차 사료를 해독할만한 한문 실력을 갖춘 사람도 명맥이 끊어져 가고 있는 중이란다. 그러니까 우리는 역사를 통해 오늘의 세계를 조망할 수 있기는커녕 지난 시대의 사건과 연대를 찾아내어 묵은 때를 벗기는 일조차 지지부진하다는 것일까. 일본의 역사학자도 아닌 문학부 교수가 쓴 역사책 하나에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내가 좀 청승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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